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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찾아 50km 산길 운전”… 젊은 부부들 떠난다
[‘지방 소멸’ 위기 극복]
작년 32명 출생 경북 영양군 르포
지방소멸 막는 ‘임팩트 금융’ 주목
9일 경북 영양군 화천2리의 빈집에 베개와 이불 등 생활용품이 흩어져 있다. 최근 10년간 이곳에는 약 20채의 빈집이 생겼다. 영양=전영한 기자
아이가 아프면 1시간 동안 험한 산길을 운전해야 한다. 소아청소년과가 문을 닫기 전 도착하려면 늦어도 오후 5시에는 직장에 양해를 구한다.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서 네 살 딸과 두 살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김민주 씨(41)가 아픈 아이를 안고 50여 km 떨어진 안동시까지 가는 건 늘 쉽지 않은 일이다. 영양에는 소아과 병원이 한 곳도 없다.
재작년 겨울, 생후 3개월이던 둘째 아이가 폐렴을 앓았을 때도 김 씨는 아이를 안고 어두운 산길을 운전했다. 한겨울 응급실 문 밖에서 아들의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김 씨는 이사를 고민했다. 그는 “영양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한 번쯤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걸 생각해봤을 것”이라고 했다.
영양은 소멸하고 있다. 지난해 이곳에서 태어난 출생아는 32명으로 사망자(295명)의 9분의 1에 불과했다. 1970년대 7만 명에 육박했던 영양군 인구는 지난달 1만6000명 밑으로 쪼그라들었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도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나섰다. 특히 시중 은행들은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돌봄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다.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임팩트 금융’이 한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영양군 주민 87% “인구 늘수 있다면 기피시설 유치도 환영”
“소아과 찾아 50km 운전”
면적은 서울 1.3배… 4차로 하나 없어
“인프라 부족-인구감소 악순환 빠져
1200명 살던 ‘대티골’, 이젠 54명 뿐”
2019년 폐교된 경북 영양군 영양중학교 입암분교에 교훈 등을 적은 액자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1963년 문을 연 이 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2019년 폐교될 때까지 약 5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폐교 후 임시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영양=전영한 기자
9일 찾은 영양군 곳곳에선 소멸의 흔적이 엿보였다. 대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3시간여를 이동해 도착한 시외버스 정류장 주변은 운영 중인 상점보다 빈 곳이 더 많았다. 슈퍼마켓, 보일러 수리점, 한약방 등 일상생활에 밀접한 점포들도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이곳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산골마을 화천2리는 소멸 징후가 더 뚜렷했다. 길을 따라 듬성듬성 놓인 집들은 한 집 건너 한 집이 비어 있었다.
혼자 지내는 노인이 사망하거나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집만 남겨진다.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고 문에 발라둔 창호지가 뜯겨 집 내부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전기요금 고지서와 옷가지, 깨진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2020년 기준 화천2리에는 주민등록상 129명이 거주 중이지만 실거주자 수는 약 80명에 그친다. 화천2리에서 가장 젊다는 황영삼 이장(58)은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그대로 둔 채 요양병원에 가 계신 어르신이 많다. 최근 10년간 새로 생긴 빈집이 20곳은 된다”고 했다.
지난해 3월 기준 영양의 ‘소멸위험지수’는 0.14로 전국 13위다. 노인 100명당 20∼39세 여성이 14명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영양군청 관계자는 “인구가 줄어드니 의료·교육 등 인프라가 사라지고, 인프라 부족으로 사람이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 1200명이던 광산촌 인구 54명으로 급감
과거 영양은 광산업 특수를 누렸다. 군내 용화2리 광산촌은 ‘사람이 많고 큰 골짜기’라는 뜻으로 ‘대티골’이라고 불렸다. 1970년대에는 대티골 인구만 1200명으로 광산 일대에 약 1만 명이 모여 살았다.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이 금, 은, 아연 채굴이 이뤄지던 광산으로 몰려들었다. 1940년대 발전소가 만들어져 경북 지역 중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왔다. 한 동짜리 초등학교 건물에 학생만 150명이 넘던 시절이었다.
