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十章 표행성료( 行盛了)
①
한낮의 태양이 저절로 그늘을 찾게 만드는 오후.
육안성 교외 천반산(千盤山) 어귀에 펼쳐진 넓은 초원.
인근 마을 사람들이 녹야원(綠野園)이라 부르는 초원에는 햇볕을 가릴 나무
한 그루 없건만, 무수한 무림인이 들끓고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구룡회에 속한 장로들을 따라 불원천리 쉬지 않고 달려온 구대
문파의 제자들이었다.
강호 행을 하며 친분을 쌓은 자들은 문파를 가리지 않고 뒤섞여 안부를 나누
고 자신의 사형제를 소개한다고 분주했다.
그런가 하면 한 구석에서는 새로 익힌 자파의 절예를 자랑하는 자 주위에서
이러저러한 평을 하며 무공을 논하는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들에겐 이렇게 대대적으로 다른 문파의 동도들과 회동하는 일
자체가 아주 드문 기회였다.
무적세가의 군림 백년동안 전 중원을 들썩이게 할 만한 문제는 거의 없었다.
문파간의 다툼이나 사적인 은원이야 끊이지 않았지만 전무림의 이름을 걸고
천하동도의 힘을 모아야 할 만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구대문파의 제자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는 일도 드물었으니 지금
천반산의 분위기는 마치 무림인의 축제라도 벌어진 양 흥겹고 시끌벅적했다.
물론, 오늘의 모임이 무슨 경사스러운 일을 준비하고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무림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세권표국의 참변과 관계된 일이요,
더러 눈치 빠른 자들은 소문만 무성한 봉래도에서 왔다는 인물과 연결된 일
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기도 했으나 그 정도의 긴장은 오히려 흥분과 기대
를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군웅들은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각기 문파의 제자들을 이끌고 온 장로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벌써 아침 무렵에 천반산 기슭의 도관으로 회동하여 들어간 각파의 장문인들
과 오늘 회동의 주재자로 알려진 철검금룡 석백송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
는 까닭이었다.
그들이 서서히 시장기를 느끼며 따가운 뙤약볕이 부담스러워질 때, 녹야원 입
구 쪽에 있던 무리들이 환성을 질렀다.
"허어, 이게 웬 음식이오!"
"거 참, 기다리던 바요……!"
"프하하하! 세권표국의 이름이 높은 것이 뛰어난 표사들이 깔끔하게 표행을
처리하는 것뿐 아니라 경우 바른 처사 때문이라 더니, 과연 맞는 말이었구먼!
안쪽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할 때 입구에서부터 좌우로 갈라지
며 길이 열리더니 세권표국의 표사들이 다섯 대의 수레에 술과 음식을 잔뜩
싣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빠르면 삼일 전부터 도착해 군웅을 기다리고 있던 표사들이 석백송의
지시에 따라 육안성에서 음식을 준비해온 것이다.
장내의 인물들 중 아는 얼굴이 적지 않은 표사들은 반갑게 인사하는 자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답하며 녹야원 중앙에 음식을 부리기 시작했다.
문파의 규율에 맞게 음식을 가려서 준비한 그들의 치밀함에 중인이 감탄할 때
, 대유권 구지승이 수레위로 올라갔다.
"본 표국의 국주께서 불원천리 강호의 의리를 세우기 위해 달려오신 각파의
영웅들을 대접하라는 명에 따라 소찬이나마 준비했소이다!"
"아무렴, 화산(華山)에서 여기까지 이틀만에 달려오느라 땀께나 쏟았소이다
그려."
"무슨 소리요, 화산이야 지척이지. 우리 점창파(點蒼派)가 사천에 있다는 걸
모르시오? 그 정도로 생색낼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시오!"
"하하하……. 그래 모두들 수고했으니 조용히 좀 합시다. 인사가 끝나야 뭘
먹든지 마시든지 할거 아니오!"
좌중에서 허물없는 소리가 중구난방으로 터져 나왔다.
