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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일꾼의 자격
출 18: 13-27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이란 곳에서 아말렉 족속의 침략으로 최초의 전투를 하게 됩니다.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으로서 장자권을 야곱에게 빼앗긴 사람들인데, 그래서 항상 야곱의 후손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경으로 지나간다고 하니까 이 기회를 놓칠세라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택하여 아말렉과 싸우라고 지시한 후, 자신은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모세가 손을 드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기도의 손이 올라가야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기고 지고 하는 대혈전이 펼쳐졌지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계속 기도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모세는 그곳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닛시’란 ‘여호와는 나의 깃발’ 또는 ‘여호와는 나의 승리’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 모세의 고백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힘과 능력으로 싸울 때는 항상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단의 세력과의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며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야 할 성도들의 승리의 비결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군기로 삼고,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힘입어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적은 과연 누구입니까?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라고 했습니다. 에서는 육신의 정욕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된 사람이며, 아버지 이삭의 말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은 불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적인 싸움의 상대는 명백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싸움은 나 자신의 정욕과의 싸움이요, 불순종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인 아말렉은 내 안에 도사리고 있어서 지금도 우리를 쓰러트리려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내 마음에 있는 정욕과 불순종인 아말렉과 싸워서 이긴 성도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어쩌면 자신과의 투쟁이요 전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엄 뿌드는 임종을 앞두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거리에 우는 여인이 있습니까? 함께 우시오. 배고픈 아이들이 있습니까? 주머니를 터시오. 감옥이 넘칩니까? 사랑의 손을 펴시오. 구세군은 사회의 악과 싸우는 주님의 군대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여러분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영적인 전쟁터와도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죄와 싸우고, 마귀와 싸우고, 자신의 정욕과 불순종과 싸워서 승리하는 십자군의 정병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높이 날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만민의 기호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정만도 60만 명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남여노소를 모두 합하면 200만-30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수백만의 사람들이 함께 살 때에 인간 세상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모든 소송 사건을 재판할 사람은 모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만일 140만 명이 살고 있는 이 광주에 소송 사건을 담당할 재판관이 단 한 사람뿐이라면 어찌되겠습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송 사건을 재판하느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모세의 재판을 받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종일토록 기다려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니 모세는 모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대로 못 견딜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광경을 지켜 본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즉 “온 백성 가운데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 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지혜로운 조언을 받아들여 재덕이 겸전한 자를 빼서 백성의 중간 지도자로 삼아, 어려운 일은 모세 자신이 재판하고, 간단한 사건은 그들로 하여금 처리하도록 하였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교회 일꾼의 자격’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백성의 지도자를 선택할 때 그 조건으로 ‘재덕이 겸전한 자’여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재덕이 겸전한 자’란 세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능히 참여할 선한 일꾼을 의미합니다. 이드로는 그 같은 선한 일꾼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 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것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말대로 하나님의 일꾼, 교회의 일꾼은
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라야 합니다.
오늘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고,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하면서 무지몽매하게 행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을 가리켜 무신론자라고 하는데, 이 무신론자 중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①이론적인 무신론자가 있는데 즉 하나님이 눈에 안보이니까 없다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②실제적인 무신론자가 있는데 곧 입술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실제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를 말합니다. 컨닝하는 신학생을 보고 그러한 신학생은 무신론자라고 하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목사가 나중에 더 커다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것도 보았습니다. 딛1:16에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두려워할 줄 모르는 목회자, 장로, 집사,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 자신은 과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얼마나 떨 줄 아는가? 반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기뻐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 요소가 되어야 하겠지만, 결코 가장 깊은 겸손과 경외심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계시록의 말씀처럼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으신 주님 앞에서, 민감한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주님과 말씀 앞에서 떨림이 없다면, 그 신앙생활은 타성에 빠지고, 그 양심은 마비되어 화인 맞은 양심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지난 해 1월 한겨레신문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드라마 중 65%가 불륜과 관계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드라마만 보면 대한민국은 가히 ‘불륜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 풍조 때문에 오늘 그리스도인들도 불륜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불륜이 커다란 범죄임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욥 31:1-12에 “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 받을 악이요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 또한 잠 5:27-29에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사회는 불륜이 판을 치고 있고, 그리스도인들마저 간음죄를 대담하게 저지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의 징벌이 당장에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 8:11-13에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5장에 보면 이러한 규례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실행하여 남편에게 죄를 범하여 타인과 정교를 하였으나, 그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지만,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거든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손에 들고 여인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사람과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고 네 배로 부어서 너로 베 백성 중에 저주거리 맹세거리가 되게 하실 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셨을 때 죄를 범한 일이 없는 아내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실제로 더럽힌 일이 있는 아내는 넓적다리가 떨어지고 배가 부어 죽도록 했습니다. 만일 오늘날 하나님께서 부정을 저지른 남편과 아내들을 이런 식으로 당장 징벌하신다면 어찌 될까요?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군들 역시 반드시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진실 무망한 자라야 합니다.
