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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to the칸(9)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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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아내를 되찾은 테무진. 가족의 은인 코아그친은 보르테와 함께 구해냈지만, 벨구테이의 생모 소치겔은 잃었다. 어쨌든, 모두 끝났다. 테무진의 태도는 어머니의 죽음을 학살로 갚은 벨구테이와는 달랐다. 물론 보르테가 죽었다면 그도 어떤 행동을 했을지 알 수 없지만…
테무진은 이후 평생에 걸쳐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일관된 노선이 있었다. 테무진에겐 신기할 정도로 '불필요한 폭력'이나 '복수만을 위한 복수'를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남보다 훨씬 고통을 겪고 살아온 사람은 (자기보다 덜 불행했던)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불행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목적없는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테무진은 후자였다.
지난 글들 중에서 테무진은 별다른 재능이나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자기가 경험한 것을 절대 잃지 않는 습관을 가졌다고 이야기했었다. 그가 가진 장점은 단순하고 소박했다. 본 시리즈를 읽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테무진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타인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알았다.
테무진은 자무카와 토그릴에게 훗날 두고두고 후회할 말을 한다.
"칸 아버지(토그릴)와 자무카 형제, 그리고 하늘과 땅이 도와주신 덕분에 저는 원수를 갚았습니다. 메르키트 사람들의 게르를 텅 비워놓았고, 그들의 가슴도 텅 비워놓았습니다. 많은 적들을 죽였습니다. 살아남아 도망간 메르키트 사람들 모두가 친척과 가족이 죽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 합시다."
테무진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연합부대는 살육을 멈췄다.
메르키트 3개 씨족을 격파하고 약탈한 경로를 거슬러 올라갈 때, 테무진은 부모 잃은 메르키트족 꼬마 남자아이 하나를 발견했다. 5살이었고, 아이의 이름은 '쿠추'였다. 아마 부모는 죽거나 도망갔을 것이다. 아이는 담비모피로 만든 모자, 사슴 종아리 가죽으로 만든 신발(부드러워서 착용감이 그만이라고 한다.) 등 최고급 옷을 걸치고 있었다. 있는 집 자식이란 얘기다. 아마 정신없이 울고 있었으리라.
테무진은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단지 불쌍했던 걸까? 아니면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을까? 아버지 없지 자란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머니인 헐룬에게 아이를 데려가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헐룬은 아들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아마 헐룬도 칼과 활을 무장한 채 아들들과 함께 출정했을 것이다(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후편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벨구테이는 자신이 죽인 자들의 가족을 노예로 삼았지만, 테무진은 반대로 고아 소년을 형제로 만들었다. 벨구테이를 흉보기도 참 뭐한 것이, 그는 당시 초원에서 상식적인 행동을 했을 뿐이다. 이건 테무진이 특이한 거다. 여하튼 앞으로도 테무진은 이런 행동을 많이 하는 탓에, 헐룬에게는 '양자'가 꽤 생긴다. 이런 '입양'은 앞으로 테무진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상징을 지니는 행위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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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은 전투 중에는 보르테와 재재회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 생각한 나머지 어서 군대를 물리(고 집에 다들 돌아가)자는 주장까지 했다. 하지만 상황이 정리된 후에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약탈전에 성공한 4만 명의 연합부대는 탈콘 삼각지에서 해산했다. 토그릴과 자카 감보는 2만 명의 커레이트 전사들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시적으로 모집된 이런저런 부족 및 씨족집단들도 각자 자기들 몫을 챙겨 갈 길을 떠났다. 이번 전쟁 건과 상관 없이 자무카를 따르는 추종집단, 그리고 테무진이 남았다.
테무진은 일생일대의 기로에 섰다. 그는 이미 보호막 없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전사 무리의 먹잇감이 되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두 번(타이치우드족 친척들에게 한 번, 메르키트족에게 한 번)이나 겪었다.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보르지긴-키야트 혈족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인가? 메르키트족에게 당한 것은 아버지가 저질러 놓은 일 때문이었다. 예수게이는 타타르족과도 철천지 원수였다. 동쪽초원의 절대강자 타타르족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테무진 가족은 그대로 절멸한다. 정주문명의 사람들이 아니다. 언제나 옮겨다니는 삶을 사는 유목민들이다. "만나면 죽는다." - 당시 초원이 아무리 혼란기였다고 하지만, 이건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테무진은 복수에서 복수로, 재복수에서 재복수로 이어지는 끔찍한 순환고리 안에 들어와버렸다. 메르키트족이 어떤 꼴을 당했는가. 살아남은 톡토아 베키와 다이르 오손이 이를 갈고 있었다. 초원에 그렇게나 많은 피를 뿌려놓고 발 뻗고 잘 생각을 할 순 없는 거다.
