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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병무기자 스크랩 군 생활을 자기 발전의 기회로!
호박조우옥 추천 0 조회 85 14.03.04 00: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남침! 그 이후로 63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일하게 하나 남은

분단국가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휴전 중일 뿐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라가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발전하고 국민들이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안 보이는 곳에서 국토를 방위하고, 평화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대가 있기 때문이다.

리나라는 누가 대신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부모 가족을 위해 나 자신, 대한민국 남자가

지켜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라면 이건 의무가 아닌 권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창시절 공부도 상위권이 아니었고, 특별하게 미래를 준비할 만큼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

진로를 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특히 기름 냄새를 맡으며 쇠를 만지는 직업을 택하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공고에 들어와서 학교 선배들의 화려한 입상실적과 판금 기능제품을

보며 호감을 갖게 되었고, 어릴 적부터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것에 재주가 많고, 좋아했던지라

기능훈련에 재미를 붙이고, ‘아! 바로 이거다’하는 마음과 함께 나의 미래에 대한 설렘을 생에 처음으로

느끼며 판금 전공생을 시작하여 기능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기능인이 되리라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고교시절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여 전국대회 은상을 받아 목표로 하던 국가대표가 되었고 비록

국제기능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하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졸업과 동시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취업을 위해 혼자 울산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나는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내가 갖고 있는 기능의 자격증도 취득하며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였다.


20대 초반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던 나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남자라면 모두 공감 하는

병역문제. 어린 시절에는 늠름한 군인의 모습을 보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TV프로에 나오는 군 생활을

보면 남자가 살면서 한번쯤 꼭 겪어야 할 생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도 빨리 성인이 되서 군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군대에 갈 나이가 되니, 지금 하고 있는 사회생활도 그렇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중단한 상태에서 군대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하기만 하고 두려움이 많아졌다.

군대에 갔다 오게 되면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고, 계속하게 되더라도 2년이란 공백에

기능도 많이 무뎌지는 탓에 업무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고등학교 선배로부터

‘이왕 갈 거면 네 전공을 살려서 지원입영 해봐!’라는 조언을 들었다. 실제로 용접기계공작으로

지원입영을 해서 군복무를 한 선배였다. 지원입영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던 나는 그 후로 지원입영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원입영 주특기에 대해 알아본 결과 나도 용접기계공작이 잘 맞을 것 같았다.

이 분야는 나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왠지 군 생활에 적응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부담도 많이

덜어졌다.


또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군 복무 중 자신의 주특기에 맞춰 해외파병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고 TV에서만 보던 해외파병. 내 주특기로 나라의 대표로 파병을 간다니...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사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 군대의 해외 파병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파병

부대로는 레바논에 파병을 가는 '동명부대'가 있는데, 실제로 레바논은 현재 분쟁 지역이긴 하지만

블루라인(우리나라의 38선)을 설정하고 휴전하고 있는 상태이다. 여기서 동명부대는 레바논과 이스라엘

어느 한 나라의 편으로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 아니라. 휴전 중인 두 나라의 치안을 유지하면서 도로와

정수장 보수 및 신설 등 인도적 지원을 하고, 학교지원사업(시설 보수 및 신설 등)과 레바논군 병영시설

및 행정설비 개선, 장비 및 물자지원, 의료지원 등 적극적인 민군작전을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주 임무는 UNIFIL 사령부와 협의하고 티르지역의 안전성 등을 점검하는 임무를 한다. 60여 년 전

유엔의 지원으로 6.25전쟁의 시련을 극복하고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하는 등 유엔의 이상이 실현된 대표적인 국가에서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나라를 위해

유엔의 파병 요청을 받아들이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군 생활을 하며 국가대표가 되어 그

역할을 내가 할 수 있다면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긍정적인 마인드로 정신 무장을 한 채 나의 사회적 업무를 뒤로 하고, 설렘 반 두려움 반인

마음으로 2006년 3월 30일 논산 육군훈련소로 입영을 하였다.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군대의 군기와

환경 탓에 처음에는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전우들을 보고 함께

생활하며 ‘모두가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 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스스로를 2년간 한번 강하게 만들어

보자 다짐했다. 그리고 화생방, 행군, 유격 등 강도 높은 훈련을 이겨낼 때마다 내 피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고 힘든 곳에서 전우들과 서로 힘이 되어 생활하다 보니 전우애를 느끼며 분명히

