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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2000~2017: 뒤늦은 복권들
21세기에 들어서며 독일은 오랫동안 미뤄 온 숙제들을 하나씩 꺼내 듭니다. 나치 군사법정의 판결들이 무효가 되고, 오래된 판례가 뒤집힙니다. 그런데 바로 같은 시기, 가족의 기억은 공식 기억과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2002년, “할아버지는 나치가 아니었다”
독일의 공식 기억문화는 수십 년 동안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교과서로 홀로코스트를 잘 안다는 것과, 자기 할아버지·할머니를 가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기억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Harald Welzer) 등이 2002년에 펴낸 연구 『할아버지는 나치가 아니었다(Opa war kein Nazi)』가 유명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적인 역사 인식에서는 독일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가족의 기억 안에서는 자기 가족을 피해자, 선량한 방관자, 나치와 거리를 둔 사람으로 다시 그려 내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관찰되었습니다.⁴⁶
2002년, 탈영병의 복권
같은 해 연방의회는 나치 군사법정이 내린 탈영병 판결을 일괄 무효로 만듭니다. 그러나 ‘전쟁반역(Kriegsverrat)’ 판결은 이때도 무효화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그 이야기는 잠시 뒤 2009년에서 이어집니다.
2006년, 디스토모 유족의 헌법소원
1장에서 본 1944년 디스토모 학살의 유족들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2006년, 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⁴⁷
여기서 가장 낯선 문장이 나옵니다. 해당 친위대 부대는 독일 점령군에 편입되어 있었으므로, 그 학살은 위법성 여부와 별개로 독일제국의 ‘주권적 국가행위(acta iure imperii)’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⁴⁷
이 말은 “학살이 합법적인 군사행위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가면제법에서 ‘주권적 국가행위’는 정당한 행위라는 도덕적 평가가 아닙니다. 국가기관이 국가권력을 행사한 행위라는 ‘귀속’의 분류입니다. 그래서 “그 행위는 전쟁범죄다”와 “그 행위는 독일 국가에 귀속되는 주권행위다”라는 두 문장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도 ‘독일 대 이탈리아’ 사건에서 비슷하게 판단했습니다. 국가면제는 본질적으로 절차적 규칙이며, 중대한 국제인도법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⁴⁸ 독일 법원만의 괴상한 예외 논리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무언가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보상법의 분류가 낳은 또 다른 역설
연방헌법재판소는 입법자가 일반적인 전쟁 피해와, 특별히 나치 이데올로기에 의해 동기화된 박해를 서로 다르게 다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⁴⁷ 디스토모 사건은 극도로 잔혹한 민간인 학살이었지만, 법적으로는 인종·정치·종교적 나치 박해 범주와 구별되는 ‘전쟁 사건’으로 분류됐습니다.
여기서 3장의 하이드리히 사건을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이건 해석입니다.
1. 하이드리히: 그의 죽음이 ‘전쟁의 직접적 영향’으로 분류됐습니다. 그래서 유족에게 급여가 성립했습니다.
2. 디스토모: 친위대 부대의 학살이 독일 국가의 주권적 전쟁행위로 귀속됐습니다. 그래서 국가면제라는 절차적 방패가 작동했습니다.
두 법리는 전혀 다른 제도입니다. 누군가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하라”고 중앙에서 명령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데 모아 놓으면, 법적 분류가 거듭 기묘한 방향의 효과를 낳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서로 독립적인 보편 원칙들이 합쳐졌을 때 왜 이런 분포의 결과가 나오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국경 사살 판결과 디스토모를 비교할 수 있을까
6장의 동독 국경 사살 판결과 디스토모를 나란히 놓으면 이런 인상이 생깁니다.
동독 사건에서는 “국가가 허용했다고 극단적 불법이 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디스토모 사건에서는 “극단적 불법이어도 국가의 주권행위이므로 국가면제가 적용된다.”
물론 법적으로는 일대일 비교가 아닙니다. 동독 사건은 개인의 형사책임과 소급처벌의 문제였습니다. 디스토모 사건은 외국 국가를 민사 법정에 세울 수 있는가, 그리고 개인에게 직접 배상청구권이 있는가라는 국가면제·국가책임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두 법리는 기술적으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교가 무의미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비교의 대상은 법률 조문이 아니라, 국가가 극단적 불법을 만났을 때 형식적 법질서의 벽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넘어갔는가입니다.
나치 범죄를 계기로 개발된 강한 반실증주의 법리가, 통일 뒤 동독 국가 범죄에서는 자신 있게 작동했습니다.
반면 나치 피해자의 민사 배상 문제에서는 국제법의 형식적 방패가 더 강하게 남았습니다.
