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落葉)
返蟻難尋穴[반의난심혈] : 돌아가던 개미들 구멍 찾기 어렵겠고
歸禽易見巢[귀금이현소] : 돌아오는 새들이 둥지 찾기 쉽겠구나.
滿廊僧不厭[만랑승불염] : 복도에 가득해도 스님들은 싫다 않고
一個俗嫌多[일개속혐다] : 한 개라도 속인들은 많다고 불평하네.
위 시는 무엇을 노래한 것인가?
개미는 왜 구멍을 찾지 못하며,
새는 왜 둥지를 쉽게 찾는가?
사찰복도에 가득한데도 스님은 싫어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속객은 왜 이것을 싫어할까?
이것은 당나라 시인 鄭谷[정곡]이 落葉[낙엽]을 노래한 시(詩)이다.
먼저 낙엽이 쌓이는 형상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시의 모든 상황은
졸지에 석연해진다.
그러나 어디에도 낙엽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 이게 시다.
이게 푸념도 넋두리 아닌 진정한 시(詩)의 극치(極致)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 했다.
한 인연이 끝나면 다시 홀로 돌아가는 것은 어디 낙엽뿐이겠는가?
우리네 인생도 또한 그러하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스님들은 이를 싫어하지 않는다함은 시에 담긴 뜻이
정말로 유장(悠長)하다.
한 잎의 낙엽을 속객이 싫어하는 까닭은
세시이변(歲時移變)에 초조한 상정(常情)의 속태(俗態)를
내보임이 아니겠는가?
낙엽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 하리오?
떨어지는 꽃잎은 줍지 않아도
곱게 물든 단풍은 줍지 아니하는가?
그리고 춘삼월 꽃보다 아름답다는 서정과 감흥이
시든 꽃잎처럼 되었기 때문이리라.
벌써 가을이고 추분(秋分)이 다다음주일입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쓸쓸한 가을 풍경이 오기도 전에
벌써 가슴가득 메운다.
흔히들 시인이 시를 짓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가운데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시인이 200자의 할 말이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20자로 줄여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180자를 걷어낼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요약하고 덜어내고 갂아낼지라도 독자가 그 마음을 읽지
못하면 넋두리나 푸념일 뿐 시가 아니다.
반대로 독자는 시인이 하고 싶었지만 절제하고 걷어 낸 말, 즉
행간 속에 감추어진 뜻을 어떻게 충분히 이해하고 깨닫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공감이 된다면 감추어진 뜻을 유추하여 댓글을 다는 것이다.
을미년 구월 초닷새
취람재 여포 단상
첫댓글 하하하하하하하!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하하하하하하하!
시의 진수를 펼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 수 배우고 갑니다.
낙엽! 인생에서 낙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