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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유 게 시 판 ♣ 스크랩 "곪은 게 터진 교회, 이 지경까지 왔구나"
김성원 추천 0 조회 79 09.08.25 19:3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곪은 게 터진 교회, 이 지경까지 왔구나"

종교 여행 2009/02/24 08:02 꺄르르

 

 

작년에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이필완 목사, 홍현두 교무 등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4대 종단 성직자들은 100일 동안 전국을

걸었습니다. 도법스님은 5년 동안 전국 탁발순례를 마쳤습니다.

깨끗한 삶을 사는 종교인들은 세상의 변화에 투명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지요. 종교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건 심상치 않다는 얘기겠죠.

 

이필완 목사님은 교회와 세상의 다리를 놓고자 인터넷 신문 당당뉴스를 만들었지요. 광고와 촌지를 일체 안 받고 자발 후원금과 자발 원고로

운영되는 당당뉴스는 4년 동안 목소리를 내고 있지요.

2월 12일, 이필완 목사님을 뵙고 <한국 개신교, 달라질 수 있는가>를

주제로 이야기 들어보았습니다.

 

-목사로서 생태환경운동에도 참여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환경문제, 생태문제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하나님이 복 주셨다고 생각하고 자연을 아무 반성 없이

망가트리고 있어요. 하지만 자연파괴는 하나님 몸을 망가트리는 거예요. 어떻게 자연훼손이 하나님 몸을

망치는 것이냐, 범신론이냐, 따지는데, 하나님을 영혼 쪽으로만 말해서 사람들이 귀 기울이는 시대가 아니죠.

환경이 너무 오염되어서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광우병, 멜라민 파동, 남의 얘기가 아니거든요.

 

촛불시위 때, 이명박 대통령은 일단 대운하를 중단하겠다. 얘기했지만 포기하지 않잖아요.

그런 말을 한 이명박 정부에, 저는 그럴 리가 없다, 밀고 나갈 거다, 라고 했지만, 믿어주자고 해서

우선 해산하고 잠시 일을 놓았지요. 역시나 다를까, 경인운하 발동되고 4대강정비를 하고 있잖아요.

모든 생태용어, 환경단체 용어들을 다 쓰고 있는데, 자세히 검토해보면 허탈하고 갑갑한 게 많아요.

공사를 하면서 경제위기 극복을 한다고 말하거든요.

토목공사로 경제위기가 극복이 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겠냐는 거죠.

 

4대강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해요. 강을 100일 동안 걸었지만 몇 군데 빼면 강에 사람이 없어요.

더럽고 냄새가 나니까요. 강을 너무 많이 망가뜨린 거죠. 썩은 지천들을 정비해야 해요.

그동안 너무 방치했기에 강바닥도 긁어내기는 내야할 테고, 물꼬를 터서 자정할 수 있게 해줘야 하죠.

순환이 되도록 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 토목공사를 무조건 벌여서는 문제가 되지요.

4대강 정비를 한다면서 시멘트 발라놓고 재벌들을 살찌우려는 거거든요.

강 근처 사는 주민들은 떠나게 생겼어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4대 종단 성직자들이 다시 모여요.“

 

“싸늘한 시선을 넘어 사회 전반이 교회에 의구심을 품어”

 

-한국 개신교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사회가 교회를 보는 시선이 싸늘한 수준을 넘어섰어요. 안티기독교수준을 넘어서는 거예요.

안티기독교는 몇 사람들이 기독교는 해악밖에 없다, 자멸할 거라고 공격을 했지요.

안티기독교가 일부 사람들의 모임이었다면 이제는 사회전반 흐름이 교회에 의구심을 품고 있어요.

국회의원들도 안 하는 일을 목회자들이 서슴없이 행하고 폼 잡고 특권의식을 갖고 있어요.

그것을 즐기는 교인들도 많고요.

 

최근에 감리교에서 큰 사태가 벌어졌지요. 감독회장 자리를 놓고 서로를 향해 온갖 비방과 욕설을 하고

거친 몸싸움을 벌이는 무자비한 싸움이에요. 곪은 게 터졌다고 생각해요. 자정 능력 없이 왔던 게 터진 거지요. 이건 감리교단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대부분 교단과 신학교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죠.

