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선종한 고 김준영 미카엘 신부를 떠올리며…
우리가 직장을 선택할 때는 진로, 보수, 통근 거리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만, 꼭 일 년 반 전에 대학에서 정년을 맞고 현 직장으로 옮길 때는 구내에 걸어서 접근 가능한 종교시설이 있다는 점도 한 요인이었다. 매주 한두 번씩 점심시간에 직원이나 환자, 보호자와 함께 미사에 참여하거나, 시간 날 때 때나 성당에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혜택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군종신부는 얼굴이 희고 코로나 사태로 마스크를 쓴 상태인데도 목소리가 또렷하고 정감이 있었다. 매주 2회 평일 미사의 강론이 그날의 복음에 따라 다 달랐으며, 주로 실생활의 예를 들어 말하였기에 진부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우리가 수술을 준비하듯이 강론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약 일 년 반이 흘러 그는 5년여의 군종신부 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한다고 들었다. 병원의 의사들은 전임, 후임 사제를 모시고 식사 약속을 주선하였으나, 사정으로 여의치 않았다.
약 한 달 전 간호장교로부터 그의 와병소식을 들었다. 젊은 분이니 성모병원에서 치료하면 화학요법에 잘 반응하는 ‘림프종’ 정도는 능히 극복하리라고 믿었다. 그저께 문자로 그의 선종 소식을 듣고는 퇴근 후 명동성당의 지하성당에 찾아갔다.
그는 유리관 안에 누워있었다. 하얀 사제복을 입고 검은 구두를 신은 그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흰 장미 한 송이와 묵주를 잡고 있었다. 불과 두 달 전에만 해도 희고 윤기나던 그의 얼굴은 누렇게 변해 있었고 콧구멍은 흰 솜으로 막혀있었다. 연도의 마지막 부분에서 망자를 위한 기도를 할 때 인도자는 목이 메어 기도를 마치지 못하였다. 나도 그랬다. 유리관에 김이 서려 관리자는 유리를 자주 닦았다. 미사를 마치고 오는 길에 비가 쏟아졌다. “왜 신은 37세 젊은 사제를 이토록 일찍 불러갔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오늘은 그의 발인일이다. 이발을 하는데 60이 가까운 미용사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종교가 있어요?” 성당에 다닌다고 하자 자신도 최근에 처음으로 성당에 갔다고 하였다.
그녀가 신부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주었다. 그도 또한 의무사령부 구내 ‘충성미용실’의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 뻘의 미용사를 실제로 ‘어머니’라 불렀다고 한다. 그는 서울 신림동 출신이며, 남동생도 사제의 길로 가려 하였으나, 두 형제 중 하나는 어머니를 모셔야 하므로 둘 중 자신만 신학교에 갔다고 했었다.
몇 달 전부터 전역을 준비하며 이곳 성당의 5년치 자료를 인수 인계하느라 바빠했었고, 부활절 뒤에는 ‘보이스 피싱’에 걸려 큰 피해를 입고 괴로워하였다고 했다. 최근에는 체중이 줄어서 몸이 가볍다고 하기에 미용사가 ‘병원에서 피 검사 좀 받으시라’고 하였는데, 그러질 않아 매우 아쉽다고 하였다. 젊은 사제의 인품에 이끌린 그녀는, 그가 전역 후 서울 신림동본당으로 간다는 소식에 “저도 시간 여유가 생기면 신림동에 가서 교리공부를 받을게요”라고 약속했다고 하였다. 그녀도 그저께 선종 소식을 듣고는 성당을 방문하였다면서 내게 “하느님이 안 계신 것 아니에요?”하고 물었다.
지금쯤 사제묘역에서 하관이 시작되리라 생각되는 시간에 텅 빈 작은 성당에 혼자 앉았다.
오노레 발자크(1799-1850)의 소설 「무신론자의 미사」가 생각났다. 주인공 데스플랭은 성공적인 외과의이자 무신론자이다. 어느 날 그의 전 조수 비앙숑은 데스플랭이 교회에 들어가 혼자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제에게 물어, 데스플랭이 1년에 네 번, 어려운 의과대학생 시절 자신을 돌보아준 은인인 독실한 신자, 물 배달부 브르조를 위해 미사를 봉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에서 발자크는 외과의사의 영광을 정의하였다. “외과의의 영광은 배우의 영광과 같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만 살고, 그들이 떠난 후에도 그들의 재능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배우와 외과의는 위대한 가수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공연으로 음악의 힘을 열 배로 높이는 지휘자와 마찬가지로, 그 순간의 영웅(hero of the moment)이다.”
불 켜진 감실과 그가 집전하던 제단이 보였다. 성찬 전례 시 그가 청하던 성령청원 기도(Epiclesis)를 떠올려 보았다. 사제가 한 분 나오려면 3대가 공을 들여야 한다고 들었다. 긴 여정의 대신학교 과정, 부제를 거쳐 사제가 되어 8년여 미사를 집전하며 성체를 손으로 모시고 에피클레시스를 외울 때, 그는 ‘순간의 영웅’이었다.
이렇게 서울대교구 김준영(미카엘) 신부가 2024년 8월 21일 선종했다. 1986년 서울에서 출생한 김 신부는 2016년 사제품을 받고 둔촌동본당 보좌로 사목을 시작해 역삼동본당 보좌에 이어 2019년부터 2024년 7월까지 군종교구에서 사목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 미용사’에게 조금 부족하지만 대답해 줄 답변을 찾았다. “신은 계셔야만 해요. 천국도 있어야 하구요. 37세 좋은 사제가 그렇게 떠나는데 천국이 없으면 안 되지요.”
황건 라자로 / 국군수도병원 성형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