신 32:4에 보면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라고 했고, 시 117:2에 보면 하나님의 진실함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그 진실하신 하나님은 중심에 우리의 진실함을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그 안에 속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감추인 것이나, 숨긴 것이나, 정직하지 못한 것이나,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사실 그대로이며, 투명하고 명료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실함 때문에 그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실이 그에게 들어가 그를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너무도 진실치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12:1-2에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도다.”고 탄식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도 중요하지만, 사람 앞에서의 진실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도의 인격, 성도의 언행은 그 나라 그 사회의 양심의 척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세계, 성도의 세계를 떠나 그 어디서 보다 나은 진실을, 보다 깨끗한 양심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불신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성도의 말 한 마디면 보증수표보다 더 신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계와 성도들 세계에서도 불신풍조는 만연되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어떠한 오해나 억측이라도 목사들끼리 혹은 성도들 끼리 만나서 한 마디 해명하고 밝히면, 그 진실성 때문에 모든 오해가 풀어져야 할 터인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진실치 못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에서 무슨 신뢰가 생기겠으며, 무슨 사랑이 싹트겠으며, 어떻게 단합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겠습니까? 사랑 사랑하고 백 번 천 번 부르짖지만,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무조건 경계하는 데서는 온갖 거짓과 불신만 무성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성이 없을 때, 그 신앙은 생명력이 없는 죽은 것이고, 언행에 거짓이 많을 때, 그 인격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단언건대 신앙과 인격의 생명력은 진실한데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우리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이 000는 참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는 말을 듣도록 삽시다. 000는 참 진실한 집사였었다 하는 말을 듣도록 삽시다. 000는 참 진실한 장로였었다는 말을 듣도록 삽시다. 언젠가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되고 진실 무망한 나의 종아!”하는 선언과 평가를 받도록 삽시다. 그보다 가치가 있고, 또 성공적인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의 시인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하고 갈망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꼭 살아야 할 필요는 없으나, 진실해야 할 필요는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꼭 살아야 할 필요는 없을는지 몰라도, 진실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가 꼭 건강해야 할 필요는 없을는지 몰라도 진실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가 다 성공하고, 우리가 다 장수해야 할 필요는 없을는지 몰라도, 진실해야 할 필요는 있는 것입니다.
3. 불의한 利를 미워하는 자라야 합니다.
‘불의한 利를 미워하는 자’란 부당하게 취한 소득이나 불법적인 재물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에 대해 혐오하고 멀리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재물을 탐하고 백성의 피를 빨아 자기 치부에 힘쓰며, 뇌물을 받기 좋아하는 자는 결코 현명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출 23:8에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잠 15:27에는 “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사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뇌물을 받고 감옥에 가고 패가망신하는 고관대작들을 수도 없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뇌물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공평하고 정직해야 할 사법부마저 부패하여 한 때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습니다.
