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입성한지 17번째 맞는 5월이다. 라일락이 활짝 피는 4월 하순에 처음 아내를 소개받아 만났고, 그 후 몇 해가 흘러 파아란
하늘이 유난히 높아 보이던 10월 어느 좋은 날 결혼했다. 처음 울산 살이를 시작할 때의 교육, 의료환경, 각종 문화 인프라는 지금보다
많이 미약했다. 가장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시민들의 정주의식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취업을 위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아이들
교육을 마치면, 혹은 ’직장에서 은퇴하면’ 이란 조건을 달았고 ‘언젠가는 울산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식이 굉장히 높았다.
울산에서 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이 땅에 많은 전쟁과 피 흘림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울산의 병영성, 울주군 언양읍성은
울산의 해안 방어와 육로 방어의 중추적 유산이다. 더 나아가 울주군 남부지역의 왜성들은 임진란의 처절함을 보여준다. 울산에는 쇠를 생산하고
다루며, 소금을 생산하던 곳이지만 정작 그 열매는 누리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 선생이 정치적 유배를 받아 내려온 것이 언양읍 지역이다. 정치범의 유배지로 선정될 만큼 척박한 지역이 울산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삶의 환경이 열악한 울산 땅이지만, 망부석 전설을 비롯해 한국의 얼인 한글을 지킨 주시경 선생, 한일강점기시대에 무장 독립투쟁을
이끌던 이상진 의사를 배출하고, 수운 최재우 선생의 인내천 사상이 무르 익게 한 곳이 울산 땅이 아니던가?
이런 울산 땅의 가난과 열악한 삶의 환경을 넘어 세계 최빈국인 대한민국을 풍요로운 나라로 건설해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국가적 열망이
울산의 공단을 개척하게 했다. 대한민국 석유화학 산업의 진정한 개화지는 울산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시발점도, 한국 조선 산업의 시작점도
울산이 아니던가. 또 산업현장에서 산업역군들이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억척스럽게 일했기 때문에 울산은 IMF 사태라 불리는 경제적 시련을 비켜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어려운 형편을 늘 지근거리에서 보아왔다. 또 70대
초반에 들어선 노인층이 노후 대책이 거의 없는 것도 본다. 안타까운 것은 이 노인들이 바로 울산을 일으켜 세운 산업의 역군이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젊음을 다음세대의 안정과 풍요를 위해 몸 바쳐 일했던 세대들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는 가운데 다시 5월이 밝았다. 대한민국 산업수도라는 자부심을 가진 울산에 5월이 주는 정감은
특별하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 정치, 복지적인 면도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이 쉼을 누리고 사랑과 평등, 자유,
나눔을 누리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의 경쟁 문화와 더불어 성경적 사랑과 배려의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야 건강한 삶을 회복하게 된다.
울산에는 현안에 대한 의견과 문제의식이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일부 기득권층이 자신들만의 사상, 정치노선을 기준으로 이들을
획일적으로 정리하지 말아야 한다. 다양한 계층이 표출하는 다양한 의견을 힘의 원리가 아닌 상호 존중과 사랑, 배려를 바탕으로 일치와 통합을
이뤄내야 할 숙제가 울산 시민들에게 주어져 있다. 이런 숙제의식이 필자가 울산을 지키며 살아온 가장 큰 이유이다.
공기 정화기는 공기 중 먼지를 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필자가 울산 땅을 앞으로 지켜야 할 이유는 성경적 삶의
원리로 이 땅의 아픔과 눈물, 소외와 불균형이 줄어들기를 목마름으로 사모하기 때문이다. 땅의 물질 중심, 인간 중심의 문화가 거대한 움직임이
있는 울산에 이제는 인간의 내면을 채우는 하늘의 사랑과 섬김의 문화와 더불어 건강한 인문학적 문화유산도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서 생애를 마치고
싶은 땅, 내 후손이 자랑스러워하는 땅이 되었으면 한다.
기사입력: 2017/05/11 [15:41] 최종편집: ⓒ 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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