“법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답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역사적 불편함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2007년,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잖아”
2007년, 여론조사기관 포르자(Forsa)가 시사주간지 『슈테른』의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25%가 국가사회주의에도 ‘좋은 면’이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60세 이상에서는 37%로 더 높았습니다.⁴⁹
다만 이 조사에는 중요한 방법론적 문제가 있습니다. 질문이 아우토반, 실업 감소, 범죄율, 가족 정책 같은 예시를 함께 제시해 응답을 유도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독일인 4분의 1이 나치를 긍정했다”고 단순화하면 안 됩니다.⁵⁰
그럼에도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잖아(es war doch nicht alles schlecht)’
라는 문구가 독일 기억문화에서 오래된 자기변호의 상투어였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이 문구는 몇 년 뒤 아주 기묘한 입을 통해 다시 등장합니다.
2009년, ‘전쟁반역자’의 복권
2002년에 빠졌던 전쟁반역 판결은 왜 그렇게 오래 남았을까요? 논리는 대략 이랬습니다. ‘전쟁반역’이라는 죄명 아래에도 실제로 제3자에게 해를 끼친 행위가 있을 수 있으니 사건을 개별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2009년 이전 피해자들의 처지를 거칠게 말하면 이랬습니다.
“당신의 판결은 나치 군사법정이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자동 무효가 되지는 않습니다. 개별 사건을 다시 심사합시다.”
2009년 9월 8일, 연방의회는 마침내 이 입장을 바꾸고 전쟁반역 관련 판결을 일괄 무효로 만들었습니다. 본회의에서는 이를 모든 사형 판결과 이른바 전쟁반역자에 대한 판결을 일괄적으로 무효화하는 조치로 설명했습니다.⁵¹ 종전 64년 만이었습니다. 이 ‘개별 심사’의 논리가 다른 곳에서 어떻게 거꾸로 작동하는지는 8장에서 보겠습니다.
2013년,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2013년, 공영방송 ZDF의 드라마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Unsere Mütter, unsere Väter)』가 큰 논란을 일으킵니다.
작품 자체는 분명히 나치와 전쟁범죄를 비판합니다. 국방군(Wehrmacht)의 범죄도 보여 줍니다. 그런데 후속 시청자 연구에서는 젊은 독일 시청자들이 주인공과 강하게 동일시하면서, 작품 안에서 명백히 범죄로 그려진 행동조차 “명령 때문이었다”, “전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누그러뜨려 받아들이는 현상이 관찰됐습니다.⁵²
여기에는 위험한 서사의 내리막길이 있습니다.
1. 독일인도 전쟁의 피해자였다.
2. 평범한 독일인은 전쟁에 휘말렸다.
3. 우리 가족은 그저 살아남으려 했다.
4. 범죄는 일부 나치 엘리트의 일이었다.
첫 문장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역사적으로 잘못된 일반화입니다. 문제는 그 사이가 너무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2015년, 『그가 돌아왔다』
2015년 영화 『그가 돌아왔다(Er ist wieder da)』는 현대 독일에 되살아난 히틀러를 그린 풍자극입니다. 이 영화는 앞에서 본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잖아’라는 표현을 히틀러의 입에 돌려줍니다. 그래서 효과적입니다.
이 풍자의 공포는 히틀러가 새로운 논리를 들고 돌아온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미 사회 안에 있던 아주 평범한 자기면책의 언어를, 히틀러가 그대로 주워 쓸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2017년 1월, NPD 판결
2017년 1월 17일, 연방헌법재판소는 NPD 해산 사건을 판결합니다. 재판소는 NPD의 목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정당 금지에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⁵³
재판소는 그 위헌적 목표가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 곧 ‘잠재력(Potentialität)’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이고 중대한 단서가 필요하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리고 판결문에서 1956년 KPD 판결의 정반대 정의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는다고 명시했습니다.⁵³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956년 KPD 판결에서는 위헌적 목적과 적극적 투쟁만 있으면 성공 가능성이 없어도 해산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NPD 판결에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고 현실적인 성공 가능성이 추가로 필요해졌습니다.
이것은 후대의 해석이 아니라, 연방헌법재판소 스스로 과거 판례를 명시적으로 고친 사례입니다. 4장에서 본 ‘학습의 비용’을 재판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기도 합니다. 2장의 SRP 판결이 처음 정의했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도 이 판결에서 인간의 존엄, 민주주의, 법치국가라는 핵심 원칙 중심으로 다시 정리됩니다.⁵³
2017년, 형법 175조 판결의 무효화
같은 해 연방의회는 전후 서독과 동독에서 동성애 행위로 내려진 유죄판결을 일괄 무효로 만들고 피해자에게 보상했습니다.⁵⁴ 4장에서 본 그 조항입니다.
물론 날짜를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7년 법은 나치 시대 판결이 아니라 1945년 이후의 판결을 다룬 법입니다. 나치 시대의 해당 판결은 별도의 ‘나치 부당판결 무효화법’으로 이미 처리되고 있었습니다.⁵⁴
당시 법무장관 하이코 마스(Heiko Maas)는 이 조치가 법적 안정성이라는 법치국가의 핵심 원칙과 충돌하는 문제라고 공개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런 판결을 계속 남겨 두는 것은 정의와 양립할 수 없으므로 국가가 자기 잘못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⁵⁴
이 사례의 아이러니는 분명합니다.