1998년 러시아의 뇌물 표준가가 독일신문에 보도되었던 일이 있었는데, 병역면제용 진단서 2천 달러, 대학 부정입학 7천 달러, 무죄방면 1만 달러 등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우리 실상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지난 해 미국에서 가장 화제를 뿌렸던 인물은 폴 크라우치라는 목사였습니다. 그는 세계 최대의 복음 방송 네트워크인 TBN의 회장으로 미국 교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크리스천들에게 은혜로운 말씀을 전한 크라우치 목사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그의 동성애 스캔들은 동성애 파트너였던 TBN의 전 남자 직원에 의해서 폭로되었습니다. 크라우치 목사의 동성애 스캔들이 불거져 나온 이후 TBN의 검은 재정에 대한 폭로도 잇따라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번영의 복음, 신앙과 현금 위에 세운 목사의 제국’이라는 제목으로 '크라우치 목사 왕국'의 비리를 자세하게 보도했습니다. 타임스에 따르면 TBN은 1년에 두 차례 실시하는 모금 프로그램을 통해 무려 1억7000만 달러를 거둬들였고, 부동산 및 이자 수입, 비디오 판매 등으로도 5000여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순자산이 5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크라우치 목사와 부사장인 아내는 모두 76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으며 720만 달러짜리 전용 제트기와 800만 달러짜리 저택을 비롯해 미 전역에 30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불의한 재물을 탐한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방송 설교로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접하고 구원 받았지만 정작 방송국을 이끈 크라우치 목사의 영혼은 파멸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경각심을 갖게 해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불의한 이를 미워해야 합니다. 곧 물질에 대해서 깨끗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불의한 재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꼭 뇌물이나 부정부패와 관련된 재물만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어느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다면, 그 재물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불의한 재물인 것입니다. 말 3:8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십일조, 그것은 분명히 불의한 재물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불의한 재물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렘 17:11에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그의 ‘예수 칼럼’에서 ‘십일조도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O점 이하의 크리스천이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일군은 진실 무망해야 한다고 했는데, 고후8:8에 보면 헌금으로 “너희의 사랑의 진심함을 증명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전한 십일조 헌금으로 주님께 대한 여러분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해 보이시기 바랍니다.
한 나라가 부강해지는 요건으로는 ① 지하자원 ② 인적자원 ③ 재정적인 축척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되려면 ① 믿음자원 ② 인적자원 ③ 재정적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중에 인적 자원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일군들은 모두가 1)하나님을 두려워하고 2)진실 무망하며 3)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곧 물질에 깨끗한 일군들이 되어서, 우리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여러분 자신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일군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구역 목회자
출 18: 13-27
먼저 그동안 구역을 위해 수고하신 구역장님, 인도자들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신 줄 알고 감사드립니다. 구역은 몸으로 비유하자면 세포와 같습니다. 세포가 모여 몸을 이루는 것처럼 구역 구역이 모여 교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 교회와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구역장과 인도자들은 목사보다 더 가까이에서 성도들의 형편을 잘 알고 기도하고 실제로 섬기며 돌보는 목자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을 구역의 목자라고 했습니다. 큰 교회에서는 교회목사님 전도사님들이 있는데 구역장과 인도자가 뭐가 필요하냐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함께 보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18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보여 주는 모세가 나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빠져 죽게 되었다고 낙심할 때 홍해를 가르고, 굶어 죽겠다기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하고, 목말라 죽겠다기에 반석을 쳐 물을 냈습니다. 그리고 산꼭대기에 서서 아론과 훌이 두손을 받쳐줌으로써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모세는 수많은 일과 백성들의 재판을 혼자서 하느라고 지쳐 있었습니다. 모세만 지친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만 바라보니 지쳤습니다. 이때 장인 이드로를 통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서 백성을 지도하고 섬기도록 한 것입니다. 그들은 재덕을 겸비한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구역장님, 인도자님들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재덕이 겸비한 자란 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경건한 자 ② 진실한 자 ③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자란 뜻입니다. 보통 구역장과 인도자는 흔히 작은 목사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구역은 작은 교회에 비유합니다. 왜냐하면 구역예배가 있습니다. 말씀으로 양육합니다. 이웃에 믿지 않는 자에게 전도합니다. 구역원들을 섬기며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구역이 부흥하도록 수고합니다. 그러니 구역은 작은 교회고 구역장, 인도자들은 작은 목자들입니다. 구역장과 권찰은 비젼도 있어야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구역장, 인도자가 변하면 그 구역원들의 신앙과 생활과 얼굴이 변합니다.
그러면 구역의 목자로서 어떻게 헌신하여야 하는 지 말씀을 통하여 봅니다.