테무진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테무진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는 자무카의 무리에 합류하기로 했다. 목동이 아닌 전사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침 테무진에게는 메르키트 침공을 위해 모집된 소규모의 전사들이 있었다. 이 미니 군대를 해산시키지 않고 자무카 무리에 합류하면, 자신의 직속 부하가 될 터였다. 좋은 기회였고, 이 기회를 놓치면 너무 위험했다.
한편 테무진보다 속이 훨씬 편했던 토그릴과 자카 감보는, 일부러 부르칸 칼둔의 북쪽 숲을 훍고 지나가면서 신나게 사냥까지 실컷 하고는 부족의 야영지가 있는 툴라 강변의 숲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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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를 쓰기 위해 자무카에 대해 조사할 때마다 테스토스테론의 생리적 효과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상황에 따라 맺고 끊음이 확실한 수컷이었다. 자무카는 전쟁의 총사령관이 되었을 때 테무진은 물론이고 초원의 어르신들인 토그릴과 자카 감보에게도 권위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전쟁을 완수하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옛날 함께 우정을 맹세했던 평등한 안다로 되돌아갔다.
자무카는 테무진의 작은 그룹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테무진이 자신의 부하가 아닌 대등한 동료가 되기를 원했다. 그와 테무진은 무리를 이끌고 '코르코낙' 숲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세 번째로 안다 의식을 맺는다. 두 사람은 나무가 우거진 숲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비밀스런 의식을 거행했다. 어떤 의식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두 안다가 맞교환한 선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테무진은 등줄기와 꼬리가 검은 말을 자무카에게 주었다. 자무카의 '검은 색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거꾸로 자무카는 테무진에게 백마를 선물로 주었다.
두 안다는 허리띠도 맞바꾸었다. 두사람의 것 모두 황금 허리띠라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테무진에게 이런 귀한 물건이 있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메르키트족에게서 약탈한 물건이다.
아무리 잘 사는 메르키트라고 해도 초원 부족이다. 중국이나 고려, 이슬람권의 눈으론 다 똑같이 거지들이었다. 따라서 순금은 아니었을 것이다. 도금이거나 금동, 혹은 일부 부분만 황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아니면 순도 높은 구리를 제련해 만든 허리띠였거나. 어찌 됐든 테무진이 그때껏 자기 힘으로 얻은 물건 중에는 가장 귀한 것이었다.
'도구의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도구를 일컬어 '손의 확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민속학적으로 허리띠는 남근의 확장이다(테무진은 부르칸 칼둔에 기도할 때 자신의 토템에 존경심을 보이기 위해 허리띠, 즉 남자의 힘의 상징을 벗었었다.). 허리띠를 교환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갖고 있는 수컷의 기운, 즉 힘과 폭력충동, 용맹함과 지도력, 인내력 등을 흡수하겠다는 것. 이는 상대방의 퀄리티를 결코 의심하지 않겠다는 의식이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 서로 의지하며 서로의 생명을 보호하자."
두 사람은 서로의 우정을 다시 한 번 맹세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며 살자."
안다임을 재확인한 테무진과 자무카는 어두운 숲에서 나와 잔치를 열었다. 자무카-테무진 무리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하는 잔치였을 건 뭐 분명하고. 이 잔치는 자무카가, <이제는 테무진을 나와 똑같이 따르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자리였다. 테무진에게 엄청난 기회를 준 것이다.
부하와 식솔, 가축들을 데리고 이동할 때 두 사람은 무리의 선두에 나란히 섰다. 테무진은 2인자가 아니었다. 사실상 2인자였지만, 공식적으로는 공동 1인자였다. 거기에 더해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게르를 쳐 놓고 두 사람이 함께 생활했다. 함께 자는 것은 물론이요,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음 이건 뭔가… 야오이물인가…
이거슨 브로크백 마운틴인가…
그럴 리 없겠지만, 두 사람의 성적 취향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게르는 기본적으로 단칸방이다. 어차피 식구들끼리 한 이불 덮고 잔다. 두 사람만의 독립된 게르에서 한 이불을 덮는다는 운명을 건 투쟁의 동반자가 되었다는 상징정인 행동이다.
