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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oal.com/story/how-tragedy-forged-messi-friendship/index.html
By. Sam Lee
Part 1 : http://cafe.daum.net/ASMONACOFC/gAUc/872383
비극은 어떻게 아게로와 메시의 우정을 굳건하게 만들었는가
아게로의 이름을 짓는 것은 그를 낳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였다. 아드리아나와 레오넬은 그의 미들네임을 '리오넬'로 하고 싶었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시에는 오직 '레오넬'만을 허용하고있었고 그 또한 그의 아버지가 20년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다른 스펠링인 레오넬에 만족해야했다.
이 것이 유일한 걸림돌은 아니였다. 그의 이름은 '세르히오 레오넬 아게로 델 카스티요'로 알려져있지만 출생증명서에는 오직 어머니의 성인 아게로만이 기재되어있다. 아르헨티나 사법당국은 세르히오의 탄생 당시 아드리아나와 레오넬을 미성년자로 간주했으며 혼인하지 않은 상태로 판단했다. 이로 인해 서류상에는 어머니의 성만이 허용되었다.
아드리아나와 레오넬은 세르히오가 태어난 후 4년간 이를 바로잡기위해 노력했지만 그러기 위해선 완벽한 국가 신분증 사본이 필요했다. 그들은 아직 태아였던 세르히오의 목숨을 앗아갈뻔한 대홍수가 났을 때 신분증을 분실했고 이 문제는 결국 공식적으로 수정되지못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정부 그 누구도 그 둘의 결정과 희생이 세르히오를 최상의 레벨로 인도했다는 만족감을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인데펜디엔테의 도블레 비세라 스타디움에서 데뷔전을 가지고 2년이 흐른 뒤, 아르헨티나 언론은 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크로니카지에서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성공적인 미래로 나아갈 것이란 것에 재산을 걸수 있는 선수.'
이 문구는 말그대로 유럽의 가장 큰 구단 중 한 곳에서 기꺼이 하려는 것과 거진 동일했다.
아게로의 공식 자서전 'Born to Rise'를 쓰면서 사실상 그의 인생에서 모든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저자 다니엘 프레스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세르히오 일대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부모님의 의사 결정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갓 13살이 되었을 때, 레오와 아드리아나는 유벤투스로부터 말도 안되게 놀라운 오퍼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쿤의 잠재력에 투자하고 있던 지역 사업가로부터 재정적인 보상을 받고 있었지만 여전히 니즈가 많았습니다. 그 오퍼를 거절하는 건 상당히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쿤에게 더 경험있는 대리인이 필요하다는 투자자 사무엘 리버만과 호세 마리아 아스탈로아의 권유에 따라 곧 오퍼를 거절했다. 아게로는 14세의 나이에 국제 매니지먼트 기업 IMG와 지금까지도 그를 돌봐주고 있는 대리인과 계약을 맺게 된다.
IMG와의 계약은 십대시절 쿤의 2차례 격동의 시기 중 첫번째를 촉발하게 된다.
가족에게 더 큰 새집을 제공함과 더불어 IMG는 쿤이 나이키와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15살 생일을 맞은 뒤 3일 후, 그는 또다른 운명의 장난을 마주하게된다. 몇년 전 그에게 감명을 받은 유스팀 감독이였던 새 감독에 의해 인데펜디엔테 리저브팀에 콜업이 된 것이다.
1달 안에 세르히오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 출장한 역대 가장 어린 선수에 등극하게 된다.
"모든 일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라고 아게로는 본지와의 독점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주 내에 그는 1군 훈련에 포함되게 된다. 다음 날 그는 리저브팀에서 뛰었고 그 다음 날은 훈련에서 1군을 상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세르히오는 산 로렌조와의 리그 경기에서 벤치에 앉고 싶냐는 질문을 받게된다.
