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미인 수로와 노인의 세레나데 <헌화가(獻花歌)>
가을이 끝나고 있다. 금방 왔다가 갈 것을 노심초사(勞心焦思) 마음만 깊어지게 하고는 홀연(忽然)히 추위 속으로 줄달음 한다. 김장 배추의 꽉 찬 알맹이가 입맛을 다시게 하고, 가마솥 대파 우려낸 국물과 쇠고기 양지머리살의 한바탕 질퍽한 분탕질이 잊혀진 고향집 어머니의 손맛을 생각나게 한다. 가득 찬 곡간의 가을걷이가 깊게 팬 주름살을 웃게 만들던 그 때가 못내 사무치게 그리움으로 남는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경주(慶州) 나들목으로 나와 곧장 경포산업도로(慶浦産業道路)에 접어든다. 벼 벤 그루터기에는 풍성(豊盛)한 농심(農心)의 향내가 피어오르고, 논 가장자리에는 하얀색 비닐로 포장(包裝)된 둥근 무더기가 곳곳에 나뒹굴고 있다. 탈곡(脫穀)이 끝난 볏단을 숙성(熟成)시켜 새로운 부가수입(附加收入)을 올리려는 우리네 촌로(村老)들의 노력(勞力)에 머리가 숙여진다. 오른쪽은 넘실대는 푸른 바다가 막힌 가슴을 활짝 열어주고, 왼편은 기암괴석(奇巖怪石)의 절경(絶景)이 탐방(探訪)의 참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때는 신라(新羅) 30대 문무왕(文武王)이 삼국통일(三國統一)을 완성(完成)하고, 당(唐)나라를 한반도(韓半島)에서 완전(完全)히 축출(逐出)하였고, 31대 신문왕(神文王) 원년 27세 풍월주(風月主)를 지낸 화랑(花郞)김흠돌(金欽突)의 난(亂)을 평정(平定)하는 등 안팎의 왕권(王權)위해요소(危害要所)를 잠재우고, 비로소 새로운 패러다임의 서막(序幕)을 알리는 33대 성덕왕(聖德王)시절(時節)이었다. 강릉태수(江陵太守)로 부임(赴任)하는 순정공(純貞公)을 따라 부인(夫人)수로(水路)도 함께 임지(任地)로 가게 되었다. 서라벌(徐羅伐)최고(最高)의 미색(美色)미실(美室)을 능가(凌駕)하는 절세미인(絶世美人)수로부인(水路夫人)은 가는 곳 마다 신물(神物)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곤 하였다.
일행(一行)이 월송정(越松亭)을 지나 아름다운 동해(東海) 어느 해안(海岸)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허겁지겁 식탐(食貪)을 하는 종자(從子)들을 뒤로 하고 수로는 해안(海岸)가를 산책(散策)하면서 요염(妖艶)한 자태(姿態)를 발산(發散)하고 있었다. 그때 수로(水路) 앞에 나타난 것은 천길 벼랑 위의 척촉화(躑躅花)-진달래 혹은 산철쭉이었다. 미인(美人)은 욕심쟁이라고 했던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진 서라벌(徐羅伐)최상층(最上層)귀족(貴族)의 부인(夫人)수로(水路)를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천 길 낭떠러지에 홀로 만발(滿發)한 철쭉이었다. 너무나도 자태(姿態)가 고와 수로(水路)는 자신(自身)도 모르게 질투심(嫉妬心)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세상(世上)에서 자신(自身)이 최고 미(美)의 대명사(代名詞)로 알고 뽐내며 살아온 수로(水路)로서는 자신(自身)보다 아름다운 것이 세상(世上)에 존재(存在)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강행군(强行軍)으로 지친 종자(從子)들이 밥 먹는 순간(瞬間)도 참지 못하고, 수로(水路)는 그 꽃을 꺾어 줄 것을 명(命)하였다. 그러나 종자(從子)들은 엉뚱한 수로(水路)의 행동(行動)에 그대로 따르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남루(襤褸)한 옷을 입은 노인(老人)이 암소를 이끌고 가다가 이 광경(光景)을 보고 노래를 불렀다. 현대어(現代語)로 풀어보면,
紫布岩乎邊希 짓붉은 바위 가에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잡고 가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吾肹不喩慚肹伊賜等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노래를 마친 노인(老人)은 이내 천길 벼랑에 올라 철쭉을 꺾어 수로(水路)에게 그윽한 눈빛과 함께 무릎을 조아리며 바쳤다. 자신(自身)보다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라도 가차(假借) 없이 없애버리는 수로(水路)의 무서운 집념(執念)은 순정공(純貞公)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혹자(或者)는 노인(老人)을 선승(禪僧)으로 보기도 하고, 도교(道敎)의 신선(神仙)으로 보기도 하는 등 여러 연구자(硏究者)에 의해 상반(相反)되게 주장(主張)되어 왔다. 또한 수로부인(水路夫人)을 무당(巫堂)으로 간주(看做)하는 설(說)이 있는가 하면 수로부인(水路夫人)의 이야기가 꿈 이야기라 여겨 수로(水路)를 보통사람이 아닌 샤먼이라고 하기도 한다.
