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 오 지 마 [1]
그 날은 정말 미친 듯이 하늘 위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 이런 날이 오면 내 가슴속에서 뭔가가 짓누르는 것 같아 난 이런 날에는 집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그 녀석이 부르기에 이렇게 또 난 그의 강아지마냥 부르면 달려가는......
난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마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듯.
난 어느새 진우란 존재의 틀 안에서 허우적대고만 있었다.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지만 너무나 잘 알지만.
난 이미 그의 수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만 있었다.
아니 나오면 나오려고 할수록 더 깊이 빠지고 있었다.
그가 날 부른 놀이터 앞엔 정말 한없이 우울해 보이는 회색 우산을 쓰고 우두커니 진우가
어두운 표정을 하고선 서 있다.
난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조금 씩 조금 씩 내 발은 그를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진우야...... 무슨 일이야.]
[리안아. 나 너한테 할 말 있다.]
[무, 무슨 말?]
순간 내 등 쪽으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건,
아마 진우의 이어질 다음 말이 어느 정도 예상되었기 때문일까.
그 날은 정말 비가 많이 쏟아졌지만, 그 빗속으로 진우의 어두운 얼굴이 또렷하게......너무
도 또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리안아. 우리 안 될 것 같다.]
[진......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안될 것 같다니!]
[우리는 안 맞는 것 같아.]
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항상 그 만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고......
그랬기 때문에 그에게 난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충실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충실함은 내 생각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던 것 같다.
[역시...... 내가 못 배워서 니 수준에 맞질 않아서 그런 거니?]
[리안아... 그게 아니야.]
.....................
...........................
#며칠 전... 진우의 20번째 생일파티.
진우는 한 카페를 빌려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 곳엔 진우의 의대 동기들과 그들의 연인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고, 이런 거에 기죽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 나는 그 들 앞에서 당당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상했던 순서가 다가왔다. 진우가 날 친구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시간.
[서진우. 여자친구도 딱 니 스타일인데? 역시 완벽주의자 서진우 다워.]
순간 난 평소엔 볼 수 없었던 진우의 난감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녀석의 친구가 말했듯이, 진우는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렸다. 그의 주변배경들.
그의 뛰어난 학벌. 하지만, 지금 난 그의 완벽한 인생서류에 오점을 남기고 있었다.
차라리...... 그래 내가 나서서 말해버리자 하고 내가 입을 열려 하자,
[아, 얘 유학파야. 지금은 휴학 중이고......]
[역시 서진우 다운데? 유학파라...... 혹시 미국 쪽이신가요?]
순간 내가 고등학교도 못 나오고 중퇴를 했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지만 진우의 얼굴을 본 순간 말할 수 없었다.
나...... 이력서100통을 넣어 한 군데서도 연락오지 않아도 이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았는
데......
어쩌다 연락이 오면 면접 원들 앞에서 중퇴라고 떳떳이 말하고 면접 원들의 얼굴이 구겨져
도 한 번도 내 결정에 후회한 적 없었는데......
그 순간은......
내가 한없이 작아 보였다.
역시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잠시 내가 조금이나마 사람에 가까워 지고 있다는 사실
이 기분 좋게 하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
.........................
[진우야...... 결국 그거였구나. 그랬어.]
[리안아. 미안해.]
[미안하다고 말할 것 없어. 일류 의대생하고 어디 고등학고 중퇴자가 말이 돼? 내가 문제였
겠지. 진우야. 미안할 것 없어. 그럼 할 말 다 끝났지? 나 이만 간다......]
[리, 리안아......]
난 진우의 뒷모습을 볼 수가 없어 내가 먼저 돌아섰다.
어떤 노래에서 그랬었다. 햇빛 쨍쨍한 날의 이별보다 비오는 날의 이별이 더 좋다고.
지금은...... 그 말에 너무나 동감한다.
지금 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내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들이 감춰질 수 있으니까.
비오는 질퍽이는 길을 걸으면서도 내 눈은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 비처럼......
평소엔 잘도 들리던 음반가게의 음악 소리가 오늘은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아니 그걸 들을 머릿속의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지금 내 머리엔 쉴 새 없는 눈물을 지어 내느라 바쁘기 때문일까.
이젠 내 왼쪽 손에 쥐여진 우산마저 힘없이 놓아 버렸다.
내 앞머리를 타고 빗방울이 내 콧등을 간질인다.
콧등을 지나 입술을 지나 턱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느껴진다.
내 발은 어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어느 골목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직도 그치지 않은 비.
저 쪽 가로등 불빛 아래 하늘색 우산과 웅성대는 아이들 몇 명이 어른거리는 내 눈에 띄었
다. 난 그 들을 개의치 않고 걷고 있었다.
[거기.]
얼핏 보아도 고등학생으로만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껌을 짝짝 씹어대면서 날 부르고 있었
다. 난 뭐라고 반항하지도 않고 그 무리에게 다가갔다. 그 무리 중 도토리마냥 귀여운 한
녀석에 내게 다가와 하는 말이 참 가관이었다.
