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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22장 37-40절.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4-사랑하는 삶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마음에 미움이 사라지게 하시고 사랑의 마음으로 점점 채워가십니다. 그래서 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마다 사랑을 느끼게 하십니다. 그렇게 증거되는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기 사랑으로 가득 채워있었습니다. 여러분 안에는 사랑을 받고자 하는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기까지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도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서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사랑을 필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한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할 줄도 잘 모르고, 사랑받는 것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이 사랑인줄 알지 못하다가 그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곁에서 영영히 떠났을 때에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겨우 알게 됩니다. 자기가 받은 진실한 사랑도 너무 깨닫는 것, 이것이 인간의 특징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늦게 자랍니다. 동물들은 태어나자 마자 잠시 휘청거리다가 균형을 잡고 엄마 젖을 잠시 빨다가 풀을 뜯거나, 사냥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동물들이 이런 것들을 터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빠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벌어서 먹는데 걸리는 시간이 적어도 20세에서 30세까지 다양합니다.
그것보다 더 늦은 사람들도 간간히 나타납니다. 그들은 대학교를 마치고 유학까지 가서 몇 년동안 공부를 더하고 옵니다. 그러면 그들 나이는 35세에서 40세가 됩니다.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일하는 시간은 고작 25년에서 30년 정도입니다. 그 이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노후를 경험해야 합니다. 점점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 수 없고, 아들 딸들의 도움이나 아니면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인간은 더디게 성장합니다. 어쩌면 육체보다 정신이 더 천천히 자라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독립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더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늦게 자라는 인간의 내면에서 사랑을 배우는 것 역시 매우 늦게 자랍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있는 건지, 정말로 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지 매우 혼돈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남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방향이 많이 빗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결과는 허무와 고독만 남습니다.
말세가 되면 일어나는 일들을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씁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이것이 말세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사랑의 방향이 빗나갑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합니다. 마음의 우상인 연예인들을 사랑합니다. 자기의 삶의 목표인 정치인과 경제인들을 마음의 스승이며 목표로 삼습니다. 세상에서 영광과 갈채를 받는 사람들을 자기의 모델로 삼고 그들을 닮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들처럼 성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누군가를 자기 모델로 삼고 열광적으로 그를 위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본받고자 하는 장점을 열심히 배우고 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재능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성실히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의 훌륭한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공부에 재능이 있어서 박사 학위를 따고 과학자나 대학교수가 된다고 해보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송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여러분들이 무엇이 되었느냐보다는 그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매우 중요시 여기십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여러 가지 기술을 가진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맞는 재능과 선물을 허락하십니다. 자기 안에 장점이 한 가지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못찾은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이 익숙합니다. 그것이 별스럽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보았고 지금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얼마나 자신의 삶에 풍요와 기쁨과 의미와 가치를 가져다 주는 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다른 성도들을 풍요롭게 하고 기쁨을 주고, 의미있게 하고 그들이 인생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지를 알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은 그에 대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 장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말을 해도 소용이 없고 오묘한 진리를 깨달았을 지라도 소용이 없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열거하는데 그 첫 번째 나오는 사랑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쓴 것은 바로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속성중 하나가 바로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워낙 오래 참으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벌하지 않으신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안계신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 한 사람도 멸망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참으시고 또 참으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오래 참으시며, 한 사람이라도 더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믿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역시 그가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진리를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하나님 자신의 자녀인 여러분들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에 대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대로 행합니다. 그 본능은 죄인이며,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 조금 전에 읽어드렸던 바로 그 모습인데 제가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에게 있습니다. 돈에 있습니다. 자기 가진 것을 자랑하며 자기의 약점은 철저히 감추려고 합니다. 교만합니다. 서로 비방합니다. 부모를 거역합니다. 그리고 감사하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지금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며, 또한 여러분 앞에 있는 불신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 디시 말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를 마음으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그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시 노릇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교회에서도 가시 노릇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분란을 조성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바울로 바꾸신 것처럼 죄인들과 악인들이 바뀔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교만하고 비방하는 교인을 상대하고 있는 다른 성도들은 매우 힘이 듭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보면 그런 교인을 상대하고 끝없이 사랑을 주는 그 성도에게는 그만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상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 여러분들이 그들에게 대하여 아무 절못도 안했는데 다른 교인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자꾸만 괴롭힙니까? 그 이유는 그 사람의 변화와 여러분들이 받을 상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0-41절을 보면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하면서 서로의 영광이 다르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이 다르듯이 별과 별의 영광이 서로 다르듯이 여러분들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같이 하셔도 그 영광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사명의 십자가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큰 영광을 받을 사람일수록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만큼 큰 무게를 가진 십자가를 지신 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실 만큼 크고 무거운 십자가를 담당하셨습니다. 이 땅에 수많은 종교창시자들이 있었고, 또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누가 온 인류를 위한 십자가를 지고 살았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십자가를 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계속헤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여러분들에게 주신 십자가는 얼마나 작고 가볍습니까? 그런데도 그것을 지고 죽겠다고 합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질 영광을 보지 못함으로 인해 그 십자가를 내팽개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보면 반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겪으면서 당하는 그 어려운 일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주신 반전의 영광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3절을 보면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하고 있지 않습니까? 