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말도 못 하겠고
노병철
책상 위에 청첩장이 수북하게 쌓인 것을 본다. 이번 주말에만 세 군데 잔치가 있다. 보낼 부조금만 해도 만만찮다. 정년퇴직하는 셈으로 손 털고 일을 접고 싶어도 이놈에 부조금이 겁나 실행을 못 한다. 오만원권이 나오기 전엔 삼만 원도하고 했지만, 고액권이 나오고부터 오만 원 이하는 사라졌다. 그 뒤 물가가 올라 결혼식장 식대가 오만 원 하는 바람에 오만 원 부조하고 밥 먹고 나오기가 뭣해 십만 원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그놈에 고액권 때문에 한꺼번에 오만 원씩 뛴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결혼식장에 가지도 않고 밥도 안 먹지만 십만 원은 거의 고정이 된다.
“서른셋 넘은 여자가 좋은 남자를 만날 확률은 외계인에게 납치될 확률보다 낮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거실에 뒹굴고 있는 애들에게 슬쩍 흘린다.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네들 이야기가 아닌 줄 안다. 우리 집 애들이 우리 때 결혼 적령기로 보면 늦어도 한참 늦었다. 여자 나이 스물이면 벌써 중매가 오갔고 울 사촌 누나는 스물일곱이 될 때까지 시집을 안 가자 몸에 병 있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 내 두 딸은 서른이 훌쩍 넘었다.
두 딸이 가장 싫어하는 날이 바로 명절날이다. 친척들에게 시집가라는 말을 듣기가 싫어서인지 큰집에 가자고 하면 손사래를 친다. 집으로 손님들이 오는 것도 엄청나게 싫어한다. 언제부터인지 아예 그런 날엔 근무를 자청해서 피한다. 사실 30대 싱글녀가 내 주변에 너무 많다. 내 딸만 나무랄 일도 아닌 것이 요즘 이십 대에 시집가는 애들은 대부분 사고 쳐서 가는 애들이란 말도 있다. 취직해서 돈 벌고 있어 굳이 남자들에게 종속당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이야기를 한다. 혼자 살 여건이 충분히 충족된 상황에서 그 옛날 현모양처를 꿈꾸며 남자에게 빌붙어 살겠다는 마음은 ‘일’도 없다는 것이다.
며느리 월급 받는 것을 그대로 시부모가 챙기던 시절의 개념은 이제 지금 애들 머리엔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80년대 엄청난 교육열에 힘입어 아주 이기적으로 교육받은 세대다. 부모들이 나중에 노후 자금 없어 자식에게 빌붙지 않을까 해서 이런저런 여건을 고려하는 그네들 이야기에서 결혼에 대한 우리 풍습이 완벽히 바뀐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시부모, 친정 부모라는 개념도 희박하다. 가족이란 구성체에 대한 범위가 부부와 자식에 국한되어 있음을 본다. 아들이면 생각이 좀 다를 것이다. 요즘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처럼 뒤늦게 내가 당신 아들이요 하며 나타나는 놈 없나. 그래서 옛 어른들이 씨를 여러 군데 뿌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애 키우고 평생 집안일도 엄청난 가사노동임을 주창하면서 직장생활을 한 번도 가져보지 않은 집사람은 애들을 일찍 시집보내기 싫은지 큰애가 연애해서 인사 온 놈에게 영 마뜩잖은 표정을 한다. 난 어서 데려가라고 부추기고 있는데. 난 아주 기초적인 질문만 했다. 본이 어디인지 어느 집안 자손인지를 물었다. 대뜸 그런 쓰잘머리 없는 질문을 왜 하냐는 식으로 바로 치고 나온다. 집사람이 대놓고 묻는다.
“집은 준비되었는가?”
“준비되었습니다.”
너무 속물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간다. 쪽팔린다. 명문 집안임을 자처해온 우리 집의 가풍이 박살 나는 순간이다. 돌아가신 조상님들 뵐 면목이 없다. 이건 아니다 싶어도 이미 ‘말빨’이 사라진 나는 그냥 헛기침만으로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표현할 뿐이었다. 네 엄마가 왜 저렇게 까칠하냐고 큰딸에게 물었다. 답이 돌아왔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빠와 너무 닮았데.”
첫댓글
걱정 마세요.
파릇파릇한 연하 신랑 데려올 겁니다. ㅎ
유당 집안만 그런게
아닙니다요.
딸이 유능하면 더 시집
안가려하는건 사회적
변화때문이지 꼭 개인적
선택은 아니라 생각될
형편입니다.
너무 속 끓이지 말고 영
무관심하게 있으면 저희들이 나서서 시집간다할
확율이 높아질 것입니다.
아주 평생같이 살자고
집도 좀 손보고 하면 앗
뜨거라하고 나설겝니다.
ㅎㅎ
아빠와 너무 닮았다는 말에 사고 칠 뻔했습니다.
마침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거던요.
시집 안 가고 있는 것도 뵈기 싫지만 가서도 애도 안낳고 있으니 그또한 속천불 납디다. ㅎ
전통적인 우리민족 의식은 자손 만대로 이어지는 혈통 계승입니다.
아쉽게도 전쟁베이비 세대가 만들어 놓은 오늘의 우리 자녀들 30대 40대 의식은 부모 생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주 철저한 개인주의 사고라는 것입니다. 시아버지 된 친구들이 며늘아기와 대화하다 자기 의사 표시가 분명한데 놀랐다고 하는 푸념은 어제 오늘이 아닙니다. 침묵 또 침묵하는 길만이 사는 길입니다. 남은 인생 주의하실 점은 늙어서 병들면 병수발 아들 딸들이 절대 안한다는 점입니다. 요양병원 입소에다 간병사 붙이는 것입니다. 핑게야 직장과 육아일로 바쁘다는 것이지만 궂은 일은 자기 손으로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추석이 가까워 오지만 조상 차례 안지내는 집 많습니다. 콘도 빌려서 놀러가거나 단체 골프여행 가는 사람 수두룩 합니다. 서해숙선생님 간병사체험 작품 관심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문제를 일깨워 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들인생이니
알아서 살겁니다.
잘 키우셨으니 씨름 놓으셔요.
전 프샤에 손주 사진
올리는 이 밉습디더.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