피해자를 계속 범죄자로 남겨 두는 확정판결을 없앨 때조차, 민주국가는 “확정판결의 법적 안정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풀어야 했습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질문이 누구의 기존 상태를 보호하고 있었는가는 별개의 역사적 문제입니다. 프롤로그에서 말한 제도적 히스테리시스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 * *
주
⁴⁶ bpb, 「Unser Papa war in Stalingrad」; 「Familiengedächtnis und NS-Vergangenheit in Deutschland」. [bpb 1](https://www.bpb.de/themen/erinnerung/geschichte-und-erinnerung/39828/unser-papa-war-in-stalingrad/) · [bpb 2](https://www.bpb.de/themen/nationalsozialismus-zweiter-weltkrieg/die-wohnung/196963/familiengedaechtnis-und-ns-vergangenheit-in-deutschland/)
⁴⁷ 앞의 주 2와 같은 자료(디스토모 결정). 친위대 부대가 독일제국의 무장 세력에 편입돼 있었으므로 행위가 국가의 주권행위로 귀속된다는 점, 일반 전쟁 피해와 특별히 나치 이데올로기에 의한 박해를 입법자가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을 다룹니다. [BVerfG](https://www.bundesverfassungsgericht.de/SharedDocs/Entscheidungen/DE/2006/02/rk20060215_2bvr147603.html)
⁴⁸ 국제사법재판소, 「Jurisdictional Immunities of the State (Germany v. Italy: Greece intervening)」, 2012년 2월 3일 판결. [ICJ](https://www.icj-cij.org/case/143/judgments)
⁴⁹ n-tv, 「25 Prozent sehen gute Seiten」, 포르자/『슈테른』 조사 보도, 2007. [n-tv](https://www.n-tv.de/politik/25-Prozent-sehen-gute-Seiten-article237770.html)
⁵⁰ Jüdische Allgemeine, 하랄트 벨처 인터뷰, 「Die 25 Prozent sind die Ehrlichen」. 조사 문항의 유도성을 비판합니다. [Jüdische Allgemeine](https://www.juedische-allgemeine.de/allgemein/die-25-prozent-sind-die-ehrlichen/)
⁵¹ 독일 연방의회, Plenarprotokoll 16/233, 2009년 9월 8일. [Bundestag](https://dserver.bundestag.de/btp/16/16233.pdf)
⁵² bpb, 「Hybride Geschichte und Para-Historie – „Unsere Mütter, unsere Väter“」. [bpb](https://www.bpb.de/shop/zeitschriften/apuz/238839/hybride-geschichte-und-para-historie/)
⁵³ 연방헌법재판소, 2017년 1월 17일 판결, 2 BvB 1/13, 특히 단락 586~587. 재판소는 KPD 판결의 반대되는 정의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는다고 명시합니다. [BVerfG](https://www.bundesverfassungsgericht.de/SharedDocs/Entscheidungen/DE/2017/01/bs20170117_2bvb000113.html)
⁵⁴ 앞의 주 29와 같은 자료. [Bundestag](https://www.bundestag.de/webarchiv/textarchiv/2017/kw17-de-rehabilitierung-501820)
8장. 2020년대: 현재로 돌아온 과거
종전 75년이 지난 2020년대에도 과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과거는 피해자 인정과 연금 행정, 의회 표결과 선거 결과 속에서 ‘현재의 정치’로 돌아옵니다.
2020년 2월, 아무도 ‘정당하게’ 수용소에 있지 않았다
나치는 노숙인, 걸인, 떠돌이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을 ‘반사회적 인간(Asoziale)’으로 낙인찍었습니다. 반복 전과자 등은 ‘직업적 범죄자(Berufsverbrecher)’라는 범주로 분류해 강제수용소에 보냈습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다른 나치 피해자와 같은 방식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연방의회가 이들을 명시적으로 나치 피해 집단으로 인정한 것은 2020년 2월 13일이었습니다. 당시 의회에서는 “아무도 ‘정당하게’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주장이 강조됐습니다.⁵⁵
중요한 것은 “2020년은 너무 늦었다”는 단순한 비난이 아닙니다. 2장의 131법을 떠올려 보면 더 중요한 질문이 보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1950년대부터 기존 사회권과 연금, 공직 경력을 보호받았는데, 다른 사람은 2020년이 되어서야 국가가 자신에게 붙은 나치 시대의 낙인을 명시적으로 거둬 갔을까요?
2021~2025년, 친위대 급여라는 미로
여기서는 두 종류의 ‘연금’을 구별해야 합니다.
