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poem)”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이나 문학자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로 논의가 있어왔지만, 여전히 시의 정의를 내리기란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에드거 앨런 포는 "시란 미(美)의 운율적인 창조이다"라고 말했고, 매슈 아널드는 "시는 인생의 비평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또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는 시와 산문의 구별을 운의 유무에 따르지 않고 "산문은 좋은 말의 좋은 조합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 정의에 비하면 폴 발레리의 다음과 같은 정의는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보다 보편적인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시는 절규·눈물·애무·키스·탄식 등을 암암리에 표명하고자 하는 것, 또 물체가 그 외견상의 생명이나 가상된 의지로써 표명하고자 하는 그런 것, 또는 그런 것을 절조있는 언어로 표현하거나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요즘 연세가 많으신 그러니까 80세 안팎의 어르신들 사이에 매우 인기가 있는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86세가 되신 선배 선생님을 뵈었는데 요즘 연세가 드신 분들 사이에 주고받는 재미있는 시가 있다면서 카톡을 통해 보여준 시입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 문학교사로 35년을 재직하면서 애들에게 시를 가르쳤는데 아래와 같은 시는 문학교과서에서 얘기할 문제가 아닌 정말 ‘살아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참 빨랐지!
그 양반!"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아랫도리로 쏠렸던가 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수욱~ 이게 이년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초조루증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니였냐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 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이정록. 「정말」
<조정현 評>
이 시 참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이토록 슬픈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을까요?
우리 인생도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1연에서는 일찍 저세상으로 간 신랑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돌아가신 남편이 성격이 참 급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일찍 가시는 분들은 뭔지 모르게 급하게 서두르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2연은 두 분이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마시고 오토바이에 맞선 녀를 번쩍 안아서 태웠을까요.
오토바이에 태웠으니 남정네의 등에 여자의 가슴이 스치면서 젊은 혈기에 확 불을 싸지른 것 같습니다. 얼마나 참기가 힘들었을까요. 그것도 바야흐로 봄날인데 말입니다.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후다닥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번에
벌써 끝장이 났다니까”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남편)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첫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정말 한 순간에 모든 운명이 결정되고 마는 순간이 2연에서 펼쳐지는데 1연에서의 슬픔의 정조는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읽는 내내 웃음이 삐죽삐죽 새 나오게 만드는 서사시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마지막 3연은 더 절창입니다.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얼마나 빨리 끝났으면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었을까요? 그야말로 절묘한 묘사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가 나옵니다.
분명 슬픈 이야기인데 어쩜 이렇게 슬픔을 웃음으로 단박에 바꿔칠 수 있는 걸까요?
거의 마술처럼 슬픔과 웃음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웃음 마술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워낙 첫 행사를 빨리 끝내신 양반이라서 바람 한 번 피울 여력이 없으셨겠지요. 그런데 가정용도 안 되었으니, 어떻게 상업용이 되었겠냐는 말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집니다.
그리고 마무리는 정말 날랜 양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빨리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힘이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내공으로 가득찬 시인의 넉살 때문에 많이 웃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접한 최고의 詩였습니다.
[출처] 이정록 < 정말>|작성자 시가 꽃이 되다
이정록(1964~), 충남 홍성 태생 시인, 고교교사로 37년 재직하고 명퇴하다.
네이버 블로그 “좋은 생각”에서
저는 국문과를 졸업했고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쳤지만 정말 “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시는 너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특정한 얘기를 강요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시험에 나올 얘기와 시험에 점수를 받아야할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참고서에 나온 것들은 잘못된 것이 대부분이고, 또 앞선 시인의 시에 대해 엉뚱한 소리를 한 비평가들이 너무 많아서 어이가 없을 때가 너무 많았습니다. 다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전혀 맞지 않는 소리들을 늘어놓기 때문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시에 대해서 쉽게 설명을 했지만 지금은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시를 쉽게 쓰는 사람도 있고 남의 시를 쉽게 비평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시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부끄러울 때가 많아서입니다.
학생들이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인들이 너무 쉬운 얘기를 너무 어렵게, 그리고 별 것도 아닌 것을 너무 과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의 「정말」이라는 ‘시’를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해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는 그래야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