첫째: 자신의 목장(구역)에 대해 헌신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왔습니다. 그들은 다른 10명 정탐꾼과는 달리 긍정적이고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10명과 두 명의 눈은 달랐습니까?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건 똑같습니다. 육안으로 보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라는 확신이 있을 때 그들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다르게 보였던 것입니다. 구역장 인도자들은 우리 구역은 "사람이 너무 없어요. 다 바빠요. 모이기 어려워요. 거의 나이드신 분들뿐이예요. 똑똑한 사람이 없어요. 일할만한 사람이 없어요." 등 부정직인 것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갈렙처럼 변화시켜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안될 것 같아도 구역장, 인도자 두 명만 모여서라고 예배드리기 시작하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좋은 구역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속담에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구역보다 남의 구역이 더 나아보인다는 것입니다. 내 남편보다 남의 남편이 잘나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안 그렇습니다. 내 떡이 더 크고 내 남편이 더 잘나고 내 아내가 더 예쁩니다. 다른 사람의 손에 든 두개의 떡보다 자기가 가진 한개가 더 소중합니다. 구역장님 인도자들께 맡겨주신 구역이 내가 거기에 사니깐 우연히 맡은 것라고 생각치 마시고 하나님이 맡겨 주신 곳이라 생각하십시요. 맡겨주신 구역에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구역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둘째 : 맡겨 주신 양(구역원)들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바울의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 바로 교인들이라고 했습니다.(살전 2:19) 저는 우리 성도님들을 잘 섬길 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제가 성도님들을 잘 돌보고 양육하고 사랑하였다고 하나님이 인정할 때 성도님들은 저의 면류관입니다. 이렇듯이 구역장들에게 맡겨주신 구역원들은 구역장, 인도자들의 면류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물질의 나눔도 있어야 합니다. 구역공부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 것입니다. 잘못 가르치면 어쩌나 두려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먼저 보고 모르는 것을 찾고 이해하고 다시 읽고 하는 가운데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이 말씀하십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말이 어눌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지도 아니하고 듣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거절했습니다. 자기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할 말을 가르치겠노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구역원들의 생활을 일일히 살피고 돌아보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요. 아픈 데는 없는지? 궁핍하지는 않는지? 자녀로 고민하는 문제는 없는지?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직장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는지? 구역장, 인도자의 마음은 항상 구역원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동고동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구역장, 인도자님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구역장, 인도자들은 구역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생활을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모세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삼아 세운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이에게는 1000명을 맡겼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100명을 맡겼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50명을 맡겼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10명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것을 요구하십니다. 헌신입니다. 1000명 맡은 사람은 1000명을 잘 섬기고 양육하고 돌보아야 인정받습니다. 백명 맡은 사람은 백명을 잘 섬겨야 인정받습니다. 오십 명맡은 사람은 오십명을 잘 섬겨야 인정받습니다. 10명 맡은 사람은 10명을 잘 섬겨야 인정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잘나고 똑똑하니 100명, 어떤 이는 못나고 능력없으니 10명이 아닙니다. 모두 21절에 보면 재덕이 겸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는
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맡겨진 자(구역원)들을 겸손하게 섬기는 자입니다.
② 진실무망한 자는 진리의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구역장, 인도자는 신뢰받아야 하고 또 구역원들은 신뢰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잘못이 있거나 실수가 있으면 허물을 덮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소문내고 비방하면 진실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③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 즉 탐욕이 없는 자입니다. 탐욕이 있으면 공정하게 사람을 대하지 못합니다. 궁극적으로 구역원이 몇 명이든지 하나님은 그것보다 구역장, 인도자가 구역원을 어떻게 섬기느냐에 관심이 더 많으십니다. 1명이라도 진실로 섬겨야 하고 10명이라도 물질과 기도와 말씀으로 섬기는 구역장, 인도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째: 교회에 헌신해야 합니다.
구역은 교회를 위하여 있습니다. 세상적인 친교의 모임이 아닙니다. 처음에 구역이 작은 교회라고 했습니다. 작은 교회가 모여 큰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작은 교회가 건강하게 잘 자라면 우리 교회는 건강합니다. 작은 교회들이 행복하면 우리 교회가 행복합니다. 작은 교회에 사랑이 있으면 우리 교회가 사랑이 있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을 위해 기도합시다. 부흥을 위해 전도를 합시다하면 구역은 먼저 이를 위해 합심기도로 뜨겁게 기도하고 실천해야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모세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운 것은 모세를 위해서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이고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라 나라의 부흥과 강건함을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이 강해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역장과 인도자들의 헌신은 교회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오늘 헌신예배 드리는 구역장과 인도자 여러분!
구역의 부흥을 위해 구역예배드리며 헌신하는 것은 교회를 위함입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모여 기도하며 물질을 나누며 초대교회와 같은 모습으로 헌신하는 것은 교회를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를 위함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헌신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0 이 90 보다 크다
출 18;13-27
10 이 90보다 큽니다.
