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밤을 지날 때... (욥기 23:1-10)
엘리야 시대에 3년6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비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비가 내리지를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걸까?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아닐까? 내가 헛된 것을 믿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19 전염병이 온 세상에 퍼져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우리들은 코로나가 물러나기를 계속 기도해왔다. 그런데 코로나는 물러가지 않고 있다. 하나님을 부르지만 응답이 없고 하나님을 찾지만 만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왜 우리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일까?
20세기 가장 뛰어난 신앙의 사람으로 평가받는 캘거타 빈민의 어머니 데레사 수녀도 이런 절망, 영혼의 밤을 여러번 경험했다. ‘데레사 와서 나의 빛이 되어라’ (Mother Theresa come be light) 라는 책에서 데레사 수녀의 편지가 여러개 나온다.
그 편지에 ‘예수님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고 기도하려 해도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1979. 9) ‘마치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내 안에 너무나 끔찍한 어둠이 있습니다.’(1953) 데레사 수녀도 종종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와 의심에 빠져 힘들어 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욥이 영혼의 캄캄한 밤을 지나고 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어 고통스러워한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기23:8-9)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음성을 들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욥의 고통의 원인, 파산과 자녀의 죽음, 자신의 몸에 닥친 죽을병에 대하여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어 괴로워하고 있다.
데레사 수녀나 욥이나 다 대단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번씩 찾아오는 의심과 회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것은 바로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경을 읽으면서 아, 욥도 그랬구나.. 데레사 수녀도 그랬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하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우리들이 캄캄한 영혼의 밤을 지나면서 어떻게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아 갈 수 있는지, 어떻게 불신에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영적인 세계로 돌파할 수 있는지를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째, 사방이 막혔을 때는 위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욥이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 오른편에도 왼편에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욥이 캄캄한 영혼의 밤을 만났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사방이 막혔을 때는 위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늘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야곱과 에서는 한 형제였다. 에서는 땅만 보고 살았고 야곱은 하늘을 보고 살았다. 에서는 죽 한 그릇에 자신의 영적인 재산 장자권을 팔았다. 야곱은 그것을 샀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사모했던 것이다. 에서는 물질제일로 살았고 야곱은 하나님 제일로 살았다.
하늘의 것을 얻으려면 세상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하늘에 오를 수 있다. 자신을 비워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늘 높이 나는 새는 뼈 속이 비어있다. 몸이 무거우면 날 수가 없다. 물고기 중에 하늘을 나는 물고기가 있다. 날치라는 물고기다. 날치는 어느 순간 물을 돌파하여 하늘을 난다. 날치는 장이 비어있다고 한다.
자신을 비워야만 영적인 세계로 들어 갈 수가 있다. 모든 것 내려놓고 자기를 비워야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다. 예수님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내 마음을 비워야 천국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2007년 7월 23일 이어령 박사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온 학자가 공개적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분이 회심하고 기독교인이 되어 ‘나는 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가?’를 고백했다.
그분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이 암에 걸리고 실명의 위기에 있었다. 아버지로서 그는 스스로 너무 무기력했다. 딸이 죽어가는데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의 지식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인맥도 소용이 없었다. 자신이 딸을 대신해서 죽을 수도 없었다. 딸이 암 수술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하와이로 갔다.
그 수술은 실패했고 딸은 시한부 생명이 되었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딸이다. 그는 딸 때문에 지난 10년간 얼마나 울었는지... 울지 않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었다고 고백했다. 밤마다 울면서 잠들었던 것이다.
그는 하와이의 작은 교회에서 난생 처음 기도라는 것을 했다. ‘하나님, 내 사랑하는 딸을 살려 주신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자녀로 살겠습니다.’ 딸을 살려 주시면 예수를 믿겠다고 기도했던 것이다. 무신론자인 그가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께 난생 처음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이다.
하나님, 만약에 딸의 병을 고쳐 주신다면 제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사방이 꽉 막힌 캄캄한 밤과 같았을 때,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말기암으로 죽는다고 했던 딸이 나았고 실명한다던 눈도 나았다. 여기서 그는 고꾸라졌다. 그렇게 해서 그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그분이 기독교인이 된 데에는 그의 많은 지식을 내려놓았고 자존심도 내려놓았고.. 사회적 명성도 내려놓았다.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지성의 세계에서 영성의 세계 영적 세계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둘째,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밤을 만나 길을 잃어버렸을 때에는 내 인생 길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하나님이 내가 가는 길을 아신다고 했다.
