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화가가 옆 사람의 사실주의 그림이 너무 훌륭하여 그 사람 그림의 기본 틀에다가
괴상한 변형을 주어 자기 그림을 완성했다 하자.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남의 그림에다가 그런 식으로 훼손을 가하면 되겠냐고 따지자,
이 화가는 아니라고, 화가의 독창적 상상력을 가미한 새로운 작품이라고 강변하면 정당한 것이 될까?
표현의 자유 운운하면서... '암살자들'이라는 영화로 떠들썩하다.
보지는 않았고 보고 싶지도 않지만, 박 정희 대통령의 영부인인 육 영수 여사를 저격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이
남편 박 정희 대통령일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긴다는 영화.
그래서 단수가 아닌 복수로 취급했다고.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악마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무리 좌우 대립이 심한 나라라고 하지만 국가 건립에 심대한 공로가 있는 대통령이며,
또 역사적으로 분명히 증명된 사실에다 의혹의 독소를 심어 상대를 쓰러뜨리려고 하는 짓은 명백하게 사탄적이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한 짓이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몇 가지 거짓말을 섞어 사람을 의심에 빠뜨려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
"참으로 하나님이 ...?"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인간의 역사 속에 이 악마적 패턴은 계속된다. 박 정희 대통령의 유족이 엄연히 살아있고, 그들이 모든 사실을 경험했고,
사건의 전모가 명백하게 밝혀졌음에도 아버지의 사주로 어머니를 죽였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유족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가하는 행위가 아닌가?
어릴 때부터 공산주의 서적에 심취했던 재일교포 2세 문 세광.
그가 조총련에 포섭되어 북한 공작원의 지령과 지원을 받아 1974년 8월 15일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 행사장에서 박 정희 대통령 암살 시도 과정에서 육 영수 여사가 저격된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왜 이런 사실을 왜곡시키는가? 교활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교활하다는 말인가?
자기들의 좌파적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진실을 뒤집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동기에서 그렇게 했다고 정직하게 인정한다면 교활함은 어느 정도 감소될 것이다.
그러나 그 영화감독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영화일 뿐이라고 더 교활한 논리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그의 논리에 의거해서 그의 아내가 그에게 싫증이 나서 바람을 피우다가
집안을 망쳤다는 대본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는가? 어디까지나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예술 작품이니 말이다.
설령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런 일은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인본주의, 진화론 등 이 세상의 모든 거짓말 속에는 진실에 대한 분노와 악의가 숨어있다.
한 인간, 한 집단의 건전성은 그 근간이 정직성이다. 정직성이란 원래 윤리적 종교적 정직성을 아우르는 단어다.
하나님의 존재 인정, 자기들이 피조물이라는 사실 인정, 인간의 도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사실 인정,
이 종교적인 신념에서 나오는 윤리적 올바름이 정직이다.
다윗은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선지자의 질책을 받자 단 한 마디를 한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12:13)"
죄악과 교활함이 세상에 넘쳐흐른다. 이런 일들을 대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차라리 사람 없는 들판으로 나가 소리 없이 피어있는 들꽃을 보고 싶다고. 거기엔 어떤 종류의 거짓과 악의도 없다.
그 온유함과 겸손함과 아름다움과 해맑음이 이 세상의 온갖 되지 못한 짓들에 상처받은 심령을 치유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
2026. 9. 30
이 호 혁
첫댓글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랑과 진리로 서있길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