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상추는 문 걸어놓고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상추 맛은 가을이 절정이라는 뜻이다. 이유는 상추가 서늘한 날씨를 좋아해서다.
상추는 동서고금을 통해 사랑받아 온 채소다. BC 4500년께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최초의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선 고려 시대부터 상추쌈을 즐겼다. 서양인은 샐러드의 기본 재료로 여긴다. 미국의 동서 간 운송 트럭 적재함에 양적으로 가장 많이 실리는 것이 상추란다.
한방에선 요긴한 약재로 써 왔다. 입병과 목이 붓고 아픈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토기에 넣어 태운 상추잎(한방명 ‘와거’)을 처방한다(동서신의학병원 한방내과 고창남 교수). 모유가 부족한 산모에겐 상추를 찧어 만든 즙을 물에 타 먹도록 권한다. 타박상이나 담 결린 환자에겐 즙을 직접 발라 준다.
또 치약 대용품으로도 쓰였다. 잎과 뿌리를 함께 말려 가루 낸 것을 칫솔질할 때 치약과 함께 사용하면 치아가 하얘진다.
불면증에도 유용하다. 이는 상추를 먹으면 꾸벅꾸벅 조는 것을 역이용한 지략이다. 우리 조상은 ‘부녀자는 상추를 먹지 말라’고 했다. 여성이 상추 먹고 조는 모습이 보기 흉하다고 여겨서다. 요즘은 수험생의 금기 식품으로 통한다. 저녁에 먹으면 잠이 와 야간 자율학습이 힘들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상추에 든 수면·진정·최면 성분은 락튜카리움.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우유 같은 흰 즙에 많이 든 쓴맛 성분이다. 상추는 크게 잎상추(치마상추)와 포기상추로 나뉜다. 치마상추는 여러 겹의 포기 모양이 아닌 불결구(不結球)종이어서 한 잎씩 잎따기로 수확한다. 물기가 많고 맛이 시원해 식당용 쌈채소로 주로 이용된다. 요즘은 속이 찬 포기상추가 대세다. 맛도 치마상추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상추는 또 잎의 색깔에 따라 청상추와 적상추(꽃상추)로 분류된다. 맛은 적상추가 낫다. 양상추는 샐러드·마요네즈 등 서양 음식과는 잘 어울리지만 쌈엔 잘 맞지 않는다. 바스라지기 쉬워서다.
상추의 쓴맛 뒤엔 달콤한 맛이 숨어 있다. 그래서 식욕 부진에 빠진 사람에게 곧잘 상추쌈을 추천한다. 영양적으론 여느 녹색 채소와 마찬가지로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은 적다. 대신 비타민·미네랄·엽록소·식이섬유가 풍부하다. 베타카로틴(체내에 들어가 비타민 A로 변환, 항산화 효과, ‘천상’ 품종의 경우 100g당 298㎍)·비타민 C(항산화 효과, 10㎎)·칼슘(뼈·치아 건강 유지, 29㎎)·칼륨(혈압 조절, 306㎎)·철분(빈혈 예방, 1.1㎎)이 제법 들어 있다. 특히 로얄채(상추의 한 품종)는 베타카로틴이 4864㎍, 비타민 C가 76㎎에 달한다. 비타민 C 함량만 놓고 보면 딸기·레몬 수준이다. 양상추는 비타민·미네랄 함량이 전반적으로 상추보다 적다.
상추쌈을 해 고기를 먹으면 세 가지 이익을 얻는다. 첫째, 상추의 항산화 성분이 고기를 태울 때 생기는 벤조피렌 등의 발암작용을 상쇄해 준다. 둘째, 상추의 식이섬유가 육식을 주로 하는 사람이 걸리기 쉬운 비만·고혈압·고지혈증 등 성인병 예방을 돕는다. 셋째, 식물성과 동물성 식품의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다. 우리 조상은 상추쌈을 먹은 뒤엔 계지차(계수나무의 삭정이 가지)를 마셨다. 상추는 성질이 차고 계지는 따뜻해 상호 보완적이다.
햇빛 잘 받고 자란 맛있는 상추는 잎의 색이 짙고 윤기가 난다. 크기는 어린이 손바닥만 한 것이 제일 고소하다. 잎이 힘이 있어 신선하게 느껴지면서도 조직이 거칠지 않은 것이 상품이다. 잎상추는 구입 후 바로 섭취하는 것이 원칙이다. 포기상추는 냉장고에서 다습하게 보관하면 20일까지 저장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