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래ㆍ등영초의 청빈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이 생각이 나고, 가정이 어려우면 현명한 아내가 필요하다고 한다.
중국 천안문 광장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관이 있다. 모택동과 같이 중국 건국을 위해 일하며, 가장 오랫동안 총리 자리를 지킨 사람 중에 주은래가 있다.
주은래는 프랑스 유학생 출신의 정치가였으나 평생에 단 한 벌의 인민복으로 살아 왔다.
주은래의 부인도 주은래 만큼이나 청렴하고 결백한데, 그녀가 죽음에 임박하여 두 차례나 그녀의 유언을 다듬고
손질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유언 내용이 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녀도 주은래처럼 깁고 기운 단 한 벌의 의복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임종에 앞서 간호원에게 내가 죽으면 즐겨 입던 검은 옷으로 수의를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녀의 단 한 벌의 옷은 헤지고 닳고 닳아서 속을 세 겹이나 기웠다고 알려지고 있다. 바지는 웃옷보다 더 기운 자국이 많았다.
간호원은 그녀의 검은 옷을 수의로 만들기 위하여 마지막 바느질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주은래 부인 등여사의 유언 속에는 그녀의 청렴과 생활 신조가 살아 생전과 하등 다름없이 담겨 있다.
"나의 인체는 해부용으로 바치겠다."
"장례나 추도회는 일체 치르지 말라."
"살고 있는 집은 국유이니 기념관이나 주은래가 살던 집이라 보존하지 말라."
여성정치가요, 주은래의 부인이었던 등여사는 1992년 7월 11일 일생을 마쳤다.
등영초, 그녀도 주은래 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열성적이었다.
주은래와 등여사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아내는 주석에게 씨받이 자식을 갖자고 하며, 총리가 자식이 없으면 되겠느냐고 주장했다.
주은래는 그것을 거절했다.
“고아를 기르면 되지 않는가”라고 하면서 모두가 인민의 자식이라고 하였다.
前 이붕 총리가 그렇게 해서 기른 주부부의 양아들이다.
이붕 총리는 주의 혁명동지의 아들이다.
먼저 간 혁명동지의 아들을 양아들로 맞아들인 주의 관계학은 또한 절품이었다고 생각된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