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3번째 편지 - 을씨년스럽다
지금을 가을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을 같지 않은 것이 요즘 날씨입니다. 그렇다고 겨울이라고 하기에도 아직은 좀 빠른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을과 겨울 사이>라는 간절기를 만들었습니다. 2023년 47번째부터 50번째 주까지 4주간, 2023.11.20부터 12.17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니 이번 주가 <가을과 겨울 사이>의 마지막 주입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의 날씨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을씨년스럽다'입니다. '을씨년스럽다'를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찾으면 '날씨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요즘 날씨에 딱입니다.
그러면 '을씨년스럽다'의 유래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을씨년스럽다'는 1905년 을사(乙巳) 년에 있었던 한국사의 치욕적인 사건 <을사보호조약>에서 유래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된 우리나라의 슬픔, 쓸쓸함, 경제적 가난 등을 표현하는 말로 '을사년스럽다'에서 '을씨년스럽다'로 변화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이해조의 「빈상설」(1908년)이라는 신소설에 '졍길이가 만장 갓흔 져의 집은 을사년시러워 꿈에도 가기 실코······'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을사년시럽다’는 ‘적막하고 쓸쓸하다’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졍길이가 만장 갓흔 져의 집은 을사년시러워 꿈에도 가기 실코······'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ChatGPT에 물었더니 "정길이(사람 이름)가 만장(남자 상복)을 쓴 저(저자 자신)의 집은 을사년스러워 꿈에도 가기 싫어."라고 번역해 주었습니다.
인터넷 글은 이어 "1920년 판 '조선어사전'과 1938년 판 '조선어사전'에 '을사년스럽다'가 '을시년스럽다'로 바꿔 표기되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을사년스럽다'가 '을시년스럽다'로 바뀌었고, 다시 '을씨년스럽다'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을사보호조약은 1905년에 맺어졌고, 이해조의 신소설 <빈상설>은 1908년에 쓰였습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누군가가 1905년에 있었던 <을사보호조약>에 대해 분노하여 '을사년스럽다'는 조어를 만들었고 이것이 일반에 널리 회자되어 그로부터 불과 3년 만에 신소설에 등장하였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요즘처럼 SNS가 있던 시절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전에도 '을씨년스럽다'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인터넷에 제기되어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재야 선비 송남(松南) 조재삼(趙在三·1808~1866)이 기록한 <송남잡지>에 '을씨년스럽다'라는 표현의 어원이 등장하는데, “세상에서 을사년(乙巳年)은 흉하다고 두려워하는 까닭에 '생전 낙이 없는 것'을 ‘을씨년스럽다’고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맞는지 다시 Chat GPT에 물었더니 이렇게 답변합니다.
"송남잡지에서 '을씨년스럽다'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춘향전의 춘향이 옥에 갇힌 시기를 을사년(乙巳年)으로 기술하면서 사용되었습니다."
점입가경입니다. '을씨년스럽다'의 어원을 공부하다 보니 춘향전까지 닿았습니다. 춘향전은 구전문학이라 작성 연대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조선 중엽 17세기 이후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1600년부터 1900년까지 <을사년>은 5번 있었습니다. 1605년, 1665년, 1725년, 1785년, 1845년입니다. 이중 어느 한 해가 춘향이가 투옥된 해일 것입니다. 아마도 1665년, 1725년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무엇 하러 이런 짓을 하냐고요. 을씨년스러운 기분을 좀 떨쳐버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날씨만 '을씨년스러운' 것이 아니라 제 기분도 '을씨년스럽'습니다.
ChatGPT에 물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일신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의 대답입니다.
"1. 환경 변화: 방 안의 조명을 밝게 하거나,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2. 야외 활동: 산책, 하이킹, 자전거 타기 등 가벼운 운동은 몸과 마음에 활력을 줄 수 있습니다. 3. 취미 활동: 음악 듣기, 그림 그리기, 요리하기 등 자신이 즐기는 활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4. 사회적 교류: 친구나 가족과의 대화나 만남은 우울한 기분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5. 긍정적 사고: 감사 일기를 쓰는 것처럼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6. 휴식과 수면: 일정한 수면 스케줄을 유지하고, 편안한 수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두 아는 내용이지만 오늘 한두 가지 시도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을씨년스러운 것은 날씨나 제 기분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 정치 상황 모두 을씨년스러운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기분도 혹시 을씨년스러운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12.11.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
첫댓글 새로운 난말의 글 잘보았습니다.
가을과 겨울의 중간 계절 비가내리는 요즈음 날씨에 건강 에유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