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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9:13-19)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紫紬)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반복하여 말하지만, 일곱 나팔 재앙과 일곱 대접 재앙은 그 성격이 같습니다. 첫째 나팔재앙이나 첫째 대접재앙은 땅에 일어납니다. 둘째는 바다에, 셋째는 강과 물 근원에, 넷째는 공중 또는 하늘의 일월성신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다섯째는 무저갱이 열린다, 짐승의 보좌에 대접을 쏟는다고 하였고, 여섯째 나팔을 불면 유브라데 강에 결박되어 있던 네 천사가 놓임을 받는데, 그들이 사람 ⅓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한편 여섯째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으면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된다고(12절) 하였습니다. 여섯째 나팔에 유브라데에 결박되어 있던 네 천사들이 놓이면 사람 ⅓을 죽이는데, 그 마병대의 수가 2만만, 곧 2억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이 수효가 엄청납니다. 현재 미국 군인의 수가 143만 명쯤 됩니다. 한국은 60만, 북한이 120만이지요. 러시아가 120만, 중국은 310만이지만, 영국 같은 강대국도 20만 정도입니다. 그러니 현재 세계의 군인들을 다 합해도 3,000만 명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2억의 군인이 유브라데로 모인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마 예비군이고 방위군이고 다 합해야 할 것입니다. 장차 일어날 큰 전쟁은 이렇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 말을 탄 자와 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으로 된, 곧 세 가지 색깔의 흉갑이 있었습니다. 흉갑은 ‘호심경,’ ‘가슴방패’입니다. 저희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옵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불이 탈 때에 연기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연기’를 살짝 빼고서 보면 곧 “불과 유황”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연상됩니까? 지옥불이 아닙니까? 야고보서 3:6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지옥불로 인해 사람 ⅓이 죽습니다.
이 말들이 무엇일까요? “이 말들의 힘은 그의 입과 그의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였습니다.” 입과 꼬리에서 불이 나와서 사람들을 죽입니다. 앞뒤에서 불이 나옵니다. 현재로서는 여러 가지 포를 장착한 탱크를 뜻한다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 초현대식 무서운 무기가 나와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무기에서 뿜어내는 불과 독으로 인해 죽게 됨을 보여줍니다. 아마 핵무기도 이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핵폭발이 일어나면 순간적으로 ‘번쩍’하면서 터지는데, 핵구름이 뜨고, 핵의 낙진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무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여섯째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때에 개구리 같은 더러운 세 영들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데, 이들은 귀신의 영입니다.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읍니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고 했습니다.
1. 유브라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1) 유브라데 강이 대관절 어디입니까? 이 강은 지금의 이락, 옛날의 바벨론을 관통하는 큰 강입니다. 옛날에 아브라함이 이 강 유역 우르에 살다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중동지방은 석유가 많이 나는 곳입니다. 그 반면에 물이 귀합니다. 그래서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사막이 많습니다. 물이 적고 식량이 부족하니까 옛날부터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서 약탈을 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곳에서 발생한 회교는 그 근본 교리에서 전쟁을 정당하게 여기고, 또한 부추깁니다. 제가 어려서 학교에서 배울 때에는 “한 손에는 코란을, 한 손에는 칼을”이라는 그들의 구호가 있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이슬람교는 평화의 종교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변명한다고 합니다만, 어느 종교나 ‘평화’를 내세우지 않는 종교가 있습니까? 문제는 그 속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소위 ‘지하드’라는 것이 있지요. 곧 ‘거룩한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살상을 정당화합니다. 9.11 테러를 통하여 새롭게 주목을 받았던 일이지만, 그 후에도 그들은 ‘자살 테러’를 수없이 감행했습니다. 코란의 메디나 계시는 전쟁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는데 칼의 구절이라 불리는 전쟁을 독려하는 구절이 코란에 109구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슬람에도 여러 파가 있어서 ‘수니파’에서는 지하드를 교리에 넣지 않지만 ‘카라지파’에서는 교리에 포함한다고 합니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 유브라데의 강물이 점점 말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상류에서부터 물을 끌어다가 농사도 짓고, 수력발전소도 돌려야 하니까 하류에까지 물이 도달하지 못한답니다. 그러나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계시록에서는 상징적이고, 또한 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에 회교도 테러범들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미국이 즉각 응징을 선언하고 그 주범으로 지목되는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습니다.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한국도 참전하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 이어서 이라크와 전쟁을 했습니다. 이제는 이란과의 일전이 불가피하게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뜻하지 않게 일어났던 한 사건으로 인해서 갑자기 동방에서부터 저 중동으로 가는 길이 열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동의 회교국들 중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터가 점점 서쪽으로 옮겨가서 마침내 이스라엘에 이르게 될 것이며, 결국은 핵폭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인류는 멸망을 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전선의 확대와 함께 복음도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둘째로 유브라데의 의미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네 곳이 있다고 말하는데, 황하 유역에서 발생한 중국문명, 인더스강과 간지스강 유역에서 일어난 인도문명, 유브라데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서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강 유역에서 일어난 애급문명입니다. 근래에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마야문명도 넣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마야문명은 물론이고, 중국문명이나 인도문명 및 애급문명은 세계의 역사를 끌고 오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중동 지방에서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세계의 역사를 이끌어 왔습니다. 서양 문명은 크게 두 개의 사상으로 엮여 있습니다. 첫째는 다신론의 헬라문명, 헬레니즘(Hellenism)인데 일반적으로는 알렉산더 대제 이후의 희랍의 문화를 말합니다. 둘째는 유일신을 믿는 히브리문명, 헤브라이즘(Hebraism)입니다.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헬레니즘은 헬(hell)의 문명, 곧 ‘지옥’의 문명이고, 헤브라이즘은 ‘헤븐’(heaven)의 문명, 곧 ‘천국’의 문명입니다.