 

작년에 이어 올해 2월에도 감독회장직을 두고 감리교단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당당뉴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교회가 개발독재에 편승하면서 혼탁해진 게 아닌가 싶어요.

급격하게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증권, 땅 투기 열풍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었지요. 그 당시에는 전혀 반성이

없었고 교회도 거기에 편승했어요. 헌금 많이 내는 사람이 최고였고 어떻게 번 돈인지 옳고 그름을 안 따졌어요. 신앙은 물질보다는 정신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데 한국 교회는 물질에 관심을 쏟았지요.

 

잘 사는 게 하나님 축복이라는 설교를 하고 교회가 완전히 경제와 물질문명에 휩쓸려 버렸죠.

헌금으로 교회를 크게 세우고 사람들이 들어찼죠. 80년대 중반까지 그랬어요.

사람들도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잘 산다, 외치며 헌금하고 몰려들었죠.

그때 강남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소망교회, 광림교회 등 크게 성장했어요. 부자교회가 생겨난 거죠.

 

저 같은 사람이 보기엔 그런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봅니다.

역사를 보면, 크다는 거 자체가 교회가 가졌던 장점들을 잃게 하거든요. 교회가 커지니까 운영이 복잡해지고

경영을 해야 돼요. 교회가 돌아 버린 거죠. 큰 교회들이 큰일을 하기는 했어요.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교회를 부패시키고 왜곡시켰으며 교회정체성에 혼란이 왔어요.“

 

-많은 목회자들이 큰 교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답답한 점이에요. 작은 교회 목사들이 다 큰 교회를 꿈꾸는 거예요. 나중에 나도 큰 교회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모두가 재벌이 될 수 없듯이 모든 목사가 큰 교회 할 수는 없죠.

작은 교회로서 현장과 지역을 누비며 충분히 뜻 깊은 역할을 할 수 있는데, 큰 교회만 바라보고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는 열망이 너무 강해요. 따라서 열등의식만 커지게 되고 교회는 전반적으로 정체가 되었죠.

 

성장의 잣대가 교회를 휩쓸었고 그러다보니 교회에서 나오는 메시지와 목사들의 설교가 정직하지 않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교회를 꼭 가야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예요. 교회로서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자정능력을 잃어버리면서 오늘날, 위기를 맞은 거죠. 정체정도가 아니라 망하고 있어요.

그런데 인정을 안 해요. 내부에서는 아직도 잘 된다고 하는 사람 많아요.

 

일본 기독교의 규모는 작아요. 교인이 전체인구의 3%정도 밖에 안 되고 70-80명이면 대형교회에요.

하지만 1000만 명 신도수를 자랑하는 한국 교회보다 영향력이 훨씬 커요. 사회에서 바라보는 기대치가 달라요. 일본 기독교는 소금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음식 할 때 소금은 알맞게 있어야 하지요.

교회가 크고 신도수가 많아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한국 교회도 정신 차려서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교회 노릇을 해야죠.“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로 꼽히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예배모습 @여의도순복음교회

 

“목회자들이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예언직을 안 해”

 

-사회는 아프고 힘들다고 하는데 빛과 소금이 되는 목회자들이 안 보입니다.

“너무 목회자들이 교회에만 매몰되어있죠. 저희가 신학교에서 배울 때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교회 키우는 일을

배워요. 이것을 사제직이라고 해요. 그런데 목회자가 해야 할 것은 사제직만이 아니에요. 예언직을 해야 해요.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거죠. 옳지 못한 것을 옳지 못하다고 하고 바른 소리를 해야 하는 거예요.

사제직과 예언직을 같이 해야 하는데 입바른 소리하는 목회자가 너무 없는 거예요.

배고픈 길이지만 예수를 따른다면 좁은 길로 가야죠.

 

너무 권위 의식에 파묻혀 버렸어요. 교회에 이런 분위기가 있잖아요.

목사비판하면 안 된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벌 받는다, 아주 웃기는 공식이에요.

이런 신화와 권위주의가 깨어져야 해요. 이번에 감리교 감독회장을 둘러싼 권력싸움처럼 아픔은 있겠지만

그렇게 권위주의가 깨어져야 해요. 감독회장이 우습게 되었고 자기들이 우습도록 알게 했어요.