광산 기술자인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나 평생 용화2리에서 산 김승규 씨(76)는 “사람이 워낙 많아 30평(약 99㎡) 남짓한 집터에 5가구 20여 명이 모여 살았다”며 “국회의원이 마을에 유세하러 오는 게 예사였고 간이극장이 들어서 영화를 틀어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1976년 폐광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마을은 급속히 쇠락했다. 제련 과정에서 토지가 오염돼 농사를 짓기도 쉽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직업을 찾아 마을을 떠났고, 남아 있던 노인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2020년 기준 용화2리 거주민은 54명이다.
이곳에는 광석 제련소로 쓰이던 15층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만이 번화하던 시절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30여 가구가 길을 따라 30∼100m 간격으로 듬성듬성 자리 잡았다. 과거 1000명이 넘는 주민이 살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산 중턱 곳곳에는 마을 터로 추정되는 평지만 보였다.
● “인구 늘 수 있다면 교정시설도 환영”
영양은 새로운 일자리 유치를 통해 변신을 하려 한다. 하지만 서울 면적의 1.3배인 군내에는 고속도로, 철도는커녕 4차선 도로조차 없다. 교통 인프라가 부실하다 보니 공장이나 물류센터 등이 들어서기 힘든 구조다.
이에 영양군청은 ‘재소자 1000명 규모 교정시설 유치’를 역점 사업으로 제시하고, 1년 넘게 법무부 교정본부에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선 기피시설로 취급되지만 영양에선 ‘인구만 늘 수 있다면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지난해 10월 설문조사에서 영양주민 86.6%가 교정시설 유치에 찬성했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교정시설이 들어오면 교도관 등 직원 500여 명이 영양에 전입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면회객을 대상으로 한 숙박·음식점업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영양군은 귀농 정책도 실시하고 있지만 전망이 밝진 않다. 인근 지역에 비해 의료시설이 부족해 은퇴 귀농인을 영입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영양군청 관계자는 “의료, 문화시설이 부족한 영양에 귀농인을 불러들이려면 다른 지자체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지역 예산만으로는 쉽지 않다”며 “영양에 정착한 귀농인이 다른 지역으로 갈까 봐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양=조응형 기자
소멸위기 농촌에 年매출 20억 스마트팜… 일자리 생기며 활기
[‘지방 소멸’ 위기 극복]상생 위한 ‘임팩트 금융’ 〈1〉
농협 컨설팅-저리대출 받은 ‘무주원’, 지역서 13명 고용… 일자리 모델로
초고령 日선 은행이 사회문제 앞장… 농업 자회사 두고 특산품 재배-판매
전북 무주에 자리한 스마트팜 ‘무주원’의 한경훈 대표(앞줄 오른쪽 네번째)와 직원들이 함께 ‘손하트’를 그리며 웃고 있다. 한 대표는 지역사회에서 13명을 고용하는 한편 청년 직원들에게는 사택도 제공하고 있다. 무주=박영철 기자
무주군청이 있는 전북 무주읍에서 차로 30분을 달리자 1만1200m² 면적의 대형 유리온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덕유산 자락인 해발 450m 고지대. 주변의 논에는 벼 그루터기만 남아있었지만 스마트팜 ‘무주원’의 유리온실에는 로메인, 프리라이스, 루콜라, 바질 등 파릇한 채소가 가득했다.
무주 지역사회에서 13명을 고용해 샐러드 재료인 엽채소와 허브류를 생산하는 한경훈 무주원 대표(33)의 고향은 전남 순천시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던 중 수강한 농업경제학 수업이 그를 스마트팜 대표로 이끌었다. 한국보다 먼저 농촌의 위기를 경험한 일본을 보면서 첨단 기술을 적용한 농업으로 농촌을 살려내 보겠다는 ‘청사진’을 그린 것이다.
한 대표는 2018년부터 2년 동안 전북 김제시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스마트팜 청년창업 보육센터 1기생으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이 끝날 무렵 그는 고도가 높아 여름에도 서늘한 무주군에 스마트팜을 짓고 샐러드용 엽채류를 재배하겠다는 계획을 짰다. 하지만 어떻게 수십억 원의 자금을 마련해서 유리온실을 세우고 빠른 시간 안에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등의 세부안은 불투명했다.
