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말, 낡은 집3/홍은택
가슴팍에 우물을 팠다 뒤꼍
암반 틈 시리게 차오르던 집의 영혼,
을 향해 살구나무가 잔뿌리 뻗어가던
우물 그 우묵한 어둠 속에 눠가 살아 있나
궁금해 가끔씩 지붕 위로 달려가던 붉은 구름
발을 빠뜨려 마음의 발목을 삐기도 했다
찬 우물이 늘 검게 빛나던 건
아침마다 어린 두레박으로 건져 올리던
밤새 퉁퉁 불어터진 별, 별, 생각들 때문
때론 살구나무 잔뿌리들이 묻어나오곤 했다
<시 읽기> 새말, 낡은 집3/홍은택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세상에 몸과 마음을 다 내주었어도 되레 낯설어지는 오늘을 반납하고 시인은 옛집 뒤꼍에 있는 우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옛집으로 가는 승차권을 샀어도 우리 모두는 실향민이라는데 어쩌자고 시인은 기억 속의 우물을 여태 껴안고 있는 것일까.
제목에 두 개의 명사가 반대로 붙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새말’은 새로 생긴 마을의 준말인데 곧바로 ‘낡은 집’이 따라붙는다. 새것과 낡은 것을 병치시킨 시인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이 시엔 마을의 윤곽이나 집의 형체가 없다.
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우물이다. 계절이 변화와 관계없이 우물은 늘 맑고, 늘 온도가 일정하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덕을 갖고 있다. 물을 얻기 위해 뒤꼍 땅을 파들어 가다가 암반층을 만나 우물, 시인에게 우물은 “집의 영혼”이었다. 집도 사람처럼 집안이 우여곡절을 견디고 어제처럼 우물에 하루를 기댔던 것이다.
구름은 우물 속이 궁금하다. 검게 빛나는 “우묵한 어둠 속”을 알고 싶어서 “마음의 발목을 삐기”도 했다. 거기에 무엇이 살고 있길래 “때론 살구나무 잔뿌리”를 내고 “아침마다 어린 두레박으로” 별을 건져 올릴 수 있었는지, 시의 상상력이 놀랍다. 당신도 눈치챘겠지만 우물은 시인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 시를 더 빛나게 해 주는 것은 “어린 두레박”에 묻어나오던 살구나무 잔뿌리이다. 우물에 목숨을 잇댄 살구나무 잔뿌리, 거기에 젖어 있는 언어의 순결성은 맑고 여리고 애잔한 유년의 숨결로 읽힌다.
문명사회는 모두를 실향민으로 만들었지만, 오래 전 시인은 가슴팍에 우물을 팠다. 늘 맑고, 늘 온도가 일정하고, 끊임없이 솟아날 시인의 우물―어린 두레박에 건져질 별과 살구나무 잔뿌리를 당신께 보낸다.
―이병초,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형설, 2021.
첫댓글 내 어렸을 적 살던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던 공동 우물. 그 우물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장소요 소식을 주고 받는 카페였다. 아직도 사람들 가슴 속엔 우물 하나씩 남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