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엽서
이은규
그런데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을 떠올리다 잠이 들었다 까무룩, 꿈속에서 한 사람은 정성을 다해
양발을 자른 다음 그제야 편히 누웠고
아무것도 모르는 양발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돌아다녔다
집에서 집 앞으로
아는 동네에서 모르는 동네로
우리집이 아니라
내 집이라고 하는 거야, 라고 교정해주던
멀리있는 남의 집에서 남의 집 앞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물음표 같았다, 잠든 사람의 굽은 등은
우리나라에서 남의 나라로
한 발자국을 사이에 두고
국경이 나눠지는 곳으로
이렇게 된 거 마음껏 돌아다니자 결심이라도 한 걸까 추측했지만 양발의 마음에 관한 것은 양발
에게 물어봐야 안다
어쩌면 그도 잘 알지 못할 수 있으니까, 무슨 상관
비가 오는 어느 거리를 걷다 지쳤는지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도 좋겠네, 다 만나지 않아도 좋겠네 들리지도 않을 노래를 잘도 불렀다
그런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동안, 공기처럼 흩어져 버려서 그렇게 많은 말들을 적어 보냈나 빈티지
엽서의 마지막 인사는 늘 동일했고
마음을 듬뿍 담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음을 떠올리며 눈을 뜨면
장화도 없이 걸어 다닌 잘못으로 발이 쪼글쪼글
마음을 담아, 라는 마지막 인사를 잘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