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강정습지로 억새 보러 갔다가 낭패를 당했습니다. 습지의 비포장도로까지 들어갔다가 차가 모래톱에 빠져 2시간 가까이 고생했지요. 사륜구동의 힘 좋은 견인차마저 빠져나오기 힘들었는데, 근처에 있던 나무에 로프를 걸어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그 나무는 아까시나무였습니다. 고마운 아까시나무... 근처 100m 이내에는 이 아까시나무 외에는 어떤 나무도 없었기에 더욱 고마웠습니다.
이 아까시나무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아카시아라고 불러왔는데, 호주 원산의 아카시아란 나무가 있어 다른 이름을 찾아야 해서 작명한 이름이 ‘아까시나무’랍니다. 가시가 많기도 하지만, 기존에 부르던 호칭을 포기하기가 뭣해서 국립국어원에서 약간 변형해서 명명하였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분이 ‘아카시아’로 부르고 있지요.
아까시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영국인 정착민들이 목재로 쓰기 시작하여 17세기에 유럽에 도입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일본인 사카키가 상하이로부터 인천에 묘목을 들여왔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1900년대 초에 용산구 육군본부 자리와 경인선 철도 변에 처음 대량 도입되었답니다. 이후 아까시나무는 빠른 속도로 전국에 퍼졌는데, 한동안 일제가 들여온 나무라는 점과,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점 때문에 생긴 편견 때문에 기피수종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까시나무의 뿌리에는 질소 고정 박테리아가 있어 척박한 땅에서도 자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6.25 전쟁 이후에 산림녹화를 위해 대량으로 심어졌습니다. 산림청에서는 ‘17년부터 ’18년까지 전국 국유림 내에 매년 150ha씩 총 450ha 규모로 아까시나무 조성 사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질소를 고정해, 비료를 안 줘도 되고 토양을 비옥하게 하므로 황폐해진 민둥산의 토질을 향상하는 데는 최적인 셈입니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숲 생태계를 해친다는 이미지와 달리, 다른 나무가 잘 자라기 쉬운 일반 토양에서는 거꾸로 다른 나무의 번식력에 밀려 사라지기에, 단기적인 번식력은 뛰어나지만, 장기적으로 다른 나무를 경쟁에서 압도하는 생태계 교란종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재 남산에서도 소나무에 밀려 아까시나무가 사라지는 추세랍니다. 수명이 100년 정도로 나무치고는 짧고, 전래된 지 100여 년에 불과해서 나무들이 한국의 토양에 적응이 덜 되어 50년을 못 넘긴다네요. 밑동 지름이 50cm를 넘으면 속부터 썩어 비어 간답니다. 60여 년 된 나무 밑동이 1미터 정도 되므로 성장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인데, 뿌리가 얕고 약해서 나무가 커질수록 비바람에 잘 넘어지는 것도 오래된 나무가 없는 이유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아까시나무는 빠른 속도로 번식해서 민둥산을 양질의 토양으로 바꾸어놓은 뒤, 수명이 다하고 경쟁에 도태됨으로써 다른 나무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주고 퇴장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아까시나무는 오염 물질을 정화합니다. 잎은 영양가가 높아 가축 사료로 좋고, 줄기는 단단하고 부식에 강하며 오래가서 토목(공사장 방벽 받침목 등), 건축용 구조목으로도, 작은 배를 만들 때도 사용되며, 심재와 연재 색상 차가 극명해 그 색을 이용한 가구 마감용의 집성목 판재로도 이용한답니다. 장작은 오랫동안 타고 화력이 강하며 연기가 적어 땔감으로도 아주 좋습니다. 그 외에 철도침목, 목공예 재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꽃향기가 강하고 아주 좋아 꽃으로 전을 지지거나 밀가루 반죽을 묻혀 튀김을 하기도 하고, 떡을 만들기도 하고, 차로도 마시며, 샐러드나 무쳐서 식용하기도 합니다. 꿀은 특유의 꽃향기가 강하게 나고, 맛이 부드럽고 색상이 연하여 제과, 제빵, 차, 음료에 넣어 먹기 좋습니다. 이런 장점으로, 아까시 꿀은 대한민국 벌꿀 전체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일본인이 들여왔다는 점, 번식력이 좋다는 점 따위로 한때 배척하고 천시했던, 그러나 효용가치가 큰 아까시나무, 인간의 관심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나무임은 틀림없습니다. 무덤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 매년 벌초 때 애를 먹게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나무가 이처럼 순기능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나무를, 자연을 찾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제 차가 수렁에 빠졌을 때 구난에 도움을 준 아까시나무, 천근성 식물로 뿌리가 깊이가 아닌 수평으로 넓게 뻗는 나무임에도 제 차와 견인차, 총합 3톤 이상의 무게를 모래톱에서 빼내 준 것만으로도 利木임이 분명합니다. 아래, 모셔 온 글을 찬찬히 음미하며 어머니, 나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시 일깨워봅니다.
