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월 회비 5만원을 석 달째 내지 못한 변호사는 884명이었다. 전체 회원의 8%를 웃도는 수치로 이런 '가난한 변호사'는 연일 최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반면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홍모 변호사의 월수입은 7억6000만원이었고, 한 대형 로펌에는 연봉 9억원 넘는 '재벌급 변호사'가 148명으로 집계됐다.
변호사 수입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월급 1억원'짜리 변호사가 있는 반면, 상당수 변호사는 월 300만원 대졸 초임 버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로스쿨 출신이 쏟아져 나오는 등 변호사가 1만 5000명을 넘어서면서 '변호사 = 부 + 명예'라는 등식은 이미 사라졌다"면서 "법조계에 끝없는 보릿고개가 시작됐다"고 했다.
◇'억'이 우스운 재벌급 변호사
서울 서초동에서 개업한 법원장급 출신 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려면 기본이 '억'이다. 간단한 사건은 1억원이지만 복잡하고 품이 많이 들어가는 사건은 2억원, 3억원으로 수임료가 올라간다. 그래도 그에겐 의뢰인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다른 변호사도 마찬가지. '특수통' 출신인 그는 기업 사건이 터질 때마다 거론되는 인기 변호사다. 검찰의 한 간부는 "총리 후보에서 사퇴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수개월간 수임료를 16억원 받았는데, 사실 그보다 스펙이 떨어지면서 돈 더 잘버는 변호사가 적지 않다"고 했다.
김앤장과 광장 등 로펌에도 고액 연봉자가 수두룩하다. 매달 7800만원(직장건보료 최상등급 기준액) 이상을 받는 변호사가 김앤장과 광장엔 각각 148명과 20명이 포진해 삼성전자(62명)가 부럽지 않다. 주요 로펌은 월급쟁이들에겐 꿈만 같은 '연봉 1억원'을 신입 변호사에게도 보장해준다.
◇월 5만원 못 내는 가난한 변호사들
그러나 이런 풍요로운 변호사는 10명 중 1명에 불과하고 9명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거치며 상당수가 도태되고 있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서울변회가 집계한 '연도별 경유(변호사가 적법하게 수임했다고 확인된 사건) 건수 및 회원 현황'에 따르면, 서울변회 회원 수는 2004년 4140명에서 지난해 말 1만476명이 됐다. 같은 기간 이들이 수임한 사건은 20만7876건에서 38만4004건으로 증가했다. 변호사는 배 이상 늘었지만 사건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늘어난 사건은 가압류 등 신청 사건과 등기 사건이 대부분이고, 재판을 거치는 '본안 사건'은 2011년을 고비로 줄어드는 추세다. 따라서 1명이 맡는 월평균 본안 사건은 2004년 3건에서 2013년 2건으로 감소했다.
사건만 줄어든 게 아니다. 수임료가 뚝 떨어졌다. 기본 수임료 300만원을 고집하던 서초동 법조타운의 '불문율'은 사라지고 지금은 150만원에도 사건을 맡으려는 변호사가 줄을 섰다. 최모 변호사는 "아무 사건이나 되는 대로 수임하는 '막변'(막장변호사)이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자금난 등을 견디다 못해 휴업을 택한 서울변회 변호사는 10년 전 364명에서 올해 1441명으로 늘어났다. 휴업은커녕 취업 못 한 로스쿨 출신 '백수 변호사'의 숫자도 점점 쌓여가고 있다.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
이젠 넓은 사무실 혼자 쓰는 '간 큰' 변호사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여러 명이 함께 사무실을 빌려 각종 집기와 용품, 비서까지 공유하면서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변호사가 늘면서 '특수'를 기대했던 서초동 법조타운엔 빈 사무실이 널려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각 방 쓰던 변호사들이 한 방으로 합치고 아예 집으로 들어가는 변호사도 있다"면서 "한때 방이 없어 난리였던 서초동에 지금은 빈 사무실이 많다"고 했다. 대형로펌도 해외연수를 줄이는 등 비용 절감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한쪽에선 수억, 수십억을 벌고 그쪽에 눈높이를 맞추다 보면 범죄 유혹에 빠져드는 변호사들이 있게 마련"이라면서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는 말이 현실화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실제로 횡령과 주가조작, 브로커 고용 등 변호사 비리는 이제 '뉴스'가 아닐 정도로 빈발하고 있다.
조선일보 : 2014.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