초원에는 '쿠릴타이'라는 것이 있다. 쿠릴타이는 나중에 '대회의(大會義)'라는 뜻으로 발전하지만, 원래는 크고작은 회의 모두를 뜻하는 말이다. 보통 쿠릴타이는 씨족장이 되었든 군사지도자가 되었든 아니면 그냥 평범한 혈족의 가장이 되었든, 보스의 게르에서 열린다. 그런데 쿠릴타이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술이다.
술 한 잔 하는데 싸울 일이 뭐가 있겠는가? 쿠릴타이 자체가 일종의 '파티'이다. 따라서 쿠릴타이는 명목상으로는 회의지만, 참석자 모두가 의제에 찬성하는 게 자연스러운 관습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쿠릴타이는 일종의 '투표'의 성격을 띠게 된다. 참석자들이 과반수, 혹은 정족수를 채우느냐가 쿠릴타이의 관건이다.
다시 말해 영향력이 있는 사람, 즉 귀족이나 최소한 혈족의 장(長) 등 – 이 봉건적인 세계에서 '선거인단'에 들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나 쿠릴타이에 참석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교감하는 배타적 게르… 이는 곧 '상시적 쿠릴타이'와 다름 아니다.
역사의 흐름은 소위 말하는 '절대정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걸까, 아니면 개인들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우연에 따라 결정되는 걸까? 다시 말하면 한 문화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되어서 넘어가는 걸까, 아니면 '마침 그 사람'이 있었기에 전혀 다른 성격의 문화권으로 달라지는 걸까…
자무카는 부족과 씨족들이 만들어내는 전통적인 논리, 예를 들면 '정상적인' 쿠릴타이와 같은 관습적인 논법을 탈피하려고 했다. 그건 테무진도 마찬가지였다. 역사가들마다 자무카와 테무진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이는 자무카가 전통귀족들의 이익을 대변했다고 하고, 테무진이 평민층을 대표하는 혁명가였다고 한다. 어떤 이는 자무카야말로 혁명가였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두 사람 모두 전통을 배신했다고 믿는다. 자무카와 테무진 모두 혁명적이었으되, 다만 혁명의 성격은 달랐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천천히 하도록 하자. 어쨌든 자무카와 테무진은 원시적인 초원에서 거의 최초로 '과두정치'를 실험했다. 스무 살 가량의 두 젊은이가 이끄는 사냥-용병-전투 집단. '쌍두(雙頭)정치' 정도로 표현하면 될 듯하다.
자무카의 집단엔 나이 많은 몽골 귀족들이 많았다(물론 자무카가 자신의 능력으로 규합한 전사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을 모두 제치고 자신의 안다와 무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거다. 초원의 관습은 스무 살의 젊은이가 혼자 독단적으로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자무카라도 말이다. 그래서 자무카는, 자신의 논리대로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테무진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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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테무진은 테무진대로 해결해야 할 가정사(事)가 있었다. 바로 보르테의 임신. 보르테가 메르키트족에 잡혀있던 시간이 얼만큼이었는지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생물로 태어나는 이상 태아는 자궁 속에서, 정상적이라면 10개월 간 자라다 태어난다.
그런데 보르테의 임신-출산 주기가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테무진의 자식이라고 못박기에는 너무 빠르게 만삭이 되었다. 메르키트족에 납치되기 전에 임신했다면 보다 빨리 임신을 하는 게 자연스럽고… 테무진이 구출한 후에 임신했다면 배가 불러오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렇게 테무진의 첫째아들이 태어났다.
옛 역사서들은 주치가 테무진의 자식인지, 칠게르의 자식인지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식으로, 마치 미스테리인것마냥 뭉뚱그려놓았다. 그러나 몽골역사에서 이후 주치의 핏줄을 놓고 벌어지는 엄청난 논쟁들을 보면, 아무래도 당시 사람들은 주치가 메르키트족의 핏줄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게다가 테무진은 첫째아들의 이름을 '주치'라고 지었다. 주치는 '손님'이란 뜻이다.