[누나, 저 불쌍하게 생겼죠? 돈 좀 내놓고 가요.]
그 상황에 난 그 아이들과 말싸움할 기운조차 있질 않았다.
[그렇네. 자 이거 누나가 가진 거 전부 거든? 가져가.]
그 도토리 같이 생긴 아이는 날 무슨 미친 여자를 보는 것 마냥
그렇게 내가 쥐어준 돈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 아이도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더 이상의 시비를 걸지 않고 가만히 있었고, 난 다시 발
을 돌려 걷고 있었다.
순간. 뒤에서 질퍽이는 걸음걸이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날 불러 세웠다.
[돈이 그렇게 많나 보지?]
[그래서 어쩌라고? 어쩌라는 거야? 돈을 줘도 뭐라고 하니......]
[가져가. 지금은 니가 더 불쌍해 보이네.]
[뭐?]
그 아이의 말들이 내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난 정신이 나가 버렸는지 그 아이를 밀쳐내어 버렸다.
내 힘이 과했던지, 그 아이는 질퍽거리는 땅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예상했던 것과 같이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들.
[너 미쳤어?]
[그래. 그러기에 미친 사람을 왜 불러 세워?]
[류인아. 쟤 좀 맛이 갔나보다. 니가 이해해라.]
류인이라는 아이가 옷을 툭툭 털고 내게 하는 말.
[데려다 줄테니까...... 집이 어디야?]
[나류인. 이 새끼야! 너 미쳤어?]
[지금 저 분이 이마에 나 지금 불쌍하다고 써 붙이고 다니잖냐. 니들은 가 있어.]
그 아이는 내 이마에 불쌍하다고 써 있다고 말했다.
난 괜히 녀석의 말을 의심해서인지 이마를 살짝 한 번 만져보고 있었다.
[너 단순 한 거냐? 아니면 순진 한 거냐?]
[새파란 게 반말은 좀 자제하지 그래?]
[싫은데. 나같은 애들이 일일이 사람에게 존대하는 거 봤어?]
녀석은 아주 머리 좋게도 자기합리화를 시키고 있었다.
그러던지 말던지. 난 다시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걸어가려 하자,
[너 차였구나.]
[.......................]
순간 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간신히 차가운 비로 진정시킨 내 가슴을 저 녀석이 다시 아물기도
전에 헤쳐 놓고 있었다.
왜 눈에선 치사하게 눈물들이 쏟아지는지...... 머릿속에선 이유를 모른다고 부정하고 싶었지
만 그 이유는 단단한 돌에 새겨놓은 글씨처럼 너무나 분명하고 선명했다.
[집이 어디야? 너 지금 생각 없이 가고 있는 거지?]
[......................]
[그만 눈물 흘려. 그 딴 거 쏟아내 봤자...... 그 놈이 돌아오겠어?]
꼭 내 마음속을 한번 훑어본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괜히 난 나보다 어린 녀석에게 내 마음을 들켰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녀석을 매서운 눈
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보지 마라. 니 눈은 사납게 생긴 눈이 아니라 그러면 웃긴다.]
[말을 말자. 너 같은 애하고 말싸움 하고 싶지 않아.]
난 눈물을 훔치고서 녀석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이 입고 있던 교복이 눈에 띄었다.
그랬었다. 난 내가 잘났다고 학교를 그만 두었던 혼자 잘난 아이었다.
세상엔 배우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 생각이 점점 틀렸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
..............................
다 가 오 지 마 [2]
잔뜩 젖은 몸을 간신이 집까지 이끌고 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등 쪽으로 스며드는 차디찬 빗물의 느낌.
그 빗물들이 내 등을 적시면 적실수록 내 체온은 내려가는 게 아니라......
더 올라가는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니 이렇게 될 거 뻔히 알았는데.
[미칠 것 같아. 아니, 그냥 이렇게 미쳐 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그렇게 한심하고 나약한 인간이었었나?
이렇게 떠나간 사랑 때문에 자신을 자학하는 나.
그렇게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있었고, 내 눈 앞에 보이는 형광빛 별들이 서서히 빛을 바
래고 있었다.
그러다 창 밖에서 빛이 새어나오자 금세 그 별들의 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사랑이란 걸 채 알기도 전에 이렇게 처절히 밟힌 나처럼.
[이 망할 세상아! 나 이제 스무 살이야. 남들은 스무 살이면 행복함에 젖어 있는데 난, 뭐냐
구!]
난 부질없는 말만 해대고 있었다.
이제 슬슬 미쳐가는 걸까? 그런 걸까?
그래....... 좋아. 하늘이 빙빙 돌아. 빙빙.
.....................
.............................
핸드폰이 부르르르 마구 떨어댄다.
유리안. 너도 이제 마음 굳게 먹자. 이젠 다신 헛된 환상에 빠지지 말자고.
[여보세요.]
[리안이니? 정말 미안한데......]
[말해. 뭘 그렇게 말을 아껴?]
