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리모델링
늘푸른언덕
하늘의 황제로 군림하는 솔개의 수명이 7~80년인데 (주: 실제로는 2~30년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40살 정도가 되면 부리가 지나치게 길게 되어 구부러지고 발톱은 무뎌지며 깃털은 커다랗게 헝클어져 사냥은 커녕 제 몸을 가누는 일조차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이때 솔개는 두 가지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하나는 대충 그렇게 살면서 죽어 가거나 다른 하나는 깊은 바위산으로 올라가 둥지를 틀고 130여 일간에 걸친 혹독한 수련을 통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길어지고 무뎌진 부리를 바위에 마구 쪼아서 아예 없어지게 한 다음 천천히 새 부리가 돋아나길 참고 기다리며 그렇게 깨끗하고 강한 새 부리를 얻고 난 뒤 그 부리로 다시 무디어진 발톱을 마구 뽑아 새 발톱이 나게 만들며 이 과정이 끝나면 다음으로 무겁게 부풀어 있는 깃털을 부리로 모조리 뽑아 새롭고 가벼운 깃털을 만들어 새롭게 태어나 남은 3~40년을 다시 하늘을 지배하며 산다는 우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변화와 혁신’이란 주제 강연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구성된 현실성이 떨어지는 허구(虛構)입니다만 이 스토리는 우리들의 삶의 여정이나 기업 경영과 같이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조직에 안성맞춤으로 부합하는 스토리텔링 소재로 유명합니다.
연말이 다가오니 그 동안 미루어왔던 모임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일 년 전, 어느 동창회에서 경험한 인상적인 일화 하나가 생각납니다.
나이 60이 지나 동창회를 찾은 친구들 모습의 면면을 보면 거의 대부분 늙수그레한 얼굴에 복장들도 편안한 일상복을 하고 나타나 반갑게 친구들의 손을 잡습니다. 그 잡은 손에는 정겨움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사실 그 이면에는 한 때의 사회의 중추적 역할에서 멀어져 이제는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여 소외된 입장에 처한 외로운 사람들이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는 따뜻한 둥지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같은 무채색의 색깔로 수수하게 차려 입은 공동체 같은 집단 속에서 마치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한 친구가 유독 시선에 들어옵니다. 누가 봐도 우리보다 훨씬 젊어 보입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까이 다가가 가만히 그 비결을 파헤쳐 보기 시작합니다.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눈썹 문신입니다. 멀리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숯덩이 같던 짙은 눈썹은 기막히게 제작된 인공 눈썹이었습니다. 기술도 뛰어나 자세히 보지 않으면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또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 나이에 그 흔한 새치 하나 없는 검은 머리의 단정한 헤어스타일입니다.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별도로 특별 헤어 관리를 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이쯤 되면 인생의 훈장처럼 하나 둘씩 생겨난 주름살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고. 절대적 고품격 피부가 그렇지 못한 우리를 향해 단연 상대적 우위를 자랑질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 본 순간 약간의 심리적 거부감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만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은 진심입니다.
그날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듯한 그 친구를 부러워한 나의 솔직한 내면을 좀 더 정확히 따져보자면 그것은 젊음을 유지하려는 그 친구의 남다른 마인드였습니다. 나이를 잊고 젊게 살고자 하는 친구의 삶의 철학이 매력적으로 돋보였다는 게 더 맞는 표현입니다.
그 친구를 보며 오늘 서두에서 인용한 솔개의 우화가 연상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찬찬히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인생 나이 60이 지나면 보통의 우리들은 젊은 시절 열정과 야망으로 달려 오던 자신의 일들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중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또 인생의 나이 60이 지나고 은퇴할 나이를 바라보게 되면 한동안 집중 받았던 시선들은 연극 무대의 조명처럼 하나 둘씩 꺼져 가고 점차 그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자신도 자신감이 급락하면서 자기관리에 소홀하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대체로 이때가 되면 정신적 영향 때문인지 신체적으로 급노화하기 시작하며 이어지는 정신적 위기가 함께 찾아 오기 십상입니다.
물론 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김난도 교수팀의 트렌드 시리즈 중 ‘트렌드 코리아 2020’의 주요 키워드 중에 하나로 ‘오팔 세대’가 있습니다. 이 키워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한 5060 액티브 시니어 소비자들이 뽐내는 다채로운 행보가 모든 보석의 색을 담고 있는 오팔 보석의 색을 닮았다는 의미에서 명명된 것으로 소위 ‘신중년’이란 이름으로 대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외모와 생각까지 새롭게 바꾸려는 그들의 태도를 언젠가 제 블로그에서 삶의 리모델링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30년간을 해운인으로 살다가 지난 3년간은 나의 정체성을 크게 전환하여 건설업에 종사하며 건설인으로 새롭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건설업에서 걸음마를 배우며 건설업의 두 가지의 매력을 발견합니다.
그중 하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산업’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지금 보다 더 나은 현재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전자를 일컬어 ‘신축공사’라고 하며 후자인 지금보다 더 나은 현재를 창조하는 일을 일컬어 업계에서 ‘리모델링 공사’라고 명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리모델링이란 말 그대로 건축물이나 기계나 가구 같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노후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기능 향상 등을 위하여 대수선하거나 일부 증축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신체도 인생 백세를 살아가는 동안 일부 유전적인 영향도 있겠으나 대개는 그 소모의 정도와 관리 여하에 따라 일정 기간이 되면 폐기 처분할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 솔개의 선택처럼 새롭게 수련을 통하여 강해지든 아니면 의학과 과학의 힘을 빌리던 리모델링이란 과정을 통해 새롭게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리모델링이 건축이나 신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살면서 굳어져 버린 우리의 고질적인 습관이나 사고방식까지도 확대하여 적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넓은 인생의 관점에서 보면 인생 100세를 산다고 가정했을 때 각자 처한 인생의 나이가 다르니 처한 상황도 다르겠지만 삶의 중간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꿈을 재정비하며, 고질적인 습관을 돌아보고 살아가는 방식과 사고방식을 점검하고, 필요하면 대대적인 수술도 하고 리모델링을 통한 업그레이드도 필요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생각의 외연을 우리의 믿음인 영적인 영역으로 확장해도 같은 이론이 성립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영역도 신체 기능이나 삶의 영역과 같이 처음 태동하여 성장하는 성장기를 갖게 됩니다.
믿음의 성장 속도는 개인마다 또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제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시간이 나남에 따라 성장을 통하여 어느 정도 성숙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더욱 깊이 있는 다음 단계의 성숙에 이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영적인 타성에 빠지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오늘 이야기하는 영적 리모델링의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교회의 부흥도 개인의 성장과 같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과 부흥의 단계를 거치지만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되면 성장과 성숙이 멈추게 되거나 심지어 쇠락하게 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기도 합니다. 바로 이 때가 또 다른 성장을 위한 영적 리모델링의 시간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마치 솔개의 우화에서 교훈하는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깊은 자성으로 돌아보고 늙은 솔개처럼 길어지고 무뎌진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쪼아서 없어지게 하거나 날카롭게 하여 그 예리함과 단단함으로 더 이상 날 수 없는 자신의 낡아빠진 깃털을 뽑아 새것으로 탈바꿈하는 지난한 작업을 감행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시간 나의 영적 상태를 돌아봅니다.
오래된 타성을 과감히 버리고 다시 새롭게 비상할 수 있는 영적 엔진과 에너지가 충분히 충전되어 있는지 점검할 때입니다.
오랜 습관과 타성에 매몰된 영적인 매너리즘이 존재하고 있지나 않으니 점검하고 새로운 비상을 위한 영적 리모델링의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