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인중화초다. 맹현봉에서
일찍이 람머는 그의 책 『융본(Jungborn)』에서 이 점을 분명히 언급한 바 있다.
“요즘 산에 가면 전보다 훨씬 아슬아슬한 극한 상황까지 나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그런데 미
리 말해 두지만, 죽어도 좋다는 기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반대로, 그러한 순
간에 나의 내부의 가장 깊은 곳에서 악착같이 살아야겠다는 강렬한 힘이 솟아오르는 것을 경
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 라인홀트 메스너, 『죽음의 지대』
▶ 산행일시 : 2018년 6월 30일(토), 흐림, 엄청 더운 날씨
▶ 산행인원 : 17명
▶ 산행거리 : GPS 도상 13.3km
▶ 산행시간 : 8시간 28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27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50 -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
08 : 44 - 홍천군 내면 방내리 방내교 양지촌, 산행시작
09 : 10 - 능선, 636m봉
09 : 50 - 852.2m봉
10 : 21 - 안부
10 : 38 - 806.9m봉
11 : 09 - △845.4m봉
11 : 45 ~ 12 : 21 - △968.8m봉, 점심
12 : 50 - 1,109m봉, ┳자 능선 분기
13 : 35 - 맹현봉(孟峴峰, △1,214.3m)
14 : 33 - 1,079.0m봉
15 : 00 - 937m봉, Y자 능선 분기, 오른쪽으로 감
15 : 38 - △828.1m봉
16 : 26 - 541.8m봉
17 : 12 - 인제군 상남면 상남리 양지촌 미산3교, 산행종료
18 : 25 ~ 20 : 13 - 홍천, 목욕, 저녁
21 : 38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호우가 쏟아질 거라는 예보가 있어서인지 서울양양고속도로 가평 가는 길이 비교적 원활한
소통이다. 그래도 가평휴게소는 만차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날씨가 변한다. 한 터널 지나면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지다가 그 다음 한 터널을 지나면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다. 이슬
비 내리는 홍천휴게소의 전망대는 운무의 가경을 연출한다. 산중에서는 이보다 더한 장관이
려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우리는 내촌IC에서 빠져나가고 날씨는 고개를 넘을 때마다 방금 전의 터널 지날 때와 마찬가
지로 호우와 소강상태를 반복한다. 차안에서 미리 스패츠 단단히 매고 배낭 커버 씌우고 스
마트 폰 GPS는 비닐봉지에 담는 등 우중산행에 만전한 대비한다. 방내천을 방내교로 건너고
맹현봉 들머리로 잡은 능선 끝자락인 양지촌 마을이다. 하늘이 잔뜩 흐렸을 뿐 비는 뿌리지
않는다.
농가 앞마당을 무리 지어 지나가기가 미안하여 농로 따라 소구운 쪽으로 좀 더 걸어 들어간
다. 하얀 감자꽃이 피기 시작하는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 밭을 지나서 계류를 징검다리 만들
어 건너고 생사면을 올려친다. 하필 등고선이 촘촘한 가파른 데를 골랐다. 첫발자국부터 힘
을 바짝 쏟는다. 바람 한 점이 없는 무더운 날이다. 얼마 안 가서 지열에 들이댄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이 첫 피치 오르막에서 오늘 산행의 전반적인 분위기-땀께나 뺄 거라는-를 예감한다. 불과
10분이 지나자 겔겔거리기 시작한다. 갈지자 만들어 오르자는 것이 한일자 게걸음하기 일쑤
다. 겨우 능선 붙들어 오른 636m봉이 근래 드문 첨봉의 준봉이다. 비는 오지 않았고 오지도
않아 장딴지에 땀띠가 날 지경인 스패츠부터 해제한다. 능선마루는 약간 느슨해진 등고선이
라 허리 펴고 긴 호흡한다.
