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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황금평에 늘어선 전각들을 굽어보듯 우뚝 솟은 흑룡전.
아직 해가 남아 있건만 사방에 황촉을 밝혀 대낮처럼 환한 넓은 대전에는 갈
천위가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콰광, 쾅, 쾅……!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부르르 지축이 흔들리는 순간,
갈천위는 창평야에서 살려보낸 표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일부러 손을 놓고 있던 무적세가에서 이제서야 봉래도의 군주를 구하겠다고
나설 리 없고, 봉래도라면 소리 소문 없이 중원에 들어왔을 까닭이 없었다.
무공을 잃은 자들이 직접 오진 못했을 테고 아마도 지긋지긋하게 질기고 생각
밖으로 만만치 않은 자들이 득실대는 세권표국의 표사들이 몰려 왔으리라.
사태의 전말을 꿰뚫은 갈천위는 다만 예상보다 빨리 들이닥친 것이 의외일 뿐
이었다.
"크흣, 놈들! 이미 본 좌의 마음이 정해졌으니 그리 소란 떨지 말거라……."
갈천위는 하나도 급할 것이 없다는 태도로 느긋하게 탁자에 놓인 술잔을 들었
다.
순간,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며 문밖에서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에서 불길이 솟고 폭발이 일어났으나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경 쓸 거 없다. 가서 손님을 모셔오고 준비한 물건들도 가져오너라!"
어이없이 죽은 기세연을 대신해 혈룡대를 맡은 거중보(渠重步)는 전혀 동요하
지 않는 방주의 모습에 새삼 의아함을 느꼈으나 소리 없이 물러났다.
흑마대에게 교대조 없이 모든 인원을 동원해 삼엄하게 경비를 펼치되 누가 들
이닥치더라도 싸우지 말고 길을 열라고 한 명령에 비하면 이 정도는 의아할
것도 없지 않은가.
마안기무전주가 죄를 받아 목이 잘린 지금, 누구도 방주의 명령에 토를 달 사
람은 없었다.
거중보는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출정하기 전부터 잔뜩 치장을 해서 황후의 거처보다 호사스럽고 아늑한 흑화
전(黑華殿)은 지척이었고 흑화전을 차지한 손님은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던
것이다.
"모셔왔습니다."
갈천위는 직접 대청의 문을 열고 설운경을 맞았다.
"어서 오시오! 아마도 군주님을 모셔갈 사람들이 온 듯 한데 내 진심을 몰라
서 이리도 소란을 떠는 모양이오."
기산에 도착한 후 봉래도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호사를 누리며 지낸 설운경과
해연은 밝은 얼굴로 맞이하는 갈천위의 말에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틀 동안 얼굴도 보이지 않던 갈천위가 어제부터 수시로 드나들며 잠자리며
식사까지 일일이 지시를 내리고 챙기는 것이 의아했으나 속셈이야 어쨌든 호
의는 호의로 받아들이는 것이 도리였다.
갈천위가 권하는 대로 탁자에 마주 앉은 설운경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를 데려갈 사람들이 왔다고 하시면…… 이대로 놓아주실 생각이십니까?"
설운경은 물론이요 뒤에 시립해 있던 해연까지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며 갈천위
를 바라볼 때, 또 다시 폭음이 울리며 건물이 흔들렸다.
갈천위는 짐짓 혀를 차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쯔쯧, 이 자들이 대체 무슨 영문으로 이리 요란을 떠는가. 세권표국의 표물
에 손대면 뒤끝이 좋지 않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군……."
설운경이 미처 다시 물을 사이도 없이 갈천위가 거중보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준비한 물건들은 모두 확인했느냐?"
"빠짐없이 확인했으며 이미 흑룡전 앞에 쌓아두었습니다!"
거중보의 우렁찬 목소리에 황촉이 흔들릴 정도였다.
"흑마방과 본 좌의 체면이 걸린 일이니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물건은 뭐고 흑마방의 체면은 또 뭐란 말인가.
설운경과 해연은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자들이 올 때가 됐는데……."
갈천위가 중얼거리는 순간, 문 앞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런 고얀 놈들, 싸우지 않을 거면 어서 칼을 거두지 못할까!"
"본 방의 방주님이 계신 곳이다. 무기를 들고는 들어가지 못한다!"
"오호라, 이제껏 싸움을 피하고 이리로 끌어들인 것이 일거에 몰살시키겠다는
의도였더냐?"