훗날 테무진의 둘째아들 차가타이는 주치가 메르키트족의 자식임을 확신하는 듯한 언행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치가 보르테를 겁탈한 칠게르의 아들이라고 확신해도 될 듯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테무진은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다른 행동과 사고를 한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존중했을 뿐만 아니라, 주치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키웠다. 또한 훗날 그는 아무런 고민 없이 자신이 세운 제국을 주치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약탈혼과 재혼, 중혼이 일반화된 초원이라고 해도 핏줄은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나중에 이 문제 때문에 형제들끼리 반목이 생기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주치의 핏줄을 가장 개의치 않은 것은 바로 테무진 본인이다.
테무진은 공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보르테와 소치겔과 코아그친을 잃었을 때, 가족도 아닌 하인인 코아그친에게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죄책감을 느낄 줄 알았다. 마찬가지다. 보르테가 납치당하고 겁탈당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것은 보르테의 잘못이 아니었다. 보르테의 고통은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다. 오히려 자기가 아내한테 미안하면 미안했지…
테무진의 일생을 각색한 현대의 이야기들을 보면, 테무진의 '포용력', '큰 그릇'을 설명하기 위해 보르테의 임신을 들먹이는 경우가 많다. 적장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 고민하는 테무진. 그러다가 마침내 보르테를 "용서"하고 주치를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관대하고도 관대한 한 남자.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테무진은 화가 나기는커녕 보르테와 주치에 대해서 그 어떤 악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테무진은 자신의 자식들 모두가 '보르테의 뜨거운 자궁에서 나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아내, 혹은 여자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갓난아기 주치가 보르테의 젖을 빨며 옹알댈 동안, 테무진과 자무카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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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의 신분은 가난한 초보 가장에서 무력집단의 공동수장으로 급상승했다. 가족들의 삶도 나아졌다. 이전에는 삶의 많은 부분을 숲과 물가에 의존해야 했다. 가축 없이 식량과 물자, 내다 팔 물건을 사냥하고 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초원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자무카 무리의 가축에 더해, 메르키트족에게서 약탈한 가축이 제공하는 고기와 유제품을 먹고, 의복과 물자를 모자라지 않게 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테무진은 이 모든 걸 자무카에게서 공짜로 얻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무리의 안녕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곧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테무진 자신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었을 것이다.
자무카와 테무진의 생존법은 생전의 예수게이의 방법 그대로였다. 예수게이의 집단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결합된 운명공동체이자 이익집단이었다. 전통적인 초원의 혈통집단은 당연한 듯이 결속되어 있었다. 자무카와 테무진, 두 배경없는 젊은이는 몽골 귀족들은 물론 부족 외의 사람들까지 규합해 사냥, 전쟁, 약탈, 용병사업 등을 벌이면서 초원의 전통을 해체하고 있었다.
이런 성격의 집단은 혈연관계가 아닌 보스의 능력에 의해서 유지된다. 그런데 보스가 두 명이다. 자무카의 능력은 이미 검증된 상태. 여기에 테무진의 묘한 인간적 매력이 더해이지면서 자무카-테무진 연합단은 곧 <자무카 파>와 <테무진 파>로 분열하게 된다.
자무카는 쌍두정치의 파트너로 테무진을 필요로 했다. 그의 입장에서 테무진은 자신의 의지와 결정을 관철하는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을 해주어야 했다. 반면 테무진은 자무카의 말만 듣지는 않았다. 테무진은 일반적인 위인전, 영웅서사시의 기준으로 보면 무척이나 소심한 남자였다. 하지만 소심함과 겸손함이 만나면 특별한 장점으로 발전한다.
테무진은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낫다고 믿지 않았다. 역사는 그의 '어록'을 몇 개 기록해 놓았다. 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비로소 따를 가치가 있는 말로 믿어도 된다."