[사실, 오늘 미팅이 있거든? 그런데 한 명이 안 나온다잖아. 리안아. 안 되겠지?]
[어디야? 말해. 나갈게......]
[그래줄래? 그냥 넌 머리수만 채워 주면 돼.]
고등학교 때의 친구 윤지가 저렇게 말을 아끼는 것도.
다 평소 내 성격 때문이었다. 아니, 성격 파탄이라고 하면 더 나은 표현일거라 생각 된다.
오죽 했으면 나에게 전활 했을까 하는 생각에 윤지 말대로 머릿수나 채워주리라 맘먹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서려는 찰나.
내 눈에 띈 화장대의 작은 얼굴이 그 동안 내가 얼마나 헛된 날을 보냈는지 말해주고 있었
다. 눈 밑엔 없던 다크서클까지 생기고......
마치 내가 사람이 아닌 듯 보였다.
...................
...........................
약속된 장소가 가까워 오자 내 걸음이 많이 더뎌지긴 했지만
난 그래도 뒷걸음질 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리안아~ 왔어? 정말 마지막으로 너에게 전화한 거야. 정말 고마워.]
[어.]
윤지의 대학 친구들의 숙덕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아주 또렷하게......
하지만 저렇게 날 욕하는 소리는 귀가 닳게 들은지라
이젠 신경조차 쓰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윤지의 안내를 받아 한 카페로 들어갔다.
윤지와 윤지의 친구들은 다들 테이블에 앉아있는 4명의 남자들에게 온통 정신을 뺏기고
있었지만.
내 눈엔 그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앉아. 역시 무용과라 그런지 너희들......]
말끝을 흐리는 이유는 아마 나 때문일 거라...... 추측 아니 확신했다.
만나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서로간의 시선이 오고 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난 내 머리칼을 잡고 하나하나 그 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자자. 그럼 숙녀 분들 노래 한 번 들어볼까?]
[어우, 잘 못하는데...... 아아.]
그 후로 감미로운 발라드 노래가 카페 안을 메우고 있었고......
드디어 바라지도 않던 내 차례가 왔다.
[난 저런 고리타분한 발라드 안 부르고 내 18번 부를게. 니들이 듣던 말던 상관 안 해.]
[ It starts with.... One thing / I don't know why....It doesn't even matter how hard you try Keep that in mind / I designed this rhyme]
[저거 린킨파크(Linkin Park) 아냐? 나 참. 미팅에 와서 저런 노래를 부르는 앤 첨봤어.]
[좋은데 뭘. 쟤 맘에 든다.]
난 그 녀석에게 버림받은 후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이 노래를 듣자마자 아마 24시간을
이 노래를 무한반복으로 들었다.
귀를 자극하는 리듬들이 날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 내 눈앞에서 날 비꼬는 녀석들이 뭐라고 하던, 난 내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모든 것을 날려 버릴 듯한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중간을 넘어가면서 부턴 아예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이 순간. 내 세계에만 빠지고 싶은 마음에......
물론 날 제외한 다른 이들은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아하하. 노래 잘 들었어. 우린 지금 나눠서 놀고 싶은데 레이디 퍼스트!]
[난 키 큰애. 어우야! 얜 내가 찍었어!]
고갤 돌려 앞에 있는 녀석들을 쟁취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중복되기도 하고.
몇 분간의 다툼 끝에 파트너가 정해졌다.
[난 첫 번째!]
[야야. 내 실력 봤어?]
[전. 세 번째요.]
[나도 너 찍었었는데......]
[그럼, 난 마지막.]
[난 여자에게 선택권 주기 싫은데? 난 내가 선택할게. 난 얘 데리고 가겠어.]
그는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날 지목하고 있었다.
윤지가 상당히 맘에 들어 한 듯싶었는데...... 난 딱 잘라 말했다.
[난 오늘 대타로 온 거야. 댁도 정신 차리고...... 윤지야 난 갈게.]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나가려고 하니 그가 내 손목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난 정말 매몰차게 그의 손이 테이블로 곤두박질 칠 정도로 세게 빼내었다.
[왜. 내가 마음에 안 들었어?]
[어.]
[뭐야. 재석이가 찍었는데 그렇게 거절하면 안 될텐데......]
옆에서 짝을 정한 남자들의 목소리였다.
그에 난 개의치 않고 내 갈 길을 가버렸다.
난 계속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그 곳을 빠져 나왔다.
내 뒤에서 그가 내 이름 같은 것을 부르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난 계속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갑자기 내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듯한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점점 죄여오는 느낌.
난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무거운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 서 있는 그가. 조금 전 내가 거부를 한 그가 서 있었다.
[너 뭐냐?]
[사람.]
[너 지금 내가 뭘로 보여?]
[좀비.]
[너 장난하는 거냐? 아니면, 미친거냐?]