파레이드가 만든 법칙이 있습니다. 파레이드가 개미들을 자세히 관찰하던 중에 분명히 본 것이 있습니다. 10%의 개미가 90%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10%가 90%의 일을 한다는 법칙을 <파레이드 법칙>이라고 합니다. 10%의 개미가 나머지 90% 개미보다 귀하였습니다. 10이 90보다 컸습니다.
백화점도 그렇습니다. 10% 단골 고객이 90% 매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10이 90보다 큽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중에 10% 부자들이 한국 돈의 90%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화 요금도 그렇습니다. 10%의 사람에게 90% 전화 요금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9시 뉴스도 그렇습니다. 초기 10% 시간에 보도하는 뉴스를 90% 사람들이 화제로 삼게 됩니다.
신문도 10% 앞 면에 90% 중요한 뉴스가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람유를 짜는 모습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람 열매를 모아놓고 누르기 시작합니다. 10% 정도만 받아 성전에서 사용합니다. d; 10% 감람유가 끄림이 생기지 않는 최상의 감람유입니다. 가장 비싸고 좋은 감람유입니다. 10% 감람유가 나머지 90% 감람유보다 비쌉니다.
성막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막은 378평입니다. 그런데 지성소 6평, 성소 12평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를 둘러싸고 있는 덮개 약 40평에 금값 600억을 다 사용합니다. 10%에 투자하는 비용이 90%가 넘습니다.
10이 90보다 큽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10%의 사람이 90% 일을 합니다. 10% 사람이 90% 물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어느 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수 백명이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고 모세 혼자 밥도 못 먹고 상담하고 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이드로가 말했습니다.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 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 그대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대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출18;17-23)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말을 듣고 조직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모세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들과 함께 일하였습니다. 일이 능률적이 되었고 수월하였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직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1. 십부장 60,000명
2. 오십부장 12,000명
3. 백부장 6,000명
4. 천부장 600명
이는 모두 78,600명입니다. 인구조사를 하며 보니 603,550명이었습니다. 이는 약 10%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정확하게 12.9%입니다. 이드로도 모세에게 10% 일군을 뽑아 일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0%가 90%의 일을 하며 광야 40년을 지냈습니다.
10애 90보다 큽니다.
1. 시간
하루 24시간이 똑같은 시간이 아닙니다. 새벽 시간 10%가 나머지 시간 90%보다 큰 시간입니다. 일찍 일어나 두 시간 가량을 영적인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인생을 정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습관입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 22;39-44)
예수님은 감람산에 나가셔서 기도하는 습관이 몸에 붙어 있었음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새벽 시간을 값지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큰 일을 하였습니다. 소위 새벽형 인간이 큰 사람이 됩니다.
나는 지난 주간 <백만불 짜리 습관>이라는 책을 대하였습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지은 책입니다. 그는 <트레이시 인터내셔널>사 회장입니다. 세계적인 비즈니스 컨설턴트이자 전략 전문가 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좋은 직장을 갖지 못 하고 오늘은 이 회사, 내일은 저 회사로 옮겨 다니며 전전긍긍하였습니다. 어느 날 비참한 자기 모습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졌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할까?>
<왜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안 될가?>
어느 날 그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즉각 행동을 옮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면서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즉각 행동을 옮기는 습관을 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100만불짜리 습관이었습니다. 이 습관이 괴물이 되어 자기를 길러 주었습니다. 마침내 세계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벽 첫 시간은 하루 24시간중에 가장 귀중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인생을 좌우합니다.
10이 90보다 큽니다. 새벽 두 시간은 나머지 22시간보다 큽니다.
2. 물질
10%의 하나님을 향한 십일조 물질이 나머지 90% 물질보다 큽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0조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나머지 90% 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고 드려야 합니다.
3. 일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살 때에 10%의 일군들은 나머지 90%의 사람들보다 중요하고 컸습니다.
나는 우리 성도님들이 어느 곳에서 일하든지 10% 안에 드는 중요한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개미가 떼를 이루어 살아도 10% 개미가 90%의 일을 해내지 않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 문도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2 명 제자들도 그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가룟유다를 뺀 12명입니다. 120명중에 12명 10%가 온 세계를 복음화시켰습니다. 나머지 108명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도 그리고 성경 밖에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안에서도 모두 한 가지씩 일을 맡아 하는 중요한 일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하면 10%안에 드는 일군들이 될 수 있을 가요?
다음과 같은 일군들이 교회에 있어야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가 됩니다.