첫째는 일반 법정연금입니다. 전후 독일에는 옛 직업군인 등의 과거 복무 기간을 일반 사회보험 경력으로 환산해 주는 이른바 ‘가상 추후보험(fiktive Nachversicherung)’ 제도가 있었습니다. 일정한 직업적 무장친위대(Waffen-SS) 복무 기간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2025년 연방정부 답변에 따르면, 독일연금보험의 통계 자료에는 오늘날 수급자 가운데 누가 이 규정에 따른 무장친위대 복무 기간을 갖고 있는지 바로 뽑아낼 수 있는 변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몇 명이 해당하는지를 기계적으로 집계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범죄의 처벌은 연금법의 임무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형법의 영역이라는 취지도 밝혔습니다.⁵⁶
둘째는 전쟁 피해에 대한 사회보상 급여입니다. 2장과 3장에서 본 연방원호법이 다루던 영역이고, 지금은 사회법전 제14권(SGB XIV)이 규율합니다.
2021년 연방의회 공청회에서 바이에른 사회보상 당국의 토마스 케르너(Thomas Kerner)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무장친위대처럼 범죄 조직으로 평가되는 조직이라 해도 단순한 소속만으로 기존 급여를 박탈할 수는 없고, 개인의 구체적인 위반 행위와 책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행법으로도 수급자를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다른 전문가들은 75년이 지난 뒤 행정기관이 그 개인 행위를 입증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를 지적했습니다.⁵⁷
이 구조는 현행법에도 남아 있습니다. 2024년부터 시행된 사회법전 제14권 제22조는 나치 시기에 인간성과 법치주의 원칙을 위반한 사람에게 사회보상을 거부할 수 있게 합니다. 자발적인 친위대 가입은 개인 행위를 ‘특히 면밀하게’ 조사해야 할 단서입니다. 그러나 이미 지급 중인 급여를 박탈하려면, 위반의 중대성과 함께 수급자가 계속 받을 것이라고 믿은 신뢰가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까지 개별적으로 따지도록 규정합니다.⁵⁸
이것을 “현대 독일이 친위대를 보호한다”고 요약하면 틀립니다. 이 규정은 오히려 나치 가해 행위가 확인된 경우 급여를 거부하고 박탈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는 묘한 대조가 남습니다. 7장에서 본 것처럼, 나치가 ‘전쟁반역자’로 사형시키거나 처벌한 사람의 판결은 2009년까지 자동으로 무효가 되지 않았습니다. 개별 심사를 하자는 이유였습니다. 반면 이미 형성된 무장친위대 관련 수급권을 박탈할 때는 국가가 개인의 구체적인 책임을 입증해야 하고, 기존 급여에 대한 신뢰까지 따져야 합니다.
법적으로는 서로 다른 제도입니다. 그러나 ‘기존 지위를 바꾸려는 쪽이 더 무거운 부담을 진다’는 구조는 같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말한 제도적 히스테리시스가 여기서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금 와서 전수조사를 하면 해결될까
이론적으로는 지금도 더 적극적인 조사가 가능합니다. 과거의 사회보상 급여나 특정 복무 경력 자료를 더 체계적으로 결합하고, 역사위원회를 만들고, 연방의회 자체의 인적 연속성을 조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늦어진 과거 청산에는 특유의 정당성 함정이 생깁니다.
- 조사하지 않으면 “왜 아직도 모르는가? 알고 싶지 않은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 조사하면 “왜 이제야 조사하는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 급여를 박탈하면 “80년 뒤에 기존 권리를 뒤엎는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 박탈하지 않으면 “결국 보호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사견 | 미납 청구서에는 이자가 붙습니다
원래 사건만 처리하면 되던 시기를 지나면, 설명해야 할 것이 점점 늘어납니다. 원래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왜 늦었는지, 그리고 늦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왜 다시 미뤘는지까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정치적 정당성의 비용만 후대 시민에게 상속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세대 간 정당성 부채’라고 불러 볼 수 있겠습니다.
2021~2026년, 과거 청산의 빈칸을 누가 가져가는가
이 대목은 어떤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현상을 해석해 보려는 시도라는 점을 먼저 밝혀 둡니다.
