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세계
오제혁
둥그런 테두리 안 적당한 곳에 점을 한두 개 찍으면 사람들은 그걸 눈으로 봐
그 눈은 어디를 보게 될까?
그 눈은 자기를 보는 눈을 보는 것 같아
점이 눈이 될 수 있고 점이 눈을 볼 수 있다는 재밌는 상상을 한 후로
찍혀 있는 점 주변에 테두리를 그리기도 했어 점은 그렇게도 눈이 되었고
그 눈은 자기를 보는 눈을 보는 것 같아
내 몸에도 점이 많아
점들은 각각 다양하게 불려
어떤 점은 쌍으로
어떤 점은 복으로
어떤 점은 흉으로
어떤 점은 환부로…
누군가 이름을 붙여준 것도 있지
살갗에 둥그런 테두리를 그리면
무연히 앞을 보는 골똘한 눈망울 같고
그래서 표정 없는 얼굴 같고 결국엔 심연 같고
그 안엔 죽은 역사라도 담겨 있을지 몰라 혹은 우리가 모를 나이라거나
그리고 또 무엇을 담게 될까?
그 눈은 자기를 보는 눈을 담는 것 같아
우리 같은 날을 추억하면서
아름다웠던 그때
라고 말하면 너는 토가 쏠린다고 하고
실은 참 아름다웠을 수도 있어
라고도 하고, 말하자면 기억은 알 수 없는 문장 같은 것
낡은 일기장 귀퉁이의 낙서 같은 것
무지의 세계에 무늬는 내가 그리는 것
그러나 어떤 무늬는 점처럼 돋기도 하고
그 곁에 나는 테두리 같은 무늬를 그리고
그 눈은 자기를 보는 눈을 보는 것 같아서
내내 바라보아야 하지 깜빡이지도 않는 눈을
자꾸만 질끈 깜빡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