[후자라고 해두겠어. 그럼 그만 이 손 놓아줄래?]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
그 녀석이 내 말대로 하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먼저 행동하는 게 빠를 듯 싶어 내 손목을 잡은 그 녀석의
손은 내 반대편 손으로 손가락 하나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떼어낸 손가락은 다시 내 손목에 밀착시키고 있었다.
[너 뭐야? 너 귀머거리야? 나 너 같은애 싫다고!]
[왜?]
계속 집착스런 질문만을 내게 던지는 그.
[지금 이런 질문 하니까......]
[그런데 난 니가 좋은데?]
[내가 싫어. 그만 손 놓아줄래?]
[놓아주면...... 너 도망 갈 거잖아.]
[안 놓아줘도 피차일반이야.]
난 계속 어처구니없는 말만 해대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째려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싶다.
더 이상의 실랑이는 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그가 하자는 대로도 하기 싫었다.
고로 내겐 2가지 중에 선택할 길이 아무것도 없었다.
[너 사람이 이렇게 너에게 질색하는데 안 질려?]
[아니 신선해.]
[너 지금 너무 뻔 한 소리 하는 거 알지? 신선하긴 뭐가 신선한데?]
[날 이렇게 질려한 건 네가 두 번째니까......]
그는 그렇게 자신만만한 인생을 살아왔었다.
그와는 반대로 난 사람들이 내게 항상 질색, 아니 정색들을 했다.
이런 상황이 신선하다는 그.
아마 작업을 걸기위한 뻔 한 말들 중에 하나겠지......
[난 니가 더 신선하다. 이 좀비 같은 인간.]
[그럼 우리 둘이 서로를 신선하게 느낀 거네?]
[........]
[그럼 사귀면 되겠네.]
저런 말을 서슴지 않고 입에서 내 뱉은 그의 무책임한 말들이
내 비참했던 진우와의 이별을 생각나게 했다.
[사실 나 대학생 아니야. 이 자리에도 억지로 나온 거고.]
[그럼 인연이네...... 우린]
[인연이란 소리 그 딴 소리 내 앞에서 지껄이지 마. 그 딴거 안 믿으니까......]
인연이란 소리.
진우도 내게 사귀자는 말을 하면서......
우리가 인연이라고 했다. 아니 이젠 우리가 아니다.
그 딴소리 이젠 절대 믿지 않는다.
인연은 없다.
[너 왜 이렇게 엇나갔어?]
[잘 봤어.나 심하게 엇나간 인간이야. 이제 그러니까 놔 줘.]
[이번엔 놔주는데...... 다음번엔 니 손잡게 되면 절대 안 놔줄 거다. 그 땐 인연을 믿어. 알겠어?]
[그 말을 믿을 때 과연 올지 모르겠네. 이만 놔 줘.]
그제야 그는 자신의 손의 힘을 풀었고
난 수갑에서 빠져 나왔다.
그렇게 수갑에서 빠져나온 뒤.
버스로도 몇 정거장 되는 길을 높은 굽을 신은 채로 걷고 있었다.
발끝이 바늘로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었고...... 샌들 끈이 발이 부어오름에 따라 조여 오고
있었다.
서서히 집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는 건물들이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난 남들처럼 내가 사는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 집이란 뜻은 내가 그 집 안에서 소속감을 느낄 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 곳에서 나의 소속감을 느낄 수 없기에...... 그냥 집이라고 부른다.
갑자기 내 앞을 질러가는 오토바이.
많이 낯익은 것이다.
난 그 것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신주혁!]
[끼잌.]
[나 좀 태워줄래?]
[니가 돌았구나? 집에 가고 싶으면 걸어가.]
내 동생 신 주혁...
오늘도 내 부탁을 거절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녀석의 뒷모습만 볼 뿐이다.
그렇게 아픈 발로 가까스로 집에 도착했다.
언제나 같이 내가 들어와도 가족은 나완 눈을 마주치질 않는다.
난 그들에게 소리쳤다.
[저 다시 학교 갈래요.]
[그럴 줄 알았다. 그러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새 아버지의 낮은 톤의 목소리가 내 숨을 조여 왔다.
[아버지. 그럼 주혁이와 같은 학교로 보내주세요.]
[니가 나에게 아버지라고 하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구나. 그거야 쉽지.]
[아빠!]
[주혁아.]
주혁이는 내 말이 끝나자 마자 다 보고 있었다는 듯...
위층 계단에서 황급히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전 싫어요.쟤랑 이 공간에서 같이 산다는 것도, 견디기 힘들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리안아, 알겠다. 그럼 월요일부터 등교준비를 하거라.]
[네.]
난 내 할 말을 끝내고 계단으로 올라가려 하자...
주혁이가 스치며 말했다.
[너, 지겹다. 너라는 애 지겨워.]
[그래? 그럼 앞으로 더 지겹게 해줄게.]
난 무슨 의도에서 인지 주혁이에게 그런 말을 던졌다.
나쁜 생각은 절대 없는데.
녀석 앞에선 이런 말들이 튀어 나온다.
.......................
.................................
정말 오래간만에 입어 본 교복.
