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월일 |
한국사 |
세계사 |
비고 |
660년 |
백제의 멸망 |
|
|
663년 |
백제 부흥운동의 실패 |
|
|
668년 |
고구려의 멸망 |
|
|
670년 |
검모잠의 고구려 부흥운동 실패 안승의 보덕왕 임명 |
|
|
676년 |
신라의 당군 축출(매소성 전투) |
|
|
689년 |
신문왕의 녹읍 폐지 |
|
|
698년 |
발해의 건국 |
|
|
732년 |
발해 무왕의 당 침공 |
|
|
747년 |
|
고선지의 서역 정벌 |
|
755년 |
|
안록산의 난 |
|
|
|
|
|
926년 |
발해의 멸망 |
|
|
|
|
|
|
|
|
|
|
|
|
|
|
* 연표는 주제와 관련된 주요 사실을 중심으로 사건이 발생한 월일까지 최대한 자세히 작성합니다.
우선순위 |
중요사실 |
선정이유 | |
1 |
676년 |
신라의 반도 통일 |
신라의 삼국 통일로 인해 우리 민족은 독립된 기반 위에서 한국 민족의 형성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비록 발해와 남북국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결국 신라의 영토와 주민 및 그들이 이루어 놓은 사회와 문화가 한국사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라의 반도 통일은 커다란 민족사적 의의가 있다. |
2 |
698년 |
발해의 건국 |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만주를 비롯한 요동의 거대한 땅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가 그 영토에서 다시 일어나며 우리 민족의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되고, 그 이후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926년까지 지속되게 된다. |
3 |
732년 |
발해 무왕의 당 침공 |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는 초기에 당과 적대적 관계였다. 특히 영토를 확대하여 북만주 일대를 차지하는 강대한 독립왕국을 설립했던 무왕은 당과의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732년 장문휴를 보대어 당의 등주(산동반도)를 침공하여 전과를 낸 적이 있었다. 이는 발해의 주체성과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계승했다고 볼 수있다. |
4 |
663년 |
백제 부흥 운동의 실패 |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왕족인 복신과 승려인 도침 등이 주류성을 근거지로 군사를 일으켰다. 이들은 한 때는 200여성을 회복하기에 이르렀지만, 결국 지배층의 내분에 의하여 실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공동 삶의 원리를 탐구해보려 한다. |
5 |
681- 692년 |
신문왕의 전제왕권 강화 |
신문왕은 전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과감한 귀족세력의 숙청을 단행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반란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장인인 김흠돌을 비롯한 여러 귀족들을 죽이고, 여러 정치 및 군사 제도의 정비에 박차를 가하며 신라의 평화기를 여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
발표 주제 :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이후 부흥운동의 과정과 발해의 성립
주제 소개 :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이후 부흥운동의 과정에서 어떻게 부흥운동이 실패했는지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설립과정에서의 성공과정을 통해 공동 삶의 원리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1. 신라의 삼국통일
고구려가 중국의 수, 당과 혈투를 계속하는 동안 백제는 신라에 대한 공격을 급히 서둘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신라는 후일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를 통해 고구려와 동맹을 맺으려 했으나,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였다. 이에 김춘추는 당으로 가서 동맹을 요구하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면 신라는 원산만과 대동강 이남의 땅만을 얻겠다는 조건으로 동맹을 맺게 된다. 그 결과 백제가 멸망당하고, 고구려 또한 내분으로 인해 멸망당하게 된다. 그러나 당나라는 약조를 지키지 않고 안동도호부와 웅진도독부, 계림도독부 등을 세워 한반도를 모두 지배하려 하였다. 그 결과 신라와 당과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기벌포 전투와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함으로써 신라의 반도 통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2. 백제의 부흥운동
비록 의자왕이 항복하고 수도인 사비성과 제2의 수도인 웅진이 함락되었지만, 백제의 국민들은 백제를 지지하였고, 국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왕족인 복신과 승려인 도침, 그리고 임존성의 지수신등이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킨다. 그들은 200여개의 성을 회복하기에 이르렀고, 사비성, 웅진성 등을 포위하여 당의 군대를 괴롭혔으며, 신라와 당의 군대를 격파하는 등의 성과를 올린다. 그러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풍이 또 복신을 죽이는 내분이 생기어 세력이 급속도로 작아지고,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부흥군의 본거지인 주류성을 함락시킴으로 인해 백제의 부흥운동은 실패하게 된다.
