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호, 좋은 시 읽기___주경림
꽃의 풍경, 그 배후
주경림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봄꽃들이 여느 해 보다 일찍 피었다. 서둘러 졌다. 산수유, 개나리, 생강나무꽃 등이 먼저 노란색으로 밑그림을 그린 풍경 위에 차례차례 피어나던 진달래 목련, 벚꽃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렸다 화르르 지고 말았다. 한바탕 꿈결처럼 애틋하게 봄이 지나갔다.
먼저, 조선 후기의 문신 박준원(朴準源 1739~1807)의 한시 한 편을 읽으며 글을 열어보려 한다.
사람들은 꽃의 빛깔을 보지만(世人看花色)
나는 홀로 꽃의 향기를 바라본다(吾獨看花氣)
꽃향기가 천지에 가득 할 때(此氣滿天地)
나 또한 하나의 꽃이 되리라(吾亦一花卉)
──「꽃을 보며[看花]」
꽃의 향기를 바라보는 마음이란 ‘꽃의 풍경, 그 배후’까지 짚어내는 일일 것이다. 꽃의 향기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이 세상에 꽃 아닌 것이 없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 속에 마음을 묻는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나호열, 「당신에게 말 걸기」,『시와산문』 봄호
<나호열 시인의 체험적 시론>에서 밝혔듯이 그에게 시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세상의 아귀다툼과 불협화음으로부터 숨어들어간 ‘소도蘇塗’이다. 거울은 실상의 모습을 그대로 비쳐주기에 나호열 시인의 시 한편 한편에는 시인의 모습이 담겨있다. 허무주의에 삶의 근원을 두고 존재론적인 슬픔이 배어나오는 시인의 꾸밈없는 언어들은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결코 기어중죄綺語衆罪를 범하는 일이 없다.
불과 십행 남짓한 시, 「당신에게 말 걸기」는 마치 잘 여문 씨앗처럼 나호열 시인의 인생관과 우주관이 압축되어 담겨있다. 이 세상에 못난 꽃, 화난 꽃이 없다는 비유로 무정물이든 유정물이든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부정을 긍정으로 아우르는 포용력이다. 그 힘의 근원은 바로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각 존재의 모습을 자연 그대로 받아들이는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읽혀지고 고개가 끄덕여지며 절로 수긍이 가지만 누구나 쉽게 다다를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자세를 낮춰 눈높이를 맞춰야하는 겸허함을 갖춰야만 비로소 “이쁜 꽃”이 보여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묵묵히 “흙 속에 마음을 묻는” 내적인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내공이 쌓여야만 “참, 예쁜 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꽃’을 ‘사람’으로 바꾸어 “이 세상에 못난 사람은 없다/ 화난 사람도 없다” 식으로 읽어본다. 바로 나호열 시인이 독자인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 그러하지 않은가.
암 병동 외래센터에
보라 꽃, 흰 꽃, 분홍 꽃이 활짝 피었다
얼굴이 얼굴을 감싸고
두건 꽃이 피었다
먼 산이 저물어갈 때
홀로 빈산을 지키는 감국처럼
한 사람에 딱 한 송이씩
떼어내야 할 꽃잎들, 주름들을
헛웃음 속엔 감춘
저 사람꽃들을 보아라
자분자분 허공을 떠다니는 헛꽃들
흔들리는 중심을 감싸 안으며
만개한 햇빛 속으로
웃음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향기 없는 꽃이
천리를 가듯
꽃 지고 꽃 피는
저 사람꽃들의 천국으로
한 발 더 가까이
새들이 난다
──배영옥, 「사람꽃」, 『시인동네』, 봄호
꽃 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심정적인 접근이 가능한 우리 사람끼리 서로 위로 받고자하는 보상 심리 때문일지 모른다. 꽃도 사람도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쭉정이가 되든 못난이가 되든 자기 목숨껏 피워내는 생명의 의지가 아름다운 것이리라.
배영옥 시인은 암 병동 외래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자들이 머리에 쓴 두건의 색깔에서 시적 모티브를 얻는다. 첫 행의 ‘암 병동 외래센터’라는 장소가 주는 암울함과 비극적인 선입관과는 무관한 듯, “보라 꽃, 흰 꽃, 분홍 꽃이 활짝 피었다”로 둘째 행이 이어진다. 암환자들이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빠지는 머리를 감추기 위해 쓴 두건을 시인은 활짝 핀 꽃의 풍경으로 본다. 시인은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읽는 이는 암병동과 꽃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죽음과 삶의 길항작용을 느낄 수 있다. 행과 행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깊어진 것이다.