낯선 아이들에게 묻혀서 난 교문으로 들어섰다.
다 가 오 지 마 [03]
오래간만에 뭔가에 갇혀보는 느낌이 들었다.
주혁이는 새 아버지의 배려인지 몰라도 혼자서 떳떳히 오토바이로
등교를 하면서, 선생들 눈치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주혁이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 선생들을 가로질러 가려 하자 내 목에 갑자기 차가운 것이 닿았다.
[너 뭐야? 이게 어디서 명찰도 안 달고 어딜 떳떳하게 등교야?]
잠시 주혁이가 날 돌아보며 살짝 웃어 보였다.
그렇게 그 녀석은 내가 이 곳에 발을 들여 놓는 자체가 싫었겠지......
집에서 마주치는 걸로도 충분히 녀석에겐 괴로울테니...... 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난 녀석을 동생으로 생각하는데, 주혁이는 무슨 이유에선지 내가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은 때부터 그렇게 나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선생님, 그게 아니고......]
[변명 지껄이지 말고 가서 무릎 꿇고 손들어!]
저런 선생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건 있는가 보다.
사람 말을 밥 먹듯이 잘라버리고......
이유가 뭔지는 전혀 궁금해 하지 않고......
난 그냥 여느 학생들이 그렇듯이 교문 앞에 전시물처럼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불과 한 두 살 차인데......
이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런 반면 난 내 몰골을 보고 한 숨이 나왔다.
계속해서 교문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또 한명이 선생의 레이더에 잡혔다.
[넌 말이 필요 없지? 그 놈의 모자는 벗으래도 안 벗고 말이야!]
녀석이 매서운 눈으로 선생을 쳐다봤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지휘봉으로 내 옆자리를 가리키고 있었고......
모자로 인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녀석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녀석의 눈빛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많이 낯익다.
[너 학생이었어?]
녀석이 먼저 말을 건넨다.
난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멍하니 다른 쪽만 쳐다봤다.
왠지 그 녀석에게 내가 대답을 했다간 그 녀석에게 휘둘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씹는 거냐?]
[......]
[머리색이 넌 갈색이네?]
이상한 녀석이다.
자주 본 사람도 아닌 단 한번 만난 것뿐인데......
내 머리색을 가지고 트집을 잡고 있었다.
그래, 해보자는 투로 나는 손만 들고 있을 뿐.
녀석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쯤이면 말길을 알아 들었겠지?
[한 번만. 부탁인데...... 한 번만 내 얼굴 좀 봐 줄래?]
이상하게도 그 녀석의 목소리가 건들거리는 목소리가 아닌 순간적으로 녀석의 목소리가 진
지하게 들렸다.
내 귀가 이상해 진걸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냥 눈 딱 감고 녀석에게 내 얼굴을 한 번 보여 주기로 했다.
그런다고 내 얼굴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자, 됐어?]
[아니, 눈도 떠 봐.]
갈수록 가관인 녀석이다.
그런데 왜 난 거절하지 못하고 녀석이 하라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지
학교란 곳은 역시 신기하다.
사람을 이렇게 순식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리니까......
난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떠 보였다.
[갈색 눈이네...... 밝은 갈색 눈.]
[지금 뭐 하는 거니?]
[너 감상중이잖아. 조용, 쉿!]
녀석은 갑자기 내 입술 검지를 막아 버렸고......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녀석의 손가락에서 전해오는 온기가...... 내 입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이만 감상 끝! 고맙다. 그리고 내 이름은 나류인. ]
[그래, 내 이름은......]
[니들 거기서 뭐해? 여기가 무슨 놀이터인줄 알아?]
선생님의 호통에 다시 난 긴장을 풀고 있던 손을 다시 바짝 들어 올렸다.
나를 흘끔 쳐다보는 류인이라는 아이가 날 보고 웃었다.
넋 빠진 놈. 실없는 놈. 왜 녀석을 보니 그런 단어들만 떠오르는 걸까......
난 다시 녀석을 외면해 버렸다.
얼마 뒤 종이 울리자 황급하게 선생님은 우릴 다그쳐 교실로 들여보냈다.
나도 그 무리에 끼어 황급히 달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 가방이 점점 무거워 지고
발을 내딛기 힘들 정도의 힘이 날 끌고 있었다.
뒤를 돌아 봤을 땐, 모자를 쓴 녀석. 류인이었다.
[너, 헉헉...... 이름!]
난 류인이라는 녀석의 황당한 질문에 대답할 이유가 없어 그냥 가던 길을 가려 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녀석.
[너 이름 말해줄 때 까지... 난 이 가방 못 놓는다.]
[유리안. 됐니?]
녀석은 놓는다는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가방을 잡던 손을 놓았다.
순간 난 튕겨버린 스프링처럼 앞으로 넘어질 뻔 했지만......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아 교무실로 향했다.
급하게 교무실로 뛰어 갔지만 이미 선생들은 거의 없는 상태였고 난 갈피
를 못 잡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거기! 학생, 무슨 일이지?]
