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사진을 터치하시면 ☞ 김종원: 마태복음의 악인들 영벌 선고와 요한계시록의 흰 보좌 심판. 마25:46, 계20:12-14 / 가 나옵니다.
***김종원: 요한계시록의 해석 원리①. 계1:1-3
1. 철저하게 이 시대 종말론으로 해석해야 한다.
A. 종말론 해석
게시록은 '계시'(계1:1)이며 동시에 '예언"(계1:3, 계22:10)이다. 따라서 계시록은 철저하게 종말론으로 해석해야 한다. 계시록은 종말에 되어질 일에 대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 계시록의 자증 중에 장차될일(계1:19)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계1:1)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1:19)'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계4:1) 결코 속히 일어날 일들을 보이시려고(계22:6) 위에서 본 계시록의 자증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계 1: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계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계시록은 시간적으로 종말, 곧 장차 될 일에 대한 기록이며, 내용적으로 종말에 될 일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계시록은 전 성경의 결론이자, 따라서 계시록은 철저하게 종말론으로 해석해야 한다.(계22:20-21)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사도 요한은 계시록의 서론과 결론에서 계시록의 종말론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한은 서론에서 구름 타고 강림하시는 주님의 영광된 모습을 증거하고 있으며, 결론에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증거하며 종말론적 특징을 강조한다.
특히 계22장에서도 '내가 속히 오리니'(계22:7) '내가 속히 오리니'(계22:12)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 라고 기록하며 거듭 반복강조한다. 계19:21절은 영광중에 재림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묘사함으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계시록은 철저하게 종말론으로 해석해야 한다.
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B. 이 시대로 해석해야 함
계시록에 기록된 예언들이 이미 이 시대 성취되고 있다. 계시록 7장의 예언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하여 이미 성취되었으며, 8장의 나팔 재앙, 13장의 666, 17장의 유럽 통합, 종교 다원주의 역시 이 시대에 성취되고 있거나 이미 성취되었다. 예수님은 영안이 닫혀있는 무지한 우리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답답한 심정을 말씀하신다.(마16:3)
마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2.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
계시록은 대부분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계시록은 상징을 해석하지 못하면 안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해석법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 상징적 해석
상징적 해석법은 각 단어의 문자적 배후에 암시되고 있는 다른 뜻을 찾으려는 시도로 '우회적 해석' '상징적 해석(영해)' 라고 한다. 이는 역사적 사건이 아닌 영적의미를 찾는 것이다.
2) 상징의 해석
상징의 해석법은 본서에 기록된 여러 가지 환상과 상징을 해석할 때 그 상징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을 찾는 방법이다. 예컨대, 용으로 묘사된 사탄을 해석할 때 용의 특성에서 사탄의 특성을 발견하고 그와 연관된 종말의 사건을 찾는 방법이다. 따라서 상징으로 기록된 계시록은 영적 해석에 입각한 상징적 해석이 아니라 '장차 될 일' 즉 종말론 역사에 입각하는 상징의 해석이 필요하다.
예수님 역시 천국을 말씀 하실 때에 비유로만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이는 천국에 대한 일종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23)고 말씀하셨으며, 사도 바울 역시 이렇게 기록한다.(고후3:14-16)
막 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고후 3: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고후 3: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고후 3: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해석이 가능하듯 종말에 대한 상징의 기록인 계시록은 상징 해석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문자적 해석에만 있다면 계시록의 진수를 발견하기 매우 어렵다. 문자적 해석은 더욱 보완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결국 계시록은 종말의 될 일을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
3) 계시록은 묵시문학이 아니다.
계시록은 결단코 묵시문학이 아니다. 묵시문학이란, 주전 200년 주후 100년까지 40여개 작품으로 전해오는 문학 장르이다. 계시록은 묵시문학과 유사한 특징들이 있다. 하지만 묵시문학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1) 실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임
묵시문학은 예외없이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고 오직 저술을 고대의 어떤 유명한 인물이 저작한 것으로 가장하여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 계시록은 저자가 자신을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계1:4, 계22:8)
계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계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2) 상징의 다양성과 통일성이 있기 때문임
묵시문학에 나타난 상징은 비교적 단편적이고 단회적인데 비하여 계시록에 나타난 상징은 전체가 하나의 단일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묵시문학과 동일시될 수 없다.
(3) 환상에 대한 의미 부여가 다르기 때문임
묵시문학은 대개 환상을 제시한 후 그 환상에 대한 천사의 설명을 포함 시키는데 비해 계시록은 환상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맡기므로 문자적인 설명이 제한시킬 수 있는 보다 풍성한 환상의 의미를 그대로 보존시키고 있다.
(4) 희망적이고 소망을 주기 때문임
묵시문학은 현시대와 역사에 대해 지극히 염세적이므로 인간의 도덕적 삶에 대해 아무런 소망이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에 반해 계시록은 현 시대와 역사를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현장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현실속에서 성도들의 신앙윤리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계시록은 묵시문학과 다르게 교회의 승리와 축복이 주제이다.
김종원 목사(포항예수중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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