역사 속 위인들 중에 아마 테무진만큼 남의 말을 잘 듣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만 생각해 낼 수 있는 위대한 발상을 툭 꺼내놓는 천재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재능의 천재가 아니라 '태도의 천재'였다. 그는 어머니, 아내, (관습대로라면) 자신의 노예, 동생들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한 마디로 고집이 없단 얘기. 테무진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장 흔하게 한 행동은 바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자무카는 테무진을 독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테무진은 어머니 헐룬, 납치당해서 남의 자식이나 임신해온 아내 보르테, 노예계급에 속한 젤메, 어디서 굴러들어온 건지 모를 어느 부잣집 외아들 보르추, 자신의 동생들, 그리고 필시 다른 잡다한 부하들의 의견을 구하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조직 내에서 테무진의 지지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테무진이 자무카의 '영혼의 쌍둥이'였다면 상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마당엔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자무카는 테무진에게 준 공동 1인자 지위를 박탈해야겠다고(아니면, 테무진을 압박해 그와 이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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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이 자무카 무리에 합류한 지 1년 하고도 반년이 지난 어느날. 그날도 두 사람은 선두에 나란히 서서 무리의 행렬을 이끌고 있었다. 자무카가 뜬금없이 테무진에게 말을 던진다.
"테무진 형제, 말떼를 산에 바짝 붙여 야영하자. 말 치는 사람들은 거기서 오두막을 쳐야겠지? 양떼는 시냇가에 풀어놓자. 양치기들은 골짜기에서 야영하면 되겠군."
무리를 둘로 나누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말과 양은 같은 가축이라도 계급이 다르다. 말은 전사의 친구이며, 정밀한 훈련을 거쳐 정성껏 키워야 한다. 초원의 절대적인 이동수단이며, 사람과 2인 1조를 이루는 동물이다. 반면 양은 식량이자 물자다.
말치기는 양치기보다 지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양치기는 평민 이하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테무진이 타이치우드 족에 붙잡혀 있던 시절, 그를 도와준 소르칸 시라는 전사가 아닌 양치기였다. 소르칸 시라가 속한 '솔두스' 족의 계급이 낮았음을 보여준다.
말치기+말떼, 양치기+양떼의 야영지를 나누자는 것은 곧 우리 두 사람이 두 그룹을 나눠서 이끌자는 뜻. 당연히 말치기와 말은 자무카 본인이 맡겠다는 거다. 이건 테무진을 공동 보스의 자리에서 2진 그룹의 리더, 즉 공식적인 2인자로 끌어내리겠다는 뜻. 또한 말과 전사에서 비롯되는 군사력, 즉 권력을 독점하겠다는 이야기다.
테무진 때문에 세를 불리긴 했지만, 원래 자무카의 조직이다. 자무카의 제안(?)을 들은 테무진은 당황했다.
'아 씨바 이거 어떡하지… 어머니랑 얘기해봐야겠다.'
테무진은 일부러 뒤쳐저서는, 뒤따라 오고 있던 수레에 다가갔다. 헐룬과 보르테가 타고 있던 수레였다.
"저기 어머니, 자무카가 이러저러한 말을 하던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일단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생각은 어떻죠…?"
헐룬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보르테가 시어머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본래 남자가 무시당하거나 입지가 위험해지면, 본인보다 아내가 더 잘 감지하는 법이다. 그리고 남편 무시하는 인간들에게 아내가 더 분노한다. 보르테는 자기 남편이 노력만큼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이미 화가 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런데도 이 남자가 화를 내기는커녕 엄마 나 어떡할까요, 하는 모습을 보자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역사서는 테무진의 위신을 지켜주기 위해서 보르테의 언행을 꽤나 순화시켰지만, 실제로는 이 정도였을 것이다.
“자무카씨가 하는 말은 당신더러 자기 부하노릇 하덩가, 그렇지 않으면 썩 나가라는 뜻이야. 당신이 뭐가 부족해? 그딴 인간하고 같이 살 필요 없어. 독립해!”
남자는 여자보다 무딘 구석이 있어서, ‘보다 못한’ 아내에 의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깨닫는 경우가 있다. 테무진은 아내가 역정을 내자마자 독립을 결정했다. 결행 일시는 바로 그날 밤이었다.
밤. 테무진은 일군의 무리를 이끌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빠르게 야영지를 이탈했다. 행여나 자무카가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추격한다면 테무진 가족과 그의 수하들은 절멸했을 것이다. 테무진과 형제들의 가족, 젤메와 보르추, 다른 소수의 부하들과 그들의 가족… 거기에 더해 그들에게 딸려 있던 양, 말, 염소, 소, 야크, 낙타가 모두 이동하는 것이다. 자무카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자무카는 테무진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비록 갈라설 지라도, 우정은 남아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테무진이 자신에게 별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자무카의 성격이라면, 테무진을 선택한 사람들은 어차피 자신의 충실한 부하가 될 수 없으니 그냥 가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리라.