(1) 계시 일군
교회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하나님의 의도되로 가야 합니다. 교회는 민주화되면 안 되고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민주화의 특징은 다수결입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독제주의 단체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성막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99%의 사람들이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결단은 모세가 하여야 했습니다. 모세는 민주화 목회를 하지 않고 복음화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랬기에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향하여 무엇을 원하는 지 하나님으로 받는 계시 일군이 필요합니다.
대개 목회자와 계시 일군은 일치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찬양대내에서 찬양대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갈 찬양의 계시 일군이 필요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들 중에 계시 일군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계시받는 일군이 있어야 합니다. 계시 일군 한 명은 다른 90%보다 중요합니다.
200만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광야에 나왔습니다. 200만명중에 오직 한 명 모세에게만 계시를 주셨습니다. 기도많이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일군은 큰 일군입니다.
교회가 잘못 하게 되면 잘 지적하여 교회가 잘 나가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일군이 계시일군입니다. 중요한 일군입니다.
성경의 뒷 이야기를 보면 12지파 족장 일군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물질을 가지고 와서 모세는 <그만 가지고 오라>라고 광고할 정도였습니다.
이 광고를 듣고 12 족장들은 모세에게 와서 거칠게 항의하였습니다. 자기들은 헌금을 독려하러 다니느라고 헌금을 드릴 시간이 없어서 드리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로부터 축복기도를 받지 못 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미 물질이 너무 많아 그만 하면 된다고 헌금을 거절하였습니다. 12 족장들은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계시를 주옵소서. 우리도 헌금할 수 있는 기회를 주옵소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대제사장복에 들어가는 12 보석이 아직 없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한 족장이 한 개씩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무슨 일을 하여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가를 늘 기도하고 계시받는 일군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 개씩 드리고 나니 너무나 허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이 너무나 초라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드릴 것이 없나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성막을 나르려면 수레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수레와 그것을 끌 수 있는 소를 헌금하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모세도 생각지 못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핫자손들에게는 분명히 어깨에 메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게르손과 므라리에게는 메라는 말씀은 하시지 않으셨다 .혹시 저들이 바치겠다고 하는 것들이 게르손과 므라리에게 사용하라고 되어지는 헌금인가?>
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12 족장들로부터 수레와 소를 받아라. 고핫자손들만 어깨에 메고 나르고 게르손과 므라리는 수레에 실어서 나르도록 하여라. 그리고 12 족장들이 생각하여 낸 아이디어를 칭찬하여라. 멋진 아이디어 헌금이라고 말해 주어라. 그들에게 수레를 헌금하여 성막을 나르는 것은 전 세계를 나르는 것이라고 칭찬하여라. 전 세계를 얹어서 나르는 것을 헌금하였으니 내가 기뻐하시고 있다고 말해 주어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이디어,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이들을 사랑하여 주십니다. 이런 계시 일군이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모세의 10% 일군들은 기도일군들이었습니다.
(2) 물질 일군
교회에서 하나님을 직접할 수 없기에 직장생활하면서, 또 개인 사업을 잘 하여 하나님께 헌금을 잘 드리는 물질 일군도 중요한 일군입니다.
교회를 잘 운영되려면 많은 물질이 필요합니다. 돈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입니다.
가난한 것은 죄는 아니지만 명예도 아닙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선교사업에 헌금하는 물질 일군도 교회에서는 중요한 일군입니다.
나는 지난 주간 부산 감림산 기도원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 왔습니다. 신기한 분을 만났습니다. 노 교인 목사, 노 기현 집사 형제를 만났습니다.
형 노 교인 목사님이 온 세계를 복음화시키려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뉴질란드 왕가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동생이 형을 위하여 기도하는 데 형이 선교하다가 순교하는 장면을 환상중에 보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형이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고 편하게 하여 주려고 최대한으로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비행기도 일등표만 구하여 주었습니다. 호텔도 가장 좋은 호텔에 가장 좋은 방만을 예약하여 드렸습니다. 선교비도 풍족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결심하였습니다.