소란은 갈천위가 해결했다.
"그냥 들어오도록 길을 열어라."
흑룡전이 생기고 혈룡대가 갈천위의 호위를 맡은이래, 한 번도 없었던 일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사방에서 폭약을 터뜨리고 흑마방을 없애 버릴 듯 쳐들어 왔으면서도 아무런
제지도 없이 당당하게 무기를 소지한 채 갈천위의 거처로 들어서는 여섯 사람
순간, 설운경과 해연은 두 눈을 의심했다.
"할아버지! 운교야!"
"어르신……!"
기껏 준비한 계획이 허망하게 마치 호위하듯 길을 여는 흑마방 무사들의 안내
로 흑마방의 중지까지 들어온 여섯 사람은 한없는 반가움을 담은 눈길로 속
마음을 전할 뿐 선뜻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대낮처럼 불을 밝힌 대전 중앙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는 갈천위의 의중을 알지
못하고 있는 처지라 여섯 사람의 심중에는 그저 의혹만 구름처럼 일고 있는
까닭이었다.
주인의 역할을 하려는가.
먼저 입을 연 것은 갈천위였다.
갈천위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들의 등장에 놀라긴 했으나 그렇다고 달라
질건 없었다.
흑마방의 존망은 오늘 이 순간에 결정될 터였다.
황급히 서로를 바라보며 반가움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 일행의 눈길이 사그러
들자 갈천위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어, 군주님의 할아버지라면 봉래신장 선배님이 아니십니까? 이거 미처 몰
라 뵙고 마중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사문의 어른을 대하듯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예를 차리는 갈천위의 태도에 봉
래신장도 엉겁결에 인사를 받았다.
"예고 없이 찾아온 내 잘못도 적지 않으니 그리 신경쓸 것 없소."
자세를 바로 한 갈천위는 다른 불청객들에게 일일이 아는 척을 했다.
"무공을 잃은 지가 며칠 안됐거늘 늠름한 모습을 다시 보니 본 좌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군."
애초에 무공을 폐한 것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투였다.
"이런……! 무적세가의 소가주께서도 오셨구먼!"
잔뜩 경계심을 품고 언제라도 살검을 떨칠 기세를 드러내는 금사익의 꼴이 어
색할 만큼 친근한 태도였다.
"흐음, 큰 군주님이 그리도 아낀다는 동생 분을 뵙게 될 줄이야……."
아직도 설운경에게 눈길을 보내고있던 설운교는 갈천위의 음성에 징그러운 뱀
이 몸에 감기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흠칫했다.
"한데, 대협의 존성대명이 혹시 청풍일수 위사무 아니신가 모르겠소이다……?
은거한지가 십 년이 돼 오고 은거하기 전에도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별
로 없는 자신을 한 눈에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갈천위에게 위사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렇소. 내가 위사무요!"
당당하게 신분을 밝힌 위사무는 말을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갈천위의 의중
을 확인하려 들었다.
갈천위의 돌변한 태도가 의미하는 내용에 따라 오늘밤은 물론이요, 향후 무림
의 운명도 상당부분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설명해 보시오."
"하하하핫! 영문을 밝히라고 하셨소……?"
누가 뭐래도 상황의 주재자는 갈천위였다.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 갈천위는 한 점의 거리낌도 없는 태도로 좌중을 돌아
보았다.
"봉래도의 군주께서 중원에 들어오셨다는 말을 듣고 평소에 봉래도의 위명을
흠모하던 자로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손님으로 모신 것뿐이오."
"뭣이라! 흑마방에서 본가를 위협할 목적으로 내 부인될 사람을 납치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거늘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요!"
금사익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벌컥 소리를 질렀다.
"납치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천하에 이름높은 무적세가의 소가주가 근거 없
는 소리를 해서 쓰겠는가! 만일 내가 그런 의도였다면 자네가 오늘 무사히 이
곳까지 올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나?"
"이, 이런……!"
적들이 전혀 당황하지 않고 길을 열었다는 것은 이미 기습을 예상했다는 말이
었고 황금평의 갈대보다 많은 흑마방의 무사들과 싸웠다면 실제로 어떤 결과
가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금사익이 반박하지 못하고 씨근거릴 때 봉래신장과 위사무가 의미심장한 눈길
을 나누더니 거의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크흐흐."
마침내 갈천위의 뜻을 읽은 것이다.
