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원 위기 어린이집, 은행이 사들여 후원… 보육 취약 농촌에 희망
[‘지방 소멸’ 위기 극복]
상생 위한 ‘임팩트 금융’ 〈2〉
‘경영난’ 폐원 위기 청송 어린이집… 하나금융, 지자체 손잡고 매입-보수
KB금융, 소외 지역에 ‘작은 도서관’… 신한금융, 맞벌이 가정에 돌봄 지원
경북 청송군 파천면에 자리한 청송하나어린이집의 어린이들. 운영난으로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몰렸던 민간 어린이집이 청송군과 하나금융의 지원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재탄생했다. 청송=전영한 기자
“남편 직장 때문에 청송으로 오게 됐어요. 아이가 새 동네에 적응하기 힘들어할까 걱정이 컸는데, 어린이집 덕분에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감사한 일이에요.”
10일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소재 ‘청송하나어린이집’에서 만난 학부모 A 씨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되풀이했다. 그만큼 육아 부담을 크게 덜어준 집 근처 국공립 어린이집이 소중한 듯했다. A 씨는 첫째(만 2세)에 이어 둘째(만 0세)도 3월부터 여기로 등원시키고 있다.
원래 청송하나어린이집은 개인이 소유한 민간 기관이었으나 아동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며 경영난을 겪다 결국 폐원 위기에 내몰렸다. 청송군 입장에선 몇 남지 않은 어린이집이 폐원되는 일을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고심하던 청송군에 마침 하나금융그룹이 손을 내밀었고 두 기관은 함께 어린이집을 직접 매입하기로 했다. 민간 어린이집을 사들인 뒤 국공립으로 전환하자는 발상이었다. 하나금융은 매입과 리모델링 작업을 돕는 동시에 비용도 지원했다. 이렇게 민관 협력으로 2019년 12월 청송군의 네 번째 국공립 어린이집이 탄생하게 됐다. 미취학 아동을 둔 부모들은 크게 환영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은 결국 지방 소멸을 낳을 수밖에 없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지방 소멸 극복을 위한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시중 은행들은 어린이집과 도서관 등을 건립하며 아동 돌봄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은행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임팩트 금융’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 지방 보육 사각지대 메우는 금융권
현재 청송군에는 1개의 읍(청송읍)과 7개의 면(주왕산·부남·현동·현서·안덕·파천·진보면)이 있다. 군내 9곳의 어린이집이 있지만 주왕산면과 부남면에는 단 한 곳도 없다. 어린이집 하나하나가 지자체의 보육 생태계에서 ‘최후의 보루’ 역할을 맡고 있다는 얘기다. 황은숙 청송하나어린이집 원장은 “주왕산면과 부남면에서 오는 어머니들이 ‘여기 아니면 아이를 보낼 데가 없다’고 말씀하신다”며 “차량으로 아이들 등하원에만 걸리는 시간이 네 시간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청송군처럼 보육 환경이 취약한 지역을 중심으로 ‘100호 어린이집 건립 프로젝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7월 말까지 어린이집 총 60곳을 개원했으며 2023년까지 40곳을 추가로 완공할 계획이다. 청송군 주민행복과 관계자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해야 보육 경쟁력이 높아진다”며 “금융기관의 후원으로 양질의 공간이 탄생해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황 원장은 “어린이집이 있어 맘 편히 맞벌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모님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사실 청송군처럼 어린이집의 폐원을 막는 사례는 드물다.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어린이집은 속절없이 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국 어린이집은 3만923곳으로 4년 전인 2018년(3만9171곳) 대비 약 21.1% 줄었다. 서울, 수도권, 지방 구분할 것 없이 모든 지역에서 어린이집 폐원이 줄을 잇고 있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영유아 가정에 돌아가며 ‘아이 낳기 힘든 환경’을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보육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에서 어린이집 한 곳이 문을 닫으면 피해는 더 막대할 수밖에 없다.
● 문화활동 격차 줄이고, 맞벌이 가정 자녀 돌봄도 지원
경기 성남시 중원구 ‘중원청소년작은도서관’. 낙후된 도서관이 2020년 KB금융의 지원으로 새롭게 변신해 쾌적한 독서 공간과 다양한 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성남=신원건 기자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 문화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활동들도 이어지고 있다. KB금융그룹은 ‘KB 작은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사회공헌 사업을 펼친다.
책을 접하기 힘든 소외지역 주민들에게 도서관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예를 들어 경기 성남시 중원구 ‘중원청소년작은도서관’은 2020년 초 KB금융의 도움을 받아 새 옷을 입었다. 낡은 인테리어를 바꾸고 천장 에어컨도 설치해 편의성을 높였다. ‘글마루방’이라는 마루를 따로 마련해 아이들의 독서 공간을 쾌적하게 만들었다. 각종 교육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한순원 중원청소년작은도서관 담당자는 “리모델링 이후 설문조사를 진행해 보니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며 “그림책, 미디어아트, 봉사활동 등으로 프로그램이 다양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딸과 함께 방문한 김하진 씨(39)는 “리모델링 이후에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 훨씬 늘어난 것 같다”며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수강 신청이 조기 마감되는 프로그램도 제법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까지 KB금융은 108개 지역에 작은도서관을 건립했다. 올해에도 도서관 8곳을 개관하기 위해 지난달까지 지자체들의 참여 신청을 받았다.
신한금융지주도 맞벌이 가정 초등학교 자녀에 대한 돌봄 지원 서비스 ‘신한 꿈도담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8년부터 여성가족부와 업무협약을 맺은 뒤 전국 각지의 공동육아나눔터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다. 꿈도담터는 친환경 기자재로 만든 돌봄 공간에서 아이의 정서 발달에 필요한 교구와 장난감을 지원한다. 아동 눈높이 수준의 금융교육과 같은 특화된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신한금융은 2월까지 총 149곳의 꿈도담터를 완공했으며, 올해까지 제주를 포함해 200곳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시중은행의 자산 규모를 고려하면 도서관, 어린이집 건립을 지원하는 게 지나친 부담은 아닐 것”이라며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는 사회공헌 사례인 만큼 지속적인 지원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송=강우석 기자, 성남=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