사람은 한치 앞을 알지 못한다.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내 인생길을 아시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 분께 내 인생을 맡겨야 한다. ‘네 길을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그가 이루어 주시리라’ 했다(시37:5)
우리가 가는 인생길은 꽃길도 있고 가시밭길도 있다. 때로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고 방황하기도 한다. 욥은 자신의 인생 길을 잃어버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있다. 캄캄한 밤에는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하늘에 있는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듯이 우리는 말씀으로.. 예수님이 길이 되심으로 예수를 통해 길을 찾을 수 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살다가 낭패를 당한 사람이 있었다.
서울에서 목회할 때 교역자회의에 어떤 집사님이 찬양을 하고 간증을 했다.
그분은 1970년 전국노래자랑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오아시스 레코드사에 전속되어 가수가 되었다.
그러다가 대마초 사건으로 가수를 그만두고 사업을 했는데 사업에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런데 IMF 때에 파산하고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2005년에는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움직이지도 못했다. 여러 번 자살을 기도했다. 어느 날 누워서 라디오를 듣는데 이제까지 하나님을 믿어 본 적이 없었는데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방송을 들으면서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기도하고 자다가 꿈에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눈을 뜨니 오후 3시였다. 잠에서 깨어나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마비된 오른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 마비가 풀리고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두달 동안 그는 캄캄한 밤과 같은 날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인생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세상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달려갔다. 그가 빚더미에 앉고 병에 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주님을 만났다. 자기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그 분을 믿었다.
그랬더니 병도 낫게 해 주셨고 찬양 사역자로 세워 주셨다. 이 영만 집사님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온 세상에 간증하고 다닌다. 우리가 가는 길을 알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믿고 내 길을 맡겨야 한다.
셋째,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순금같이 빛나게 하실 것이다.
영혼의 밤을 지날 때에는 나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아야 한다. 나를 고난의 풀무 불에 넣으시는 것은 나를 귀하고 빛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올 것이라’ 했다. 금을 채취하는 광산에 가 본적이 있다. 금은 돌에 조금 스며있는데 이 금이 박힌 돌을 용광로에 넣고 불을 때면 금이 빠져 나온다. 금이 순금이 되려면 용광로에서 연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보석 중에 가장 빛나는 보석이 아마 다이아몬드일 것이다. 다이아 중에 그린다이아몬드가 있다. 최고중의 최고의 보석이다.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만들어 질까?
다이아는 보통 석탄과 같은 탄소로 되어 있다.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해서는 지하 약 140~200km의 깊이에서 탄소가 엄청난 압박, 스트레스와 용광로같은 열을 견뎌야 한다. 그 때 석탄이 빛나는 보석 다이아로 변한다.
탄소의 대부분은 새까만 석탄으로 남지만, 엄청난 고압과 고열을 견디며 지하에서 지상으로 터져 나올 때, 탄소는 찬란한 빛을 뿜는 다이아몬드가 된다. 이 원리로 인공 다이아를 만들기도 하지만 품질은 떨어진다고 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견디고 그 압력과 어둠을 돌파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고난의 캄캄한 밤을 지날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인생의 뜨거운 맛을 볼 때 우리는 견디기 힘들지만, 이것을 참고 견디면 빛나는 영혼이 된다는 말씀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마치 탄소에서 다이아가 만들어지듯, 우리도 고난의 풀무불에 연단될 때 어느 순간 빛나고 고귀한 존재가 된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바벨론 왕이 자기 신상을 세우고 나팔과 수금이 울릴 때에는 모두 그 신상에 절을 하라고 했다. 신상에 절하지 않는 사람은 극렬하게 타는 풀무불에 던져 화형을 당하게 할 것이라 했다. 그런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신상에 절하지를 않았고 체포되었다. 그들은 고위 공무원이어서 왕이 안타깝게 여겨 지금이라도 신상에 절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했다.
그때 그들은 왕에게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왕의 손과 풀무불 가운데에서 건져내실 겁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들은 금 신상에 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단3:17-18)
왕이 분노하여 그들을 풀무불에 던져 넣었으나 그들은 풀무불에 타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그들은 어떤이와 함께 불 속에서 걷고 있었다. 왕이 놀라서 그들을 불구덩이에서 나오게 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라.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리고 왕이 전국에 어명으로 조서를 붙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경솔히 말하는 사람은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은 거름터로 삼으라’ 했다. 바벨론 왕이 그들을 바벨론에서 더욱 존귀하게 높였다고 했다.(단3: 30절)
고난이나 캄캄한 영혼의 밤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하나님은 고난 이후에 우리를 보석같이 하시고 빛나게 하시고 존귀하게 하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