3. 고구려의 부흥운동
고구려 또한 멸망이후 고구려의 한성과 요동지방을 기반으로 한 고구려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한성에서는 검모잠과 왕족인 안승을 중심으로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전개했고, 고구려의 멸망 당시 많은 피해를 입지 않은 요동 지방에서는 고구려의 장군 출신들을 기반으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요동 지방의 고구려 부흥운동은 하나의 세력으로 결집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또한 검모잠과 안승의 부흥운동 역시 실패하고 안승은 신라로 망명하여 익산 금마저에 보덕왕으로 임명된다.
4. 발해의 건국
고구려의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들은 대대로 물려오던 땅을 빼앗기고, 자식을 빼앗긴 채 당나라에 강제 이주되기도 했다. 668년 한 해에 당나라에 끌려간 강제 이주민만 해도 3만 8천 가구에 이르렀다고 하니 매우 많은 유민들이 당나라에 끌려갔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에 끌려간 유민들은 고구려의 부흥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아직 고구려에 대한 열망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 중 고구려의 전 장수인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인 대조영은 유민들의 불행을 돕고 대변하는가 하면, 그들을 모아 서서히 고구려 부흥 운동을 펼쳐 나갔다. 이들 고구려 유민들은 영주 지방에 모여 있었는데, 이 영주 지방은 끌려온 고구려 유민들뿐만 아니라 거란족, 그리고 원래 이 지방에 살고 있던 말갈족까지 살고 있었다. 이중 거란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걸걸중상과 대조영은 말갈족의 지배자인 걸사비우와 합세하여 고구려 부흥군을 조직하고 당나라의 군대를 천문령에서 물리친 뒤 요하를 건너 동모산에 나라를 세우게 된다.
5. 공동 삶의 원리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뒤,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열망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백제의 부흥운동은 유민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의 내분에 의해 실패하고 만다. 고구려의 초기 부흥운동역시 하나의 힘으로 결집하지 못한 결과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백제의 유민들은 결국 신라의 세력 하에 흡수된 것과 달리, 고구려의 유민들은 고구려라는 ‘나라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고 ‘거란의 반란’이라는 기회를 잡아 ‘말갈’이라는 동조자를 얻어 ‘동모산’이라는 좋은 자리에 그토록 바라던 국가를 세우게 된다. 이에 우리는 무엇인가 목표를 잡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목표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기회를 잡은 뒤, 그래도 힘들다 싶으면 동조자를 찾고 목표를 성취하기에 좋은 장소 혹은 적합한 배경에 그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열정을 잃는 것과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그 일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이후 부흥운동의 과정과 발해의 성립.hwp
첫댓글 이번 강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늘 수업에서 양종원 학우의 발표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우선 종원 학우에게 수고했단 말을 해주고 싶군요.^_^ 아까 수업에서 토론했던 주제인 시대 정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자면 신라와 고구려 그리고 백제는 각각의 나라들이 가졌던 민중들의 의식과 지배계급의 대처로부터 역사적으로 큰 차이의 결과를 낸 것 같습니다. 우선 가장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빠르게 대처했던 신라는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어 우리의 역사에서 널리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달리 백제나 고구려는 뒤쳐지고 역사속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런점에서 현재에 급급하지 않고 멀리 내다볼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신라가 통일하고 나서 고구려와 백제가 늦게라도 자신들의 부족함을 깨닫고 고쳐가려했기 때문에 늦게라도 부흥 운동을 했다는 점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혜원 : 1) 말을 해주고싶군요. -> 2) 이런점에서 현재에 급급하지 않고 멀리 내다볼줄 아는 자세와 미래에 대해 항상 대처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 * 문장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3) 하지만 신라가 통일하고 나서 고구려와 백제가 늦게라도 자신들의 부족함을 깨닫고 부흥 운동을 했다는 점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 문장을 좀 더 다듬고 그 '부흥 운동'이 바람직한 이유를 밝히도록 하세요.