이때 길을 열어준 것이 NH농협은행이었다. 2019년 말 한 대표가 NH농협은행 농업금융컨설팅의 문을 두드리면서 1년에 이르는 긴 컨설팅이 시작됐다. 농업경제학 박사 학위를 가진 컨설턴트인 신황호 농업금융부 차장은 매달 한 대표를 만나고 수시로 전화, 이메일 상담을 하면서 재배와 법인 운영 등 두 가지 측면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무주원은 이런 컨설팅을 거쳐 NH농협은행에서 연 1% 금리로 45억 원의 ‘일반 스마트팜 종합자금’ 대출을 받았다. 이 자금으로 작물의 뿌리를 초대형 수조의 양액에 담가서 재배하는 ‘드라이 하이드로포닉스(Dry Hydroponics) 벤치 시스템’이 현실화됐다.
● 맞춤형 컨설팅과 저리 대출로 스마트팜 현실화, 지역 고용으로 화답
스마트농업 솔루션 기업 ‘퍼밋’의 충남 천안 중부지사의 통합관제센터 모습. 퍼밋은 온도, 습도 등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스마트팜 솔루션 등을 제공하며 젊은층이 농업에 뛰어드는 것을 돕고 있다. 천안=김수연 기자
지난해 4월 첫 제품을 출하한 무주원은 벌써 국내 대형마트와 대기업 식품 계열사를 판로로 확보했다. 올해는 20억 원 가까운 매출이 점쳐지며 벌써 지역사회에서 13명을 고용하고 있다. 4명은 30대 청년층, 9명은 50·60대 장년·고령층이다. 관리직으로 일하는 청년층 직원들에게는 인근 아파트에 월세를 내면서 사택도 제공한다. 사택에 살면서 아내와 함께 무주원에서 일하고 있는 재배사 이규철 팀장(30)은 “(무주원은) 안정적인 직장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새로운 농업 창업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일자리”라고 말했다.
무주원은 인구가 2만3700명 수준으로 떨어진 무주군에서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김일중 무주군 기획팀장은 “고랭지 스마트팜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군 차원에서도 청·장년 교육장과 임대농장 사업 등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의 이탈과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1순위 과제로 ‘일자리 창출’이 꼽히고 있는 가운데 무주원은 은행이 농촌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은행의 자금 지원과 컨설팅을 발판 삼아 농촌 지역에 새로운 일터가 둥지를 터 고용이 발생하고, 또 다른 창업의 꿈이 움트는 ‘선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금융 전문가들은 재무적 수익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꾀하는 은행들의 ‘임팩트 금융’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역시 임팩트 금융과 관련한 리포트에서 “금융사는 많은 사회적 문제에 광범위하고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유한 위치에 있다”며 “사회적 기회를 포착하는 은행은 가치 창출과 위험 관리 측면에서 상당한 보상을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이 투자한 스마트농업 솔루션 기업 ‘퍼밋’도 농촌 일자리 확대에 힘을 보탠 ‘임팩트 금융’ 사례다. 2017년 설립된 퍼밋은 스마트팜과 관련한 기술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는 역할을 하는 ‘스마트팜 솔루션 기업’. 스마트팜 시설 구축을 통해 농가 소득을 기존보다 20∼30% 정도 높이는 것이 주요한 목표다. 천안의 중부지사에서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농민들과 스마트 농업 기술을 공유하고 있다.
이현웅 퍼밋 최고운영자(COO)는 “스마트농업의 확산은 자연스레 젊은층에게 농업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퍼밋의 4개 직영 농장 팜 매니저를 지역에서 채용하고 있는데 스마트농업을 배우고 나간 뒤에 창농을 하면서 일자리가 창출되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지주는 퍼밋 설립 초기부터 총 20억 원의 투자를 진행한 바 있다.