욕된 모습으로 죽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부활 속에 숨겨진 영광입니다. 그러나 그 부활 이전에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습니다. 여러분들이 언제나 오래 참아야 하는 그 이유는 바로 부활의 영광이 여러분들 앞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역시 이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과 부끄러움을 참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러분 신앙생활이 고통스러우십니까? 오래 참으십시오. 반드시 영광의 날이 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는 것 때문에 원치 않는 부끄러움을 당하십니까? 오래 참으십시오. 영광의 날이 곧 다가옵니다. 주님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디모데후서 2장 4절에 말씀드렸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과 비슷한 내용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약속을 더디게 이루시지?” 그에 대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약속을 더디게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벌하지 않고 오랫 동안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실 것은 여러분들이 괴롭힘을 당할 때 참으시는 것보다 그런 사람들을 보시면서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가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참고 인내하느라고 고생하시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참으시는 것에 비하면 여러분들이 참으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면서 그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시고, 또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진리를 알기를 원하실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지옥의 고통이 영원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천국의 기쁨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둘 다 영원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영원한 고통을 겪어야만 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영원한 기쁨과 평강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또 진리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오래 참고 또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를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를 충만하게 받은 사람들은 사랑으로 오래 참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의 삶을 예수님께서는 핵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마태복음 22장 37-40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사랑의 마음이 어디로 흐르게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에수님을 믿고 거듭난 여러분들, 그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여러분들의 그 사랑의 마음이 어디로 흐릅니까? 하나님과 이웃에게 흐르게 됩니다. 자신 안으로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 안으로 흐르는 사랑은 자기 사랑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것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지고 있는 본능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거듭난 성도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성품입니다. 이것을 받은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다는 말을 추상적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거듭났을 때 여러분들의 영혼의 눈이 밝혀지고 하나님 나라가 그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에 두 가지가 보이는 데 그 하나가 바로 하나님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이웃입니다. 그 둘 모두가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예배며, 기도며,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나누고 구제하고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 간에야 나눈다는 개념이 서로 교제하는 개념이며,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개념이지만 불신자와의 관계에서의 개념은 그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기까지는 일방적으로 주고, 또 주면서 섬겨야할 관계일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들이 무릎을 꿇을 때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고쳐주셨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님께 돈을 싸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그런 것을 바라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부자 청년이 왔을 때도 예수님은 “그것을 나에게 가져다 바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네 소유를 다 팔아 나눠주고 너는 나를 좇아라”하신 것입니다. 그 부자 청년은 근심하면서 돌아갔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사람들에게 동전 한닢도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을 의지하고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이 아닙니까? 사람에게 받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받는 삶이 어떨꺼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으라고?’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하여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26절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 아버지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지 않는한 여러분들은 사랑을 실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들을 전적으로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으면 사랑의 손을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펼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원래 여러분들의 것이 어디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다 누군가로부터 물려받았고 누군가로부터 공급받았습니다. 그것을 주게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여러분들은 단호하게 그것이 진리라고 선포하실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이신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되고 평안한 것입니다.
여러분 학교도 안들어 간 아이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며 삽니까? 왜 그 아이들이 걱정을 하나도 안하고 삽니까? 그 걱정은 자기 부모님들이 다 해주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은 때가 되면 먹이고, 입히고 필요한 것들을 다 사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힘과 능력이 있는 부모님들이 자기들의 보호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에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게 아닙니까? 그런 삶을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으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에 나와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러분들이 사랑할 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행하는 사랑의 결론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행하는 사랑은 사랑처럼 보이지만 그것의 실체는 자기가 영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밥을 사주고 선물을 사주고 자기의 몸까지 다 기증하고 재산을 다 기증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박수 갈채를 보내는 것을 기대라고 행하는 행동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행위로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진리를 받은 결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22장 37-4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십니까? 첫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는 이웃을 사랑하되 여러분 자신의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듯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라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셨고, 여러분들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셨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할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할 때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오신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은혜와 진리가 여러분 안에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로인해 예수님처럼,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랑이 여러분 안에서 자라갑니다.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계속해서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와 진리를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그 공급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와 사랑을 동반하고 여러분들에게 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는 이상으로 사랑하고 사람들이 섬길 수 있는 이상의 것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 살아오셨습니까? 자기입니까? 아니면 가족을 위해서 사셨습니까? 이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를 위해 사십시오, 그리고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을 복음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사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사랑으로써 현실감있게 임하고 확장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로 인해 주어지는 이 복이 여러분들과 제석교회에 충만하게 임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