수정하였습니다.
4장을 통해 역사의 큰 흐름인 삼국통일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존에 통일의 과정을 신라 중심으로 살펴보았던 것과 달리 이번 종원 학우의 발표를 통하여 고구려와 백제의 부흥노력과 발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고구려의 부흥 운동을 통해 민족성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고구려는 예부터 용맹하고 도전적인 민족정신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고구려가 그러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라가 멸망하고 나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라의 재건을 위해 힘쓰고, 발해라는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민족성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 민족을 보고 쉽게 끓어올랐다가 쉽게 식는다는 뜻으로 흔히 냄비 같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성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뜻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이러한 민족성이 오히려 정이 많고 단합이 잘 되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열정적인 민족성을 바탕으로 단점을 잘 보완하고 발전시킨다면 국가의 위기가 오더라도 바른 민족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백제의 부흥운동 그리고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살펴보며 역사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국민들의 지지와 열망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국민들뿐 아니라 그들을 이끌 지배층의 생각과 의식이 하나로 뭉쳐지며 화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원 학우의 발표에서 공동 삶의 원리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내용은 물론이며 교사를 꿈꾸고 준비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이끌어준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습니다. 들을 거리를 제공해주며 새로운 시각으로 4장을 접근한 종원 학우의 발표에 감탄했습니다.
또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한 인물이나 집단이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하고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역사를 보며 현재가 미래의 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 생각과 행동에 신중을 기하고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 하승연 : 1) 신라의 삼국통일, 백제의 부흥운동 그리고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살펴보며 역사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민족들의 지지와 열망이 기본 전제로 깔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민족들뿐만 아니라 ->> * 문장을 좀 더 다듬으세요. 아울러 '민족'과 '국민'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우리말 바루기]에 정리하세요. 2)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한 인물이나 집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계층의 민족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하고 폭넓은 계층의 민족들이 주체가 되는 ->> * 비문입니다.
수정하였습니다.
이번 종원 학우의 발표는 좋았습니다. 매도 맞아본 사람이 더 잘 맞는다고, 발표도 역시 여러 번 해본 사람이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수업 시간에는 백제,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살펴보며 깨달음을 얻고 또 그 깨달음을 현재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좋았던 점은 발표의 질이 높아서 그런지 발표를 들은 학우들의 생각도 질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발표를 들은 후 학우들은 발표의 내용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하여 자신의 의견을 표출해 냈습니다. 저는 이번 발표가 수준 높은 의견을 도출해 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부흥운동의 실패 원인을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줬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이번 발표, 제가 너무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일까요?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백제,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통해 공동체적 삶의 원리를 이끌어낸 종원 학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 이용현 : 좋은 글은 치밀한 구상과 여러 차례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노력의 산물임을 잊지 마세요. 띄어쓰기 생각하며 문장을 좀 더 깔끔하게 다듬으세요.
수정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4장을 공부하면서 타이밍과, 주체성이 키워드로 떠올랐습니다. 신라 통일, 발해 건국, 민족 해방의 역사를 보면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타이밍이 중요했고, 주체성 논란이 생기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신라의 통일은 고구려의 내부 분열과도 엄청난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와 당나라가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러한 기가막힌 타이밍이 신라가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발해의 건국은 거란의 반란이라는 사건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 또한 기막힌 타이밍이 큰 도움을 줬습니다. 우리 민족의 해방, 우리 민족의 독립 지사들은 해방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해방은 세계 대전 종전을 통하여 이루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패전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 패전의 사건과 해방이 우연히 들어맞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들에는 타밍이 말고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체성 논란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주적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기막힌 타이밍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논란되고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에서 타이밍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러나 이런 행운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룬다면 그에 따른 주체성 논란은 감수해야 합니다.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행운을 바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 김시목 : 1) 기가막힌 타이밍이 -> 2) 논란 되고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 > 3)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 * '속설'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 [우리말 바루기]에 정리하세요. 4) 그러나 이런 행운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룬다면 그에 따른 주체성 논란은 감수해야 합니다.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행운을 바라는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 * 논리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역사적 사실로써 보완하세요.
