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마음이라야 도(道)를 통한다.
합천 해인사(海印寺)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라 때 열두 살 먹은 아이가 중국에 가서 글을 배웠는데
어찌나 글을 잘했는지 중국에서 신라 임금에게
은자광록대부(銀紫光錄大夫)라는 벼슬을 내렸다.
그런데 이 분이 돌아올 때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였다.
신라 임금보다 한 등급 높은 벼슬을 가지고 왔다.
이 분이 바로 고운 최지원(孤雲 崔致遠)선생으로 한문의 대가였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쓴 사산비명(四山碑銘)은
한문 공부 잘 하고 싶으면 반드시 읽어야 책이다.
해인사의 한 스님이 이 사산비명을 읽는데
무슨 뜻인지 알 방법도 없어서 그냥 앉아서 읽기만 했다.
한 백일 동안 읽으니 하얀 수염을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앞에 나타나서 그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너 무엇을 읽고 있느냐?”
“네, 사산비명을 읽고 있습니다.”
“누가 지은 책인가?”
“최 고은이가 지었소.”
그러니까 노인이 아무 말도 안하고 그만 없어지더랍니다.
한 백일 지난 뒤에 또 그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 또 그렇게 “최 고은이가 지었소.”
그랬더니 노인은 또 그만 사라졌답니다.
세 번째도 또 나타났을 때
“너 무엇을 읽고 있느냐?”
“네, 사산비명을 읽고 있습니다.”
“누가 지은 책인가?”
“최 고은이가 지었소.”
“야 이 놈아! 최 고운 선생님이 지었습니다. 그러면 좀 어떠냐?”
그 후 그 스님은 백치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백치가 되어 늘 ‘최고운이가 지었소.’라고 외치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 스님은 한문만 속히 배울 생각만 했지 존경하는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
최고운 선생의 사산비명을 자꾸 읽으니까
최 고운 선생과 마음은 통했으나
존경심이 없어 지혜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금강경을 비롯하여 경전을 읽을 때 의심 없이 믿고, 안 것을
실행하면 밝은 가운데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출처 : 백성욱 박사 금강경 이야기>
▶ 사산비명
신라 때, 최치원이 남긴 네 편의 비명. 또는 그것을 해설하여 엮은 책.
숭엄산 성주사(聖住寺)의 대낭혜 화상 백월보광탑 비명(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銘),
지리산 쌍계사(雙溪寺)의 진감 선사 대공령탑 비명(眞鑑禪師大空靈碑銘),
초월산의 대숭복사 비명(大崇福寺碑銘),
희양산 봉암사(鳳巖寺)의 지증 대사 적조탑 비명(智證大師寂照塔碑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