야영지 전체에 테무진이 이탈했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게르마다 각자 자신의 운명을 누구에게 걸 지 밤을 세워가며 고민하고, 의논했을 게 분명하다.
자무카측이나 테무진측 모두 팽팽한 긴장상태였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뜨악한 긴장상황이 추가된다. 테무진 일행은 야간이동중에 어떤 집단의 야영지를 만나게 된다… 바로 원수 타이치우드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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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놀란 쪽은 타이치우드였다.
"웬 사람들이 이 야밤에 우리 야영지에 바짝 붙어오는 거지…?"
"저거… 우리가 어릴 때 붙들어다가 졸라 괴롭힌 테무진인데요."
"흐미…"
타이치우드족은 혼비백산했다. 테무진 무리는 비상시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완전무장 상태였을 것이다. 게다가 타이치우드족의 행동을 보면, 테무진의 군사력이 타이치우드족을 압도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타이치우드족은 거대씨족이었고, 어엿한 부족에 준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부족의 지도자 타르쿠타이는 몽골족의 칸이 되길 원했었고… 그런데 자무카의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소수'의 머릿수에 압도되었다는 것. 이건 자무카가 불과 스무 살 즈음까지 모은 세력이 그만큼 강성했음을 뜻한다.
"아니 저새끼 자무카랑 같이 놀지 않았어? 왜 따로 떨어져서 우리한테 오는 거야! 복수하려고 출정한 건가?"
"그게, 자무카랑 사이가 벌어져서 독립하는 거랍니다."
"씨바, 저것들이 우리를 공격하면 어떡해. 그럼 우린 빨리 자무카한테로 튄다!"
사실 테무진은 타이치우드족과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원한은 원한이고, 지금은 그저 빨리 지나쳐가야만 했을 뿐. 하지만 타르구타이가 테무진의 상황을 어찌 알겠는가? 타이치우드족은 황급히 짐을 싸들고 자무카의 야영지로 도망, 씨족 전체가 자무카의 부하가 된다. 지은 죄가 있으니 공포도 더했을 터. 급하게 이동하느라 목영지에 애도 하나 잃어버리고 갔다.
졸지에 고아가 된 아이의 이름은 '쿠쿠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위험한 밤이었지만, 테무진은 쿠쿠추를 내버려두지 않고 어머니 헐룬에게 데려가 가족으로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테무진은 하룻밤만에 독립에 성공한다. 그러나 성공이래봐야, 당시 기준으로는 정체성이 모호한 신생집단일 뿐. 그때 테무진의 나이 19세. 그는 새로 결성된 조직을 이끌고 초원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날이 밝자 기적이 일어났다.
(다음편 '테무진 라이징'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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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광주에서 1패 하시길..ㅋㅋ
덕담 감사합니다.^^
1패까지만 할게요..
엄지척!!!
잘 읽고갑니다~^^
엄지척요..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항상 다음 편이 궁금합니다
아들과의 원정탁구 정말 생각만 해도 황홀하네요
얼마나 행복할까요???
아들과 잊지못할 추억거리가 하나 더 만들어지겠군요
부럽습니다...자녀와 같이 무언가를 할수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한거죠~~
원정 탁구 다음날은 지리산에서 야영을 한 후 노고단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부러우시죠? ㅎㅎㅎ
@탁구왕김제빵 와~~~
정말 부러운데요..
남자끼리 ...ㅎㅎㅎ
굿^^
광주에서 1패를 하시길 2..ㅎㅎ
저는 지금 지리산 달궁자동차야영장에서 있네요.
노고단은 발이 아닌 차로가실것 같다능..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가는 것도 아이에게는 좀 힘들지요...
중간에 라면 끓여먹는 맛에 또 갑니다.
저는 덕동자동차야영장 예약했지요^^
@탁구왕김제빵 아빠와 함께 하는
탁구여행 그리고
지리산산행~~~
차로가던지
산행을 하던지
아이와 함께
한다는게 좋군요
저도 애들 어릴적
다양한 경험해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보기좋네요~~~
아이와 많은 추억을
응원합니다~^^
@탁구왕김제빵 저희 부부도 가끔 조기탁구 시합에 나갔어요. 6일날 달궁에서 철수하는 관계로 이번 시합엔 나갈수가없네요ㅠ ㅠ
한양의 절대고수인 제빵님을 못뵙게 되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