● “일본처럼 지방 소멸 막는 ‘임팩트 금융’ 역할 필요”
이미 일본에서는 은행들이 인구 감소나 저성장 같은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임팩트 금융을 실천하고 있다. 미야자키은행의 경우 농장업 자회사인 ‘유메아이팜’을 통해 아보카도 재배에서부터 판매까지 직접 하고 있다. 농촌에 취업하는 취농인(신규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아보카도 재배 노하우를 전수해 수입에 의존하는 고급 야채인 아보카도를 미야자키 특산품으로 자리매김하게끔 일조했다. 또 은행이 중심이 돼 지방 기업이나 농가의 국내외 판로를 개척하는 지역상사 설립에 나서기도 한다.
김혜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 은행들은 고령화와 젊은 인력의 도시 유출 등으로 구인난에 직면한 지방 기업들을 위해 인재 소개업에까지 진출했다”며 “금융이 인구 감소와 저성장 등의 사회 문제 해결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도 최근 ‘고금리 이자장사’로 비판받고 있는 국내 은행들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활동 중에서 특히 사회적 역할에 집중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에서는 지역 은행의 사회공헌 점수를 평가해 점수가 높은 은행들에 점포 확대권을 준다”며 “국내에서도 사회 인프라를 만들거나 취약계층을 돕는 은행에 대해서는 인허가권이나 영업 규제 측면에서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팩트 금융
은행이 자산과 노하우를 활용해 각종 사회 문제 해결 등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일컫는다. 특히 한국과 일본 등에선 은행이 저출산과 지역 소멸 같은 사회문제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무주=김도형 기자, 천안=김수연 기자
“문제는 청년 일자리… 메가시티 중심 경제-생활 협력권 조성 필요”
[‘지방 소멸’ 위기 극복]전문가들 ‘지방 활성화’ 대책
“각 지자체가 모든 기능 갖추는 대신 권역내 지자체별 나눠 가져야”
“지방 소멸 해법은 일자리 문제가 근본이다. 청년들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지역에 생길 수 있도록 공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 중 세종시를 뺀 모든 시도에서 인구가 자연 감소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마땅한 청년 일자리가 없어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협업해 광역 경제·생활권 조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 청년들, 일자리 찾아 수도권으로
차미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이 서울보다 출산율이 높은데도 지방 소멸 현상이 나타나는 건 아이를 많이 낳아도 이들이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떠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해 전남 영광군의 합계출산율은 1.81명으로 서울 전체 평균(0.59명)의 3배가 넘었다. 하지만 영광군은 정부가 2021년에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89곳에 포함됐다.
특히 산업구조 변화로 지방에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게 어려워지면서 청년의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일자리사업평가센터장은 “지역의 제조업 일자리는 쇠퇴하고 새로운 서비스 일자리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생기다 보니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어린이집을 비롯한 돌봄기관이 부족한 점도 청년의 지방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이삼식 인구보건복지협회장(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일본은 지방 산업단지에 아이들을 돌보는 곳과 집, 직장, 시장 사이의 동선을 짧게 만들어 순환형으로 잘 만들어주고 있다”며 “한국은 기업들의 지방 이전을 말할 때도 여전히 공장, 부지 등 하드웨어 요소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 거점 선도 도시 통해 산업 생태계 구축
전문가들은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선 각 지자체가 일자리, 보육 등의 기능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메가시티(초광역도시)를 중심으로 경제협력권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 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 인구를 데려왔다는 건 그 주변 지역에서는 빠져나갔다는 뜻”이라며 “지역을 권역으로 놓고 각각의 지자체가 갖고 있는 기능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연간 출생아 수는 2002년부터 40만 명대로 내려앉았고, 지난해에는 24만9000명까지 줄었다. 이들이 취업 연령층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청년 수가 부족해 한 지자체가 모든 기능을 갖추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 교수는 “메가시티를 만들어 지자체 간 협업의 틀을 만들고 광역 교통망을 제대로 구축해 이를 중심으로 혁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들의 협업을 통해 수도권과 맞먹는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단일 생활권이나 경제권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평가센터장은 “각 사업을 지자체들이 각각 하는 게 아니라 권역화해서 국토의 종합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설계도를 그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달라진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 저출산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교수는 “결혼을 늦게 하고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 난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난자 냉동시술을 국가가 지원해주는 방안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첫아이를 낳은 산모의 평균 연령은 33세로 2017년(31.6세)보다 1.4세 높아졌다.
세종=최혜령 기자, 세종=박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