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6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미국과 이스라엘의 노여움 》
시 76:1~12
〈 1 장대한 분노와 사자의 포효 〉
2026년 2월 28일, 역사상 새롭게 기록될 전쟁이 한 건 터졌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이란을 폭격했습니다.
사전에 전쟁을 하겠다는 선전포고 없이 느닷없이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더욱이 미국과 이란은 핵 협상을 진행중이었습니다.
앞에서는 협상을 하면서 뒤로는 가공할 만한 폭격으로 이란 하메네이를 제거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각기 이 전쟁에 대한 명칭을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장대한 분노(Epic Pury 에픽 퓨리)’로 명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자의 포효(Lion’s Roar 라이언스 로어)라 했습니다.
두 전쟁 명칭에 공통된 것은 바로 ‘분노’입니다.
미국은 ‘장대한 분노’로 분노를 직접 내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자의 포효’라 했는데, 여기에도 분노가 베어있습니다.
포효로 번역된 ‘roar’는 화를 내어 ‘으르렁’거린다는 뜻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분노를 합작하여 이란을 폭격했습니다.
미국, 이스라엘이 폭격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내세운 것이 있습니다.
트럼프가 이란 국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작전을 끝내면, 당신들 정부를 접수하라!”
“우리가 이란을 폭격하여 하메네이를 제거해 줄 터이니, 당신들의 정부를 접수하라”
마치 이란 국민이 전쟁을 요청한 듯한 뉘앙스입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용감한 이란 국민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하메네이 지도부와 이란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있습니다.
갈라치면서 하메네이를 “쏙” 도려내어 사살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전쟁 양상이 복잡해지고,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 이번 전쟁의 원인이자 핵심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뿜어내는 분노 즉, ‘노여움’입니다.
〈 2 시편 57편이 선포하는 말씀 〉
‘장대한 분노’ ‘사자의 포효’가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마침 이번 주 설교 본문은 시편 76편입니다.
시편 76편이 오늘날의 전쟁 국면에 대해 정확하게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에 쓰여진 시가 오늘날 ‘정국’의 ‘정곡’을 찌릅니다.
미국이 이란과 휴전을 협의하고 휴전에 들어간 다음 날에도 이스라엘은 폭격을 했습니다.
이란과 한통속이라면서 레바논 폭격을 이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자의 포효’가 미국의 ‘장대한 분노’를 능가합니다.
오늘 설교 본문 시편 76장에서 이러한 이스라엘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1~3절)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2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3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하셨도다 (셀라)”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선택하여 자기를 드러내셨습니다.
유다, 이스라엘(1절), 살렘, 시온(2절), 모두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수식어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맨 먼저 계시하시면서 하신 일이 3절입니다.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하셨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그들에게 맨 먼저 자기를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샬롬’ 즉, 평화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는 ‘구원’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먼저 전쟁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화살, 방패, 칼, 전쟁을 없이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정 반대의 행보를 보입니다.
휴전을 하자 하는데도, 이스라엘은 듣지 않고 강경합니다.
하나님께서 치우신 화살, 방패, 칼, 전쟁을 이스라엘은 다시 끌어들입니다.
☞ 지금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렇게 행동하는 저변에 뭐가 깔려있습니까?
☞ ‘에픽 퓨리’ ‘라이온스 로어’ 즉, 분노입니다. 그 사람들의 분노입니다.
이들의 분노 즉, 노여움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꾸짖어 잠들게 한 전쟁무기를 사람들이 다시 일깨워 전쟁을 합니다.
(6절)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
〈 3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 〉
서기 2세기,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 나라를 해체해 버렸습니다.(주후 135년)
지구상에서 이스라엘 나라는 없어지고,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남았습니다.
나라는 없지만 유대인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흩어져 살았습니다.
유대인은 모이는 곳마다 회당을 설립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했습니다.
그러한 유대 민족을 유럽인들이 혐오했습니다. 온갖 구실로 증오했습니다.
그러다가 2차 세계 대전에서 ‘홀로코스트’ 대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유대인 6백만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라 잃고 2천여 년 동안, 이스라엘이 당한 고초는 역사도 다 기록을 못합니다.
참으로 참혹한 질곡의 역사를 지닌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 박해당하면서 붙든, 하나님의 말씀이 본문 9절이 아닌가 합니다.
