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타클라마칸의 요기 쑹타
걸음을 떼려는 쑹타에게 눅따르가 한 마디를 보탰다. 하루 정도를 가면 '치탈' 언덕에 치탈 곰빠가 있으며 그곳에는 매우 수승한 라마가 수행중인데 만나보면 큰 도움이 될거라고 했다. 아이들은 아침 빛을 맞은 잠자리처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두리번 거렸으며 눅따르의 부인은 야크와 양고기를 가지고 나왔다. 밤사이 일어난 꽃은 이슬을 털어내고 고원 뱁새들은 막 여물기 시작한 풀씨를 따라다니느라 분주했다. 지루한 길은 처음과 끝을 잃어버린 채 눈 앞에서 혼란했으나 그것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평원은 부풀려진 허파처럼 사방의 공기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으며 작은 도랑을 흐르는 물은 똑 같은 말을 쉬지않고 재잘거렸다. 이런 평원에서 마주오는 사람과 만나는 것은 때로 행운일 수도 있지만 참기 힘든 불안함이나 두려움일 수도 있었다. 해가 머리 위로 올라오자 고원은 눈 안에 모두 넣을 정도로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참기 힘든 고요함과 그것을 능가하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었다. 쑹타는 이런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그것을 몰랐을 때보다도 더 큰 불행이나 고통을 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았을 때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말 발굽으로 찍어놓은 흔적은 상단이 간 방향을 가늠케 하며 풀들이 기울어진 곳으로 바람이 지나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저 산 봉오리들은 쌓인 눈덩어리의 크기에 따라 높낮이를 잴 수 있다.'
가물거리는 공기덩어리가 점점 커지더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을 맞아 깨져 사방으로 버려졌다. 어지러운 기운이 느껴져 잠깐 걸음을 멈추자 이번에는 하늘과 땅이 뒤바뀌어 앞에 드러났다. 이미 고원에 적응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쑹타는 타클라마칸의 기운을 모두 버리지 못했다. 쑹타는 잠깐 앉아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닥에 앉았다. 느슨해진 손에 힘을 줘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로 그때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누군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걸 봤다. 점점 커지는 거로 봐서는 말을 타고 달리는 속도가 꽤 있었다.
"어디로 가는 중이오?"
"띠셰로 가는 중입니다."
검고 번들거리는 살가죽에 붉은색 실을 꼬아 얹은 머리는 마치 말의 갈기처럼 억셌다. 흰자위에서 굴러다니는 검은 눈동자는 의심과 증오, 그리고 분노를 각각 균등하게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외양적으로 나타난 것을 쑹타가 짐작한 것이었으니 실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팔뚝의 근육은 안쪽으로 뒤틀려 질긴 향목의 뿌리와 같았다. 그는 말 위에서 바닥에 앉아 있는 쑹타에게 엄중하게 물었다. 그도 쑹타가 이곳 창탕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호탄이나 이에칭에서 온 사람 같은데 띠셰에는 왜 가는 거요?"
남자는 매우 흥미로운 듯 말에서 내렸다. 말 안장 뒤에는 양가죽으로 싼 물건이 실려 있는데 겉으로 봐서도 상당히 무거워 보였다. 쑹타가 말에 실려있는 물건을 쳐다보자 남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말을 끌고 몇 걸음 앞으로 멀찍이 가서 매 놓고 다시 쑹타에게 왔다. 마치 쑹타가 그 물건을 알아서도, 그리고 봐서도 안된다는 듯 그의 불안한 눈빛과 긴장된 얼굴의 근육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스승의 뜻에 따르는 중입니다."
"스승?"
"그렇습니다."
남자는 스승이라는 말을 듣고는 처음과는 다르게 쑹타를 쳐다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도 사람들이 띠셰에 가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쑹타가 자신을 소개하자 남자도 그에 호응했다. 남자의 이름은 '닛따르'로 이곳에서 멀지 않은 '바르타' 설산 밑에서 야크와 양을 기르는 사람이었다. 닛따르는 사막에 사는 사람이 띠셰에 간다는 것에 놀라고 다음으로는 쑹타가 비범한 생각을 가진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닛따르는 마른 향목의 가지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냈다. 닛따르는 마치 믿을만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얘기하고 싶은 분위기를 그려냈다. 구름을 빠져나온 해는 그림자를 더 진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당신은 나를 만났을 때부터 저 말등에 얹힌 보따리를 유심히 봤는데 그것이 뭔지 왜 물어보지 않았소?"
"의심이 들었지만 물어보는 게 두려웠습니다."
"그렇군."
"지금은 호기심이 사라졌습니다."
"죽은 내 친구요."
이번에 쑹타는 분명 놀랐다. 매우 비정한 표정으로 침착하게 얘기하는 닛따르의 목소리와 태도에 놀란 것이다. 매어놓은 말이 조금씩 몸을 뒤틀자 등에 얹은 짐이 기우뚱 거리면서 곧 바닥으로 떨어질 듯 위태로웠다. 닛따르는 말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불안한 듯 일어나 말에게 다가가서는 시체를 묶어놓은 끈을 단단하게 조였다. 만약 쑹타가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싶다고 한다면 당장이라도 보여줄 듯 끈을 다시 묶으면서도 힐끔힐끔 쑹타를 쳐다봤다. 사실 쑹타는 말에 시신이 매달려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왜 닛따르가 친구의 시신을 말에 매달고 어디론가 가고 있느냐가 궁금했다.
"나는 까르마를 믿지만 그걸 막을 수 있다는 말은 의심중이오."
"무슨 말입니까?"
"죽은 친구 때문이지."
닛따르는 도랑을 거니는 물고기를 본 듯 쑹타의 얼굴에 나타난 신심을 간파하고 입을 열었다. 하늘과 땅은 늘 인간의 편에 서려 하지만 실상 그것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땅에는 풀과 나무와 사람을 포함한 온갖 생명체가 함께 있으며 하늘은 또한 밤과 낮을 교대로 땅에 내려놓으면서 어느 하나만을 특별히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닛따르가 마른 향목가지를 쥐고 있던 손에 잔뜩 힘을 주자 그렇게 질겨보이던 가지가 뚝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쑹타는 처음으로 닛따르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닛따르는 얘기의 결말이 어떻게 날 지 모르지만 쑹타에게 죽은 친구의 사연을 말해야만 한다는 결심이 확고했다. 닛따르의 명령에 기가 죽었는지 말은 꼿꼿한 자세로 되새김질만 했다.
"친구의 이름은 '따취르'요. 우리는 한 동네에서 태어났으며 이후로 성년이 될 때까지 함께 자랐지. 바르타 설산을 오가며 함께 야크와 양을 몰았으며 돌 틈바구니를 뒤지면서 같이 딴 버섯을 공평하게 나눴소. 바르타 곰빠에 가서 수좌의 법을 들을 때는 함께 감격했으며 늙은 들개가 굶주려 쓰러지려 하면 또한 동시에 야크고기를 던져주면서 생명에 대한 경전의 말씀을 빈틈없이 실천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