<내 신장을 팔아 선교비를 대리라. 그리고 그 다음은 간을 팔리라. 그 다음은 눈을 팔리라....팔 수 있는 장기를 다 팔리라. 그리고 나는 형님의 선교를 위하여 조용히 무덤으로 들어 가리라.>
이렇게 결심하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 전에 형님 얼굴을 마지막 한 번 보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뉴질란드로 들어 갔습니다. 거기에서 인도네시아 사업가를 만났습니다. 유전을 가지고 있는 데 개발을 못 하고 있는 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꾸만 소원을 주셨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3;13)
하나님은 그 유전을 자기에게 달라고 그러라고 소원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하였습니다. 그 유전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돈 벌어 하나님의 일을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개발을 하지 못 하고 있던 중에 자기가 20%를 갖기로 하고 유전을 주었습니다. 엄청난 일을 하고 있습니다. 63 빌딩 58층이 그의 것입니다. 여수 개발을 6조원 들여서 개발하고 있습니다. 나는 노 기현집사님과 밤 4시까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양복을 보여 주는 데 3천만원짜리였습니다. 놀랐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런 크리스챤 재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할려고 하는 자에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물질 일군도 일군입니다.
10%의 일군들은 물질 일군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물질을 투자하는 이들이었습니다.
(3) 몸 일군
기도로 계시를 받으며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 가게 하는 일군들은 몸으로로 일하는 일군들이었습니다. 몸으로 봉사하는 이들도 있어야 합니다.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 장로, 속장, 선교회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이 몸 일군입니다.
전도하는 것도 몸 일군입니다. 안내, 주차 관리부에서 일하는 이들도 몸 일군들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게 하려고 청소하는 이들도 몸 일군들입니다. 10%의 일군들은 이같이 기도 일군, 물질 일군, 몸으로 봉사하는 일군들이었습니다.
그 10%는 나머지 90%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10% 안에 들 수 있을 가요? 어떻게 10% 일군들이 될 수 있을 가요?
1. 일군의 눈에 띄이면 일군이 됩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할 만한 사람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12 명 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가룟 유다만 빼놓고 모두 순교하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알하는 사람은 일군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찾아냈습니다.
광야 최고의 일군 모세의 눈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유난히 눈에 띄였습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비젼이 있는 일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일군이 되려면 일군의 눈에 들어야 합니다.
2. 일군이 되겠다고 결정하면 일군이 됩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마음먹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마음은 행동의 키입니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2-23)
3. 일하면 일군이 됩니다.
말만 하십시오. 말꾼이 됩니다.
말썽을 부리십시오. 말썽꾼이 됩니다.
놀기만 하십시오. 놀이꾼이 됩니다.
기도만 하십시오. 기도꾼이 됩니다.
노래만 하십시오. 가수가 됩니다.
일하십시오. 일꾼이 됩니다. 일군이 되고 싶으면 간단합니다. 일 하면 됩니다.
우리 교회는 민족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일하여야 할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일군들이 많이 생겨야 합니다. 나는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가 일군이 되어야 우리 교회가 민족적인 교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선 우리 교회가 실력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300석이 세 번 정도는 차야 합니다. 9월 셋째주 <한 사람이 한 사람> 모시고 와서 같이 예배드리고 운동에 다 동참하셔서 우리 교회가 한 차원 성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10이 90보다 큽니다. 10 안에 들어야 합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손기정 마라톤 우승자 한 분을 이야기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지난 주간 815 광복절을 맞았습니다. 손기정 이야기가 주된 화제로 인터넷을 장식하였습니다.
1936년 당시는 사람은 2시간 30분 안에 마라톤 코스를 달릴 수 없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 벽을 깬 사람이 손 기정입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그 벽을 깨어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손 기정은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기에 일본 선수로 출전하였습니다. 두 달 전에 베를린에 도착하여 현지 적응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일본 일장기가 달린 선수복을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대회까지 유니폼을 더럽히기 싫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일장기를 보이기 싫어서였습니다.
마라톤에 일등한 후 금메달리스트들이 모여 독일 국빈들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싸인 할 때에도 <손 기정 Korea>라고 썼습니다.
수많은 신문 기자들이 어떻게 훈련하여 일등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손기정이 대답하였습니다.
<독립군들이 바지에 모래 주머니를 만들어 달고 훈련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달리는 연습을 하였지요.> 이를 악물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할려고 하는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1946년 베를린 우승 10주년 기념식에서 백범 김 구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였습ㅈ니다.
<나는 자네 때문에 세 번 울었네.
첫째 나라 없는 청년이 우승하였다는 서러움에 울었지.
둘째 일본 사람들이 자네가 필리핀 상륙작전에 참가하여 죽었다는 소문을 내서 울었지.
셋째 독립이 안 되었으면 자네 우승이 영원히 묻힐 뻔 하여 독립하며 감격하여 울었지.> 그렇습니다.
할려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