세르히오 커리어에서의 모든 우연과 운명의 장난 중 그가 특별히 애정을 느끼며 간직하고 있는 순간이 있다. "제가 맨체스터 시티에서 데뷔했을 당시, 16번을 달고 34번이였던 나이젤 더 용과 교체 투입되었습니다. 인데펜디엔테에서 데뷔할 때는 34번을 달고 16번 선수 대신 출전하게 되었죠." 라고 그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할 때 특히 기뻐보였다.)
지금은 그의 친한 친구인 파블로 사발레타는 그 경기에서 산 로렌조 팀에 속해있었다. 그 경기는 가브리엘 밀리토가 팀을 떠나 유럽으로 가기 전 마지막 경기였다 - 세르히오가 처음으로 관전한 리버 플라테 경기이자 에르난 크레스포가 파르마로 떠나기 전 뛴 마지막 경기와 비슷했다.
하지만 세르히오의 데뷔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300 km 떨어진 곳에서 어린 리오넬 메시가 그 경기를 TV로 시청했다는 것이다. '레오넬' 메시가 아니다. 로사리오시 당국은 '리오넬' 사용을 허용했고 메시 가족은 세르히오 가족과 같은 문제를 가지지않아도 되었었다. 하지만 소름돋게도 호르헤 메시는 등록 과정 중 혼동 때문에 그의 아들을 '레오넬'로 부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던 메시가 휴가를 맞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기억속에 영원히 남게 될 세르히오의 역사적인 데뷔전을 보게 되었다.
세르히오의 자서전을 쓰며 두 선수와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가진 프레스코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세르히오와 레오가 끈끈한 유대감으로 뭉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메시가 가장 영속적인 감명을 받은 순간은 TV 캐스터가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역사상 가장 어린 선수가 15세의 나이에 데뷔하게 된 역사적인 날이라고 선언한 순간입니다."
"당시 레오는 그 꼬마의 이름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어린 선수가 프로 축구에서 뛰는게 기이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놀랍도록 이른 데뷔에도 불구하고, 세르히오의 클럽 커리어는 인데펜디엔테가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거의 1년간 선발 출장하지 못하며 다소 지체되었다. 하지만 18개월 사이 구단의 6번째 감독이였던 페드로 다미안 몬존 아래서의 3경기 연속출장 -그리고 그의 프로 첫번째 득점-과 7번째 감독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 아래에서의 활약을 통해 그는 메시와의 일생의 우정을 쌓게된 2005 네덜란드 U-20 월드컵에 콜업되게 된다.
"그들은 우연히도 그 해 초반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외 국대 트레이닝 캠프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레오는 U20팀이였고 세르히오는 U17팀에서 뛰고 있었죠. 쿤은 메시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들은 상태였습니다. 세르히오는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지역 언론에 따르면 엄청난 커리어를 앞두고 있는 아르헨티나 10대 소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때까지 메시가 그 10대 소년인 것을 추론해내지못했고 '형은 누구에요?'라고 물어봤습니다. 레오는 그저 ''난 메시야' 라고 답했죠. 다른 선수가 세르히오에게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뛴다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물론 메시는 세르히오가 뛰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레오 또한 첫 만남때까지 그 소년이 세르히오인 것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레오와 세르히오는 만나기도 전부터 상호 존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U-20 월드컵 팀에서 가장 어린 두명의 선수였지만 그 사실만이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유스 코치 중 한명인 미구엘 앙헬 토호가 두 선수를 한 방에 배정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였다.
"미구엘은 쿤에게 레오와 같은 방을 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세르히오가 유럽으로 갈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메시의 경험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둘의 우정은 더 끈끈해졌습니다." 라고 프레스코는 말했다.
메시와 아게로는 피치 위에서 서로에 대해 인식하고 이해했지만 피치 밖에서 비공개적으로 함께 겪은 일들로 서로에 대해 정말 영속적인 감명을 받게 되었다.
세르히오의 유년시절 친구 중 한명이자 역시 인데펜디엔테 유스 팀에서 뛰었던 에밀리아노 몰리나는 아르헨티나에서 심각한 교통 사고를 당했다.
