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가 참석하고있는 독서모임은 3개가 있다
첫째는 죽음을 공부하는 각당복지회관소속의 '메멘토모리 독서회'가있고
둘째는 지금 38살되는 큰아들이 중학교 1학년때 독서클럽 아이들과 같이 만나던 엄마들의 독서모임인 '장미독서모임'
그리고1990년부터 내가 만들어 운영하여오고있는 인문학을 주로공부하는 '둥지모임'이 있다
내가 회장을 맡고있는 둥지모임은 회원이 9명
55세~75세까지 차이가 많이 나는 연령대지만
함께 문화생활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연세가 가장 높으신분이 바로 우리삶의 멘토이시니까...
책도 제일 열심히 읽어 오신다.
재작년에는 최인호님의 '유림' 전6권을 읽고 경상도 지방의 서원들을 두루돌아보았고
작년에는 밀양과 김해지방을
올해는 역시 최인호님의 '길없는 길' 전 4권을 다시읽고
입적하신지 올해로 100년이 되시는 경허스님과
그 제자들인 수월,만공,혜월스님의 차취를 따라 충청도 일원의 절집들을 찾아 떠났다
7/4~7/5까지
청계산의 청계사
계룡산의동학사와 도예촌
연암산의 천장사
간월암
도비산의 부석사
덕숭산의 수덕사
그리고 고건축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먼저 의왕시에 있는 청계산자락의 청계사로 갔다.
들어가는 입구는 조용하고 좋은데 경허스님이 9살이란 어린나이에 모친 박씨를 따라 계허스님을 은사로 출가.
사미계를 수지하신 절집인 청계사는
서울근처에 있어서인가 ? 아님 경허스님의 유명세 덕을 봐서인가 ? 돈을 발라놓은 것 같은 느낌에 실망이 크다.
누워계신 와불도 마치 "돈내..돈내.."하고 계시는 것 같다.
선불교의 중흥사찰이라 이름하는 청계사는
중흥조 5대선사(경허선사,만공선사,보월선사,금오선사,월산선사)의 부도탑과 비가있다
모양도 각각이어 재미있게 오손도손 정답게 서있다
달리고 달려서 계룡산의 동학사로.
중흥조 만화 스님의 제자 경허성우(1849-1912)스님이 1871년(고종 8)에 이곳 동학사에서 강의를 열었고,
1879년에는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
현재는 여승들만 의 승가대학이 있는 곳으로 경내가 깨끗하다.
문화부장에 해당하는 직급의 스님에게서 오미자차와 과일 대접을 받고 가보기 힘든 경허토굴까지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으나
하안거중이어서 선방근처에서 조용히 내려왔다.
요사채 뒤로 선방가는길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수련꽃
계룡산도예촌의 입구
도예가들이 나름 예술적으로 꾸며놓았다.
찾는 사람이 너무 없어
공연히 미안하다.
현재 천장사는 공사중이어서
전에 찍어논 사진으로 대신한다.
오른쪽 방이 경허스님방이고
왼쪽방이 만공스님이 시자였을때 만공스님 방이다.
길게 누으면 다리를 펼수가 없는 작은방인데
아마 대각선으로 누웠을 것 같다.
이 절집은 경허,만공스님이 계실 적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어서 좋은데
어떻게 고쳐질지...걱정스럽다.
원래 호화롭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 에서는 큰스님이 나오질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대오각성하는 큰 스님이 나오시는가 보다.
아마도 연대가 삼국시대로 올라갈 것 같은 투박한 칠층석탑
숙소는
태안반도의 서초구 구민휴양소에 정했다
많은 숙소들이 다투어 성수기에 비싼 숙박비를 받고있는데
서초구민이 함께 유하고 나이가 60세가 넘으면 경로우대를 해주어
우리 일행은 아주 싼값에 하루밤을 쾌적하게 보낼 수 있었다.
서초구민인 것이 자랑스럽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온다
반가운 비다.
비오는 절집... 좋다.
폐사지라면 더욱좋고.
고려 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 했다.
이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 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 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그 후에 광복을 맞이했다고 전해 온다.
간월암에 있는 250년된 사철나무
색이고운 만다라손수건을 샀다
남편 등산갈때 쓰라고...
우중에 찾은 도비산의 부석사
가히 선경이라 할 수 있다
절집의 구조가 좀 재미있다
저쪽 왼쪽끝이 아미타불을 모신(영주 부석사도 아미타불을 모셔 현판이 무량수전이다) 극락전이
소의 머리에 해당하고 건물이 길게 이어져서 소의 몸통에 해당한다.
현판에는 경허,만공스님의 글씨가 그대로 남아있다.
극락전 옆에 소뿔에 해당하는 곳의 뾰족바위에 부석사란 글이 새겨져있다
아래보이는 약수는 소 젖에 해당한다해서 우유약수라 한다
이 절집의 차가 유명하여 도비찻집을 찾았건만
사람이 아직 나오질 않아서 발길을 돌리다.
소 뿔예 해당하는부분
운거루(雲居樓)
구름이 머무는 누각이라.....
운거루 위를 걸으니
내가 마치 신선인듯
떠나고 싶지 않지만
다음코스를 위해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리다.
덕숭산수덕사
경허,만공스님의 활약이 두드러지던 곳
대웅전은 고건축으로도 학문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전시중인 의친왕이 만공스님에게 선사한
공민왕이 만든 거문고
만공스님이 정혜사에 머물때 즐겨 이 가야금을 타곤 하셨다
맑은기운 가득한 정혜사는 지금 하안거중이라서 올라가 볼 수가 없다
봄에 경운박물관 워크샵때 찍어두었던 사진이다.
지금 최인호님이 수덕사에 와 계시지만
남들과 더불어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박물관장 정암스님 말씀을 듣고
뵙고싶은맘 호수만 하지만 그냥 접고 내려오다.
나혜석이 일엽스님을 만나러 올때 묵곤하던 여관.
나중에 고암이응로화백이 사서 부인인 박귀옥여사에서 생계수단하라고 주었다
박귀옥여사는 시어머님 모시고 살다가
고암이 옥고를 치를 때 열심히 옥바라지했으나
박인경여사와 함께 파리로간 고암의 앞날이 자기때문에 망칠까봐
고암에게 이혼을 해 주었다 한다
우리 전 시대를 아프게 산 버림받은 불쌍한 여인이다.
거암선생이 100억가까운 사재를 털어만든 박물관이다.
전시된 쌤플 하나씩만해도 수천만원이 든 것이라 한다.
위는
보물급 목조건물인
수덕사 대웅전의 미니어처이다.
넓고 아름다운 고건축박물관이다.
관람객이 많아 손실의 폭이 좀 줄었으면 좋겠다.
선불교와 경허스님,
그리고 세달(수월,만공,혜월)스님과 더불어
재미있게 절집들을 공부하며 다녔다.
빗속을 첨벙거리며 다니다가
차를 타고 상경채비를 한다.
차속에서
돌아본 곳 복습해보고
우리를 태우고다니며 설명을 해주신
'바로보는우리문화'의 이성규선생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다음달 책은
고미숙님이 지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다.
둥지팀에선 다음답사여행은 중국의 열하(승덕<--북경에서 300키로 )와 곡부를 가잔다....
연구해 봐야겠다.
첫댓글 오래전 감명깊게 읽었던 책 최인호의 '길없는 길'에 나오는 배경들을 답사하고 잘 묘사해 주었구나. 당시 책읽기를 끝내자마자 간월암으로 달려갔던 일이 생각난다.이담에 도비사 부석사에 들려 '운거루'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