① 그러니까 유브라데에 결박된 천사를 놓아준다는 말은 인류 문명의 근원에 결박되어 있던 천사를 놓아준다는 말이 됩니다. 7:1에는 땅 네 모퉁이에 서 있는 네 천사가 나옵니다. 그들은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이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했습니다. 2절에 보면 “다른 천사가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들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붙잡고 있던 것, 곧 그 결박하고 있던 것을 놓아버려 큰 바람이 불게 되어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를 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② 판도라의 상자를 아시지요? 제우스신이 판도라라는 여자를 만들고는 선물로 상자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했다는데, 판도라가 궁금증을 못 이겨서 결국 열어보았습니다. 성경의 선악과 이야기를 변형시킨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 상자 안에 들어있던 온갖 재앙과 재난들이 빠져나왔고, 온갖 욕심과 미움, 시기, 질투, 교만 등의 나쁜 마음들이 다 튀어나와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평화롭던 이 세상이 갑자기 지옥처럼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상자 안에 아직 튀어나오지 않고 하나가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희망이랍니다. 세상에 나쁜 것들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 천사들이 놓임을 받았으면 좋은 것을 가져다주어야 할 것 같은데, 실은 전혀 그게 아닙니다. 무서운 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직 재앙이 내리지 않는 것은 그 천사들이 재앙을 꽉 붙잡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닷물에게도 명하시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시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욥 38:10-11).
오늘 우리가 이렇게 평안하게 사는 것도 하나님이 재앙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2년 1월에 단 한 차례 내린 눈으로 인해서 이 좋은 Puget Sound 지역에 정전이 되고, 길이 막히고, 얼마나 큰 불편을 겪었습니까?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인간의 문화나 문명, 능력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유브라데의 강물이 마릅니다. 이 문명의 근원이 마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세상은 문명실종시대입니다. 모든 문명과 도덕의 가치가 뒤집혀 있고, 옛것을 주장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미개인으로 취급받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음란과 폭력과 배신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짓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옳고그름에 대한 판단도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의 이익을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동성애가 옛날에는 얼마나 부끄럽고 혐오스러운 일이었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들이 아주 당당하게 자기들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하는데, 그런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더욱 캄캄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3) 셋째로, 유브라데란 말을 성경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2장에 처음 나타납니다. 곧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을 때에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Pishon)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Gihon)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Hiddekel)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히브리어 원어로는 ‘페라트’인데, 헬라어로 번역하여서 ‘유브라데’라고(창 2:10-14) 하였습니다.
이 에덴과 이 강들의 이름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에덴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장차 우리가 가게 될 천국을 말하고, 동시에 우리 마음에 이루어진 천국을 말합니다. 그런데 계시록 22:1-2에는 그 천국에도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강은 성령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이 강들의 이름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십시다.
① 첫째 강인 비손이란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강물이 충만하게 흐른다는 뜻이요, 영적으로는 은혜가 충만함을 뜻합니다. 그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라고 했습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에 신령한 금이 생산됩니다. 여러 가지 신령한 보석이 나옵니다. 금은 연단된 믿음을 상징하지 않습니까? 또한 각종 보석은 여러 가지 지혜를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충만하면 우리에게 믿음도 충만해지고, 각종 지혜와 함께 성령의 은사들이 충만해진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② 둘째 강인 기혼이란 넘친다는 뜻입니다. 강물이 넘쳐서 구스 온 땅에 둘렸습니다. 애급의 나일강은 해마다 여름철이면 한두 차례씩 범람합니다. 그러므로 그 인근의 모든 땅에 물을 공급하여 비옥한 땅이 되어 풍작을 이루고, 그곳에서 나는 양식을 온 백성들이 먹고 삽니다. 강물이 넘친다는 말은 곧 우리에게도 은혜가 자기에게만 충만할 뿐 아니라, 더 넘쳐서 남들에게까지 나누어줄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기혼강의 은혜를 받아서 우리도 은혜가 넘쳐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남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세의 신자들은 은혜가 메말라져 있어서 자기의 믿음 하나 지키기도 벅차서 허덕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가족 하나도 구원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빨리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먼저 내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가족 단위입니다.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라고 선언하였고,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0-31)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특히 바울이 경고하기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말세입니다. 먼저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어라.”(눅 23:28)라고 하셨습니다.
