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하는 결혼의 주례사
결혼은 원래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고, 그 다음에 양가 부모가 동의를 해야 하고, 마지막에 친지나 친구, 주변 사람들 중에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해요. 그렇게 해서 두 사람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기뻐하는 결혼식을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주례를 서다 보면 양가 부모님의 동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우 최근 몇 년간 제가 결혼식 주례를 안 섰습니다.
그런데 오늘 두 사람이 부모가 동의하지 않은 결혼을 한다고 하기에 나라도 좀 보태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주례를 서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결혼을 못 하느냐, 그건 아닙니다. 스무 살 미만의 미성년이 결혼할 경우에는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성년이 되면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결혼을 할 수는 있습니다.
불교에서의 출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무 살 미만의 사미가 출가할 때는 반드시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출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 이상의 성년이 출가할 때는 부모님의 동의가 있으면 더 좋고 부모님의 동의가 없더라도 출가를 할 수 있습니다. 성년이 되었다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결정권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애를 써서 부모님의 동의를 얻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또 부모님도 자식이 결혼을 하겠다고 할 때 동의를 해주면 좋겠지만 동의를 할 수 없는 것은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겁니다. 따라서 크게 잘못이라거나 비난하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이때 결혼 당사자들은 부모가 결혼에 동의해 주지 않았다 해서 털끝 만큼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 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두 사람이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한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성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로 부모를 비난하거나 미워하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내 의견, 내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듯이 타인도 그럴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말씀을 드리고요, 대신 반대하는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길은 뭐냐. 부모님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에 부모님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주려면 살다가 이혼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봐라, 내 말 안 듣더니” 라고 말씀하시게 된다면 이것도 하나의 효도죠.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한 효도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아, 내가 그때 판단을 잘못했구나. 너희가 나보다 낫구나. 잘했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두 사람이 보기 좋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오늘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돌이키게 되고, 그래서 다시 부모님의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만큼 특별히 두 사람은 유념해서 원만한 결혼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주 솔직히 얘기하자면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인 경우, 서로 맞는 인연이 아닙니다. 내가 부모 입장에서 보면 눈에 훤히 보여요. “아이고, 저것들은 안 맞다” 하는 부모의 마음이 보여요.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반대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잘 안 맞다는 걸 알고 출발하면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면 문제가 생길 때 허둥대지 않고
바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걸 모르고 출발하면 어떨까요? ‘아,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 자꾸 실망하게 됩니다.
살면서 자꾸 실망하면 부부 사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가 하면, ‘그때 우리 어머니가 반대할 때 말 들을걸.’ 이런 식으로 부모 핑계까지 대게 됩니다.
두 사람은 부모가 반대하는데도 여기까지 왔으니 굉장한 근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은 부모가 강력하게 반대하면 포기하든지 결혼을 연기합니다. 그런데 이거 미쳐서 그런지, 안 그러면 진짜 사랑해서 그런지, 아니면 오기로 그러는지 모르지만은 일이 여기까지 왔어요. 그래서 나도 일이 이 정도로 됐다면 거들어 줄 수밖에 없겠다 해서 주례를 서겠다는 마음을 낸 것입니다.
서로가 안 맞는데 좋아하게 됐다면, 그러기 때문에 살다 보면 소소한 일로 자주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걸 미리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길 때 미리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어요. 서로가 안 맞는 데서부터 출발해 하나씩 맞춰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꼭 참선하고 절하고 기도하는 게 수행이 아니라 둘이 맞춰 가는 것, 둘이 음식의 간을 맞추듯이 서로 맞춰 가는 거예요. 간을 맞추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따로따로 음식을 먹는 방법도 있어요. 또 한 사람은 음식을 만들 때 간을 맞추고, 한 사람은 소금을 따로 쳐서 먹는 방법도 있지요. 또 그러지 않고 둘이서 함께 간을 맞추어도 돼요.
이와 같이 자기 방법만 주장하는 대신,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서 함께 맞춰 가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진정한 수행이고 공부입니다.
결혼할 때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해요.
첫 번째는 내가 사랑하고 내가 좋아할 뿐이지
상대에게 대가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안 맞는다는 것을 전제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출발할 때는 양쪽이 맞는 건 10퍼센트고 안 맞는 게 90퍼센트에서 출발해서 결과는 공통점 90퍼센트, 차이점 10퍼센트를 목표로 만들어 가면 됩니다.
서로가 맞추는 길을 세 가지예요.