2021년과 2022년,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연방의회 자체의 나치 시대 인적·구조적 연속성을 독립 역사학자 위원회가 조사하자는 안을 제출했습니다. 2023년 1월, 연방의회는 이 안을 AfD를 제외한 모든 정당의 반대로 부결했습니다.⁵⁹
AfD는 이어 동독 SED 체제와 연방의회 사이의 인적·구조적 연속성도 조사하자는 안을 냈고, 2026년에도 같은 주제를 다시 꺼냈습니다.⁶⁰
이 제안들의 동기나 정치적 전략을 순수한 학술적 문제 제기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AfD 정치인들이 독일 기억문화에 대해 해 온 발언과 당의 정치 전략은 따로 분석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방화벽(Brandmauer)의 역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 공백이 있는 의제를 AfD가 먼저 꺼내고 다른 정당들이 일제히 반대하면, AfD는 이를 “기성 정당들은 우리에게 과거사를 가르치면서 자기 과거는 조사하지 않는다”는 서사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이 서사가 사실 전체를 공정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과거 청산의 빈칸 자체가 현재 정치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6장에서 본 ‘나치 몽둥이’라는 말이 오가는 논쟁도 바로 이런 자리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과거 청산을 미루면 과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다른 정치 세력이 그 빈칸을 발견해 자기 언어로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사견 | 위선이 아니라 확신 때문일지도
지금의 독일 엘리트가 과거를 다시 열지 못하는 것이 꼭 위선 때문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관료와 정치인은 개인책임 원칙, 법적 안정성, 행정 비용의 비례성, 사회법과 형법의 분리, 개인정보와 기존 권리를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와서 대규모 조사를 하는 실익이 적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 판단은 하나하나 보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50년의 합리성이 1998년의 입증 문제가 되고, 그것이 다시 2020년대의 “이제 와서 무슨 실익이 있는가”로 이어진다면 어떨까요. 후대 시민에게는 제도가 자기 자신만 끝없이 보호하는 것처럼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특정 정치 세력의 정당성을 자동으로 인정하는 주장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신뢰가 왜 역사적 사실 확인과 이어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문제입니다.
2024~2026년, 동부의 선거
2024년 튀링겐 주의회 선거에서 AfD는 32.8%를 얻었습니다.⁶¹ 2026년 9월 6일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는 잠정 결과 43.8%를 얻어 당 역사상 가장 높은 득표를 기록했습니다.⁶² 같은 달 20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서는 잠정 결과 38.2%로 제1당이 되었습니다.⁶³ 모두 옛 동독 지역입니다.
그러나 이 결과를 “동독 주민들이 1990년대의 청산을 부당하다고 판결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선거는 단일 의제에 대한 국민투표가 아닙니다. 이민, 경제, 연방정부에 대한 불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정책, 지역의 대표성, 사회 변화 같은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합니다.
다만 질문은 남습니다.
1989년에 스스로 독재를 무너뜨리고 1990년에 자유선거를 거쳐 통일을 선택한 지역에서, 왜 수십 년 뒤에도 기존 정치 질서에 대한 강한 불신과 대표성 문제가 이어질까요?
이 질문에 “동독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라고만 답하면, 6장에서 본 1990년 이후의 엘리트 교체와 비대칭적 제도 통합을 지워 버립니다. 반대로 모든 현재 정치 현상을 1990년의 상처 하나로 설명하면, 오늘의 구체적인 정치·경제적 원인을 지워 버립니다. 둘 다 부족합니다.
2026년, 노동력이라는 숙제
현대 독일의 이민·노동 정책을 과거 청산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묶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현재 정치에서 대규모 이민 축소를 주장한다면, 독일의 인구 구조와 노동시장 때문에 따로 치러야 할 정책 비용이 생긴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2026년 독일 연방고용청은 2024년 이후 고용 증가를 외국 국적 노동자가 떠받치고 있으며, 인구 고령화로 독일 국적 및 유럽연합 노동자의 공급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25년에는 157개 직종에서 전문 인력 부족이 확인됐습니다.⁶⁴
그러니 이민을 크게 줄이는 정책을 택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 자동화, 여성과 고령층 등 국내 노동 참여 확대, 노동시간 조정, 은퇴 연령, 출산율과 인구 정책, 선별적 노동 이민 가운데 무엇을 얼마나 쓸지 답해야 합니다.
사견 | “좋다, 그다음은?”
정치는 “지금 싫은 것을 없앤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진짜 어려운 질문은 늘 그다음입니다. “좋다. 그러고 나서 국가는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
이 질문을 건너뛴 결정이 훗날 또 하나의 ‘당시에는 이해할 만했던 선택’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이 지금까지 따라온 수많은 결정들처럼 말입니다.
사견 | 지연(Verspätung)
앞선 내용을 읽은 한 독자가 이렇게 평했습니다.
“가해자들은 죄책감 없이 늙어 죽었고, 관료들은 연금을 챙겨 명예롭게 은퇴했으며, 과거청산의 담론은 낡은 교과서 속 박제가 되었고, 극우의 독기는 사회 일부에 흙탕물 얼룩처럼 묻어 있는데, 정작 시민들이 마주한 오늘의 현실은 추운 승강장에서 하염없이 전광판의 빨간색 ‘지연(Verspätung)’ 글자만 쳐다보는 무기력함.”
이 문장을 역사적 사실의 요약으로 쓰면 과장입니다. 모든 가해자가 죄책감 없이 죽은 것도 아니고, 과거 청산이 교과서 속에 완전히 박제된 것도 아닙니다. 독일은 오늘도 상당한 제도적 자원을 나치 시대의 기억에 씁니다.
