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역자(a minister)는 작은자(디아코노스)이다.
리처드 백스터의 ‘참 목자상’ 서평
영국의 대표적인 청교도 목회자인 리처드 백스터는 1638년 영국국교회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641년부터 키더민스터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백스터는 놀라운 영향력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켰다. 이 책의 추천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회자들을 여러 방법으로 도울 수 있겠지만 이 책을 한 권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효과적으로 그들을 돕는 길”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본질적인 목회를 추구한 듯 하다. ‘참 목자상’에서 리처드 백스터는 목회자의 죄와 목양 곧, 영혼을 개별적으로 돌보는 일을 경홀히 여기지 말고 온 힘을 다해 연구할 것과 개별 신앙훈련을 시행할 것을 간곡히 요구하고 있다. 목회자는 그리스도인이자 동시에 목회자로서 이중의 헌신을 감당해야 하기에 비록 이 글이 1656년에 쓰여졌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동시대를 사는 것과 같은 영감을 주고 있다.
1. 목회자의 자아성찰
목회자는 회중 앞에 나아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주시기를 목숨 걸고 간구해야 한다. 목회자의 실패는 단순히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믿으라고 권하는 바를 자신이 먼저 믿고, 그들에게 전하는 구주를 자신이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언어뿐 아니라 행위로도 그분을 섬겨야 한다. 죄를 지적하기는 쉽지만 죄를 극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사역의 모든 영역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지식, 지혜, 설교 등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굳은 결의와 근면성 그리고 탁월한 기술이 요구된다.
목회자라는 신분이 구원을 보장해주지는 않듯이 목회자는 자기 영혼의 구원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블레셋 군인들이 삼손에게 했듯이 마귀가 호시탐탐 우리의 영혼을 노리고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우리가 전했던 교리들은 CCTV에 24간 녹화된것처럼 마귀에게 농락당하는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주님은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도움을 주신적이 있었던가. 목회자가 만일 불의하다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수고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리처드 백스터는 ‘목회자의 모든 언행은 일종의 설교’라고 했는데, 성화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말한 대로 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죄의 대상에 대해서는 싸울 힘조차 없기에 목회자는 자아성철에 엄격해야 한다.
2. 목양
목회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은사와 시간과 힘을 쏟아야 한다. 목회자의 전문성은 양들보다 보살피고 돌보는 일에 뛰어난 능력이 있음을 전제하지만 역량만큼 감당하는 조심스러움도 있다. 다양한 양들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개입하고자 하는 준비와 함께 규율을 철저히 이행하면서 교회를 인도하는 단호함도 요구된다.
목회자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 구원을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부지런히 목회에 임해야 한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가 “어린아이에게 철학의 심오한 개념부터 가르치지 않”았던거처럼 확실하고 중요한 교리부터 단계적으로 명료하게 가르쳐야 한다.
사역자(minister, ‘작은자)의 말 뜻을 안다면 교만하지 않고 온유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언제나 공격에 노출되어 있기에 오래 참음으로 견뎌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양들의 회심과 성장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더 높은 성공을 추구하며 연구하고 설교해야 한다. 목회자의 특권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분에 관해 전도하는 데‘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은 사람답게, 주님을 섬기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듭게 열심히 일해야 한다.
3. 목회의 실제
성경에 드러나 지도자들은 양들의 죄를 지적할 뿐 아니라 자신의 죄도 회개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는 무언가 하면서도 자기 영혼을 위해서는 너무나 무심하지 않은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목회자의 가장 명백한 죄 가운데 하나는 교만이다. 리처드 백스터는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설교를 준비하다 해도 그러한 열정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교만입니다”라고 했다. 교만의 유혹은 경건이 아닌 경건의 영광을 추구하게 한다.
목회자가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게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게을러서 틀에 박힌 설교 자료집 정도만 참고한다‘는 리처드 백스터의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 더욱이 이익을 따라 정치하는 행위, 경제적인 염려, 인생한 자선 행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목회자로서 이중으로 바쳐진 목회자의 의무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새삼 깨닫는다.
목회자는 징계를 행함에도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을 개인적으로 불러 책망하고, 공개적으로 회개를 촉고하며, 그래도 순종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쫓아내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이것을 논쟁만 하고 시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게으른 목회자에게 징계가 있듯이 성도들을 올바르게 징계하는 것도 중요한 목회의 일부분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녹록치가 않다. 서로가 죄를 자백하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영광을 세우실 것이다.
리처드 백스터의 「참 목자상」은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 얘기이지만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사람의 본성은 변함이 없으며 그 추구하는 바가 똑같음을 알게 한다. 죄의 답습은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마치 ’원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너무나 유사한 데자뷔를 이루어 낸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이런 원론적인 얘기들이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할 소설로 여기지는 것에 있다. 왜 그럴까? 이는 명확한 주장에 비해서 삶의 증거물들이 공허하게 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윌리엄 브라운은 추천사에서 ’이 책을 선물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목회자들을 돕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묻고 싶다. 책을 추천하지 말고 책처럼 사는 사람을 보여 줄 수는 없는가. 왜 후대에 책임과 의무의 짐은 떠넘기면서 영광과 열매는 선대가 가져가는가.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리처드 백스터는 놀랍게도 많은 사역자들이 간과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지적한다. 영혼을 개별적으로 돌보는 데 중요한 일로 삼는 것과 개별 신앙훈련을 시행하는 것이다. 이는 소위 제자훈련의 정신으로 성경공부가 아닌 삶과 말씀이 함께하는 목양이라 하겠다. 이 일을 할 때 목회자가 있지 말아야 할 정신은 디아코노스 즉 작은자의 정신이다. 디아코노스는 시종인이란 뜻으로 선생, 목사, 종이 이데 해당이 된다. 사역자(minister)는 어원적 정신에 맞게 철저하게 작은자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 자세로 양들의 회심과 성장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가진다면 많은 연약한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성령의 충만한 인도하심에 과업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