저는 똥통에 빠졌다고 말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막 깨져야 해요.“

 

-목회자들도 문제겠지만 신도들은 어떤가요?

“요즘 난민이 많아졌다는 얘기가 나오네요. 그동안 자기 목사와 교회만 바라봤는데, 목사가 추악한 행태를

바꾸지 않아 다니던 교회를 떠나 방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죠. 이곳저곳 다니면서

자신이 바라볼 수 있는 목회를 찾는 거죠. 목회자들도 책임이 크지만 많은 교인들이

교회가 썩어가는 흐름에 거역을 하지 않은 것도 문제에요.

 

교인들 가운데 말로는 개혁을 외치지만 자기교회에 돌아가면 목사가 자신에게 잘해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가족만 축복해주기를 바랍니다. 생활과 신앙이 불일치되었어요. 이게 최고원인이에요. 믿음과 생활이

같이 가야해요. 모든 지식이 그렇듯 결국 삶 속에서 실천을 해야 참지식이 되는데, 기독교인들은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거예요. 자기들만을 위해서 희생과 봉사를 끼리끼리 하였고, 교인들도 이것에 너무 쉽게 동의했어요. 30~40대 팔팔한 사람들이 예수 믿어서 나 혼자만 복 받겠다고 하는 건 비극이죠.

 

이것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요. 이젠 그런 분들도 자기 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에서는 교회 다니는 사람과 안 다니는 사람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잖아요.

이런 일들이 너무 오랫동안 일상화되어왔죠. 교인들이 반드시 투쟁하고 앞장설 필요는 없어요.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배운 바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돼요.

 

먹고 마시는 거, 쓰레기 버리는 거 같이 작은 일부터 애를 써서 바꿔야 해요. 자신이 욕을 듣기 싫으면 남에게

욕 안하면 돼요. 교회가 심각한 게 비판은 듣기 싫어하면서 남은 쉽게 욕해요, 교회 사람들이 경찰서가면

경찰관들이 아주 싫어해요. 자기 신념에 대한 고집은 세면서 남에 대한 관용은 별로 없거든요,

교회에 몇 십 만원을 기쁨으로 낸다고 하면서 콩나물 장사에게 몇 백원 깎으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건데 지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죠.“

 

소망교회의 변칙적 세습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교회개혁실천연대 회원들. 소망교회 교인들이 이들을 강하게 저지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승균

 

“자연스러워진 교회세습, 교회를 사유화하는 목사들”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음 세습 문제가 나왔을 때만 해도 사회문제가 되었어요. 일반 신문에서도 많이 다뤘고 교회 안에서도

반대가 많았지요. 하지만 세습이 다 이뤄졌어요. 광림교회만 해도 국회의원도 많고 교수 등등 지성인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라고 해요. 그런데도 대물림이 되었고 교회세습은 이제 자연스러워졌어요.

 

상식으로 볼 때 교회세습은 안 되는 거거든요. 목사의 세습은 돼요. 목사 아들이 목사 하는 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으리으리한 교회를 그대로 물려받겠다, 그건 권력의 세습이고 완전히 기득권의 세습이죠.

교회가 그 짓을 하는데 누가 교회를 다니겠어요. 웃을 거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일상화가 되었고

최근에는 전혀 문제가 안 되며 당연한 것처럼 되었어요. 이렇게 뿌려진 씨앗은 참혹한 열매로 나타나겠죠.

 

자정능력 알아서 발휘하지 않는다면 교회법으로 규제하고 나름대로 경각심을 높여야 해요. 불행한 일이에요.

사유화할 수 없는 걸 사유화하고 있어요. 작은 교회 목사들도 교회를 자기 것인 줄 알고 있어요.

교회는 공익을 목적으로 등록을 하기에 세금도 안내는 건데, 자기 것인 줄 알아요.

교회세습은 개신교가 몰락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겁니다.“

 

-앞으로 한국 교회는 어떻게 될 거라고 전망하시나요?