그러나 비유로 읽으면 중요한 시간차가 보입니다. 책임이 가장 생생하던 시대에는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기억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을 때는 당사자 상당수가 이미 늙었거나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 기억문화를 배우며 자란 후대는 이제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물려받은 지금의 국가는 잘 작동하는가?”
여기서 철도 전광판의 ‘지연’은 “나치 청산에 실패해서 독일 철도가 늦는다”는 인과관계가 아닙니다. 과거 청산의 ‘지연’과 지금 시민이 느끼는 국가 기능의 ‘지연’을 포개 놓은 것입니다.
기억문화의 목적이 단순히 후손에게 죄책감을 물려주는 것이라면 오래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 목적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그 공화국은 과거를 기억할 뿐 아니라 지금도 공정하고 유능하게 느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대 시민에게 이런 감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저지른 세대는 충분히 책임지지 않았다. 나는 그 교훈을 계속 배우고 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지금의 제도는 내 문제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감정이 특정 정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결론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문화의 도덕적 권위와 지금의 국가에 대한 생활 속 신뢰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 * *
주
⁵⁵ 독일 연방의회, 「„Asoziale“ und „Berufsverbrecher“ sollen als NS-Opfer anerkannt werden」, 2020년 2월 13일. [Bundestag](https://www.bundestag.de/webarchiv/textarchiv/2020/kw07-de-ns-verfolgte-680750)
⁵⁶ 독일 연방의회, Drucksache 20/14648, 2025년 1월 20일. 무장친위대 복무 경력의 가상 추후보험과 통계 자료 문제에 대한 정부 답변. [Bundestag](https://dserver.bundestag.de/btd/20/146/2014648.pdf)
⁵⁷ 독일 연방의회, 「Stopp von Kriegsopferleistungen an Waffen-SS-Freiwillige erörtert」, 2021년 1월 25일. [Bundestag](https://www.bundestag.de/dokumente/textarchiv/2021/kw04-pa-arbeit-soziales-kriegsopferleistungen-814968)
⁵⁸ 연방법무부/연방사법청, 「SGB XIV § 22」. [Gesetze im Internet](https://www.gesetze-im-internet.de/sgb_14/__22.html)
⁵⁹ 독일 연방의회, 「AfD: NS-Vergangenheit von Abgeordneten untersuchen」, 2022년 12월 15일; 「Abschließende Beratungen ohne Aussprache」, 2023년 1월 26일. [Bundestag 1](https://www.bundestag.de/presse/hib/kurzmeldungen-926896) · [Bundestag 2](https://www.bundestag.de/dokumente/textarchiv/2023/kw04-de-abschliessende-beratungen-930060)
⁶⁰ 독일 연방의회, 「AfD: Verbindungen von SED-Diktatur und Bundestag untersuchen」, 2023년 6월 14일; 「Untersuchung von Kontinuitäten des SED-Regimes im Bundestag」, 2026년 7월 9일. [Bundestag 1](https://www.bundestag.de/presse/hib/kurzmeldungen-952888) · [Bundestag 2](https://www.bundestag.de/presse/hib/kurzmeldungen-1194476)
⁶¹ 튀링겐 주의회, 「FAQ Wahlen」, 2024년 9월 4일. [Thüringer Landtag](https://www.thueringer-landtag.de/mitgestalten/wahlen/faq-wahlen/)
⁶² bpb, 「Landtagswahl in Sachsen-Anhalt 2026: AfD stärkste Kraft」. 잠정 결과 기준 43.8%. [bpb](https://www.bpb.de/kurz-knapp/hintergrund-aktuell/581006/landtagswahl-in-sachsen-anhalt-2026-afd-staerkste-kraft/)
⁶³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회, 「Landtagswahl 2026 – vorläufiges amtliches Endergebnis」, 2026년 9월 20일. [Landtag MV](https://www.landtag-mv.de/landtag/rund-um-wahlen/landtagswahl-2026)
⁶⁴ 독일 연방고용청, 「Beschäftigungswachstum wird von ausländischen Arbeitnehmern getragen」, 2026년 7월 14일; 「Fachkräfte bleiben knapp: Zuwanderung gewinnt weiter an Bedeutung」, 2026년 9월 2일. [BA 1](https://www.arbeitsagentur.de/presse/2026-25-beschaeftigungswachstum-wird-von-auslaendischen-arbeitnehmern-getragen) · [BA 2](https://www.arbeitsagentur.de/presse/2026-32-fachkraefte-bleiben-knapp-zuwanderung-gewinnt-weiter-an-bedeutung)
에필로그: 과거 청산의 반대말
80년을 따라왔습니다. 돌아보면 과거 청산의 실패는 꼭 악인들이 회의실에 모여 “가해자를 보호하자”고 합의할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하나는 합리적인 문장들
주로 이런 문장들을 통해 실패가 일어났습니다.
