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렉스한 주말 오후입니다. 중요한 작전을 끝내고 늘어지게 자고 싶었는데
새로운 상념이 들어오면서 저절로 눈이 떠졌어요. 이것도 일종의 노예근성일
것입니다. 욥기 다시 읽기를 비판 묵상으로 했어요. 필자가 39살 때도 글을
쓰고 있었더라고요. 그것도 아주 세련된 글을(농담). 뜻을 알 수 없는 가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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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들을 만나면 대답은 궁색해지고 변증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해명할 수 없는 곤란 중에서 비로소 신앙은 빛을 발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난 속에서 욥이 보인 태도와 =카뮈의 '이방인' 속 '부조리'가 뒤죽박죽
앙상블을 만들고 있었어요. 하나님은 욥의 생명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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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육신을 치는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이 대목에서 카뮤와 대조가 됐어요.
그 결과로 욥은 몸에 종기가 나서 괴로워 했고 그의 크산티페가 화가 잔뜩
났습니다. 지랄, 하나님을 욕하고 뒈져버리세요! 음~, 천둥이 치더니
드디어 비가오는구먼.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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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는 인생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부조리'라고 말하면서 자살-수용-항거
중에서 운명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운명과 맞-짱 뜰 것을 도전 합니다.
성경의 고난 방식은 '사단의 도전-하나님의 허용-성도의 고난'으로 이어
진다면 결국 운명을 수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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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불굴의 사탄과 아내의 악담은 편먹기가 아닙니까? 사단의 이론은
욥의 뼈와 살을 치면 하나님을 욕하게 된다는 것인데, 우리의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지 않겠느냐며 입술로 범죄 하지 않아요(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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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동안 사단의 영역은 '묶인 개'(제한적)로 이해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허용하면 성도의 몸도 건드릴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욥의 곤경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제한적으로 사단의
공격을 허용하시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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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을 20대에 읽었고 스토리를 대략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앞부분 페시미즘을 조금 알고 있었더이다. 주인공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인
이유가 단지 알제리의 강렬한 태양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라는 어이없는
사실이, 어머니의 죽음에 그 어떤 애도도 표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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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처럼 임펙트가 강하게 남습니다. 그땐 내용이 지루하게 느껴졌고 중간
중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지금보니 '부조리'의 사전적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47살에 친구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죽은 카뮈의 일생을
대변 한다고 봅니다."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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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뫼르소는 마랭고 양로원으로부터 사망 소식을 듣고 양로원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슬퍼하기는커녕 어머니의 시체를 보기를 거부하고 무덤덤하게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시고 때론 졸기도 하며 장례식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다음날 그는 해수욕을 하러 가다 그곳에서 이전에 함께 일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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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와 영화관에 가서 코믹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섹스를 합니다. 뫼르소는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인 레몽과 친구가 되고 그의
권유로 마리와 함께 레몽의 친구 별장으로 놀러 갑니다. 그 해변에서 레몽의
옛 정부의 오빠가 끼어있는 아랍인들과 맞닥뜨리게 되고 태양이 눈이 찌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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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오후, 서슬 빛에 위협을 느낀 뫼르소가 방아쇠를 당겼고 아랍인을
살해하게 됩니다. 사형 선고를 받게 되는 뫼르소에게 기독교인 판사가 들이
대는 잣대는 살인의 정당 방위가 아닌 뫼르소의 '부도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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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법정 '부조리'에 개죽음을 당하는 걸 보니 소크라테스 법정도 떠올랐고
욥도 떠오르더군요. 헐, 니미럴 이런 부조리한 재판이 어디있냐고?
나를 배반하는 듯하고, 갑자기 모든 친숙했던 것이 외계적인 것으로 변하는
것이 부조리라면, 카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받치듯 저항하는 것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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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 또 그게 바람직한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초기 부조리 문학의 등장 인물
들이 멘붕과 넋나간듯한 대사를 늘어놓다가 끝나는 반면에, 카뮈의 '이방인'
주인공은 격렬히 반항하는 끝에 죽음을 맞아요. 카뮈의 표현에 따르면 부조리
문학의 인물들은 '철학적 자살'을 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의 작품 주인공은 세상
앞의 사형수가 되기를 스스로 택하고 앞으로 철벅철벅 걸어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카뮈는 세상이란 폭력 앞에 스스로 처형받기를 택하는 인물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표현하나 봐요.
2023.11.04.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