"손님으로 모셨든 납치를 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외다."
사태를 파악하고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입장을 바꾼 갈천위가 밉살스럽긴 해도
적개심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봉래신장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파국을 면하려는 마음은 피차 마찬가지 아니던가.
"하면 중요한 게 무엇인지 선배님께서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기꺼이 따르
겠습니다."
혈기 방장한 풋내기들과 달리 이미 자신의 뜻을 헤아린 것으로 보이는 봉래신
장을 상대하는 게 옳았고, 갈천위는 진심으로 이 난국을 타개할 방도를 찾고
싶었다.
"내 손녀가 표물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
"표사들을 죽이고 표물을 털었으니 그 일을 어쩌면 좋소? 흑마방이 기껏 표물
이나 노리는 집단이라면 누구라도 선뜻 믿지 못할 거외다."
답은 위사무가 일러준 꼴이었다.
갈천위는 이들 두 사람의 생각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천운이 아직
흑마방을 떠난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며 미리 생각해 뒀던 말을 꺼냈다.
이들이 듣기에 그럴 듯 하면 천하의 누구도 납득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것
이다.
흑마방의 존망을 결정할 천하여론의 시금석(試金石).
"정중히 손님을 모시라는 내 뜻을 수하들이 잘못 헤아린 게 오해의 발단이었
소. 해서, 무고한 표사들을 죽이고 귀한 손님에게 고초를 겪게 한 책임을 물
어 이미 마안기무전을 맡고 있던 염상호라는 자를 죽였고 그 목을 봉래도에
사죄의 의미로 보내기 위해 목합에 담아 두었소이다."
염상호가 흑마방에서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놀랍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한 소리였지만 좌중은 모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
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소 만 흑마방의 역사가 어언 육십 년이오. 일찍이 내 선친께
서 다섯 명의 수하들과 함께 기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주로 하신 일이 녹림도
의 일이었소. 내가 선친에게 방주의 자리를 물려받은 지 이십 년. 처음 삼 년
간은 나 역시 장사꾼의 보따리를 노리고 만만해 보이는 표행을 털었으니 사실
흑마방의 뿌리는 녹림도라 할 수 있는 거요. 표사를 죽이고 표물을 턴 녹림
도에게 목숨과 표물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갈천위는 말을 끊고 사군명을 바라보았다.
"내가 미리 준비한 것이 있는데 들어보고 미흡하다고 생각되면 무엇이든 요구
하게."
"……!"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 어리둥절하던 사군명이 이 순간만은 눈에서 빛을
발했다.
임시이긴 하나 봉래신장과 위사무까지 수하를 자청한 이유도 그가 표행의 책
임자이기 때문이었다.
"염상호가 독단으로 벌이긴 했으나 탄귀령과 태안촌에서 표행을 몰살시킨 것
도 모두 본 방의 책임이네. 또한, 자네의 일행 중 죽은 자가 여섯, 말 열 한
필과 마차가 부서졌고 표물은 내 손님이니 당연히 무사하네."
봉래신장과 위사무는 흥미 있는 표정이었고, 금사익과 설운교는 경멸하는 기
색이 역력했다.
진지한 사람은 두 명의 표사뿐.
"우선 희생자 한 사람당 금 오십 관을 내놓을 것이며 가족이 있는 자면 그 두
배를 내겠네. 말은 같은 종류로 세배를 배상하고 탄귀령과 태안촌에서 탈취
한 표물은 다섯 배를 내겠네. 또한, 마차나 수레를 포함해 손상된 물건도 역
시 다섯 배로 배상할 생각이네."
너무도 후한 조건이었다.
하나 사군명은 가타부타 표시하지 않았다.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나 저희 국주님께 방주님의 제의를 성심껏 전하겠습
니다."
문득, 스스로 어릿광대를 자처해 판을 벌인 서글픈 광대놀음에 시종 진지한
태도를 보이는 사군명이 고마웠는지 갈천위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던 얘기를
덧붙였다.
"세권표국이 이미 표국으로서는 천하제일을 다투는지 알고 있으나 넓은 천하
를 누비다보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많을 걸세. 본 방의 힘이 미치는 곳에서
는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약조도 함께 전해 주게."
다른 사람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표국을 대표한 사군명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명문거파에서 노략질을 할 리 없으니 표행에 장애가 되는 자들은 모두 흑마방
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실이 이러하니 표행
에 관한 한 중원천지에 흑마방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사군명은 엉겁결에 숙여지려는 고개를 바로 하고 정중히 말을 받았다.
