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 칸막이
공사장 010·3755 ― 2600
세월아 外 11 박인희
가는 줄 모르게 가버린 시절
그날의 고운 꿈 어디로 갔나
내 손을 잡으며 이야기하던
그 사람 지금은 어디로 갔나
세월아 너만 가지 사람은 왜 데려가니
세월아 너만 가지 사람은 왜 데려가니
노을진 창가에 마주 앉아서
못 다한 말들이 너무 많았지
영원히 못 잊을 그리움 두고
그 사람 지금은 어디로 갔나
(반복)
세월아 / 박인희(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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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아 외 11 / 박인희
Side A
1 세월아 / 작사 박건호·작곡 김기웅·편곡 김기웅 3:03 2 나의 소망 / 작사 신동욱·편곡 복기호 2:58
3 들길 / 작사 박건호·작곡 김기웅·편곡 김기웅 3:21 4 알로하오에 / 작사 박인희·하와이 민요·편곡 김종하 3:07
5 섬아기 / 작사 한인현·작곡 이홍렬·편곡 김종하 2:18 6 봄이 오는 길 / 작사 김기웅·작곡 김기웅·편곡 김기웅 2:30
Side B
1 봄이 오는 길(코러스) / 이 곡만 빠짐 2 목마와 숙녀 / 작시 박인환·작곡 김기웅 3:34
3 모닥불 / 작사 박건호·작곡 박인희·편곡 김종하 3:34 4 돌밥 / 작사 박건호·작곡 박인희·편곡 김종하 2:38
5 내 사랑아 / 작사 윤경철·편곡 안건마 2:32 6 몰래 몰래 / 작사 박인희·작곡 이필원·편곡 김종하 2:00
세월아 / 박인희(1974)
세월아 외 11 / 박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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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희 1집(1974)
박인희와 이해인 수녀님, 그리고 쩜쩜 순(順). 풍문여중 때인 듯. 이해인 수녀님은 학창시절 단짝
친구가 한 명있었는데 바로 박인희 였다고. 박인희는 1946. 3. 15일생이랍니다.
박인희 노래의 매력은 문학적 낭만이다. 인생과 사랑을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하는 듯한 그의 노래
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좀처럼 빛깔이 바래지 않는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박인희 작곡 1971년. 모닥불은 박인희의 시적 감
성을 잘 드러내는 노래이다. 아직도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은 인생에 대한 상념과 예감을 부담
없는 노랫말과 멜로디로 들려주기 때문이다.
박인희는 숙명여대 불문과에 다니뎐 1970년, 이필원과 함께 혼성 듀엣 '뜨와에 므와(불어. 너와 나)'
를 결성해 가요계에 데뷔했다. '약속' '세월이 가면' 등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이 그룹은 박인
희의 결혼(1972)으로 해체되고, 두 사람은 독립했다. 박인희는 76년까지 여섯 장의 앨범과 한 편
의 시 낭송 음반을 발표했다. 시 낭송 음반에는 '얼굴' 과 '한잔의 술을 마시고…' 로 시작되는 '목마와
숙녀' 등이 담겨 있었다. 당시 파격이었던 이 음반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DJ와 작가로도 잘 알려져있다. 71년 동아방송 '3시의 다이얼' 로 시작한 DJ 생활은 아직까
지 이어지고 있고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 등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방송에 대
한 욕심은 아직도 크다. "가수로 활동했던 기억이 아련할 정도로 DJ로서 더 오랫동안 대중과 만났
죠. 가수 박인희가 오래 기억된 것처럼 방송인으로서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1995. 11. 1(수)
타이틀은 '시적 노랫말에 여성 감성 가득한 박인희' 권오현. 한국일보 기자
박인희는 숙명여대 불문과에 다니뎐 1970년, 이필원과 함께 혼성 듀엣 '뜨와에 므와' 를 결성해 가
요계에 데뷔했다. '약속' '세월이 가면' '그리운 사람끼리' 등 매력있는 음색과 호소력이 강한 화음
으로 데뷔한 지 불과 1년도 안 돼 스타덤에 올라섰으나, 이 그룹은 박인희의 결혼(1972)으로 해체되
고, 두 사람은 각기 독립했다.
박인희는 74년 2월, 첫 독집 앨범 발표 이후 76년까지 여섯 장의 앨범과 한 편의 시 낭송 음반을
발표했다. 시 낭송 음반에는 '얼굴' 과 '한잔의 술을 마시고…' 로 시작되는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 등이 담겨 있었다. 당시 파격이었던 이 음반은 큰 인기를 얻었다. 71년 동아방송 '3시의
다이얼' 로 DJ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방송 DJ뿐 아니라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 등 두 권의 시집
과 한 권의 수필집을 펴낸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가수로 활동했던 기억이 아련할 정도로 DJ로서 더 오랫동안 대중과 만났지요. 가수 박인희가 오래
기억된 것처럼 방송인으로서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라는 본인의 술회와 같이 그녀는 방송에 대한
애착이 커서인지 한때 LA 한인방송 라디오 프로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알려진
근황이 없다. 카페에 떠도는 글입니다(2011)
박인희는 우리나라 최초의 혼성 포크 듀오 '뚜와에무와' 에 참가하여 가수의 길로 출발했다. 숙대 불문
과를 다니던 그녀의 행로가 말해주듯 '너와 나' 란 제목의 불어로 된 이 팀은, 이필원과 그녀가 같이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면서, 평론가 이백천과 가수 조경수 등의 후원에 힘입어 탄생되었다.
1960년대 말에 나온 이들의 첫 음반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이어 나온 앨범들은 1970년대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1971년엔 중앙일보, 동양방송 등 언론사에서 주는 음악상 시상식을 휩쓸
었다. 창작곡과 번안곡을 함께 수록했던 이들은 1집에서는 이필원의 창작곡인 '약속' 이 히트했고
2집에서는 '그리운 사람끼리' 3집에서는 '추억' 등이 크게 인기를 얻었다.
뚜와에무와가 해체한 후 솔로로 전향한 박인희는 솔로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모닥불' 로 다시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녀는 박건호를 일약 최고의 작사가로 만든 계기가 된 이 곡을 시작으로 '하얀
조가비' '방랑자' '봄이 오는 길' '얼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맑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서정성의 카
리스마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정규 음반 외에도 시 낭송 음반을 발표해 '목마와 숙녀' '얼굴' 같은 시도 유행시켰다. 그녀는
총 6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지만 가수 활동을 포기하고, 가끔 작곡과 작사만 하
며 현재 미국에서 한인 방송국의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타인의 방에서 옮긴 글입니다(2011)
표절을 품기도 하며 각기 다르게 전하는 근황이라 진실은 모르겠습니다.
침묵이 금이 되는 풍경입니다. 백봉산의 안면도 찍고 석모도(2015)에서
오후 1시의 안면도. 시간에서 앞서는 탑 포토를 단체의 무게가 주저앉혔다. 그래야 눈이 편하지 싶
어서. 주먹을 쥐고 있는 좌변의 그린맨, 백봉산이다. 사진을 빌려준 히포님께 감사드린다. 2015
백봉산의 안면도 찍고 석모도(2015)에서
석고칸막이
첫댓글 좋은 곡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