[오늘부터 온 복학생입니다.]
전학생이라고 말할 뻔 했지만...
난 전학생이 아니다. 복학생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
이미 새 아버지의 입김이 닿았는지 선생님들이 갑자기 분주해 지면서 날 한 교실
로 안내했다.
3학년 7반.
초록색 바탕에 하얀 글씨가 그렇게 말해주고있었다.
그랬었지...... 1년도 남지 않는 시간을 못 참고 난 이곳을 빠져 나왔었지......
안내를 받으며 난 어색한 얼굴로 반에 얼굴을 들여 놓았다.
벌써 소문이 퍼졌는 듯......
호기심 어린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소개 좀 해볼래?]
[난 유리안. 알다시피 난 전학생이 아니라 복학생이야. 내가 나이가 많다고 너희들에게
존대 받을 생각도 없고, 어른대접 받고 싶지도 않아. 그냥 똑같이 보면 돼.]
[그럼 어디에 앉을까? 앞에......]
[아니요. 저 뒤에 앉을께요.]
[그럼 뒤에 가서 앉아.]
난 선생님에게 간단한 목례를 하고 나서 뒷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을 훑어보면서 가고 있는
데......
눈에띄는 하얀모자. 류인이었다.
수업까지 모자를 왜 벗지 않는 거지?
하는 쓸떼없는 생각을 했다.
난 뒷좌석에 앉아 수업을 듣기보다는...... 구경한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았다.
계속 거슬리는 하얀모자.
왠지모르게 나는 류인이라는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들 마다
녀석의 모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첫 교시가 끝나는 종이 치고
류인이라는 녀석이 내게 다가왔다.
[우리 대단한 인연 아니냐?]
[............]
[그렇게 나가시겠다?]
[.............]
류인이가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고 날 빤히 쳐다보는 순간.
녀석의 눈을 보았다.
회색빛이 도는 눈. 꼭 칼라렌즈를 낀 듯한......
그런 이국적인 느낌의 눈이었다.
물론 녀석이 어제의 우연한 만남으로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다그치는 류인이의 물음에 답해 줄 마음의 여유가 아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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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류인! 너 웬일이니?]
[채원희. 너 뭐하러 왔어.]
[당연히 너 보러 왔지! 너 내일이 우리 100일 인거 알아?]
[우리가 애기도 아니고 그런 걸 왜 챙겨?]
[나류인 너 알지? 너 우리 아버지 덕분에 너 이렇게 모자 쓰고 막나가도......]
[그런 말 몇 번인 줄 알아? 알았어. 몇 시까지 나가면 되는데......]
[7시 까지. 카페 라리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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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이란 녀석은 어떤 예쁘장한 여자애와 몇 마디 나누더니
교실 문을 큰 소리가 나게 닫고 혼자 찡그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제 할 일이 없다보니 별게 눈에 다 보인다.
다시금 내게 다가오는 류인.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유리안. 미안한데 니 관심은 여기까지 였으면 좋겠어.]
[그래. 그럼 수업 잘 들어라.]
갑자기 힘이 빠진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류인이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난 다시 뒤에서 아이들을 구경했다.
자율화로 다들 길어진 머리가 내 비어버린 1년을 실감나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런 구경도 지겨워질 무렵 가벼운 가방에서 연습장과 볼펜을 꺼내어
끄적끄적 아무의미도 없는 것들을 마구 적어 내려갔다.
끝없이... 끝없이...
...........................
......................................
다 가 오 지 마 [04]
수업이 진행될수록 내게 몰려오는 건 잠 뿐이었다.
애들도 내게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번번이 내가 화술이 없는지라 제풀에 죽어 떨어져 나가
는 애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렇다고 잡기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이젠 이 뭐 같은 자존심 그만 세워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난 소위 남들이 말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던 것 같았다.
이젠 낙서하는 것도 지쳐 창가를 바라보며 고개를 책상과 맞닿게 만들었다.
파란색 체육복을 입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애들이 내 눈에 보였다.
그 중에 눈에 띄는 밝은 갈색의 머리.
주혁이었다.
[거기! 수업시간에 뭐하는 거지?]
[잠시 다른 생각을 좀 했습니다.]
난 어디에서 나온 용기인지
얼굴이 주름으로 가득한 선생님께 그런 식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가뜩이나 주름진 선생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지더니 내게 단호하게 나가라는 뜻으로
복도로 손을 쭉 뻗어 보였다.
난 아무런 저항 없이 선생님의 지시대로 차가운 복도로 쫓겨났다.
그런데 문득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에 곧장 실내화 바람으로 운동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축구를 하느라 여념 없는 주혁이..
일부러 녀석이 가까이 보이는 곳으로 다가가 스탠드에 앉았다.
이제 서서히 여름바람이 가을바람으로 바뀌고 있어 따가운 햇빛이 쬐여 옴에도 불구하고 그
다지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주혁이의 머리칼이...... 땀에 젖어가고 있었다.