첫 번째는 내가 전적으로 상대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자신을 탁 내려놓고 “예, 예” 하면서 맞추는 방법인데,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두 번째는 서양식으로 맞추는 방법이 있어요.
둘이 철저하게 싸워서 절충안을 찾는 거예요. ‘너 하나 내면 나 하나 내는 방식’ 으로 맞춰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서양식으로 맞추면 안돼요. 그건 서양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고, 우리는 수행자니까 상대에게 요구하지 말고 내가 먼저 맞춘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상대에게 맞추려면 가장 먼저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취향이든 취미든 생활태도든,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가 다릅니다. 옷 빨아 입는 것만 해도 다려 입느냐, 그냥 입느냐 서로 달라요. 목욕을 자주 하는지 안 하는지, 청소를 자주 하는지 여부도 다릅니다. 깔끔한 사람은 “하, 청소도 안 하네” 라고 생각하고, 털털한 사람은 “닦은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닦느냐?” 라고 생각하니까 늘 서로 안 맞습니다.
이건 옳고 그른 게 아니라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걸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 자랄 때 집에서 저렇게 했구나.’ 이걸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먼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거예요. 인정하고 이해하고 한발 더 나아가 맞춰 간다면 어떤 사람하고도 살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궁합도 없고 팔자도 없고 사주도 없어요.
그런데 자기 것을 고집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며 맞추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리 붙여 놓아도 안 맞아서 못 삽니다.
세 번째, 내 업을 바꿔야 합니다.
부모가 결혼에 동의하지 않고 결혼식에 안 오셨다는 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이 긴밀하지 못하다는 얘기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게 하려면 내 카르마를 바꿔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만약 수행을 안 하면 살다가 안 맞을 때마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든 맞춰 가려고 하지 않고 ‘내가 이런 것까지 맞추면서 살 필요가 있겠나.’
이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커요.
이러한 마음의 이치를 염두에 두고 늘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두 사람이 결혼한 순간부터 양가 부모로부터 동의를 받겠다든지 또는 결혼생활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기대한다든지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완전히 독립해야 해요. 독립해서 잘살면 그때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이 풀어집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도움을 안 받으니까 부모님의 마음도 맞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모 자식 간에는 그러면 안 됩니다.
경제적으로는 독립을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늘 숙여줘야 합니다. 늘 찾아뵙고, 용돈도 드리고, 엎드려서 절하며 잘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혹시 부모가 욕을 해도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라며 용서를 구하면 부모는 풀립니다.
마음으로 숙여주고, 부모가 도와준다 해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해서 몇 년만 지나면 다 저절로 풀립니다.
결혼할 때 반대하며 사위 꼴도 보기 싫다고 결혼식장에도 안 갈 정도였던 친정 부모도 한 3년 지나면 사위 좋다고 자랑합니다. 이런 일들을 자주 봅니다.
이처럼 부모의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악감정은 아니에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받들어 드리고 죄송하다고 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덟 번 “잘못했습니다” 하고는 아홉 번째 못 참아가지고 대들면 안 됩니다. 열 번 다 고개 숙이고 “죄송합니다” 라고 참회하면 금방 해결 됩니다.
결혼식에 부모가 모두 참석해서 축하해 주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안 됐다고 너무 섭섭해하지 말고 잘 살아가면 그런 문제는 다 저절로 해결됩니다.
이제부터 결혼한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사람들한테 약 오를 정도로 잘 살든지, 혼자 사는 사람들은 결혼한 사람들이 후회할 정도로 혼자서 잘 살든지 선택은 자유예요.
어떤 게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를 안 하려고 아주 자랑스럽게 살려고 해요.
아시겠어요? 여러분이 잉꼬부부가 되고 사랑하고 잘산다 해도 부러운 마음을 안 내려고 해요. 왜? 부러운 마음을 내면 나만 손해니까. 그래서 내 삶에 충실하려고 그래요. 내 직분에 충실하려고 그래요. 두 사람도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 말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꺼이 감내하며, ‘아, 그래도 결혼하길 잘했다’ 라며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들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55쪽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독신도 위험한 일이지만 결혼도 위험한 일 사바세계가 위험한 곳 ㅎㅎㅎ
네 한표 덧붙입니다.
ㅎ...나무아미타불...()()()...결혼해서 아이낳고...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고...지금까지 멋모르고 살았네요...
철이 들고 보니 벌써 나이가 이렇고...이러다가 철들자 떠나는 것이 아닐런지...
이기적인 마음이 매사를 어렵게 만듭니다.
dalma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