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압박해 만든 '고금리 청년도약계좌'
11개 은행, 기본금리 年 3.8~4.5%로 최종 확정
정부 입김에 기본금리 올리고 우대조건 완화
최고 年 6%로 통일…은행들 수천억 손실 전망
11개 은행이 14일 청년도약계좌의 확정금리를 공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청년층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 15일 은행이 출시하는 ‘청년도약계좌’의 금리가 최고 연 6%로 확정됐다.
해당 상품을 내놓는 11개 은행 모두 최고 금리를 동일하게 책정했다. 앞서 은행이 공시한 금리와 비교해 기본금리는 1%포인트가량 오른 반면 우대금리는 내려갔다.
청년도약계좌 상품을 출시하는 11개 은행은 14일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확정 금리를 공시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과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기본금리는 연 4.5%로 같았다.
부산 대구 경남 광주 전북 등 5대 지방은행의 기본금리는 연 3.8~4.0%로 소폭 낮았지만 소득 조건(연 소득 2400만원 이하 우대금리 0.5%포인트)과 거래 실적 등 은행별 우대금리를 더하면 11개 은행 모두 최고금리는 연 6.0%로 같다.
청년도약계좌는 만 19~34세 청년이 매달 70만원 한도로 적금하면 정부가 은행 이자에 더해 월 최대 2만4000원의 ‘기여금’을 보태 5년 뒤 최대 5000만원을 모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조건을 맞추려면 금리가 연 6%는 돼야 하지만 지난 8일 사전 공시 당시 기업은행(연 4.5%)을 제외한 10개 은행은 기본금리를 연 3.5%로 제시했다.
금융당국이 금리 재검토를 요구하자 11개 은행은 출시를 하루 앞둔 이날 확정 금리를 다시 공시했다. 은행들이 입을 맞춘 듯 같은 금리를 책정한 것을 놓고 ‘관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은행은 청년도약계좌 금리가 시장금리보다 상당히 높아 팔수록 손해를 볼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정부가 예상한 가입자 수와 은행의 평균 손익분기점 등을 고려해 11개 은행의 손실 규모를 추산한 결과 고정금리가 이어지는 3년 동안 은행권의 전체 손실액이 4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낮다며 은행장 소집해 으름장…고객 예금으로 생색내는 정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청년층의 자산 형성을 목표로 15일 출시되는 ‘청년도약계좌’가 관치 논란에 휩싸였다. 연 3% 후반 수준인 은행 예·적금보다 높은 최고 연 6% 이자를 주는 정책금융상품인데도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대신 은행이 사실상 손실을 떠안도록 압박하면서다. 은행권이 입을 맞춘 듯 최고금리(연 6%)를 동일하게 정한 것을 놓고 정부가 ‘금리 담합’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국 “금리 연 4.5% 맞춰라” 압박
청년도약계좌를 취급하는 11개 은행은 지난 8일 1차 사전공시를 통해 기본금리와 소득·은행별 우대금리를 발표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연 4.5%)을 제외한 10개 은행이 기본금리를 모두 연 3.5%로 책정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은 우대금리 연 2%와 소득 우대금리 연 0.5%를 일괄 공시했다.
사전공시 직후 금융당국은 기본금리가 낮고 우대금리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며 은행권을 압박했다. 최고금리는 연 6%로 당국의 목표치와 같지만 급여 이체나 카드 실적 등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실제 적용되는 금리는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금융위원회는 “우대금리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항목이 복잡해 재조율이 필요하다”며 최종 공시일을 14일로 늦추도록 했다.
최종 금리 공시를 앞두고 당국과 은행권은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당국은 12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청년도약계좌 협약식 및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금융위 관계자들은 은행 측에 “우대금리 조건이 까다롭고 비현실적이라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은행들이 역마진을 우려해 금리 조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금융위는 13일 오후 청년도약계좌 참여 은행의 부행장급 임원들을 긴급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당국은 “지난해 최대 실적을 거둔 은행권이 사회공헌에 적극 나서고 있지 않다”고 불만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금리 인상 등 부작용 우려도
청년도약계좌에 따른 은행 손실은 보수적인 가정에서도 향후 3년간 2000억~41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정부가 올해 청년도약계좌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편성한 예산 3678억원과 정부가 예상한 가입자 수 306만 명을 토대로 추산한 결과다. 은행의 손익분기점은 한국은행이 집계한 4월 은행 대출 평균금리(5.01%)로 설정했다.
향후 기준금리가 내려가 역마진 규모가 확대되거나 청년 1인당 가입금액이 예상을 웃돌 경우 은행의 손실은 더 불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밝힌 예상 가입자 수와 올해 예산 편성액을 따져보면 정부는 청년들이 평균적으로 월 25만원씩 청년도약계좌에 납입한다고 가정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월 최대 납입한도가 70만원인 만큼 정부 가정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란 시각도 있다.
정부의 무리한 청년도약계좌 정책으로 대출금리가 오르는 등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경영관리 담당 부행장은 “5대 은행을 중심으로 청년도약계좌 가입자 쏠림현상이 나타날 경우 은행에 따라 수천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대출금리를 인상하는 등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청년의 자산 형성을 위해 정부가 청년도약계좌와 같은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물가 시대에 사회 안정을 도모하고 청년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선 찬성한다”면서 “은행의 부담이 과도하게 커지면 정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금융회사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진/김보형/이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