(9절)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나라 잃고 떠돌던 2천여 년의 기간 동안에는 유대인은 “온유한 자”였습니다.
6백만이나 희생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결코 반발하거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죽이면 죽었습니다. 그것이 ‘홀로코스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2천여 년을 떠돌던 민족에게 다시 그 땅에 나라를 허락하셨습니다.(주후 1948년)
홀로코스트라는 상처를 지닌 유대민족에게 세상은 긍휼의 시선을 보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을 보는 눈은 ‘긍휼’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미국의 기독교인들도, 유럽에서도 유대인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최소한 ‘홀로코스트’에 관한 한, 유대인을 보는 눈은 동정어린 눈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점점 날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나라를 세우고 80여 년을 보내면서 이스라엘은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열강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온유한 자’에서 ‘강퍅한 자’로 서서히 변모해 왔습니다.
이란과 레바논을 공격하는 태도는 분명히 ‘강퍅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미국의 ‘에픽 퓨리’와 이스라엘의 ‘라이온스 로어’를 기뻐하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전쟁을 보시면서 “그것은 ‘사람의 노여움’일 뿐이다” 하십니다.
(10절)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 4 사람의 노여움 그리고 남은 노여움 〉
시편 76장의 핵심 구절은 10절입니다.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2천여 년 동안 유대인을 미워한 유럽 사람들, 특히 히틀러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유대인 6백만을 학살했으니, 그 노여움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노여움입니다.
그 노여움으로 독일과 히틀러는 무엇을 얻어냈습니까?
그들에게 덧씌워진 것은 전쟁범죄 국가라는 오명입니다.
역사에서 독일의 히틀러는 최악의 전쟁범죄자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민족 이스라엘은 나라 잃은지 2천 년만에 그 땅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영광입니까,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이 말씀의 실현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노여움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노여움을 통하여 높아진 분은 하나님입니다. 할렐루야~
이스라엘의 건국은 분명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입증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사람의 노여움’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학대받던 천덕꾸러기 이스라엘, 이제는 강대국이 되어 전쟁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말로는 ‘사자의 포효’라고 했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의 노여움’일 뿐입니다.
역사는 돌고 돌아, 이스라엘의 노여움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역사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독일 히틀러의 노여움이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하나님 찬송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80년 만에 이제는 ‘이스라엘의 노여움’이 다시 기로에 섰습니다.
☞ 지난 22일 인류역사의 물꼬를 돌리는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레바논 남부의 ‘데벨’마을, 거기에는 기독교인이 다수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는 유대인과 달리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그 마을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모형을 이스라엘 군대가 쓰러뜨렸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군인이 전투복 차림 그대로, 예수님의 모형을 망치로 깨뜨렸습니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경악해 마지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나라였어?”
참으로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의 나라에서 전쟁을 벌이는 나라로 바뀐 순간부터 예상된 일입니다.
〈 5 그 둘에게 남은 노여움 〉
히틀러의 노여움은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하나님 찬양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노여움이 새로운 하나님 찬양의 기폭제가 될 터입니다.
이 사건으로 ‘유대인들의 반기독교적 본심’이 온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유대인에게 우호적이었던 미국의 마가(MAGA) 세력도 고개를 내둘렀습니다.
유럽의 기독교도 비로소 유대인의 반기독교적 태도를 확인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기독교인의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적 시선은 사라질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남은 노여움”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사용한 ‘사람의 노여움’이후 잔여 노여움입니다.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를 감내할 때, 얼마나 힘들고, 속으로 노여웠겠습니까?
그 노여움으로 하나님은 자기를 찬송하도록 역사에 섭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여움으로 쓰시고, 그들에게는 ‘나머지 노여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노여움을 금하십니다. 10절 말씀에서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나머지 노여움을 삭혀내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은 어떻습니까?
미국이 이란을 폭격한 그것도 ‘사람의 나머지 노여움’입니다.
하나님이 미국을 세계를 주름잡는 나라로 섭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영향력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이후 미국은 자기네의 실권이 쪼그라든 ‘지갑’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남은 노여움’은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시편 76장 말씀을 선포합니다.
(11~12절)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12 그가 고관들의 기를 꺾으시리니 그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두 나라의 ‘나머지 노여움’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두 나라가 하나님을 다시 두려워할 때, 전쟁은 멈추고 평화가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