2006년 국제(國際)어문학회(語文學會) 가을 학술대회(學術大會)에서 <헌화가(獻花歌)>에 대한 새로운 주장(主張)이 대두(擡頭)되었다. 구사회 선문대 국문과(國文科)교수(敎授)는 ‘<헌화가(獻花歌)>는 아들을 기원(祈願)하는 주술가(呪術歌)다’라고 새롭게 해석(解釋)하면서 그 이유(理由)로는 <헌화가(獻花歌)>의 ‘자포암호(紫布岩乎)’의 자포(紫布)는 자색(紫色)이라기보다는 남성(男性)의 성기(性器)를 표현(表現)하는 ‘자디(紫的)’를 뜻한다고 보았다. ‘자디’가 오늘날에도 중국(中國)의 속어(俗語)나 통속소설(通俗小說)에서 남자(男子)성기(性器)와 함께 사용(使用)되는 경우(境遇)가 빈번(頻繁)함을 주목(注目)하여, 남근(男根)을 묘사(描寫)할 때 ‘자(紫)’라는 색채어(色彩語)가 사용(使用)된 까닭은 그것이 발기(勃起)하였을 때 검붉은 색(色)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推定)하였다.
이렇게 되면 ‘자포암(紫布岩)’은 ‘자디바위’가 되며 이것이 곧 현재(現在)의 민속학(民俗學)에서 말하는 성석(性石)인 남근석(男根石)에 해당(該當)된다고 주장(主張)하였다. 또한 노인(老人)이 끌고 왔다는 암소를 남성(男性)인 ‘자디바위’에 대비(對比)된 여성(女性)의 대응물(對應物)이자 생명력(生命力)을 수태(受胎)할 수 있는 여성성(女性性)을 상징(象徵)하는 매개물(媒介物)이라고 밝히고 있다. 향가연구(鄕歌硏究)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알리는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각(各)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는 향가(鄕歌) <헌화가(獻花歌)>의 현장(現場) 찾기에 혈안(血眼)이 되어있다. 경북(慶北) 울진과 삼척(三陟) 그리고 강릉(江陵) 또한 이 경쟁(競爭)에 동참(同參)하여 모두가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注目)할 수 있는 상징물(象徵物)로는 동해(東海)의 촛대바위와 삼척(三陟)의 해신당(海神堂)을 들 수 있다. 특히 삼척시 원덕읍 신남포구 언덕배기에 있는 해신당(海神堂)은 매년(每年)정월(正月) 대보름이면 나무로 남근(男根)을 깎아 제(祭)를 올리고 있다.
설화(說話)에 의하면 약 400여 년(年)전(前)정혼자(定婚者)와 해초(海草)를 채취(採取)하던 처녀(處女)가 갑자기 일어난 풍랑(風浪)으로 죽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곳 신남포구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젊고 건장(健壯)한 청년(靑年)이 양물(陽物)을 높이 세우고 바다를 향해 오줌을 내갈겼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처럼 풍어(豊漁)로 만선(滿船)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以後)로 이곳 신남마을 사람들은 매년(每年)정월(正月) 대보름이면 나무로 정성스레 남근(男根)을 조각(彫刻)하여 해신당(海神堂)처녀(處女)에게 바쳐오고 있다고 한다. 향가(鄕歌) <헌화가(獻花歌)>의 현장(現場)이 이곳 어디쯤이었다면, 분명(分明) 이와 관련(關聯)된 제의(祭儀)가 수백 년 행(行)하여져 오다가 어느 순간(瞬間)전승(傳乘)의 힘을 잃어버리게 되자, 해신당(海神堂)처녀(處女)귀신전설(鬼神傳說)로 재탄생(再誕生) 된 것은 아닐까 한다.
지금 해신당(海神堂) 위 조그만 동산에는 ‘해신당(海神堂)성민속공원(性民俗公園)’이 조성(造成)되어 있다. 갖가지 형태(形態)의 나무 남근(男根)을 장승마냥 줄지어 세워 놓고 관광객(觀光客)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전시(展示)를 준비(準備)하던 공원 관계자(關係者)의 말을 빌리면, 며칠 전(前)모(某)정당(政黨)여성위원회(女性委員會)에서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여기를 둘러보고 난 후(後) 더 이상 전시공간(展示空間)을 확장(擴張)하지 말아달라고 주문(注文)하였다고 한다. 남근(男根)을 설화(說話)와 함께 예술적(藝術的)작품(作品)으로 훌륭히 승화(昇華)하여,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놓은 정성(精誠)에 탐방자(探訪者)는 격려(激勵)를 해주고 싶었는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해신당(海神堂)을 나와 신남포구에 줄지어 있는 포장마차(布帳馬車)로 갔다. 이름 모를 조그만 생선(生鮮)을 연탄불로 석쇠구이를 하여 입맛을 일으키고 있었다. 소주(燒酒) 한 잔에 생선(生鮮) 한 마리로 허기(虛飢)를 채우고 다시 신발 끈을 맨다. 머리를 들어보니, 포구(浦口) 앞의 피대기 오징어 나신(裸身)이 속 살 태우기에 여념이 없다. 하얗게 살찐 오징어의 속살을 보는 순간(瞬間)수로(水路)의 감추어진 풍만(豊滿)함을 보는 것 같아 잠시(暫時) 머뭇거린다. 이때 손살 같이 날아드는 갈매기 떼가 머리 위를 빙빙 돌고 있다. 야릇한 상념(想念)을 깨워 버린 갈매기가 야속하다기 보다 오늘은 오히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