군 생활이 전역을 해서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훈련소를 퇴소하고 병과교육을 받으며 정말 내 주특기를 찾아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훈련소

육은 매일 처음 접하는 훈련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는데 병과교육 과정은 모두가 나에게

익숙한 일들이라 하루하루가 자신이 있었다. 또한 이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계신 군무원

교관님에게 이론 교육도 많이 받을 수가 있어서 얻을 것도 많고 재미있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모든 훈련과 교육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자대배치. 앞으로 2년 가까이 생활하게 될 자대에 가려니

정말로 입대 전 만큼이나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다. 나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56사단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그곳에서 수송부 용접/철물 수리병을 맡았고 같은 수송부 병사들끼리 같은

생활관을 쓰게 되었다. 군대 생활에서 가장 잘 해야 하고 힘든 것이 내무반 생활이라고 들었는데 같은

곳에서 업무를 하는 전우들과 같은 생활관을 써서 그런지 서로 고생하는 걸 알고 챙겨 주는 모습에

특별히 걱정은 안하고 적응을 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5개월 정도 자대생활을 하다가 기다리던 동명부대 해외파병 기회가 찾아왔다. 사실 내가 파병을

가게 되면 국내에서 내가 하던 업무를 누군가가 대신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파병 의사가 다른

전우들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어서 부담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전우들과 간부님들 모두

동명부대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고 있었고, 좋은 기회가 될 거라며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덕분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내 보직으로 동명부대 6진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전사 약 200여 명과 주특기병사

150명으로 이루어진 동명부대는 우리나라의 이름을 걸고 가는 만큼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고, 또

레바논은 우리나라보다 기온이 높기 때문에 2개월 정도 현지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그 과정 안에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자부심을 갖고 무언가 도전한다는 열정에 나 자신을 조금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레바논에서 약 6개월간 파병 생활을 하며 나는 내 주특기 업무 이외에도 현지 주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한 민사작전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이전에 동명부대 1진부터 5진 선배들의 노고 덕분인지 현지

주민들은 한국 군인들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이고 우리를 볼 때면 Korean army 최고라고 외치는

주민들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레바논 아이들이 한국어를 공부해서 웅변대회를

하였는데 그 수준이 목소리만 들으면 한국 사람이라 착각할 정도로 너무나도 유창하게 잘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 아이들은 동명부대를 통해 대한민국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밖에도 나는

이태리, 터키, 프랑스 등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UN소속의 외국 군인들을 만나 많은 것들을 느끼며 정

말 의미 있고 보람된 군 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파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그리웠던 서울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2002년 월드컵 때 느꼈던 애국심보다 10배는 더 뜨거운 내 심장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너무나도 자랑스러웠고, 파병기간동안 나 모르게

밤잠을 설치고 걱정하셨을 부모님이 생각나고 너무나도 보고 싶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렇게 나는

내면에 있던 내 마음속 애국심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께서 나를 얼마나 생각하시는지 마음 또한 더 잘

알게 되었다. 이렇게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나 자신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숙되어 있는 것을 느꼈고,

사회에 나가면 지금까지 보다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자심감도 더욱 생겼다.


전역 후에는 바로 (주)현대중공업에 복직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당당할 수 있었고, 업무 또한 2년이라는

공백 기간에도 불구하고 더 인정을 받으며 적응할 수 있었다. 입대 전 내가 걱정했던 일들 보다는

군대에 갔다 와서 더 얻은 점이 많고 발전할 수 있었으며 전역한 해에 회사에서 진급도 할 수 있었다.

예비역으로 전역한지 약 3년째가 되어가고 있는 나는 현재 내 주특기인 용접/판금 분야에서 내년에

있을 기능장 자격을 따기 위해 공부 중이고, 야간 대학에 진학해 내 분야에서 더 큰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나를 인정해주고, 나를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고 자신감을 심어주고,

강한 남자로 만들어준 군 생활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렇게 나 자신이 만족할 만한 군 생활을

만들어준 것은 바로 현역병 지원입영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내 예전과

같은 처지에 있는 후배들을 보면 주특기 지원입영을 적극 추천하고 있고, 이 글을 읽으며 군대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젊은 청춘이여! 일석 이조의 주특기 입영으로 군 생활을 자기 발전의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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