“성장신화는 멈췄어요. 만약 모기지사태가 한국에도 오면 교회부터 시작됩니다. 최근에 지은 큰 교회들은

전부 제2금융권에서 돈을 끌어다 지었어요. 경제위기로 순환이 되지 않으면 교회부터 무너져 내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인 숫자가 주는 건 더 빨라질 겁니다. 개판이 된 감리교 사태를 보면서

많은 감리교인들이 실망을 했습니다. 10년 이내에 신도수가 반으로 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떠나든 안 떠나든 남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을 차리는 지가 중요하죠. 개신교 초창기 때를 보면 3.1운동이나 독립운동에 개신교인들이 적극 참여하였고 사회에 빛이 되었단 말이에요. 그때 교인들이 20~30만 명이었어요. 지금 교인이 1000만이라고 하는데 이런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얼마나 살아있는냐가 중요한 거죠.

 

예전에도 그냥 썩게 내버려둬야 한다, 뭘 개혁이냐 다 썩어버렸는데 이런 얘기가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 망하라고 내버려둘 수 없으며 망조가 든 흐름에 거슬러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서구 구라파 교회가 민심을 잃은 것처럼 무너지는 일은 겪지 않을 거 같아요. 한국인들의 종교심은

남다르거든요, 종교심이 큰 나라에요. 서구 기독교가 들어와서 120년 만에 이 정도로 발전을 하였으니까요.

 

그래서 당당뉴스를 만들었고 교회와 세상의 다리가 되려고 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교회는 인식을 못 하고 있어요. 교회 사람들은 사회의 냉정한 시각을 몰라요. 얘기를 해줘야 해요.

교인들은 못 들은 척하고 실제로도 잘 몰라요. 관심이 없어요. 심각한 상황이죠. 나이든 목사 뿐 아니라

젊은 목사도 몰라요. 이런 감리교사태가 오히려 필요한 일이었는지도 몰라요.

아, 우리가 이 지경까지 왔구나, 자극받고 경각심을 키워야 할 때지요.

 

하지만 비관적인 건, 20-30대 청년들이 교회를 거의 다 버리고 있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교회가 어린 애들,

중고등학생들이 공부하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통로였거든요. 요즘은 모든 게 뒤떨어졌어요.

젊은이들이 교회에 별로 없어요. 강남의 몇몇 교회는 젊은이들 몇 백 명이 모여 춤춘다고 하지만

전체로 보면 심각해요. 지금 감리교사태가 분명하게 드러나잖아요.

부패라고 하는 건 한번 부패하기 시작하면 병균처럼 옮아가는 거거든요.“

 

'고소영'할 때 소망교회 @오마이뉴스 박상규

예수가 한국 사회를 본다면 뭐라고 하실까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한다며 세상 사람들을 전도하려는 개신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귀감이 되는 삶을 산다면 말하지 않아도 감화되어

교회로 사람들이 찾아가겠지요. 기독교 경전을 강조하고

따분한 설교를 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따르겠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삶을 따르는 건지 예수의 이름을 팔아 단물을 먹겠다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500년 전,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는 성직자가 있으며

오로지 자신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에게 갈 수 있다는

중세가톨릭신부들을 루터는 비판하였지요. 그는 종교개혁을 외치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다며 ‘만민 제사장직’을

주장했어요.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일반 사람들의 지성능력이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중세가톨릭신부처럼 보이는 목사들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교회를 크게 지으면 하나님께 큰 일하는 겁니다, 이런 말들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목사의 말이면 하나님 말이나 되는 것처럼 껌벅 죽고 받들어 모시던 때가 있었죠.

이제는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교회는 머물러 있기에 젊은이들이 떠나고 있습니다.

 

예수는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도우라고 말씀하셨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고 말은 하지만 생활에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는 없습니다. 수많은 십자가들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 만큼 사람들의 탐욕도

커지기만 합니다. 교회 생활이 삶을 정화시키고 참된 삶을 살게 도와주기는커녕

탐욕을 키우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라’고 예수는 가르치지만 ‘타인을 내 몸 위해 희생’시키는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수많은 ‘선데이 크리스챤’들을 보면서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곰곰 생각하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재림을 2000년 동안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로, 예수가 재림해서 한국 사회를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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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회, 나쁜 교회, 이상한 교회 블로거 기자단 뉴스에 기사로 보낸 글 | 종교와사회 2008.08.25 14:43

진민용

 

 

최근 조계사에 헌금봉투를 넣고 지폐에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문구를 새긴 모 교회가 논란이 됐습니다.