행정을 굴려야 한다. 모든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수는 없다. 개인책임을 존중해야 한다. 연금은 안정되어야 한다. 확정판결을 함부로 뒤집을 수 없다. 시효와 소급처벌 금지를 지켜야 한다. 사회 통합이 필요하다. 냉전 속에서 국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이미 끝난 일을 다시 열어 국내 정치를 흔들 필요가 있는가.
이 문장들은 하나하나 보면 전혀 터무니없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민주적 법치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합리성이 같은 방향으로만 조금씩 작동하면, 수십 년 뒤에는 아주 이상한 풍경이 남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따라온 장면들이 바로 그 풍경입니다.
- 가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기존 급여에는 강한 신뢰 보호가 붙습니다(3장, 6장, 8장).
- 나치가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은 새 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립니다(3장, 7장, 8장).
- 구체제의 전문가는 새 민주국가의 정상적인 관료가 됩니다(2장, 4장).
- 그 관료가 만든 판례와 법 해석은 다시 법적 안정성을 얻습니다(4장, 7장).
- 기록을 여는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현재의 정치’를 건드리는 일이 됩니다(5장).
- 결국 뒤늦게 과거를 파헤치는 사람이 오히려 사회 안정을 깨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5장).
몰랐다, 알았다, 의도했다
이런 사례들을 모아 놓으면, 마치 특정한 역사적 계보에 일관되게 우호적인 ‘방향성’이 있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전후 독일 법질서는 의도적으로 나치 계보를 보호했다”고 표현하면 증거보다 훨씬 멀리 나갑니다.
이 글에서 본 사건들은 모두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법 영역의 일이었습니다. 1952년의 SRP 해산이 보여 주듯, 신생 민주주의는 결단할 수 있을 때는 결단하기도 했습니다.
더 적절한 표현은 아마 ‘비대칭적인 시행착오’ 또는 ‘경로의존적 비대칭’일 것입니다. 초기의 정치적 선택 하나가 권리와 경력, 판례와 행정 관행으로 굳어집니다. 그다음에는 법적 안정성, 신뢰 보호, 개인책임 원칙, 입증책임 같은 평범한 법치주의 원칙들이 그것을 보호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면 바꾸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그러나 하이드리히 사건처럼 문제를 알고도 기존 원칙을 다시 선택한 순간부터는, 단순한 무의식적 관성이라고만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 문장을 구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1. 그 결과를 몰랐다.
2. 그 결과를 알았지만 다른 원칙을 우선했다.
3. 바로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원칙을 골랐다.
역사 자료가 3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2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은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라는 질문
이 질문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전후 서독 시민 상당수는 실제로 탈나치화를 끝내고, 옛 공직자들을 사회에 다시 받아들이고, 전쟁과 과거 이야기를 그만하고, 경제를 재건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민주정부가 그 요구를 반영한 것 자체는 민주주의가 작동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후대가 “왜 그들은 우리 기준대로 행동하지 않았나?”라고 묻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이 아닙니다. 전후 독일이 만든 것은 자유민주적 헌정국가였습니다. 다수가 원하더라도 기본권, 법 앞의 평등, 소수자 보호, 독립된 재판 같은 원칙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점은, 당시에도 다른 길을 주장한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프리츠 바우어, 사회민주당의 법률가 아돌프 아른트(Adolf Arndt), 4장에서 본 대안 초안의 젊은 형법학자들 같은 사람들은 같은 시대의 제약 속에서 더 적극적인 법적·역사적 책임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바꾸는 편이 낫습니다.
민주국가는 자기 시민 상당수가 과거를 그만 묻고 싶어 할 때, 그 뜻을 어디까지 존중하고 어디서부터 거부해야 할까요?
그리고 초기 서독을 평가할 때 가장 공정한 질문은 후대의 완벽한 기준을 들이미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당시 실제로 제시된 대안 가운데 무엇을 골랐고 무엇을 고르지 않았는가, 이것이 더 공정한 질문입니다.
그때도 가능했던 다른 순서
완벽한 정답은 없습니다. 1945년의 독일은 폐허였습니다. 수백만 명의 난민과 귀환병이 있었고, 냉전이 시작됐으며, 국가를 실제로 운영할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나치당 가입이나 공직 경력만으로 평생 사회 밖에 내쫓는 집단 책임 방식도 민주적 법치주의와 양립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당시에 상상할 수 있었던 다른 순서는 있었습니다.