852.2m봉. 오지산행 카페에 진작 산행을 공지할 때부터 입맛이 동했던 해피 님이 일습 준비
한 간재미무침에 덕산 명주 탁주다. 이런 무더운 날에는 아무리 명주라 해도 독이 될 수 있지
만 그 무침을 맨 입에 먹는다는 간재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 연거푸 잔을 비운다. 그 술기
운이 더 얼근해지기 전에 오늘 산행의 꽃이라고 할 만한 악우들을 얘기하려고 한다.
첫째는 해피 님과 해마 님이다. 그 둘이는 후미 도우미로서 오랜만에 오지산행에 나와 몸 컨
디션이 전혀 예전 수준이 아닌 버들 님을 완주케 하였다. 버들 님이 3주 전에 설악산 안산에
함께 덤비긴 했지만 거기는 도상 6km 험로라 이렇다 할 산행 변별력이 없었다. 후미 도우미
제1의 덕목은 ‘성질을 내지 말 것’이다. 8시간이 넘는 산행 내내 자기 (발걸음의) 성질을 죽
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2.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에서 남쪽 전망
3. 멀리 왼쪽이 공작산
4. 공작산
5. 달리는 차창 밖 풍경
6. 노루발풀
7. 노루발풀
어쩌면 지리산 태극종주보다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 두 사람은 그걸 채근하지 않고 흠
잡을 수 없이 해내었다. 그들 셋은 일행을 쫓아가기에 바빠 휴식시간이 매번 짧았고 점심시
간도 퍽 짧은, 그래서 맛난 간식과 반찬도 제대로 먹어 보지 못하는, 챔프 님의 재미난 만담
도 제대로 들어 보지 못하는, 후미의 비애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둘째는 메콩 님이다. 메아리 대장님의 아드님으로 오늘 처음 오지산행에 나왔다. 메콩 님은,
머지않아 베트남으로 활동무대를 옮길 것이라 하고, 그 베트남의 젖줄이 메콩 강이고, 메대
장님 부자의 돌림자인 ‘메’자와 딱 맞아 떨어지는 점을 감안한 대간거사 님 회심의 작명이다.
첫 휴식할 때 산꾼으로서의 메콩 님의 됨됨이를 알아보았다.
산행에서는 우선 자기 몸부터 건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회사의 야유회가 아닐진대 내가 가져
온 내 얼음물을 내가 먼저 마시는 것이 절대 비례이거나 결례가 아니다. 그런데도 뜻밖에 선
배님들에게 먼저 대접하는 그 얼음물 한 모금에 폐부까지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달콤한 자두만 해도 그렇다. 자기 먹을 자두만큼은 먼저 확보해 두고 나누어 주는 것
이 상례인데, 남에게 나누어주다 보니 자기 먹을 자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산행은 앞뒤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준족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또 휴식할 때 틈
틈이 지도 공부하는 향학열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맹현봉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보시라. 나
로서는 근래 드물게 잘 찍은 사진이다. 온 시선이 집중한 인중화초가 아닌가. 모처럼 오늘 산
행에 중산 선배님께서 함께 걸음하여 오지산행의 상하 연령 스펙트럼을 50세로 넓히게 되었
으니 이 또한 경사다.
852.2m봉 내리는 길. 겁나게 떨어진다. 여태 게거품 물고 비지땀 흘려 저축했던 오르막을 한
번에 다 까먹고 만다. 안부는 풀숲이다. 오르고 내리고 시지푸스 신화처럼 806.9m봉을 오른
다. 그런데 오르다말고 오른쪽 사면을 도는 길이 뚜렷하다. 사면 도는 앞사람 핑계하고 뒤쫓
는다. 거저인 남의 길인가 싶어 852.2m봉을 올려다보니 쉽사리 덤비기에는 부담스러운 암릉
암봉이다.
△845.4m봉의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가도 가도 조망은 무망이다. 하늘 가린 숲
속이라 조망이 트이는 데가 없거니와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기웃거린 원경은 온통 안개에 가
렸다. 그래서 발걸음은 더욱 팍팍하고 덥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비를 맞는 편이 낫겠다는 생
각이 든다. 소름 돋게 시원하던 산상 샤워가 그립기까지 하다.