그리고 한 방송 프로그램에는 귀신을 쫓아낸다며 자기의 친 어머니와 여동생을 구타한 비정한 언니와

그 교회 이야기가 퍼지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블로그에 기독교인으로 불교인에

사죄한다는 내용의 글이 포스팅 되기도 했군요. 어쨌거나 기독교와 교회, 특히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극에 달한 듯 싶어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씁쓸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일부의 문제일 뿐이다" 라고 변명을 하는 것 또한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의 비 기독교인들은 언론에 보도된 일부 교회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변과 이웃 교회들의 행태에 대해 비판하고 있기에

거기다 대고 "일부일 뿐" 이라는 것은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겠지요.

 

아마 한국교회가 최근 몇 년동안 욕 먹은게 한국 기독교역사 200년 동안 먹은 것 이상인듯 싶습니다.

이러니 어디가서 "제가 목사입니다" 라거나 "저 00교회 다녀요" 라는 말을 하려면 탈레반에 포로된 심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지요.  그래도 한국에서 개신교와 교회가 전혀 업적이 없는 건 아닙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요즘 인기를 모은 영화제목에 한 번 붙여서 나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니 너무 뚫어져라 보지 마시고 흘겨 보시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좋은 교회 ( 가난하지만 목사가 목사님으로 불리는 교회 )

 

아마도 옛날 성탄절이 가까워 오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교회에 들러서 어린이들이 펼치는 노래와 연극을 보고,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이라는 찬송을 따라 불렀던 추억은 있을 것입니다. 

또 남여공학이 드물었던 당시에 유일하게 남여학생들이 어울려 게임하고 노래부르며 은근슬쩍 손도 한 번씩

잡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곳이 바로 '교회' 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연애당' 이라고도 불렀죠.

 

특히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중심, 또는 남여평등의 사회로 바뀌도록 일조 했다는 데 교회가 한 몫은

했을 듯 합니다. 그 동안 "아무개 엄마" 내지는 "00댁" 이라며 자기의 이름이 불릴 기회가 없었던 여성들이,

교회에서만큼은 "김00 집사님" 이나 "박00 권사님" 이라며 실명이 불렸었죠. 이게 지금은 별거 아닌것 같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예우였습니다. 또 많은 여성인권운동가들이 기독교 단체에서 등장했고,

사회운동, 빈민운동, 노동자 운동 등 소위 '사회선교' 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킨 역할을 했던 것이 기독교였음을 부인 할 수는 없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전쟁 직후에는 세계 각국에서 보내주는 구호물품들을 미군부대를 거쳐 각 지역의

교회를 통해 배급이 되기도 했었고, 오갈데 없는 실향민들과 전쟁고아들에게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상처받은 이웃들을 위해 병원, 학교, 고아원 등을 지어 봉사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보다 더 앞서 일제식민지 당시에는 독립운동의 최 전선에 반드시 기독교 지도자들이 포진해 있으면서

교회는 독립운동의 아지트 역할까지 했고, 신사참배에 반대했던 주기철 목사나 이후 손양원 목사와 같은

지도자들이 등장하면서 한국교회는 사회의 모범이었고, 성경에 있는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던 장기려 박사는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무료의술에 헌신했고, 심지어 돈이 없어 수술받고 퇴원을 못하는 환자를 위해

일부러 밤에 병원문을 열어둔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당시 목사와 장로들은 민족의 지도자였고, 그 고을의 존경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입학하는 목사후보생들은 마음으로 '희생과 고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만큼

고생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의 십자가를 따르는 고난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목사와 결혼하려는 처녀들은  곧 "나도 골고다 언덕을 당신과 함께 올라 가리다" 라는

거의 순교의 정신이 아니면 엄두를 못 냈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마을 처녀가 총각 전도사한테 프로포즈를 받은 다음 날

머리깎고 절에 들어가버렸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을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좋은 교회란, 그 스스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겠군요.  민족을 위한 희생, 이웃을 위한 희생, 그러면서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로부터 "목사님"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던 교회,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거룩한 곳' 이라며 흙묻은 신발을 신고