구지승이 손을 들어 좌중을 진정시킨 후 말을 이었다.
"방금 종남(終南)의 유하비권(柔河秘拳) 진대협(秦大俠)의 말씀은 이 사람에
게 잔소리 그만 하라는 뜻인 듯 한데 말씀에 따르겠소이다. 오늘은 소찬이나
언제고 항주에 오시면 세권표국에서 손님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똑똑히 보여드
리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말을 맺겠소이다!"
구대문파의 제자들은 저마다 즐겁게 환호하며 술과 음식을 나누기 시작했다.
드넓은 초원 위에서 천여 명의 무림인이 담소를 나누며 먹고 마시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고, 가히 무림성회가 따로 없었다.
하나 지금 녹야원과 멀지 않은 도관의 분위기는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일이 그렇다면 장문인의 윤허 없이는 곤란하오!"
공동( )의 천허자(天虛子)가 난색을 표하자 화산의 능파검(能破劍)이 바로
나섰다.
"흑마방을 치자는 게 아니라 일단 표물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하자는 거요. 이
번 일로 흑마방의 양보를 받아낸다면 구대문파의 위상은 이전과 다르게 된다
는 걸 모르시오?"
"말씀은 알겠소 만 결국 일전이 벌어질 것이 뻔한데 뒷일을 어찌 감당하려고
하시오. 흑마방을 치는 것도 좋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외다. 각파의 장문인은
물론이요 무적세가의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지 않소."
천허자는 선뜻 승낙할 기세가 아니었다.
"허락이라니? 불의한 무리를 응징하는 일에 무적세가의 허락이 왜 필요하단
말이오. 게다가 이번 일은 표물을 되찾자는 거외다, 표물이오!"
평소 활달하고 거침없는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능파검의 말은 호기에 넘
쳤다.
"글세 그 표물을 탈취한 자들이 악불당으로 알고 왔으며 장문인께도 그렇게
말씀드렸으니 하는 소리 아닙니까? 능파검께서는 화산 장문인께 흑마방을 친
다고 말씀하셨소?"
벌써 얘기가 상당히 진행된지라 의견은 진작에 둘로 갈렸고 천허자와 능파검
은 각기 강온양파를 대변하는 입장이었다.
처음에 상황을 설명하고 시종일관 듣기만 하던 혜명이 나선 것은 그때였다.
"두 분의 말씀이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좌중의 눈길이 혜명에게 모아졌다.
"최소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으면 유서 깊은 무림의 명문거파의
제자로 더 없이 부끄러운 일이고 또한, 대세와 역량을 파악하지 못하고 함부
로 일을 크게 벌이는 것도 현명한 일이 아니겠지요. 하니, 일단 이번 일의 당
사자이신 철검금룡 석백송 대협의 얘기를 들어보고 가부간에 결정하도록 합시
다."
구룡회의 회원이 아닌데다 도움을 청하는 입장이라 발언할 기회를 얻지 못하
고 있던 석백송이 좌중의 승낙을 얻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강호의 의리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신 각파 장로제위께 감사드
리오."
석백송의 정중한 포권에 모두들 화답했다.
"이번 일에 흑마방만 개입이 돼있다면 차라리 간단 하외다."
좌중은 술렁였다.
구대문파가 혈맹을 맺고 전력을 다해도 승산이 없는 흑마방이 간단한 존재라
니.
석백송이 지략과 무공이 뛰어난 일대 호협이요, 치밀한 장사꾼이라는 강호의
소문도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자가 늘어갈 때, 석백송이 뜻밖의 사실
을 털어놓았다.
"사실 말씀드리지 않은 부분이 있소이다. 처음부터 밝히지 않은 것은 혜명사
제가 말씀드린 것만을 알고 계시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이니
해량해 주시길……."
좌중이 일순 숙연해지면 모두 석백송의 입만 바라보았다.