8. 응봉산, 각근치 주변
9. 문암산 뒷모습
10. 맹현봉 가는 길 1,109m
11. 맹현봉 가는 길
12. 맹현봉 가는 길
13. 맹현봉 가는 길
대간거사 님은 명당인 점심자리를 다 놔두고 간다며 신가이버 님이 앞서간 줄로만 알고 그만
밥 먹고 가자고 외치며 달려간다. 이러다가는 맹현봉도 넘을 기세다. 신가이버 님이 오늘 이
때만은 대간거사 님 뒤에 있었지 으레 앞장서서 줄달음을 했었으니 그에 익숙하게 되었다.
△968.8m봉에서 더 못 가고 주저앉는다. 둘러 앉아 점심밥 먹는다. 입맛이 사뭇 쓰다만 찬물
에 말아먹는 것이 밥도 먹고 물도 먹는 일거양득의 상책이다. 하도 덥다 보니 식후 냉커피를
조제하여 입가심하는 것을 잊었다.
△968.8m봉(지형도에는 표고점이다)의 삼각점도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챔프 님이 괜히
챔프가 아니다. 나의 경우는 산행 중에 말하기는커녕 숨쉬기도 벅찬데 휴식할 때마다 온갖
만담을 청산유수로 쏟아내니 그 언변에 놀라고 그 기운에 더 놀란다. 그 만담을 되새김질하
며 봉봉을 오른다. 긴 오르막 끄트머리는 ┳자 능선 분기봉인 1,109m봉이다.
이제 큰 고비는 넘겼다. 맹현봉 정상까지 직선거리 1.2km. 완만한 초원의 길이다. 풀숲 마구
무찔러 나아간다. 부전자전이다. 메콩 님이 일부러(?) 오르막을 사면 누비며 가자, 메아리 대
장님은 노파심에 거기는 길이 아니라며 일깨워준다.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다. 맹현봉 정상
은 풀숲 무성한 너른 헬기장이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현리 24, 1989 재설.
정상 약간 벗어난 나무 그늘에 들어 오래 휴식한다. 하산 길은 초원의 그저 내리막길일 거라
서 산 욕심이 살아나서 선 그은 방내천 건너의 배미산이 꿈틀거린다. 활개 치며 내린다. 길게
내리다 1,079.0m봉에서 잠시 주춤하고 다시 줄달음한다. 저녁 뒤풀이를 생각하여 풀숲 사면
을 훑는 여유가 생긴다. Y자 능선 분기봉인 937m봉에서 챔프 님의 만담에 정신이 팔려 왼쪽
능선으로 잘못 들 뻔하다 대간거사 님의 냉정한 독도로 바로 잡는다.
내리는 기세로 △828.1m봉을 대깍 넘는다. 풀숲에 묻힌 삼각점을 발굴하여 판독한다. 현리
434, 2006 재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여기서 시작된다. 방내천 미산3교까지 도상 2.5
km. 굴곡이 꽤 심한 봉봉을 무수히 오르고 내린다. 능선자락이라고 우습게 여기고 방심했다.
16시 경에는 비가 쏟아지기에 우장을 갖추며 반겼더니만 비 시늉만 하다 만다.
원뢰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선답의 인적을 지능선마다 나누어주고 남은 것이 없어 새로이 개
척한다. 방내천이 아득한 깊이로 내려다보이기에 험준했던 한석산 내리막 짝 나지나 않을까
염려했으나 능선이 완만하게 맥을 다할 때까지 꼭 붙든다. 잡목 우거진 산자락을 길게 돌아
뽕나무밭으로 떨어지고 방내천 미산3교가 가까운 농로다. 건너편 배미산(692.9m)이 준봉이
다. 아무 말 없이 얼른 놓아준다.
16. 맹현봉 정상에서
17. 맹현봉에서
18. 하산 길 묵은 헬기장에서 딸기 따먹는 중
19. 미산3교 뒤편에 있는 배미산
20. 홍천 가는 길 고속도로에서 차창 밖으로 바라본 운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