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밀렵당하면서 비판의 뿔을 스스로 잘라내다
- 스스로 뿔을 잘라낸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
아프리카 코끼리들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상아를 포기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참혹한 내전과 밀렵의 불길 속에서, 상아를 가진 코끼리들은 무참히 도륙당했다. 과거 4% 미만이던 상아 없는 코끼리가 이제는 암컷의 30%에 육박하며, 어떤 지역에서는 98%가 상아 없이 태어난다. 다른 개체와 싸워 이기고 자신과 무리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상아가 도리어 죽음을 부르는 표적이 되자, 생존을 위해 '진화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지식인과 정치인의 모습에서 나는 뿔을 잃어버린 짐승의 비극을 본다.
본디 지식인의 비판 정신과 정치인의 양심, 그리고 청년들의 정의는 우리 사회를 지키는 날카로운 뿔이어야 한다. 잘못된 권력에 맞서고 진실을 지키며, 도덕과 양심의 가치를 지탱하는 기개의 상징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양심을 지키고 진실을 말하는 자들이 오히려 탄압받고, 비판의 뿔을 높이 세우는 이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일이 흔해졌다.
이러한 공포의 정치 밀렵이 계속되면서, 이성의 목소리를 내던 중도 세력마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사라져간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양심과 도덕을 내던진 채 특정 권력자에게 엎드려 종질하고 무조건 추종하는 거대 집단이다. 진실을 말하면 죽고, 혓바닥에 거짓을 올리면 살아남는다는 비정한 생존 법칙이 우리 사회의 유전자를 바꾸고 있다.
옛날 같으면 민주당의 왼쪽에 떨어져 있던 급진좌파들이 민주당의 주류가 되고, 국민의힘의 오른쪽에 비켜나 있던 급진우파들이 그 당의 주류가 되었다. 정치 밀렵은 이처럼 정치 지형마저 바꾼다.
2026년, 지식인은 입을 닫고, 언론인은 펜을 꺾으며, 정치인은 비판의 뿔을 스스로 잘라내고 있다. 뿔 없는 코끼리가 밀렵꾼의 눈은 피할 수 있을지언정 더 이상 코끼리답게 살 수 없듯이, 비판 정신이라는 뿔을 잃어버린 사회는 이미 그 영혼이 멸종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왜 이토록 비겁한 침묵을 선택하며 겨우 목숨이나 붙잡고 있는가.
비판의 뿔을 제거한 채 권력의 뒤에 숨어 얻는 안온함은 잠시일 뿐이다.
상아가 사라진 코끼리의 서식지가 무너지고 있듯, 양심과 도덕이 사라진 대한민국은 20~30년 내에 그 정체성을 잃고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는 묻는다. 우리는 비겁한 침묵으로 연명하는 뿔 없는 존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꺾인 뿔을 다시 붙이고 진실의 강물을 당당히 건너는 집단지성의 공화국을 다시 세울 것인가.
단지 생존만을 위해 양심과 진실과 정의라는 무기인 '뿔'을 포기하는 것은 진화가 아니라 퇴화다.
지금 비판의 목소리가 사라진 들판에서 들려오는 것은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종과 노예들의 합창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가슴 속에 숨겨둔 양심의 뿔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만이 양심과 진실과 정의와 멸종을 앞둔 대한민국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야당 국회의원들조차 온통 제 뿔을 스스로 뽑아버린 사람만 보이는 이 참담한 세상에서, 나는 결코 내 뿔을 갈거나 부러뜨리거나 뽑지 않겠다. 내 뿔을 갈고 닦고 지키며 진실의 선봉에 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