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반대로 야당 없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원회 문턱을 넘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소위 통과 2주 만에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다뤄졌지만 어떤 진전도 없었다. 여야는 극심한 이견 대립으로 법안 심의는 시작하지도 못했고, 다음 회의 일정 또한 잡지 못한 채 헤어졌다.
소위 2주 만에 전체회의…5시간 내내 의사진행발언만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불참 속에 더불어민주당과 친여 성향의 열린민주당 소속 위원들만의 찬성으로 문체위 소위를 통과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10일 문체위 전체 회의에 상정됐다.
문체위 민주당 간사인 박정 의원의 결과보고 후 법안 심의가 예정돼 있었지만, 이어진 의사진행발언 공방으로 인해 5시간가량 이견만 주고받느라 심사는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법안 내용에 반발해 지난 소위에 불참했던 국민의힘 위원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보도 피해자의 입증책임 요건을 지나치게 완화한 나머지 언론사의 취재행위를 위축,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행법으로도 피해구제가 가능함에도 근거 없는 징벌적손해배상 기준을 가져와 법안이 모호하게 작성됐다며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입증책임의 전환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사법체계에서 있을 수 없는, 문명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위헌 조항이 삽입돼 있다"며 "비례원칙에 따라 당연히 언론사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언론 환경의 변화, 포털의 지배, 1인 미디어와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언론사 등 어떻게 정확한 언론과 부정확한 언론보도를 구분해 낼 것이냐에 대해 봐야 하는데 이렇게 단정적으로 보시면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소속 위원들은 가짜뉴스로 인한 부당한 피해에 비해 여전히 손해배상액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며 징벌적손배제의 도입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손배제 적용을 위한 근거 규정이 명확하게 마련됨으로써 언론사와 직접 맞상대하기 어려운 일반 국민을 도왔을 뿐, 오히려 권력자의 법 활용 요건은 더 까다로워졌으며, 기자 개인의 부담 또한 덜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설사 언론이 오보를 했더라도 공적 이익에 관한 것으로 진실하다고 믿는 데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책임을 안진다는 것"이라며 "가짜뉴스 입증을 국민과 언론인 사이에서 국민이 일반소송보다는 조금 편하게 하시라고 해서 고의추정 규정을 둔 것이지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보도에 대해서 그런 고의추정 사유가 있다고 해서 그게 가짜뉴스가 되고 손해배상 책임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야는 유사한 주장을 거듭 되풀이했고, 다음 일정을 잡지 못한 채 전체회의를 마쳤다.
여전한 쟁점들…고의·중과실-입증 책임-매출액 기준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징벌적손해배상 제도'의 도입 여부와, 이의 적용 기준이 될 '고의·중과실'이 있었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이다.
개정안에는 △취재 과정에서의 법률 위반 △정정보도, 정정보도청구의 미표시 △정정보도청구 기사, 정정보도·추후보도·열람차단 결정 후 조치 전 기사의 무단 보도 △계속·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 △본문과 다른 제목 왜곡 기사 △분문과 다른 사진·삽화·영상이 담긴 기사 등이 고의·중과실의 기준으로 담겼다.
이에 대해 언론단체와 시민단체에서는 합리적이지 못하거나 추상적인 기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나 보도 내용의 본질과 관계없는 위법행위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고의·중과실에 해당한다고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용상으로도 개정안에 해당하는 행위가 이뤄졌을 경우 충분히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한 데다 언론중재법 또한 판단 재량을 재판부에 맡기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하나의 쟁점은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이다.
6개 항목에 대해서 원고(피해자)가 어느 입증을 하면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판사가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자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한 최종 입증 책임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오영우 문체부 차관과 이상헌 문체위 수석전문위원에게 "고의·중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오 차관은 "명확한 것은 추정을 하도록 돼 있다. 입증 책임 전환문제는 명시적으로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법관께서 판단해주셔야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 수석전문위원은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이기 때문에 추정에 따른 최종적인 입증 책임은 언론사에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정부 측 최고책임자와 입법부 상임위 최고 전문가의 의견이 다소 다르게 표명된 것이다. 이에 김 의원은 "지금 의결을 해놓고도 보는 사람마다 다르고, 여당 의원들조차도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임증 책임을 언론사가 지는 부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며 "제30조 3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고의·중과실을 판단하는 판사가 세부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도 "언론사가 기자가 책임이 있음을, 과실과 중대한 착오가 있음을 일반피해자가 국민들이 무슨 방법으로 알 수 있겠느냐"며 "'입증책임을 쉽게 하자', 어찌 보면 '원고에게 그동안 100% 주던 것을 한 7대3 정도로 최소한 3은 피고인 언론사에게 쥐어주자'고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배상액의 하한을 매출액의 1만분의 1로 정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손해배상이라는 것은 정신적, 경제적, 물질적 피해에 대한 배상이어야 하는데 언론사의 매출규모가 그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이를 강제한 이유는 언론에 '맛 좀 봐라'며 언론을 혼내주고 징벌해야 한다는 입법자의 의자가 반영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박정 의원은 "90% 이상의 언론사 매출액이 10억원 미만이기 때문에 5천만원, 1억원 등 정액으로 했을 경우 상당한 피해를 볼 것"이라며 "또 다른 이유는 영향력이 있는 언론매체가 허위·조작 보도를 했을 때는 피해가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비례성의 원칙에 따르자는 것이다. 메이저 신문사의 매출이 1천억원대인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철회 결의문 채택한 언론단체들…
정의당도 "'개혁'만 붙이면 좋은 법 되나" 반대
한국기자협회와 관훈클럽,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6개 단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언론인 서명 운동에 나섰다.
이들 단체는 △국회 문체위 및 본회의 회부 중단 △규제 근거 입법사례 표명 △위헌성 여부에 대한 헌법학자 의견 청취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표명 △여야 대선주자들의 찬반 입장 표명 및 언론 자유 수호를 위한 정책 대안 제시 등을 함께 요구했다.
여당인 민주당이 내년도 대선을 앞두고 정권 재창출을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법안 처리를 서두른다는 일각의 지적을 고려한 것이다.
김승수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민주당 위원들을 향해 "이 법안을 꼭 8월에 처리해야 될 절체절명의 이유가 있느냐"며 "국민공청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법체계를 만드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냐"고 질의했다. 이에 박정 의원은 "오래 끌었으니까"라고 답했다. 민주당과 함께 범진보 진영으로 분류되는 정의당이지만 이번 개정안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변인은 "언론중재법은 평범한 시민이 언론보도로 인해 받게 될 피해를 막는 일에는 무기력한 반면, 우리 사회의 주요 권력 집단에겐 자신들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막을 목적으로 악용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며 "나아가 헌법에 보장된 표현 및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우려 역시 크다"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언론 중재법을 개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무조건 '개혁이라는 레떼르(letter·상표)를 붙이면 악법도 좋은 법이 된다'는 식의 민주당의 오만은 시민의 개혁의지를 꺾고 개혁을 하찮은 권력 추구행위로 변질시킨다"며 "이 법이 그대로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반대할 것임을 밝힌다"고 말했다.>CBS노컷뉴스 이준규 기자
출처 : 정의당까지 반대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왜 논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