주혁이가 날 의식하기 시작했고,
즐겁게 뛰던 녀석은 아이들과 잠깐의 대화를 나눈 뒤 나와는 정반대의 위치인 스탠드로 사
라졌다.
아직도 적응을 못한다. 녀석은...... 벌써 2년이 다되어 가는데.
멍하니 주혁이가 사라진 스탠드 쪽을 바라보는 내 앞이 갑자기 번쩍하는 소리와 함께
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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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야야! 얘 맞고 쓰러졌어!]
[머리에서 피난다! 어떡할 꺼야!]
[비켜봐. 이 새끼들아 공은 골대에 넣으라고 있는 거지! 누가 사람한테 차고 난리야!]
[신주혁. 아는...... 사람이야?]
[몰라. 내가 양호실 데려다 놓을 거니까...... 앞으로는 골대에나 공 넣어 이 새끼들아. 알았
어?]
[알, 알았어.]
# 양호실...
[선생님, 얘가 공에 맞은 거 같은데 머리에 피가 흘러요.]
[이름이 뭐지?]
[이......현석이요.]
[일단 저 쪽에 눕혀놓고, 자 여기 후시딘 있으니까 발라 줘.]
[뭐요? 지금 사람이 이렇게 기절을 했는데...... 나 참. 와서 제대로 보라고요!]
[알았으니까...... 일단 침대에 눕혀 봐.]
....................
.............................
[유리안. 나 2년동안 다짐했는데, 내 한계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한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네 얼굴과 미소가 날 미치게 만들어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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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봤을 땐.
난 하얀 커튼이 쳐진 양호실 하얀 침대위에 누워 있었다.
따끔거리는 느낌에 손을 이마에 갖다 대었을 땐 약간은 까칠한 붕대가 내 머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렇게 머리까지 다 둘러 버리면 교실에 가면 날 아이들이 어떤 눈으로 날 볼것인가......
약간은 핑 도는 머리를 하고 난 침대에서 일어나 양호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선생님, 저 이거 붕대 다친 곳에만 조금 대일밴드만.]
[나 참...... 아까 그 녀석은 널 대충 본다고 소릴 지르질 않나, 머리가 더 흔들리거나 그러면 병원을 가봐.]
[누,누가 데려 왔나요?]
[그럼 학생이 그 꼴을 하고 혼자 걸어 왔겠어?]
양호선생님은 장부를 뒤척여 보더니
[이현석 이라던데. 학생도 어서 좀 괜찮으면, 교실로 가 봐. 벌써 4교시 다 끝나갈 거라
고......]
[네.]
뭐 하러 그걸 물어 봤는지......
약간은 어지러운 몸을 이끌고 반 앞으로 다시 왔다.
살짝 뒷문을 열고 몸을 들여 놓았다.
선생도 내 등장에 놀란 듯 쳐다봤지만, 내 머리에 칭칭 감겨진 붕대를 보고나선 눈짓으로
자리에 앉으라 표시했다.
난 애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창가인 내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냥 넘기고 싶었지만,
욱신거리는 머리 때문에...... 계속 머리쪽으로 내 손이 가고 있었다.
갑자기 축축한 느낌이 들어 내 손을 보았을 때.
허술하게 감겨진 붕대 때문인지
손에 묻은 빨간 액체가 내 눈에 거슬렸다.
살짝 긁힌 거 뿐인데 난 칭칭 감긴 붕대를 풀어 배어나오는 피를 닦아냈다.
순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고, 선생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학생. 피가 계속 나오는데...... 다시 양호실로 가보지 그래?]
[선생님, 아니요.]
[그럼, 뭐야? 다시 집중해!]
내가 내 자신이 신경 쓰일 법도 한데
저 선생은 날 걱정어린 말로 양호실에 가길 권유했지만, 난 한마디로 거절했다.
순간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지만 난 애써 외면을 하고 다시 창가로 고갤 돌렸다.
이젠 텅 비어 있는 운동장이 날 심심하게 만들었다.
그 때에 딱 맞춰 치는 종이 내 귀를 어지럽혔지만
난 여전히 시선을 운동장에 두었다.
갑자기 그런 날 누가 부른다.
[언니, 혹시 윤지언니 알죠?]
[김윤지?]
[언니! 저 윤지언니 동생 윤아에요.]
난 잘 기억이 안 났지만......
그 아이는 반가운 사람을 본 듯 날 대하고 있었다.
윤지의 동생 이라니 내가 애써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날 알고 온 아이인데
[그래? 난 잘 기억이......]
[아, 예. 제가 쫌 기억력이 좋아서요]
윤지동생 윤아는 언니와는 달리 참 붙임성이 좋아 보이는 아이인 듯 보였다.
점심시간이라며 자신의 친구들을 몇 명 데리고 나를 재촉하며 급식실로 가자고 말했다.
사실 밥 생각이 없긴 했지만......
그냥 아이들을 따라 가기로 했다.