둘째 연, 셋째 연에서는 그런 ‘사람꽃’의 풍경을 좀 더 구체화시켜 보여준다. “먼 산이 저물어갈 때/ 홀로 빈산을 지키는 감국”처럼 외롭게 이겨내야하는 투병생활의 고달픈 모습이다. “떼어내야 할 꽃잎들, 주름들”이라는 암세포가 내장되어 있지만 ‘웃음꽃’을 피워 올리기에 ‘사람꽃’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사람꽃’에도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순리가 적용될 터, 꽃이 지는 것을 그리 슬퍼할 일만은 아닌 듯 싶다. 게다가 꽃이 지면 다시 피는 것 또한 섭리일 터, “사람꽃들의 천국”을 예비하고 있으니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꽃으로 피는 그리움
햇살이 무채색의 겨울을
봄으로 번역하는 날
안스리움 화초 하나 사들고 온다
2월에서 3월로
바람 페이지를 넘기면
가장 먼저 요약되기를 기다리는 꽃
전생에 어떤 짐승이었을까
심장처럼 붉은이파리 사이에서
꼬리가 피어오른다
아무도 모르게 꼬리 속에 숨어피는 꽃
꽃과 꼬리가 한 문장에 배열된다
커다란 몸통도 발톱도 삭제된 채
아직도 기다리는 주인이 있는 것일까
서서히 소멸되다가 꼬리만 남아
꽃으로 피는 그리움을 무엇으로 읽어야 할까
문장 속으로 바람이 불어오면
꽃 속에 밀어 넣었던 침묵부터 어두워지고
책갈피마다 초록이 묻어나는
단어들 사이에서
햇살을 향해 연신 꼬리를 흔들고 있는
저 안스러운
꽃 한 마리
──정용화, 「꽃의 꼬리」, 『시와산문』, 봄호
정용화 시인의 「꽃의 꼬리」는 식물인 꽃에서 동물의 꼬리를 읽어낸다. 단순한 꼬리의 겉모습의 의미를 넘어 ‘그리움’의 흔적으로까지 발전한다. 식물성의 꽃이 동물성으로 변용되며 그 동물성이 다시 시인의 주관적 감성의 발현이라는 사의성寫意性을 띠게되는 시의 전개 과정이 눈길을 끈다.
안스리움Anthurium은 꽃이라는 안토스Anthos와 꼬리oura의 합성어로 ‘꽃의 꼬리’라는 뜻의 꽃말은 ‘사랑의 번뇌’라고 한다. 천남성과에 속하는 초본식물로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관엽식물이다. 필자는 오늘 박물관 전시실에서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안스리움을 만났는데 녹색 이파리와 붉은 색 꽃받침, 노란 꽃대의 색감이 선명하고 광택이 반지르르 돌아 꼭 인조식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용화 시인은 꽃받침에서 붉은 심장을, 길쭉한 꽃대를 꼬리가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며 “전생에 어떤 짐승이었을까” 하는 연상 작용을 펼쳐나간다. 그 짐승이 몸통도 발톱도 소멸되고 꼬리만 남아 그리움을 꽃으로 피워내는 것이다. “꽃으로 피는 그리움을 무엇으로 읽어야 할까”는 시인이 자기 자신과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니 이쯤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도 좋을 듯 싶다.
시의 뒷부분으로 오면 안스리움의 이파리들은 초록 책갈피로 펼쳐져 마치 지상紙上에서 안스리움이 꼬리를 흔들며 눈 앞에 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식물이지만 “꽃 한 마리”의 꼬리가 흔들리는 정중동靜中動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색감 고운 안스리움이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공기정화 작용도 뛰어나다니 한 번 키워 자신부터 정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평사 막다른 골목길, 기억난 듯 불이 켜졌다
푸른 어둠 속으로 희뿌옇게 솟아있는 둥그스름한 외등 하나
여기가 길의 끝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별의 그림자가 산신각 지붕 위에 일렁이며 어둠을 삼키고
그 뒷산 주변으로 구절초가 오로라처럼 번지고 있었다
반야용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북극점에 선 것처럼 나는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었다
빙산이 떠돌듯이 기억들이 떠다녔다
가만히 올려다본 불빛, 이목구비가 닮았다
네게로 가는 길은 공중에 있었다
──이명, 「검은 구절초」, 『미네르바』, 봄호
정용화 시인이 안스리움에서 그리움을 읽어냈다면 이명 시인은 구절초 군락에서 “네게로 가는 길”을 보아낸다. 시 「검은 구절초」는 양평사 막다른 골목길, 그 길의 끝에서 시작한다. ‘길의 끝’에는 더 나아갈 곳이 없는 지형상의 위치는 물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막다른 삶의 궁지를 아우르는 넓은 뜻이 포함되어 있다. 길의 끝에서 찾아낸 이명 시인이 삶의 길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시의 배경인 세종시 장군면 산학리에 위치한 영평사는 가을이면 절 뒷마당과 산야가 온통 하얀 구절초 꽃무리로 뒤덮혀 장관을 이루는 절이다. 이명 시인은 한밤중, 절 뒤편의 산신각 근처에 서서 자신의 위치가 ‘길의 끝’ 임을 알려주고 있다.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네줄 반야용선도 보이질 않고 북위 90도 지점인 북극해 가운데인 북극점에 있다는 시인의 상상력이 더해져 ‘길의 끝’의 정황이 구체화된다. 단지, 어둠 속에 “그 뒷산 주변으로 구절초가 오로라처럼 번지고 있었다”는 구절을 독자에게 넌지시 던져주는 복선으로 깔아놓았을 뿐이다.