"세르히오와 에밀리아노는 함께 이룰 위대한 일들에 대해 꿈꾸곤 했습니다. 그 사고로 세르히오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크게 걱정하며 지속적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부터의 새 소식을 체크했습니다. 아르헨티나 팀 스탭은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그를 보호하고자 했고 만약 우려하던 일이 발생한다면 가능한 한 최상의 방법으로 그에게 통보하고자 했습니다." 라고 프레스코는 말했다.
어느 날, 에밀리아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스탭에게 전달되었고 그들은 직접 세르히오에게 소식을 알리기위해 호텔의 와이파이를 차단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특정 방에서는 여전히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다. "세르히오는 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오는 일찍 일어났고 인터넷에서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 세르히오에게 어린 시절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한 것은 레오였으며 세르히오는 극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슬픈 소식을 접한 뒤, 둘은 서로를 안고 한참동안 울었습니다. 슬픔이 그들을 집어삼켰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말이죠. 매우 괴로운 시간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이 둘의 우정을 더 깊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세르히오와 레오가 그 순간에 대해 털어놨던 방식은 여전히 저를 동요시킵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나이지리아를 각각 준결승과 결승에서 꺾으며 우승했고 팀은 가장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두 막내 주위에 한데 모여 매우 감정적인 세레모니를 했다.
그 시기는 특히나 세르히오에게 빠져들기 쉬운 시기였다. 인데펜디엔테 팀원들과 코치들이 이를 증명할 수 있다.
04년부터 06까지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의 스탭으로 인데펜디엔테에서 일했던 페르난도 시뇨리니 코치는 아게로에게 수많은 팬이 있었던 이유는 그의 성격에 있다고 설명했다.
메노티는 아르헨티나를 최초로 1978 월드컵에 진출시켰고 현재도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존경받는 스포츠인 중 한명이다.
시뇨리니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팀원들이 피치 중앙에 앉아있었고 세자르가 한명 한명에게 자신을 소개하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세르히오는 어린 선수들이 허물없이 하는 방식으로 세자르의 손을 움켜잡았고 밝게 그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쿤 아게로라고 해요.' 라고 말이죠.
당시 충격을 받았기에 그 장면을 항상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스윗했고 포테로에서 성장한 쿤의 장난끼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이였습니다. 그는 매우 사랑스러운 선수입니다. 전염성있는 미소를 가지고 있고 매우 카리스마 있죠. 그는 처음부터 팀원들과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첫 순간부터 팬들은 그를 흠모하기 시작했고 그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세르히오는 코치들에게도 역시 또 다른 인상을 남겼다. "세자르 감독이 언론의 조롱을 받았던 그의 유명한 구절을 훈련 중에 말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않았습니다. 쿤이 호마리우와 매우 흡사하다는 말이였죠. 수년 간 그가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허나 세르히오가 인데펜디엔테에서의 두번째 격동의 시기를 보낸 때는 또 다른 상징적인 아르헨티나 감독인 훌리오 세자르 팔치오니 감독 아래에서 였다.
05년 8월 7일, 세르히오는 구단의 유명한 10번 등번호를 달고 처음으로 뛰게 되었고 9개월 뒤 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가 되었다.
또 한번 그는 약 7년어치의 성취를 짧은 시간안에 이룬 것으로 보였다.
아르헨티나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그는 구단 최대의 라이벌 라싱 클루브와의 2경기에서 3골을 집어넣었다; 첫 더비전에서 그는 역대 최고 수준의 골을 넣었고 'For You Emiliano' 가 적힌 셔츠를 공개했다. 그는 두번째 득점을 기록하며 감독 데뷔전이였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을 무너뜨렸다.
그는 단 17세에 불과했지만 디에고 마라도나와 비교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는 나이키 광고에 출연하고 질레트, 펩시와 스폰서십을 맺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구단들의 관심도 받게 되었다.