이젠 쌓아두었던 벽을 조금씩 허물어 가야 할 것 같다.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며
물론 이야기의 대부분이 남자들 이야기였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그랬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게 잘 기억이 나질 않기 하지만......
북적거리는 급식실은 아이들의 줄 싸움으로 시끌 거리고 있었고
나와 윤아 친구들은 맨 끝자락 줄에 섰다.
윤아도 처음엔 내게 막 말을 걸어보려고 했으나
내가 호응을 잘 못해준 때문인지 다시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고......
난 서로 내기를 하는 냥 밥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아이들을 보면서,
이젠 내 차례가 왔다.
식판을 들고 아주머니들이 담아주시는 음식을 받아들고 큰 식탁에 앉았다.
음식은 의외로 입에 잘 맞았던지
다른 아이들 보다 벌써 진도가 많이 나가 있었다.
[언니, 밥 맛있죠? 제가 이 밥 때문에 학교 다니는 거에요. 큭.]
[응. 맛있네.]
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윤아에게 대답했다.
오랫동안 입근육이 굳어 있었던지
웃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제 부터는 좀 웃어보려고 한다.
언제나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
난 내가 살기 위해서 날 바꿔 보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그렇게 잠깐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어! 혹시...... 그 지갑 통째로 준 누나 아니에요?]
작은 키의 녀석.
기억이 난다.
[아, 응.]
[누나...... 아니였어요? 나도 3학년 인데.]
[이현석! 누나 맞아! 그리고 아직도 삥뜯고 다니냐?]
[김윤아. 내가 그러든 무슨 상관이냐? 밥순이는 밥이나 드시지?]
내가 처음 봤을 때 인상과 달리 현석이란 녀석은 윤아를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현석, 그럼 이애가 날 업고 왔다는 건가?
그러기엔 역부족 일 것 같이 보이는데......
[그럼 누나! 맛있게 드세요.]
[그, 그래].
참 변죽도 좋은 녀석들이 참 많다.
류인이나, 현석이란 녀석도......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 보일까.
난 웃는게 참 어색한데......
녀석들은 그러고 보니 참 잘 웃는 것 같았다.
[언니, 쟤 조심하세요. 오죽하면 별명이 공사판이라니까요.]
[어?]
[매일 작업만 한다는 뜻이에요. 도토리 같이 생긴게...... 나 참.]
[응, 정말 도토리 닮았어.]
[언니도 좀 웃어요. 저도 저희 언니한테 들어서 좀 아는데 많이 웃어요. 아니 앞으로 많이 웃게 만들어 줄게요.]
[고마워.]
사람이 좋아 보인다는 거 느낀 지 오래였는데......
이 아이는 왠지 좋아 보인다.
아직 내가 그 아이를 맞춰가지 못하는 것 같지만......
윤아와 친구들은 남자애들 축구하는 거라도 봐야 고3병이 조금은 해소된다면서 스탠드 쪽
으로 갔고, 난 아직도 어지럼증이 남아 교실로 향했다.
또 길다란 복도가 나왔다.
[주혁이가 1반이라고 했지......]
주혁이는 나보다 1층 아래인 곳에 교실이 위치해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걸어가 교실이 비춰지는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나와 비슷한 자리에 주혁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있는 긴 머리의 여자아이.
주혁이의 여자친구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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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혁아. 왜 급식 먹으로 안가?]
[이제 급식 안 먹어.]
[왜? 맛이 없어? 그럼 내가 도시락이라도 싸 올까?]
[마음대로 해.]
[그래? 알았어. 그럼 내일부터 내가 싸올 테니까 같이 먹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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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애교많게 생긴 여자아이 였다.
그런 아이가 주혁이에게 필요하겠지......
항상 삶이, 아니 내가 지겨운 아이니까.
[미얀해. 주혁아. 내가 널 괴롭혀서...... 하지만, 그 이유를 말해주면 내가 이렇게 답답하
진 않을 것 같은데......]
첫댓글 주혁이랑 리안이랑 이복남매인가요?ㅜ.,ㅜ
그런거 같은데,,,,,,,,,,,,,,,,,,,,,,,,,,,,,,,,,,,,,,,,,,,,,
에에- 작가님0ㅅ0 , 이 소설 남자 주인공 누구에요? 에에- 주혁이는 아닐테고.. 근데!! 전 왠지 주혁이가 끌려요!!>_< 여하튼 작가님, 화이팅!!
단신님- 이복남매는 아니에요^^ 아람보님- 아닙니다. 그냥 피 안섞인 남매랄까... 이슬먹는 언니- 남자 주인공이라. 그건 차차 보시면 알게 되실것 같아요^^
와~ 재밌어요ㅇㅅㅇ 전 류인이가 끌리던뎅ㅇㅅㅇㅋ
말린망고님^^ 류인이라. ㅋㅋㅋ 아무튼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
재밌어욧..ㅎㅎ 주혁이가 주인공이닷..(예상에 ㅎㅎ)
전....그...류인이가 끌리던데..
^-^ 간만에 리플달린 거 반갑습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