③ 셋째 강인 힛데겔은 헬라어로는 ‘티그리스’입니다. 급히 흐른다는 말입니다. 급히 흐르는 물은 힘이 있습니다. 급히 흐르는 물이 어떤 물들입니까? 첫째는 높은 산에서 흐르는 물입니다. 이 물은 맑은 약수가 되고 또한 산속 깊은 곳에서 여러 가지 약초들이 나게 합니다. 둘째는 폭포수일 것입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수력발전을 일으킵니다. 셋째는 장마철에 흐르는 물입니다. 이런 물은 동네의 더러운 것과 쓰레기들을 말끔하게 쓸어버립니다. 성령의 은혜가 우리 속에 급히 흐를 때에 우리의 죄와 악한 생각이 말끔히 씻겨나가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찬송가에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이 마음 흰 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의 후렴은 “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라고 하였는데, 합동찬송가의 가사는 “주의 보혈 흐르는데 날래게 뛰어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급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날래게 뛰어나가야 합니다. 멍청하게 앉아 있으면 다 놓치고 맙니다. 은혜는 베푸시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④ 넷째 강인 유브라데(Euphrates), 히브리어로는 ‘페라트’(tr;p,;)인데, 힛데겔, 곧 티그리스 강과 함께 아라랏 산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큰 강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영어로는 sweet, 곧 ‘달콤하다, 향기롭다’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스위트홈(sweet home)이라고 하면 행복한 가정을 말하지 않습니까? 이런 강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옵니다. 이 강은 흘러나가기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강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브라데가 말라진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행복이 말라집니다. 사랑이 말라집니다. 삶의 가치와 목적의식이 말라집니다. 인간들은 헛된 부귀영화와 쾌락만 추구하게 됩니다. 전쟁을 즐거워하고 곳곳마다 전쟁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에서는 말세에 일어날 일을 이렇게 잘 예언했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주님의 은혜는 근본적으로 달콤합니다. 광야의 백성들이 날마다 먹었던 만나의 맛이 어떠했다고 했습니까? 출애급기 16:31에 보니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의 맛도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10)라고 하였고,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103)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찬가지로 주님의 은혜는 한없이 달고도 답니다. 우리의 삶을 이렇게 달게 만들어주십니다.
3.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시대의 심각성, 위급성을 깨닫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2000년 전에도 예수님은 ‘세상 끝’(마 13:39,40,49; 24:3; 28:20)이라거나 ‘마지막 날’(요 6:39,40,44,54; 11:24; 12:48)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동시에 깨어 있으라고 거듭거듭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긴장하고 있으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차’하는 순간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한 때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마귀의 훼방에 대해 긴장을 늦추지 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유브라데에 결박된 천사들이 놓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①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야곱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 힘이 있을 때에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 재앙이 내리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일단 재앙이 시작되면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때를 알고 깨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지요? 미리 준비한 사람에게는 환난이 오지 못합니다.
②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불벼락을 맞았습니다. 의인만 많으면 얼마든지 재앙을 피할 수 있고, 연기시킬 수 있습니다.
③ 그리스도의 보혈을 우리의 마음과 가정에 발라놓아야 합니다. 유월절의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3) 유브라데에 강물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영적인 은혜가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눈에 눈물이 흘러야 눈이 늘 맑고 아름답습니다. 만일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마음에도 물이 흘러야 합니다. 어떤 물이 흘러야 하나요?
① 그리스도의 보혈이 흘러야 합니다. 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당신을 위하여 흘리신 그 보혈을 손으로 받으세요. 그리고 그 피를 당신의 마음에 바르세요. 옛날 유월절에는 양의 피를 문 인방과 설주에 발라놓은 집에 장자가 죽는 재앙이 오지 못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발라놓은 사람이나 가정에 재앙은 엄습하지 못합니다.
② 그리스도의 말씀의 물이 흘러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골 3:16)고 하였습니다. 그래야 주야로 묵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말씀이 마음판에 새겨져야 그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쫓겨난 귀신은 두루 다니면서 쉴 곳을 찾는데, 물이 없는 곳으로 다닌다고 하셨습니다(마 12:43). 말씀의 물이 없으면 귀신이 들어옵니다. 우리 마음에 말씀을 가득 채워서 귀신이 감히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③ 성령의 은혜가 흘러야 합니다. 성령의 강물이 흐르면 여러 가지 은사가 나타납니다.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신령한 은사들을 나누어 주어 그들을 견고케 하려고 한다고(롬 1:11) 했습니다. 신령한 은사가 있으면 신앙이 견고해집니다. 견고하니까 늘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은사가 나타나면 열매도 풍성해집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그 생활에 능력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은혜를 알지도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3) 말세에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행 2:17-18)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에까지도 놀라운 체험이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에 얼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대환난이 시작된 다음에는 이미 때가 늦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소리를 소홀히 여기면 나중에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때가 옵니다.
지난번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될 때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우물쭈물하다가는 결코 살아남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경고에 전혀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속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머뭇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큰일 납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에 빨리 결단해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물이 동할 때에 빨리 들어가는 사람이라야 고침을 받았습니다. 고침을 받는 일이나 은혜를 받는 일에는 양보가 없습니다. 속한 결단과 행동만이 요청됩니다. 그 은혜가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12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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