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잔병처럼 / 김영금
숨이 턱턱 막힌다. 선풍기를 켰지만 앉아도 덥고 누워도 덥다. 에어컨을 켜니 팔다리가 시리다. 샤워하기 위해 목욕탕을 들어갔다. 신발을 신는 찰나 미끄러지면서 잡았던 문짝의 손잡이를 놓치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엉덩이뼈가 으스러진 듯 통증이 왔다,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통증을 최소한 줄이려 엉덩이를 밀어 올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을 가다듬어보니 코를 하수구에 박고 오체투지 자세를 하고 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찢어진 옷이 말해 준다. 119를 불러 병원에 가자니 동네가 시끄러울 것 같고, 별것 아닌 것으로 응급차까지 불렀다는 핀잔도 두려웠다. 한밤 자고 나면 낫겠지, 아마 타박상 정도일 거야, 위로하며 하룻밤을 견뎠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움직일수록 통증이 심했다.
다음날 기어가듯 병원에 가서 접수했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기도 불편했다. MRI를 찍어보니 척추뼈가 하나는 완전히 깨어졌고 하나는 금이 갔단다. 시술은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단다. 통증이 심해 일 분이 여삼추다. 의사는 내 얼굴을 보더니 모레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시술해주겠다고 한다. 눈이 맑은 의사가 아들처럼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시술하는 날이다. 골 시멘트 보강술이라는 척추성형이란다. 부분마취를 했다지만 숨이 멎을 정도로 아프다. 의사는 시술하는 내내 내게 말을 걸었다. 아마도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였으리라. 잠시 후 진통제로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움직임은 더 조심스럽다. 혹시나 시멘트로 붙여 놓은 것이 어긋날까 병원 쪽에서 더 조심시킨다. 요양보호사들은 친절하고 날렵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날 때마다 불러 도움받기가 미안하고 불편하다. 마치 요양병원에서 보호받는 노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퇴원했다. 앉지도 못하고 누워서 지내니 영락없는 일급 환자다. 일어나려면 방탄복처럼 두꺼운 보조기를 입어야 하고 팥죽 같은 땀이 쉴 새 없이 흐른다. 컴퓨터 앞에 앉기는 더더구나 어렵고 무거운 책을 들어서 읽으려니 그것도 힘들다. tv는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없다. 핸드폰에서 유익한 의료 프로그램만 찾아보며 스스로 위로 할 수밖에 없다.
한 달여 전에 모 대학 평생교육원에 등록했다. 개학 날짜는 다가오는데 이 모양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오랜 기간 누워만 있으니 다리의 힘도 빠진 듯 걸음을 걸을 자신도 없다. 실내 자전거가 있지만 보조기를 찬 채 앉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안타깝게 바라보던 딸이 러닝머신을 사주었다. 그것이라도 사용해야 좀 걷겠다는 생각과 이 자세로 걸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개학 날이다. 방탄복 같은 보조기를 입고 등산용 스틱을 쥐고 뒤뚱뒤뚱 오리걸음으로 갔다. 길에서 만난 지인이 그 몸으로 어디 가느냐고 묻기에 공부하러 간다고 하니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묻는다. 수필 공부하러 간다고 하니 아, 그거 한다. 글이 얼마나 시답잖은 글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봐도 살아가는 이야기뿐이다. 문학적인 것도 철학적인 것도 예술적인 감각도 비어비어있
오늘도 반가운 얼굴들이 모인다. 대부분 젊은 분들이라 눈치도 보이지만 모두들 보면 반갑다. 꼭 들어야 할 강의라서 누워만 있던 자세에서 용기 내어 벌떡 일어났다. 근육과 함께 빠진 다리의 힘은 흐느적거리지만 두 개의 스틱이 든든하게 지탱해 준다.
첫 강의 시간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P 교수님의 열띤 강의는 글 쓰고 싶은 마음으로 나를 달뜨게 한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오지 않았더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다. 아직 내 글이 따라주지 못하지만 꽃이 피고 열매 맺을 날이 올 때까지 계속 이 교정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글을 잘 쓰는 회원들의 글은 반짝반짝 윤이 난다. 잘 쓴 글을 보면 부럽기만 한데 아무리 따라가고 싶어도 세월이란 치료약을 보탤 수밖에 없다. 안 쓴다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지만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면 나도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비싼 영양제 한 병을 맞은 듯이 힘이 불끈 난다고 말하니 남편이 응원해주듯 환하게 웃는다.
그렇다. 늦게 배우는 글이지만 글 한 편을 쓸 때마다 조개탕국물을 후루룩 마신 듯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다. 웅크리고 살아온 삶의 여정을 풀어내듯 가슴을 열어젖히고 토해내는 독백이 나의 글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아직 시야가 좁은 내 글이지만 심적 치유 대상이다. 신변잡기라고 남이 흉을 봐도 생각이 날 때 한 줄의 글이라도 남기고 싶다.
한 권의 책이라도 남기려면 기를 쓰고 배워야 한다. 늘그막에 공부만큼 재미난 게 없다. 아, 그거 하는 사람이 이해된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도 취미도 다르니 남을 탓할 바는 아니다. 읽어보라고 일부러 사서 선물한 책도 안 읽어봤다는 사람에게는 돈보다 책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도 있는데 왜 저녁에 다니느냐고 하는 지인들도 있다. 저녁 시간에 짬을 내어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시간에 집에 있으면 영양가 없는 tv 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 왜냐면 죽을 때까지 해도 모자라는 것이 공부니까. 어언 5년이 되어 저녁 반에 정이 들어 안 보면 궁금해지는 얼굴들이다.
오늘도 방탄복 같은 보조기를 입고 양손에는 등산용 스틱을 짚는다. 영락없는 패잔병 모습이다. 행색과는 달리 내일을 향해 오늘도 진행형이다. 내 글처럼 어설프고 느리지만 운동이랍시고 온천천을 어기적거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