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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진세상3 원문보기 글쓴이: 라이프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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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2·5m, 몸무게 153㎏ 확인…“일제의 무서운 폭력 사죄”
이 모든 일을 20여 년 전부터 묵묵히 한 이가 바로 일본인 엔도 키미오 일본야조회 명예회장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호랑이 멸종 뒤편에 일제의 무서운 폭력과 무자비함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를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1986년 출간된 이 책은 지은이가 1908년 전남 영광 불갑산에서 1908년 잡혀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박제로 남아있는 한국호랑이와,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호랑이를 집중 추적한다. 또 서울대 도서관과 남산 국립도서관의 옛 자료를 뒤져 일본 강점기 때 호랑이 포획 실태에 관한 귀중한 통계자료를 찾아낸다.
서툰 한국말과 친구인 원병오 경희대 명예교수에 기댄 그는 꼼꼼한 관찰력과 예민한 감수성, 집요한 취재력으로 한국의 어떤 언론인도 해내지 못한 한국호랑이의 멸종사를 그려내고 있다.
상세한 포획기록이 남은 마지막 한국호랑이는 1921년 10월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사살됐다. 지은이는 이 호랑이에게 물려 큰 부상을 입은 김유근(타계)씨 등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해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김씨와 다른 마을 청년 몇은 추석을 앞두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지게를 진 채로 정면에서 달려든 호랑이의 공격을 당했다. 지게가 부서질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김씨는 지게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마침 일본 왕실의 귀족이 경주를 방문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마을의 미야케 순사는 도로공사를 하던 조선인 수백 명을 몰이꾼으로 동원해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산등성이로 쫓기던 호랑이는 목을 지키던 포수의 총탄 두 발에 거꾸러졌다. 길이 2.5m, 체중 153㎏의 큰 덩치였다. 호랑이 가죽은 일본 왕실에 헌상됐다. 당시 초등학생을 위한 일본말로 된 ‘국어교과서’에는 이 충성심 깊은 순사의 이야기가 실려있음이 확인됐다.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는 일본 왕실에 대한 충성심을 북돋기 위해 쓰인 것이다.
- 헌병 등 총동원, 호랑이 24 표범 136 곰 429 늑대 228 마리 사살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남아있는 한국호랑이 표본은 1908년 영광 불갑산에서 주민들에게 잡힌 것이다.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창으로 찔러 죽인 주민들은 이 호랑이를 들쳐메고 며칠을 걸어 부유한 일본인 상인들이 많은 목포에 도착해 우여곡절 끝에 팔게 된다. 다다미 상인 쇼지로는 이 호랑이를 구입해 일본에서 박제한 뒤 당시 일본인 학교였던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한다.
그가 서울대 등에서 발굴한 조선총독부의 각종 통계자료는 충격적이다. 일제는 주민이나 가축에게 피해를 주는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등 ‘해로운 짐승’을 구제하는 사업을 1910~1920년대에 걸쳐 대대적으로 펼쳤다. 피해 신고를 받으면 주민을 몰이꾼으로 동원해 사살하는 방식이었다.
<조선휘보>는 1915년 호랑이에 물려 죽은 사람이 한반도 전체에서 8명, 1916년에는 일본인 1명 포함해 3명으로 기록했다. 일본인은 사냥하다 역습을 받아 사망했을 것이다. 1915년 늑대에 물려 죽은 사람이 113명으로, 호랑이나 표범보다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와 눈길을 끈다.
‘해수’를 구제하기 위해 1915년 경찰과 헌병 3321명, 사냥꾼 2320명, 몰이꾼 9만 1252명이 총 4220일 동안 동원됐고 호랑이 11마리를 죽였다. 그 밖에도 표범 41마리, 곰 261마리, 늑대 122마리 등이 잡혔다. 이듬해에도 4만여 명이 동원돼 호랑이 13마리, 표범 95마리, 곰 168마리, 늑대 106마리를 퇴치했다. 요즘이라면 한 마리가 나타나도 반가울 대형 포식동물이 해마다 수백 마리씩 사라진 것이다.
총독부 자료를 보면, 대덕산 호랑이가 죽은 뒤에도 남한의 호랑이는 계속 잡힌 것으로 나온다. 1924년 전라남도에서만 6마리의 호랑이가 포획됐다. 해마다 2~3명이 호랑이에 물려 목숨을 잃었다는 통계도 나온다.
1933년부터 1942년까지 잡힌 호랑이는 8마리, 표범은 103마리였다. 그러나 1933년부터 호랑이가 붙잡힌 곳은 모두 함경북도 등 북한이었다. 흥미로운 건, 남한에서의 호랑이 피해는 계속됐다는 것이다. 1936년 경북과 충북에서, 1942년엔 경남에서 호랑이에 물려 죽은 사람이 보고돼, 이때까지도 남부지방에 호랑이가 살아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 조선시대도 정2품 장수 두고 왕이 직접 챙기며 포획 독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호랑이를 말살한 책임은 일제에 있는 걸까.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이 책 기획편집 후기에서 “호랑이 절멸의 책임을 일제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제의 해수구제 정책이 결정타를 가했지만, 이미 호랑이 개체수는 체계적인 호랑이 포획 정책을 편 조선시대 동안 급감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가정하더라도 우리는 이 땅에서 호랑이가 살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으로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적었다.