교회 예배당에 들어서기조차 어려워 했던 그런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급하고 보니 '좋은 교회' 는 '옛날 교회' 라는 도식이 성립되는 듯 하네요. 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지금도 찾아보면 이런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론에 알려지는 교회들이 워낙 엉망인지라

가려진 것 뿐이지요.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2. 나쁜교회 (교회라는 이름으로 교주를 받들게 하는 교회)

 

이런 교회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없는 교회입니다. 굳이 따지면 '교회' 라는 이름을 이용한

'사교(私敎)집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이비' 라고 불리는 집단들인데, 이들의 특징은 대부분

'성경' 이나 '예수' 와 같은 이름을 내세우지만 결국 '교주'의 가르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성경' 외에 또 다른 '교리'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교인들의 '돈'과 '충성' 입니다. 또한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을 많이 하며

교주의 독재적인 지위를 이용해 교인들의 가정을 파괴하거나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심지어 그 단체를 이탈하려는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하기도 합니다.

 

처음에 접근할 때는 '집안에 우환을 없애준다' 거나 '축복을 받게 해준다' 든지, 또는 성경적인 지식이 별로 없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 준다' 며 유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기독교인들이라면

이런 단체들에 대해서 들어본 경험이 있을테지만 많은 일반인들은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이상한 교회 (좋은교회와 나쁜교회를 섞어놓은 교회 - 헌금과 설교)

 

안타깝게도 본인이 판단하기에는 세 번째의 경우가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들은 교주를 우상화 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목사를 우상화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성경'을 토대로 설교는 하는데 듣고보면 성경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또 '가정의 축복'과

'건강' 등을 강조하지만 끝까지 듣고보면 결국 '헌금을 많이 하면 하늘에서 많이 준다' 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헌금' 문제입니다.  이상한 교회의 특징은 '헌금'을 모으기만 할 뿐

그 '사용처'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소위 '사이비'들이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바쳤으면 됐지 뭘 따지느냐" 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일반 교인들은 감히 '하나님' 께

드린것에 대해 믿음이 없이 따진다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고, 결국 포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 바친" 것에 대해 지나치게 따지는 사람들은 교인이 아니라 따지지 말라는 목사와

장로들입니다. 그들만의 '회의'를 들여다보면 "이번주 헌금이 얼만데, 왜 자꾸 줄어드느냐" 또는

"목사님이 헌금을 강조해야 되지 않느냐", 그리고 "교회 건축하느라고 갚아야 할 빚이 얼만데

이렇게 헌금을 적게 거둬서 안되겠다" 는 등의 '거룩한(?)' 회의를 합니다.

 

안타깝게도 교회규모가 클 수록 '구제헌금' 이나, '복지단체에 기부금' 또는

'이웃 주민들을 위한 봉사 기금' 등의 항목은 없거나, 전체 헌금 액수의 기껏 1% 내외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바친 헌금이 정작 하나님의 일에는 사용되지 못한 채 교회건물 유지비로 몽땅 허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목사들은 "헌금을 많이하고, 일단 바쳤으면 따지지 마라" 고 강조합니다.

그나마 매월 월례회 등을 통해서 월별 결산을 하는 교회는 정직한 교회입니다.

 

또한 이런 교회의 목사들이 주장하는 "헌금 많이하면 축복을 받는다"는 말이 사실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설문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10년 이상 교회를 다닌 교인들을

대상으로 "지난 10년 동안 '십일조'와 '헌금'을 얼마나 했으며, 그 결과로 지난 10년 간 재산은 얼마나

증가했는가" 라는 내용으로 말입니다.

 

당신이 낸 십일조와 헌금, 하늘의 축복으로 되돌려 받은 증거가 있나? 

 

이런 얘길 하면 또 "믿음이 없구만, 헌금을 꼭 재산으로 따져야 되나?" 고 반론하겠지요.

그러나 많은 교인들은 하나님께 헌금할때는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주시겠지" 라고 기대하지 않나요?

그러니 한 번 따져보자는 겁니다.

