물날 글쓰기 시간과 나무날 수학 시간 이틀 동안에 뿌리샘 모둠은 줄곧 뿌리샘 교실 이름표 만들기 공부를 했습니다. 학교에서 줄곧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모둠 교실, 그 공간을 따뜻하게 맞이해 줄 이름표를 우리 손으로 공들여 만들어 보고픈 생각이었는데요.
뭘로 만들까 고민하다 뿌리샘 교실에 처음 이사왔을 때 버려져 있던 나무판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뿌리샘 어린이들이 목공을 하고 남은 것들인데요. 마침 갯수도 딱 맞게 남겨져 있더라고요. 땅땅땅! 냉큼 재료로 결정했습니다.
나무를 어떻게 해 볼까 고민하다 잡아든 아크릴 물감. 사람이란 누구나 저마다의 빛깔과 결이 있지요. 이를 서로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살아가고요. 뿌리샘 어린이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결과 빛깔을 이름표를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뿜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결과 빛깔을 다양하게 낼 수 있는 아크릴 물감을 준비했습니다.
재료가 다 준비되었으니 이제 시작해볼까요?
먼저 거친 나무판자를 부드럽게 사포질합니다. 바깥 평상에 나와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나들이 온 기분이 절로 납니다. 아이들도 비슷한 기분인지 앉아서, 기대서, 누워서, 서서 자유롭게 일광욕하며 따뜻해지는 봄날을 즐겼네요. 하면서 두 가지 종류의 사포를 만져보며 느낌을 말해보고, 굵은 사포와 얇은 사포의 구분법도 알아봅니다.
다음은 아크릴 물감 칠하기! 칠하기 전, 빨리 말라버리는 아크릴 물감의 특징과 주의할 점도 이야기나눕니다. 파레트 대신 쓰레기통에서 주워놓았던 투명비닐을 사용하기로 하고요. 색을 고를 때 신중해지는 아이들. 정우는 좋아하는 파랑색, 민주는 봄기운 물씬 풍기는 연두색과 보라색, 지빈이도 좋아하는 보라색과 하늘색을 고릅니다. '뿌리샘'을 쓸 모둠 이름표는 민주가 여러 색을 섞어서 '뿌리'와 비슷한 색깔을 만들자고 제안해서 그렇게 하기로 합니다. (사실 중간에 몇 번이나 아이들의 마음이 바뀌어서 여러 번 덧칠을 하다 보니 멋진 색깔이 나왔어요. 여러 번 덧칠을 할 수 있는 아크릴 물감의 특징을 잘 살린 것 같아요.)
슥삭슥삭~ 색을 바르는 모습들을 보니 그것도 참 아이들마다 달라 한 아이 한 아이 구경해 봅니다. 몸놀이를 좋아하는 정우는 옆에 있는 숲 속 놀이터 그네를 타고 싶어 색을 고르는 것도, 칠하는 것도 일사천리. 그렇지만 이야기 나누고 뭔가를 할 때 마다 항상 초롱초롱한 눈으로 집중하는 정우. 그런가 하면 지빈이는 매사에 신중합니다. 어떤 나무, 어떤 색, 어떤 붓, 지빈이에게는 모두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에요. 특히,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하는 지빈이는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겪어내 보는 것도 공부지요. 그 옆에서 민주는 지빈이에게 말합니다. "그냥 마음가는 대로 칠해." 민주는 말한대로 마음에 들면 드는 대로, 안 들면 얼른 다시 덧칠을 하면서 혼자 묵묵히 해 냅니다.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붓을 놀리는 민주. 모두들 그렇게 자기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대로 내보이며 이름표를 만듭니다. 가을에 돌아올 승민이의 이름표도 미리 만들어놓고 싶다는 아이들. 승민이 이름표에도 정성을 들입니다.
4년째 함께 하고 있는 아이들도 저마다의 색과 이야기로 삶을 채워가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갑니다. 문득, 2주를 함께해 온 뿌리샘과의 시간 동안 내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과 관계에 대해 너무 서두르지는 않았나, 욕심내지는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시간이 가다 보면 네 사람의 이야와 삶이 서로에게 조금씩 묻어나고 어우러지겠지요.
첫댓글 아이들 저마다의 기질이 오롯히 드러나는 교실 이름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