대구수목원에서 국향을 맘껏 맡았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659037343
낭패를 당했던 강정습지...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656235378
칠곡군 기산면, 950세 은행나무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659507274
수다사의 은행나무 단풍도 참 고왔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656279631
어머니의 나무(모셔온 글)=======
바구니를 건네며 어머니는 말씀하셨지요.
"매끈하고 단단한 씨앗을 골라라.
이왕이면 열매가 열리는 것이 좋겠구나.
어떤걸 골라야 할지 모르겠더라도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아라.
고르는 것보다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물건을 살때는 아무에게나 가격을 묻고
덥석 물건을 집어들지 말고,
먼저 장안을 둘러보고 사람을 찾아 보렴.
입성이 남루한 노인도 좋고, 작고 초라한 가게도 좋을 것이야.
그리고 고마운 마음으로 물건을 집어들고
공손히 돈을 내밀어라.
오는 길에 네 짐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오는 길이 불편하다면 욕심이 너무 많았던 게지.
또 오늘 산 것들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는 말아라.
사람들은 지나간 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곤 하지.
씨앗을 심을 때는 다시 옮겨 심지 않도록
나무가 가장 커졌을 때를 생각하고 심을 곳을 찾으렴.
위로 향하는 것일수록 넓은 곳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하는 거란다.
준비가 부실한 사람은 평생 동안
어려움을 감당하느라 세월을 보내는 법이지.
모양을 만들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지 말아라.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선 더 많은 잎들이 필요한 법이란다.
타고난 본성대로 자랄 수 있을 때,
모든 것은 그대로의 순함을 유지할 수가 있단다.
낙엽을 쓸지 말고, 주위에 피는 풀을 뽑지 말고,
열매가 적게 열렸다고 탓하기보다
하루에 한 번 나무를 쓰다듬어 주었는지 기억해 보렴.
세상의 모든 생각은 말없이 서로에게 넘나드는 거란다.
우리는 바람과 태양에 상관없이 숨을 쉬며
주변에 아랑곳없이 살고 있지만,
나무는 공기가 움직여야 숨을 쉴 수가 있단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것과 나무가 움직여
바람을 만드는 것은 같은 것이지.
열매가 가장 많이 열렸을 때 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며칠 더 풍성함을 두고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지.
열매 하나하나가 한꺼번에 익는 순간은 없는 거란다.
어제 가장 좋았던 것은 오늘이면 시들고,
오늘 부족한 것은 내일이면 더 영글 수 있지.
그리고 열매를 따면 네가 먹을 것만 남기고 나눠 주렴.
무엇이 찾아오고 떠나가는지,
창가의 공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렴.
나무를 키운다는 건 오래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야.
그리고 조금씩 다가오는
작별에 관해서도 생각해야 한단다.
태풍이 분다고, 가뭄이 든다고 걱정하지 말아라.
매일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면 나무는 말라 죽는 법이지.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란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아프고 흔들린다는 걸 명심하렴..."
어머니가 주었던 씨앗 하나...
마당에 심어 이제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떠난 지금도...
그래서 웃을 수 있습니다.
-----김계희의 동화달력 <어머니의 나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