 

아마도 재산이 증가했다면, '부동산 가격' 내지 '아파트값 상승' 또는 '주식의 증가' 등 

교회를 다니건 다니지 않건 재산증가의 요인은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즉  동일한 지역, 동일한 직업군,

동일한 학력 으로 따지면 교회를 다니거나 안 다니거나 재산의 증감에는 차이가 없을거라는 게

본인의 주장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따라서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부자가 될 확률이 높은 것" 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차라리 부자가 되고싶으면 헌금보다는 '펀드'가 더 빠르다는 말입니다. 

이 쯤 되면 일각에서는 또 반박할 겁니다.

 

"눈에 안 보이게 축복받았다. 교통사고 안나게 지켜줬고, 병 안걸리게 지켜주셨고... 그게 어디냐" 라고요.

물론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 그리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죠.  어디 교인들만 그렇게 지켜주나요...

 

다시말하면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불신자들과는 다른 특혜를 얻는다" 는 생각은 버려야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차라리 '마음의 안식' 이라거나 '구원의 확신을 갖는것' 또는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보람' 등과 같은

차이라면 얼마든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교회들은 마치 "교회를 다니면 이 땅 위에서도

불신자들과는 다른 특혜가 있다" 고 주장하기에 그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성경에는 "너희가 나로 인해 핍박을 받게 될 것" 이라고 가르칩니다.  뭔가 대단히 착각하는 것입니다.

쉽게말하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이 세상의 축복과 권리, 그리고 명예 등을 다 포기하고

오직 예수의 가르침만 따라 살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교회를 다녀서는 안 됩니다.

 

이상한 교회의 잘못된 설교가 잘못된 신앙인을 양성해

 

필자가 이상한교회에 대해서 딱 두 가지 '헌금과 설교' 만을 꼬집는 것은 그 밖의 수많은 주제들 중에서도

가장 크게 잘못되고 있는 분야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약성경의 십일조는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일종의 복지기금이었고, 헌금은 이웃의 가난을 해결해 주기 위한 공동모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들이 이런 명목을 악용해 수많은 십일조와 헌금을 거두면서도

정작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순진한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수 백억원짜리 건물 융자금 갚는데 탕진하고, 목사의 고급 승용차 기름값으로 허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배곪고 가난한 이웃들이 있고, 일반 사회와 정부에서도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각종 세금을 거둬서

복지예산에 편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턱없이 모자라는 예산 때문에 여전히 저소득층 아이들과 노인들,

노숙자들과 장애인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자기들의 배만

불리면서 단추가 터지기 직전으로 축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만간 엄청난 규모의 교회건물이 텅텅 비어서 나이트클럽에 매각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과거 영국교회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지금도 교회에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올바른 성경과 가치관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실망한 젊은이들이 떠나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교회 천 개가 문 닫아도, 좋은 교회 한 개가 있다면 세상은 변할 것

 

필자는 확신합니다. 큰 건물의 교회가 모두 '이상한 교회'는 아닐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될 위험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인 조용기목사의 교회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철저히 세속적인

축복과 물질의 풍요만을 강조하면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행복'만을 강조하면서 정작 교인이 가져야 할

세상에 대한 책임이나 교회의 희생,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교인들의 순교정신 등은 외면했습니다.

 

교회만 열심히 다닐 뿐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습관이나 자식키우는 것이나 돈 욕심이 많은 것이나

어느것 하나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은, 어쩌면 그보다 더 탐욕이 심한 교인으로 만드는 교회가

결코 정상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차라리 이런 교회 천 개가 문을닫는 한이 있어도 제대로 된 좋은 교회 단 하나만 있다면

이 세상은 밝아 질 것입니다. 불 꺼진 초 천 개 보다는 불 붙은 한 개의 촛불이 산을 태우는 법입니다. 

생명없이 떠드는 설교보다는 가슴을 울려주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게 더 생산적입니다.   

 

여러분 주변의 수많은 '이상한 교회'를 피해서 '좋은교회'를 찾는 눈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민족정신, 그리고 삶의 지표를 알려주셨던

김교신 선생과 함석헌 선생과 같은 지도자들이 있는 교회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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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예수 없는 예수 교회'

2008/12/29  박정호기자...

