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황망한 일인지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더구나 한밤중의 산속에서라면 말입니다. 군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이미 40년이 넘은 얘기네요- 지인 둘과 오대산을 넘은 적이 있습니다. 월정사를 돌아보고, 패기에 넘쳐 상원사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참으로 조악하고 부족했지만, 당시 가져갔던 장비는 작은 텐트 하나, 랜튼 둘, 가스버너, 코펠이 전부였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부식이라야 물 한 통, 초콜릿 2개, 라면 두어 봉지, 오이 몇 개가 전부였지만 마찬가지, 부족하다 느끼지 않았습니다. 월정사에서 고찰의 기운을 느낀 후 상원사로 가는 길, 요즘과는 달리 이정표가 충분히,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안내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땐. 산길을 헤매고 헤매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친구 한 명이 탈진 상태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해는 완전히 져버리고 길은 오리무중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였습니다. 민가가 가까이 있다는 증거라 생각했습니다. 비탈이건 뭐건 가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경사진 산자락에 텐트를 치고 친구를 뉘여 휴식을 취하게 한 후, 한 친구는 옆에서 돌보고, 저는 소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만, 밤의 산길은 지척인 것 같아도 쉽게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임시로 텐트 친 자리에서 라면 끓여 먹고 비탈면에 몸을 뉘었습니다. 그래도 꿀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탈진했던 친구도 기력을 회복했고, 날이 밝으니 길이 제대로 보였습니다. 민가도 저 멀리 눈에 뜨였습니다. 기력을 회복했으니, 날이 밝았으니, 민가의 존재도 별 의미는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상원사까지 가기엔 길이 너무도 멀었습니다. 어디로 내려와 어디서 대구 가는 버스를 탔는지는 기억도 없습니다. 두렵고 황망했던 기억도 사라졌습니다. 다만, 탈진한 친구와 암흑천지를 헤매고, 비탈진 곳에서 꿀잠을 잤던, 고생이었지만 행복했던 기억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날, ‘먼 곳의 불빛’은 없었으나, 개 짖는 소리가 불빛과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둠을 뚫고 길을 찾아 나서는 용기도 생겼던 것 같습니다. 탈진한 친구 때문에 계속 걸어가진 못했지만, 가까이에 민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정표’, ‘먼 곳의 불빛’이 그때의 우리에게처럼 요즘의 한국에 참으로 절실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따뜻함’을,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을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길 잃은 진보와 보수가, 상호 존중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인정은 하면서 발전적으로 경쟁 속에 공존을 해나가서, ‘이정표’까지는 아니더라도, ‘먼 곳의 불빛’ 정도는 서로 되어 주고, 그를 통해 서로가 제대로 길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큰 요즘입니다.
달제 왕버들, 어린 눔들이 한 경치 합니다. 이쁩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436276883
거창 창포원에서는 이정표, 필요 없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434615750
문경 찻사발 축제, 그냥, 보면서 행복해집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437275895
산 속에서(모셔 온 글)=======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