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한승원
원혼을 달래는 씻김굿
「목선」에서 『동학제』까지
반어 반농(半漁半農)의 빈궁한 남도 갯마을은 한승원(韓勝源, 1939~ )에게 원체험의 공간이다. 그의 소설 세계에서 갯가의 척박한 자연 환경은 욕망과 반역의 공간이다. 그 곳은 구체적으로는 ‘득량만’ · ‘덕도’ · ‘회령나루’ · ‘십리포’ · ‘안개섬’ · ‘해매포’ · ‘약산동’ · ‘장흥’ 등의 이름으로 지칭되는데, 작가의 고향인 남해 바닷가 마을이거나 그 언저리일 때가 많다. 한승원의 상상 세계에서 그 곳은 “시꺼먼 빛깔의 한없이 큰 입과 끝없이 넓고 깊고 부드러운 자궁을 가진 바다”(「낙지 같은 여자」)로 그려지고 있듯이 생명이 잉태되는 ‘자궁’이며, 원시적 생명력이 용솟음치는 곳이다.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다. 고등 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농사를 짓고 김 양식을 하며 3년 남짓 고향에 머문다. 한편으로 그는 『사상계』를 정기 구독하고 중등 학교 준교사 검정 고시 준비도 한다. 이 시절 그는 오전에는 쟁기질과 바닷일을 하고, 일이 끝난 오후에는 책을 본다. 1961년 그는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소설가의 꿈을 갈고 다듬는다. 이문구 · 박상륭 · 조세희 · 강호무 등이 그와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한 작가들이다. 한승원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 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비로소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1970년대 말에 교사직을 그만둔 뒤 따로 직장을 거의 갖지 않은 채 소설 창작에 매달린다.
한승원에게 남해를 비롯한 남도의 자연과 풍속이 한데 엉클어진 토속적 삶은 일종의 원체험이다. 그 원체험은 초기의 「목선」 · 「가증스런 바다」에서부터 『불의 딸』 · 『해일』을 거쳐 『새터말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상상 세계의 중심에 놓여 있다. 소년기에 보고 겪은 남도 갯마을 사람들의 수난 어린 삶이 그 심리적 충격의 강도로 말미암아 작가의 내면 속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원체험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의 초기작인 「여름 낙지」는 ‘순한녜’라는 여자의 수난의 삶을 그리고 있다. 순한녜가 당하는 수난은 ‘나’의 가계(家系)로부터 당하는 수난이다. 떠돌이 상장수의 딸로 어려서 ‘나’의 집에 ‘애기업개’로 들어온 순한녜는 바깥에서 주어지는 고난과 불행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민중’의 한 상징이다. 큰아버지 집 머슴이던 그의 오빠가 6·25 때 짚 더미 속에 숨은 큰아버지를 가리켜줘서 당 세포 위원들에게 잡혀 죽은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촌형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애꿎은 순한녜에게 분풀이를 한다. 또 ‘나’와의 성 교섭으로 임신한 순한녜는 낙태를 바라는 ‘나’의 부모가 강요하는 대로 독한 약을 먹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아예 “송장 싸다 버리대끼” 서둘러 시집을 가야만 한다. 「땅가시와 보리알」은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가 겨울에 맨발로 다니는 두 동생을 위해 고무신 두 켤레를 훔치다가 들켜 고무신 장수로부터 말할 수 없는 수모와 시련을 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는 회상 형식으로 서술되고, 그 회상 위로 공장에 나가는 누나의 도움으로 공부하는 한 학생의 현재 이야기가 겹친다. 이 소설은 가난 때문에 받은 모욕와 시련이 어린 주인공의 감수성을 얼마나 사납게 할퀴고 지나갔으며 뼈아픈 기억으로 새겨졌는지를, 또 주인공이 가난으로 말미암아 받은 정신적 상처를 어떻게 딛고 일어설 수 있었는지를 감명 깊게 보여준다. 소설의 끝머리에서 주인공이 가해 당사자를 찾아가 “저는 먹피 묻은 보리알들을 생각하면서 게으름을 쫓았고, 이를 갈았고, 밤낮 가림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 덕으로 웬만큼 살 만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가난을 딛고 일어선 사람 특유의 자부심과 당당한 기상이 느껴진다.
한승원에게 고향은 생명의 시원의 자리이며, 동시에 가난의 땅이고, 숱한 죽음이 함께 하는 자리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궁이며, 무덤이다. 큰아버지의 주검이 엎어져 있는 모래밭, 인민군의 대창에 찔려 죽은 매형의 아버지, 어머니가 떨어져 죽은 벼랑, 죽은 아기가 묻힌 야산, 반동 분자로 몰려 엉겁결에 총살당한 이들······. 이처럼 고향은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억지 죽음들을 한” 사람들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 곳은 체념과 원한과 비애와 탄식으로 끈적거리는 “빌어먹을 놈의 세상”이다. 김화영은 “한승원의 수많은 작중 인물들이 예외없이 결행하는 ‘고향 찾아가기’는 바로 오이디푸스의 행로하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립을 나서서 어둠에 묻힌 길을 걸었다. 그의 머릿속에 어머니의 얼굴이 불처럼 켜졌다. 어둠은 동굴이 되었다. 그는 태어나기 이전에 그가 살았던 자궁 속 같은 어둠 속을 걸어갔다. 아니 그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어느 산기슭에서 깸 없는 오랜 잠을 자게 한 토굴 속의 어둠 같은 것이었다. 어응한 계곡을 치올라가면서 그는, 다시 태어나자, 하고 소리쳤다.
한승원, 『미망하는 새』(정음사, 1987)고향은 동굴이고, 자궁이다. 그 곳은 바다, 어머니, 자궁, 낙지, 밧줄 뭉치, 구덩이, 혼돈으로 뒤얽힌 운명의 공간이다. 한승원은 남도 갯마을 사람들의 그 숙명적인 삶을 에워싸고 있는 억압의 상황을 그려 보인다.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역사의 폭력과 가난으로 점철된 질곡의 삶, 훼손된 삶을 살 수밖에 없던 남도 갯마을 사람들이 지닌 한의 뿌리를 파헤치는 작가의 문체는 매우 끈적거리는 점액질의 문체다. 그 질곡의 삶의 이면에, 작게는 ‘가진 자’들의 위선의 논리에 의한 교묘한 수탈 행위가, 크게는 일제 강점기의 제도적인 침탈과 6·25나 분단 같은 역사의 폭력이 가해자로서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