 

 

서울 야경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세요?

구역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동네 뒷산에 오르면 제일 많이 보이는 게 빨간 불빛을 내뿜는 십자가입니다.

'서울 전체가 공동묘지 같다'는 우스갯말이 나올 정도로 할 정도로 많습니다.

200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개신교회가 5만 여개, 개신교인이 8백 6십만명을 넘었더군요.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는 교회와 교인이 넘쳐나는데도 한국 사회는 예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한국 교회에 교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떻게 해야 한국 교회가 변화할 수 있을까요?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최근 펴낸

<예수 없는 예수 교회>에 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한국의 예수 교회에는 예수님이 안 계십니다"

김영사 제공

한 전 총재가 주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한국 교회에 예수님이 안 계시다"는 거죠. 한국 교회는 인간 예수의 삶 대신

신격화된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의 가르침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2천년전 유대 땅에서 태어난 예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예수는 당시 사회 기득권층에 맞선 청년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의 탐욕과 위선을 비판했죠. 비판만으로 그친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사랑을 실천한 거죠. 낮은 자들과 함께 먹고 아픈 자들을

치료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를 깨고

'원수를 사랑하라'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는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기득권층의 탐욕과

위선을 질타합니다. 민중의 지지를 받는 개혁가의 등장. 당시 기득권층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합니다. 결국 대제사장 무리들에게 붙들려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진 예수는 십자가형을 당하게 되죠.

 

하지만 십자가에 달려 힘없이 패배한 것처럼 보였던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해 비폭력 저항 운동의 승리를

보여줬습니다. 이런 예수의 사랑과 고난 그리고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고 그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한 전 총재는 이와 같이 예수의 조건 없는 사랑이 한국 교회에 없다고 합니다.

그는 "지난 60여 년간 한국 개신교는 불행하게도, 종교적 근본주의라는 속옷에다

냉전 근본주의 신념이라는 겉옷을 덧입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죠.

 

"그들에게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역사적 예수의 말씀이 가장 불편한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주적은 초전박살내야 하는 원수인데 그들을 사랑하라니 언어도단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의 산상설교는 실천할 수 없는 허튼소리처럼 들릴 것입니다."

 

또한 한 전 총재는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예수의 명령과는 다르게 한국 교회는 십자가를 앞세워 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각종 교회 병폐는 예수가 교회에 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죠.

 

"십자가를 앞세워 불투명한 교회 운영을 은폐하고 십자가를 앞세워 자식에게 종교권력을 세습하는 것은

오히려 예수를 교회 밖으로 내쫓는 짓에 불과합니다."   "'예수 믿기'에 맹렬하고 예수 이름으로 선교시장을

확장하는 종교적 마케팅 활동에는 맹렬하면서도 '예수살기', 특히 역사적 예수의 삶과 말씀 실천하기는

게을리 하거나 무시하는 풍토를 저는 슬퍼합니다."

'사랑의 교회' 앞에서 예수 분장을 하고 '네 이웃인 비정규직을 사랑하라'는 문구가 적힌 십자가를 짊어지는 퍼포먼스.

 

한 전 총재는 개신교인들이 매주마다 외우는 '사도신경'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실물 예수' 없이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난 예수가 바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게 된다는 거죠. '사도신경'에는

하나님의 아들, 신격화된 예수만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했던 인간 예수의 삶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는 축소되고 그리스도(구세주)는 확장되는 것은 곧 역사는 외면당하나 신화는 존중된다는 뜻입니다."

실물 예수를 빼버리고 어떻게 예수를 믿는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사랑의 예수를 잃지 않았다면, 한국 교회가 '개독교'라고 욕 먹는 일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정부 각료들과 정치인들도 읽어보기를

이렇게 '내 삶에 들어오신 예수님'부터 '십자가, 그 멋진 패배의 미학'까지 21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예수 없는 예수 교회>는 예수의 삶과 다른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여주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한국 교회와 교인들은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교회 다니는 정부 각료들과 정치인들도 읽어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기복용 신격화된 예수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해 살았던 사랑의 예수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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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0.26 06:23

    첫댓글 권사님 너무 좋은 글이라 혼자보기가 아까워요 다 들 보았으면 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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