"탄귀령과 태안촌에서 탈취 당한 표물은 사실 이목을 속이기 위한 미끼에 지
나지 않소이다. 진짜 표물은 얼마전 안경성 무근에 대규모로 집결한 흑마방의
무리들이 탈취해간 것으로 보이는데……."
강남북 총타와 기산에서까지 고수들이 동원됐다는 소문은 그들도 알고 있었기
에 긴장이 더욱 고조되었다.
대체 무슨 표물이란 말인가…….
"진짜 표물은 무적세가로 시집가는 봉래도의 군주외다!"
"뭐요! 봉래도의 군주?"
"하면, 무저세가와 봉래도가 화친을 맺는다는 게 사실이었단 말인가? 허어…
…."
"갈천위가 천하를 노리는구나……!"
생긴 게 다르듯 같은 소식에도 좌중은 저마다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달랐다.
하나 변하지 않는 공통점은 모두 경악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모르고 떠든
다는 사실이었다.
석백송은 좌중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할 말을 이었다.
"만일 표물을 되찾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닥칠지 감히 입에 올리기가 두려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오. 이는 비단 본 표국의 흥망과 관계된 일이 아니라는 것
을 충분히 헤아리실 줄 믿소이다."
"무적세가는, 무적세가에서는 가만히 있는 단 말이오?"
허둥대며 무적세가를 연발하는 사람은 천허자였지만 모두의 마음이 다르지 않
았다.
"확언 할 수는 없소이다만, 무적세가에서는 손을 쓰지 않을 것이며 손을 쓴다
해도 형식적인 수준일거라는 게 내 판단이외다. 그 이유는 내가 감히 말할
수 없고 여러분이 각자 알아서 헤아리시오."
"……!"
이유를 입에 담지 못하는 석백송의 심중을 십분 이해하기에 좌중은 무거운 침
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혜명이 나선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러니 더욱 우리라도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표물을 되찾지 못한다 해도 최
소한 흑마방을 압박함으로 무적세가의 움직임을 촉구하지 않으면 전 중원은
봉래도와 존망을 건 유래 없는 혈전을 치르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거센 충격이 사소한 입장차이를 날려 버린 때문일까.
서로의 눈빛과 숨결을 통해 좌중의 분위기가 한가지로 통일되어 가는 것이 생
생히 전달되었다.
"만에 하나 봉래도와 전면전이 벌어지더라도 우리의 행동은 의미가 있으며 중
원에 무적세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는 계기가 되리라 믿
습니다!"
무적세가는 군림의 가문.
중원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시기에 제 각각의 사정과 입장을 가지고 각
지에 산재한 무림방파와 기인이사들을 모두 모이리라고 장담하기는 힘들었다.
하나 석백송이 그렇듯 각지에서 여러 가지로 활동하는 구대문파의 제자들이
한 둘이 아니오, 그들과 교분을 맺은 개인과 방파가 또한 줄줄이 엮여있다고
할 때, 구대문파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어느 가문이 천하제일가요, 누가 군림의 영예를 누리든 중원천하는 내 힘으로
지키겠다는 충정의 증거.
비록 무적세가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명백한 대의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밖에서 환호작약하는 제자들의 소리가 좌중의 침묵을 조롱하듯 활기차게 들려
올 때, 천허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물론 나와 함께 온 백 팔십 명의 공동파 제자들은 세권표국의 표물을
찾는데 사활을 걸겠소! 이는 허락을 맡고 말고 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본
파의 장문인도 이해하실 거요!"
"화산은 이미 입장을 밝혔으니 달라질게 없소!"
"누가 점창을 빼고 천하대의를 논하겠소? 점창은 기꺼이 선두에 서겠소!"
"……."
하나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구대문파 장로들의 의기는 이제 막 문파에 입
문한 청년제자들에 못지 않게 뜨겁고 순결했다.
잠시 감격의 눈길을 나눈 혜명과 석백송을 마지막으로 일어서자 낡은 도관 안
에는 터질 듯 맹렬한 열기가 넘쳤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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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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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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