"사람의 목숨을 무엇으로 대신하겠습니까만 방주께서 녹림도를 자처하시고 또
한, 표국와 녹림도간에는 나름의 원칙과 관례가 있으니 방주님의 제의를 본
표국의 국주께서도 가납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 생각한다니 다행이네, 자네가 애써주게."
사군명에게 다시 한 번 당부의 말을 던진 갈천위가 이번에는 금사익을 바라보
았다.
무슨 더러운 벌레를 보듯 두 눈에 가득한 멸시와 경멸.
하나 갈천위는 개의치 않았다.
"본 방과 무적세가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바. 하나 무림의 동도로서 천하에 다시없는 경사를 모른 척 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네. 해서, 이번 혼사를 축하하는 예물을 따로 준비했으니
부디 오해를 풀고 부친께 내 뜻을 잘 전해 주시게."
"흥! 본가의 혼사에 흑마방주가 예물을 보낸다니 가히 무림에 태평성대가 도
래한 모양이오."
일말의 경계나 적개심도 품을 가치가 없다고 여겼는지 금사익은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갈천위는 마치 속없는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프하하핫, 이를 말인가! 봉래도와 무적세가가 화합하고 본 방과 무적세가 사
이에 오해가 풀리면 그야말로 무림사에 유래가 없는 평화가 찾아오는 게지!"
순간, 봉래신장이 사군명에게 말을 건넸다.
"이보게, 사표사. 모든 일이 원만하게 정리된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사군명이라고 달리 볼일이 남았을 리가 없었다.
"표물을 되찾고 배상을 약속 받았으니 아무 문제없습니다. 이제는 북경까지
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일행의 우두머리, 사군명이 끝났다면 끝난 것이었다.
갈천위가 준비한 한 바탕 광대놀음은 기꺼이 장단을 맞추며 호응하는 두 명의
늙은이와 또 다른 차원에서 한몫 거든 한 명의 젊은이에 의해 소기의 성과를
십분 거두고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날 밤.
그냥 보낼 수 없다는 갈천위의 간곡한 만류를 한 잔 술로 달래고 굳이 기산을
내려오는 일행의 심중은 저마다 제각각 이었으나 어떤 의미로든 모두 가벼운
마음이었다.
재회의 기쁨이든, 무사함에 대한 감사든, 아니면 적의 초라한 실체를 파악한
오만한 즐거움이든…….
하나 전혀 편안하지 않은 두 사람, 금사익과 위사무.
금사익의 가슴에는 흑룡전에서 술잔을 건네던 갈천위가 감탄스러운 듯이 지껄
인 말이 비수가 되어 박혀있었다.
자기는 금천후에 비하면 한참 멀었으며 천하를 다스리려면 그 정도의 치밀함
은 있어야 된다는, 존경스럽다는 말과는 달리 어딘가 비아냥거리는 듯 들린
갈천위의 말.
세가에서 무적비찰이라는 집단을 거느리고 있음을 알기에 한 마디 반박도 못
하고 그저 오연하게 잔을 받기는 했지만 충격은 쉽게 가셔지지 않는 것이다.
그토록 달고 시원하게 마시던 우물 속에 알고 보니 온갖 더러운 벌레들이 득
실거리는 것을 발견한 듯한 충격.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세가에 추악한 이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금사익
의 고통이었다.
또 한 사람 위사무.
그는 점차 갈천위가 두려워지며 지금이라도 갈천위를 없애는 것이 천하에 후
환을 남기지 않는다 길이라는 생각에 문득문득 황금평으로 다시 올라가고 싶
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심력이 고갈될 지경이었다.
갈천위에게 새삼 무서운 면모를 발견하고 섬뜩한 느낌을 갖기는 봉래신장도
마찬가지였지만 봉래신장의 고향은 중원이 아니라 봉래도였다.
아마도 멀지 않은 미래, 그의 짐작대로 갈천위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날카
로운 발톱을 드러낸다 해도 작은 상처하나 입지 않을 저 멀리 바다건너 봉래
도.
위사무는 손녀들에게 둘러싸여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봉래신장이 부럽기도 하
고 밉살스럽기도 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실없는 소리나 한 마디 던지는 수밖에.
"허어, 선배님은 복도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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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도 있고 머리.암수도 있고..
앞날이 많이 기대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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