1. 형사처벌과 공직 재임용을 구별합니다. 어떤 판사를 살인이나 법왜곡으로 감옥에 보내려면 높은 증명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형사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다”와 “그러므로 그 사람을 다시 민주국가의 판사·검사·경찰 간부·법무부 고위 관료로 임명해야 한다”는 전혀 다른 명제입니다. 공권력을 다시 맡길 사람의 적격성 심사는 형사처벌보다 엄격하게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2. 피해자 복권에서는 국가가 더 많은 입증 부담을 집니다. 가해자를 처벌할 때는 개인책임 원칙을 철저히 지키되, 나치가 만든 피해자 낙인을 지울 때는 “당신이 무고했다는 것을 증명하시오”보다 “국가는 이 범주의 판결과 박해를 더 이상 정당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를 먼저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3. 대량 범죄를 우연한 개별 고소에 맡기지 않습니다. 1958년 루트비히스부르크 중앙사무소와 프리츠 바우어의 작업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국가 범죄 수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4. 기록을 가능한 한 일찍 엽니다. 베를린 문서센터가 보여 주듯, 시간이 흐를수록 기록은 더 민감해집니다. 인물이 공직에서 경력을 쌓고, 가족과 조직과 정당의 역사에 들어가고, 개인정보와 명예의 문제가 겹칠수록 사실 확인 자체가 현재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건드리게 됩니다.
5. ‘과거 청산 완료’라는 도장을 찍지 않습니다. 아도르노의 문제의식과 가장 가까운 대목입니다. 과거를 청산한다는 것은 장부를 덮는 일이 아닙니다. 새 자료가 나오면 다시 보고,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집단을 다시 보고, 옛 판례와 조직의 역사를 다시 보고, 심지어 ‘우리는 과거 청산을 잘했다’는 자기 신화까지 다시 검토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피해 집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일, 독립적인 역사 연구를 지원하는 일을 더할 수 있겠습니다.
국가는 양심을 만들 수 없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가장 짧게 줄이면 이 문장이 될 것 같습니다.
모두를 처벌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한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공적 인식은 더 일찍 만들어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더 어려운 질문이 따라옵니다. 그 인식은 누가 주어야 했을까요? 국가가 사람에게 죄책감을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법원이 모든 역사적 책임을 형사책임으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학교가 특정한 감정을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양심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양심이 질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앞의 다섯 가지 순서는 시민에게 “죄책감을 가져라”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이렇게 약속하는 것입니다.
“사실을 알고 판단할 수 있는 문은 닫지 않겠다.”
설명되지 않은 정상성
프롤로그에서 우리는 과거 청산을 ‘과거가 아무 설명 없이 현재의 정상이 되는 것을 막는 일’이라고 정리했습니다. 80년을 지나온 지금, 한 문장을 더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청산은 과거의 모든 사람을 처벌하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된 행동이 정상적인 행동이었다는 사회의 자기 설명이 다음 세대의 기본값이 되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늦추면 문제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과거를 조사할 것인지, 기존 권리를 건드릴 것인지, 기억문화를 어떻게 말할 것인지, 지금의 극우 정치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까지 모두 현재 정치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가장 씁쓸한 결론은 아마 이것입니다. 과거의 정치적 타협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안정과 정상성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결하지 않은 책임의 비용까지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그 비용은 형태를 바꾸어 후대에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도르노가 1959년에 과거 청산이라는 말을 의심스럽게 바라본 이유도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이제 충분히 반성했으니 끝내자”는 식의 청산이었습니다.⁶⁵
어쩌면 과거 청산에서 가장 위험한 단어는 ‘완료’일지도 모릅니다. 과거는 끝나지만, 과거가 만든 사람과 법, 재산과 조직, 경력과 기억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민주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거를 완전히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어디서 왔는지를 계속 설명할 수 있는 상태를 지키는 것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과거 청산의 반대말은 단순한 ‘망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설명되지 않은 정상성.
그것이 더 위험한 반대말일지도 모릅니다.
* * *
주
⁶⁵ 앞의 주 1과 같은 자료. [bpb](https://www.bpb.de/shop/zeitschriften/apuz/archiv/537192/was-bedeutet-aufarbeitung-der-vergangenheit-kann-man-aus-der-vergangenheitsbewaeltigung-nach-1945-fuer-die-aufarbeitung-nach-1989-lehren-ziehen/)
첫댓글 본문에 68혁명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건 68혁명 참가자인 철학자 비르거 프리다트의 말을 대신합니다.
옛 68운동 지도자들과 만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제 그런 모임은 없어요. 어쩌다 만나면 레드와인 두 병쯤 비우고 옛날 이야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기억해요. '세상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남은 건 그 정도입니다."
디스토모 학살 자체가 2012년 ICJ 판결(독일 v. 이탈리아)에서 주요 쟁점이었는데 결국 결론은 이미 쓰신 것처럼 “국가의 행위는 사법판결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즉 state immunity의 유지였죠.
이 법리는 결국 우리 대법원의 미쓰비시 강제징용 판결과 뒤이은 2018-2023년의 한일 갈등의 핵심과 상통하는 것이고… 결국 그 한일갈등의 결말도 제3자 변제라는 애매모호한 타협이었던 걸 생각하면, 많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