"당시 팀 내에서 두번째로 어린 선수는 23살이였고 대부분은 30대였습니다. 저는 그래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과 어울리는 것에 익숙해졌고 이는 제가 빨리 성숙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라고 아게로는 말했다. "그 나이에 이미 저는 삶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길 원했습니다."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메이저 유럽 구단들이 아게로와 링크되었지만 가장 오랫동안 아게로를 주시한 구단은 -메노티가 감독일 때부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게로가 단지 17살이라는 사실때문에 딜을 미루지않았다.
세르히오는 자신의 능력과 팀의 고전 덕택에 첫번째 기회를 얻게되었다. 그리고 유럽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인데펜디엔테의 재정 상황은 매우 심각했으며 06년 4월 중순 그들은 팀의 가장 귀중한 자산을 아르헨티나 축구계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인 23m 유로에 이적시키기로 합의했다.
세르히오는 스스로의 힘으로 가족이 투카만을 떠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외로 떠날 당시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유럽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아게로는 05-06시즌을 그의 유년시절 구단에서 보냈지만 그가 11세의 나이에 비공식적 데뷔를 했던 도블레 비세라에서의 아름다운 이별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 시즌에 4장의 옐로 카드를 받은 상태였고, 그 또한 올림포에서 열린 당해 시즌 챔피언이 된 보카 주니어스전에서 또 경고를 받게되면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경기 전 심판에게 자비를 구하기도 했지만 40분 뒤 옐로 카드를 받게 되었고 눈물을 펑펑쏟으며 간절히 어필했다.
이는 그가 인데펜디엔테 홈 팬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뛰지 못한다는 것, 마지막 경기 로자리오 센트럴 원정에서 패했다는 것 그리고 구단에서의 마지막 주간이 그의 초기 커리어 잔여 파트의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드리드 또는 맨체스터의 그 누구도 그 당시의 일이 그의 발전을 저해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프레스코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세르히오는 타고난 승자입니다. 그는 지는 것을 좋아하지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지게 된다면 그때의 감정을 더 진전하고 더 열중하는데 이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위해 나아갈 것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싸울 것입니다."
첫댓글 나중에 읽어볼것!
즐독하세요👍
@Sieger ㅎㅎ 감사합니닷 번역글 항상 감사히 보고있어용💙
저 혹시 소리아노님같은 프사는 어떻게 만드나요...?
@Sergio Aguero 락싸에 금손분이 예전에 만들어주신거예요.. 자톡에 글제목 '네임텍' 검색하시믄 그분이신뎅
@Ferran Soriano 아하.. 그분 글 올라오시면 신청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선댓 후감상~~
즐독하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아게로
즐독하세요👍
이 긴 걸 번역해 주시다니 굿입니다요👍👍잘볼게요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번역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 1편 못봤었는데 이글보고 1편부터 정독했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좋은글 번역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쿤 항상 응원할게~!!
감사합니다👍
Sieger님 덕분에 흥미로운 얘기들 새롭게 알아가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유벤투스 거절한 부모님과 어린 나이에 덥썩 감독 손 잡고 자기소개한 쿤의 대담함이 놀랍네요ㅎㅎㅎ
싹부터 범상치 않았던 느낌이에요!
그리고 전에 쿤이 아르헨티나 시절 경고받고 훌쩍이는 영상 봤을 때는 그저 판정이 억울해서 우는 줄만 알았는데 저런 사연이 있을 줄 몰랐네요ㅜㅜ
쿤이 친정팀에 대한 애정이 정말 크던데 그 점이 정말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 같아요..
크게 될 선수는 어릴 적부터 남다른 것 같습니다.
번역하면서 쿤도 대단하지만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본인들도 어린 나이였을텐데 굉장히 현명하게 쿤을 기르신 것 같아요.
이제 대기록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어서 쾌차해서 좋은 모습 다시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저도 시티시티뱅뱅님 번역 항상 즐겁게 읽고있습니다. 언제나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1편부터 잘 읽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이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