수정하였습니다.
* 김시목 : 2) 논란 되고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
수정했습니다.
종원 학우의 제4장 전제왕권의 성립 발표를 통해 고구려, 백제의 멸망과 통일신라의 성립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중, 고등학교 때에 중요하게 다루곤 했던 통일신라의 성립보다는 고구려와 백제의 부흥운동에 초점을 맞춘 점이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같은 부흥운동이라고는 하지만, 고구려와 백제의 부흥운동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백제는 멸망 후 나라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기반으로 부흥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지도층의 내분으로 실패합니다.
반면에 고구려 부흥운동의 경우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각각의 성에서 부흥운동을 하다가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거란의 반란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통해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건국하는 데 성공합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부흥운동을 통해 목표를 이루려면 그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장을 통해 신라의 통일과 고구려 백제의 부흥운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외세를 적절히 이용해 통일을 이룬 신라도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백제와 고구려 후손들의 부흥운동이었습니다. 나라가 멸망은 했지만, 되찾기 위해 후손들이 힘을 모으고 민족성을 잃지 않았던 것, 또 포기하지 않은 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백제의 부흥운동은 내분 때문에 실패했지만, 나라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그 정신과 그 마음은 성공한 고구려의 부흥운동만큼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4장 전제왕권의 성립을 통해서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 김선정 : 1) 멸망은 했지만,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힘을 모으고 민족성을 잃지 않았던 것, 또 포기하지 않은 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비문입니다. 2) 이번 4장 전제왕권의 성립을 통해서 목표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 * 선정이는 발표 내용과 다른 학우의 토론 내용을 기초로 하여 댓글을 보완하세요.
수정하였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역사수업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종원 학우의 발표를 보면서 아직 역사를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통일신라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해의 역사도 중요함을 느꼈다. 발해의 역사를 왜 발해고라고 하는지 알게 되면서 그만큼 우리가 발해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중국에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발해의 역사를 더욱 연구해야 하겠다. 또 고구려, 백제의 부흥운동을 보면서 초심을 지키는 중요성을 느꼈다. 아무리 좋은 목표라 하더라도 초심을 잃고 방황하게 되면 그 끝은 실패로 끝난다.
여기서 배운 내용을 나에게 적용시켜보면 1학년인 현재에 목표를 세우지 않고 초심을 지키지 않는다면 끝자락인 4학년에 가서 많은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도 확실한 목표와 그 목표를 실천하겠다는 초심을 가지고 뒷심을 발휘해 좋은 성과를 거두어야겠다. 그리고 종원 학우의 발표를 보면서 단순하게 책에서 중요하다고 나온 역사만 보았던게 아니라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배운거 같았다. 또 종원학우에게 수고했다는 말도 해주고 싶다.
* 천현화 : 1)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역사 공부를 해왔다고 생각했다. ->> * 문장을 좀 더 다듬으세요. 2) 마지막으로 종원 학우의 발표를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고,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 *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세요.
수정하였습니다^^.
종원이가 준비한 4장에서는 준비성과 창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발표였습니다. 준비한만큼에 따라 내용에 얽매이지 않고 그에 대한 자신감 또한 얻어지며 그 자신감으로 원활한 발표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뚜렷한 주제를 가지고 있으니 그에 맞는 내용들을 찾아가다 보니 독창성이 있는 내용들을 찾을 수 있었으며 이러한 이유들이 독창성을 띠면서 수준높은 수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가슴 깊이 새기며 보다 후에 발표할 학우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박종철 : 1) 종원이가 준비한 4장에서는 준비성과 창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알려주는 계기였습니다. ->> * 문장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수정하였습니다.
< 보완 필요 : 김선정 김시목 박종철 이용현 이혜원 천현화 >
* 양종원 : 1) [발표자료] 4장 전제왕권의 성립 ->> [발표자료]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이후 부흥운동의 과정과 발해의 성립 <4장 전제왕권의 성립 >
< 과제 불이행 : 권혁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