지난 15일 열린 국제 학술대회 “호랑이의 삶, 인간의 삶”에서 김동진 한국교원대 교수는 조선은 성리학의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호랑이를 적극적으로 포획하고 살상해 사람과 호랑이 사이의 생태적 균형이 무너졌다고 밝혀다. 조선 초기 논으로 개발된 저습지는 호랑이가 주로 살던 곳이어서 대규모 호환이 일어났고, 백성 보호와 굶주림을 막기 위해 국가가 나서 체계적으로 호랑이를 잡았다는 것이다.
조선은 호랑이를 잡은 사람에게 적병을 베는 것에 버금가는 상을 내려 호랑이 사냥은 출세의 지름길이 됐고, 일정 수 이상의 호랑이와 표범 가죽을 진상하게 하고 전국의 포호 성과를 국왕이 직접 챙겼다. 백성을 사랑하는 왕의 마음이 범에게는 죽음을 가져온 것이다.
게다가 ‘착호갑사’라는 호랑이 포획 전문 병종을 만들고, 호랑이 포획활동을 전문적으로 지휘하는 정2품에서 정3품에 해당하는 장수인 착호장을 두는 등 제도를 정비했다. 또 포획기술의 개발과 보급에도 힘썼다. 조선 후기에 도입된 조총도 범의 포획을 가속했다. 그 결과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최상위 포식자는 호랑이에서 늑대로 교체됐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이제 한국 호랑이의 흔적은 극동 러시아에 살아남은 시베리아호랑이(아무르호랑이)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항 교수는 “호랑이와 전혀 무관한 유럽과 미국의 젊은이가 호랑이 보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거기에 한국인은 없다”며 호랑이 보전을 위한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조홍섭 2009-12-29
100년 전 진도에 살았던 호랑이
지금은 자취를 감춘 한국 호랑이가 100여년 전에는 도서 지역에서 발견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서식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나왔다. 사단법인 한국범보전기금은 20세기 초반 전남 진도에서 호랑이를 포획한 기록을 담은 영국 문헌을 발굴했다고 20일 밝혔다. 사진은 1915년 영국 런던에서 발간된 '아시아와 북미에서의 수렵'이라는 제목의 책에 수록된 것으로, 1903년 전남 진도에서 호랑이 두 마리를 잡은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2012.02.20
백두산 호랑이 한쌍 중국서 들여온다
백두산 호랑이 암수 한 쌍이 올해 한국에 온다. 사진에 나온 것과 같은 종류다.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제8차 한중 산림협력회의’에서 중국 측은 한국과 우호를 다지고 백두산 호랑이의 번식을 돕기 위해 백두산 호랑이 한 쌍을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산림청은 중국 정부와 ‘백두산 호랑이 종 보전협력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한국은 1994년 한중 정상회담과 2005년 한중 산림협력회의 때 각각 1쌍의 백두산 호랑이를 기증받았지만 암컷들이 모두 폐사하는 바람에 단 한 번도 번식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산림청 2011-04-21
백두산호랑이 ‘펜자’ 일반에 공개
23일 오후 경기도 과천 서울동물원에서 일반에 공개된 시베리아 호랑이 '펜자'. 서울동물원은 지난달 21일 러시아 정부로부터 일명 백두산호랑이라고 불리는 시베리아 호랑이 1쌍을 기증받아 이들 호랑이의 출신지를 따 암컷에게는 '펜자', 수컷에게는 '로스토프'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하지만 변화된 환경 때문에 이들 호랑이의 합사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서울동물원은 밝혔다. 2011-06-23
“나는 백두산호랑이다”
서울동물원이 러시아로부터 기증 받은 시베리아호랑이 2마리가 23일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수컷인 ‘로스토프’가 호랑이 우리 안에서 걸어가고 있다. 과천=원대연 2011-06-23
中헤이룽장서 야생 백두산호랑이 사체 발견
중국 헤이룽장성의 한 저수지변에서 야생으로 추정되는 백두산호랑이 사체가 발견됐다.
중국 헤이룽장성의 한 저수지변에서 야생으로 추정되는 백두산호랑이 사체가 발견됐다. 현지 공안들이 죽은 호랑이를 살펴보고 있다. 헤이룽장성 2011-10-28
헤이룽장성(흑룡강성)
中 헤이룽장서 야생 백두산호랑이 사체 발견
27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미산(密山)시 다산(達山)산맥 자락의 한 저수지 변에서 야생으로 추정되는 백두산 호랑이 사체가 발견됐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발견 당시 이 호랑이는 호흡을 멈춘 채 저수지에 반쯤 잠겨 쓰러져 있었다. 이 호랑이는 몸 길이 2.5m, 꼬리 길이 1m에 체중이 200㎏에 달했고, 별다른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헤이룽장성은 야생동물 전문가를 파견, 이 호랑이의 사망원인과 이동경로 등을 조사 중이다.
앞서 지난 17일 이 일대에서 수컷으로 추정되는 야생 백두산 호랑이가 저수지를 헤엄쳐 건너는 모습이 목격됐다. 전문가들은 죽은 호랑이가 당시 목격됐던 호랑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북한과 러시아 접경인 두만강 유역을 야생 호랑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수렵 등을 엄격하게 단속하면서 훈춘(琿春) 등에서 야생 호랑이 출현이 잇따르고 있으나 헤이룽장성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양) 2011-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