‘길의 끝’이라는 급박한 상황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북극점이라는 시인이 상상력의 세계에서 도리어 여유로워지는 반전을 맞이한다. 빙산이 떠돌듯이 기억들이 떠다니며 가만히 응시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갖추어진다. 구절초가 오로라처럼 번지는 길이 바로 길의 끝에서 길이 열리는 마음의 출구이며 피안의 세계다. 네게로 가는 길로 공중에 있었다니 이제 반야용선을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물거울을 보다
근정전 월대 아래서 물거울을 본다 입술이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기어오기까지 한쪽 어금니로 치우쳐 씹은 까닭이다 빗물이 떨어지자 흔들리는 얼굴에 늘어나는 입꼬리 어금니 틈새로 부셔진 이름들이 독안을 채운다 물린 흉터와 등돌린 문신. 못에 걸린 이름과 벗겨진 신발과 헛발질의 아랫도리를 생각한다 쭉정이 씨앗이, 아니, 씨눈마저 가져보지 못한 홀씨들이 그믐달 무늬에서 움트고 한동안 입술을 뜯어 비늘을 벗긴다 답도를 오르던 눈길에 등줄 타는 땀방울과 불거진 힘줄을 본다 돌계단에 눌린 손가락이 틈을 열고 낮달로 떠있다
물거울을 보다 중심에서 내려온 입꼬리 들어올리려 턱선을 문지르자 군살처럼 불거진 문신이 드므 속을 빠져나온다
──신경숙, 「물거울을 보다-드므」, 『시와산문』, 봄호
나호열 시인에게 “시는 나를 비추는 거울” 이라면 신경숙 시인의 ‘물거울’에 투영된 이미지는 무엇일까. 수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것을 거울의 기원으로 보는데 신경숙 시인의 ‘물거울’은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무쇠로 만든 드므를 가리킨다. 드므는 항상 물을 채워두어 불귀신이 이 물에 자신의 무서운 얼굴이 비치면 놀라 숨거나 도망가서 화기가 진압된다는 화마 방지용이었다. 시인이 물거울에서 본 것은 “입술이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부셔진 이름들”, “물린 흉터와 등돌린 문신”, “못에 걸린 이름과 벗겨진 신발과 헛발질의 아랫도리” 등으로 하나같이 왜곡된 모습들이다. 아마 불귀신이 보았어도 도망갔을 법 하다. “답도를 오르던 눈길에 등줄 타는 땀방울과 불거진 힘줄을 본다”에 이르러서야 화려한 궁궐 생활 배후에 묻혀있는 민초들의 고된 노역과 고통스런 삶의 이미지를 가까스로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답도’는 임금이 가마를 타고 오르던 계단을 이르는 말이니 ‘땀방울과 불거진 힘줄’로 가마꾼들의 노고를 떠올릴 수 있다.
물거울에 비친 이미지들은 불귀신을 비롯한 귀신들의 모습이나, 시인 자신의 자화상 일수도 있다. 또는, 정쟁에 휩쓸려 역사 속에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 혹은 궁핍한 민초들의 삶일 수도 있다. 이제, 물거울에 투영된 이미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게되었다.
이상으로 다섯 시인의 신작시를 살펴보았다. 나호열 시인의 「당신에게 말 걸기」에서는 “참, 예쁜 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임을 알아차리게 해준다. 암병동에서 “꽃 지고 꽃 피는/ 저 사람꽃들의 천국”을 예비하는 배영옥 시인의 담담한 어조는 감정을 자제하는 만큼 시의 내면은 깊어진다. 정용화 시인이 화초 안스리움의 꽃을 짐승의 꼬리로 보며 그 꼬리에서 다시 그리움을 읽어내는 「꽃의 꼬리」는 정중동靜中動의 세계를 보여주었다.‘길의 끝’에서 네게로 가는 공중의 길을 보아내는 이명 시인의 「검은 구절초」는 피안의 세계가 결코 멀리있지 않은 마음의 극락임을 일러준다. 거짓없이 비춰준다는 점이 거울의 속성이므로 신경숙 시인의 「물거울을보다-드므」에 드러난 부조화한 세상 역시 우리가 껴안고 가야할 아픈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필자가 꽃의 길을 더듬고 있는 동안 한바탕 꽃비가 내렸고 신록의 세상이 펼쳐졌다. 사람들 삶의 애환이 연한 초록빛 어린잎 보다 더 눈부시게 펼쳐지기에 시의 향연은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주경림 /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씨줄과 날줄』, 『눈잣나무』, 『풀꽃우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